<연속기획>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④김우중의 대우그룹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3.07 16: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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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넓고 돈 숨길 금고도 많다"

[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
잘 나가던 기업이 망했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런데 망한 재벌이 '깡통'을 찼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IMF 이후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줄줄이 공중분해 됐지만 해당 기업에서 중책을 맡았던 경영진과 그 가족들은 멀쩡히 잘 살고 있다. 미리 '주머니'를 채워놔서일까?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망한 기업' 수뇌부들의 현주소를 조명해봤다.


 

1967년 3월 섬유수출업체인 한성실업 무역부장 시절 31세의 청년 김우중은 자본금 500만원을 가지고 서울 충무로의 열평 남짓한 사무실에 트리코트 수출업체인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대우실업은 정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셔츠와 내의류 원단을 수출하는 방식으로 싱가포르에 이어 인도네시아, 미국 등지로 빠르게 시장을 넓혔다. 설립 1년만인 68년 대통령 표창을 받을 정도였다.

'대우제국'꿈 날린
'킴기스칸'무리수

70년대 들어서서 대우는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 아래 급속히 사세를 확장했다. 김우중은 '킴기스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칭기스칸이 동유럽, 중동, 송나라, 고려 등 기병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휩쓸었던 것처럼 김우중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미국 등 가리는 곳 없이 발을 뻗었다.  

73년 영진토건(대우개발), 74년 대우전자, 76년 한국기계를 인수했고 78년에는 옥포조선소(대우조선),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를 각각 넘겨받았다. 83년에는 대우전자와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를 묶어 대우전자로 키웠으며 같은 해 동양증권과 삼보증권을 사들여 대우증권을 설립했다. 이후 대우실업이 ㈜대우로 바뀌면서 그룹회장제가 도입, 그룹 외형이 갖춰졌다.


90년대 들어 김우중 회장은 해외시장에 거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켰다. 93년 세계경영의 경영이념을 선포함과 동시에 루마니아, 폴란드, 우즈베키스탄 등 동구권과 구소련 지역에 진출하는 등 확대경영 전략을 폈다.

98년 말 대우는 계열사 41개, 국내 종업원 10만5000명, 해외사업장 외국인 종업원 21만9000명, 해외법인 396개사의 공룡재벌로 성장했고 자산기준으로 삼성, LG를 제치고 현대에 이어 재계 2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외화내빈'이요 '속 빈 강정'이었다. 110여억달러에 달하는 대우그룹의 해외투자는 '부메랑'이 돼서 날아왔고 이를 떠받치기에는 내부구조가 취약했다. 이럼에도 김 회장은 세계경영을 포기하지 않았고 국·내외 사업장들의 운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차입금을 계속 늘려갔다. 99년에는 쌍용자동차를 인수했다. 외환위기 이후 모든 기업들이 몸을 웅크리던 상황에서 김 회장의 선택은 그룹을 유동성 위기로 몰고 갔다.

98년 12월8일 대우그룹은 41개 계열사를 10개사로 감축하는 구조조정 세부계획을 발표하고 99년 1월21일 수영만 부지 매각 등의 재무구조 개선 계획, 4월19일 대우중공업 조선부문 매각, 김 회장 보유주식 매각대금 3000억원 출연 등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을 잇따라 발표, 위기 탈출을 모색했다.

정통 대우맨들 경영 일선서 활발한 활동
김 전 회장, 베트남서 '김우중 2세' 키운다

하지만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GM과의 협상,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 간 협상이 모두 실패하면서 대우는 벼랑 끝에 몰렸다.

결국 6월 말 대우 사장단 전원의 사표제출에 이어 7월19일 대우그룹은 10조1000억원에 이르는 김 회장의 전 재산 담보라는 극약처방을 제시했다. 이어 채권단이 대우에 신규자금 4조원 지원을 결의, 김 회장은 퇴진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99년 8월26일 이미 25곳으로 줄어든 전체 계열사 가운데 ㈜대우, 대우통신, 대우중공업, 대우자동차, 대우자동차판매, 대우전자, 대우전자부품, 쌍용자동차, 대우캐피탈, 경남기업, 오리온 전기, 다이너스클럽 코리아 등 12개 계열사가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하게 됐고 대우증권 등 나머지 13개 계열사는 독자적 회생의 운명에 처하게 됐다.

2000년 11월 최종 부도처리 돼 법정관리에 들어간 대우자동차는 우여곡절 끝에 GM이 인수, 2002년 10월17일 ‘GM대우차’로 새롭게 태어났지만 GM대우는 내수 시장에서 고전을 계속하다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 한국GM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된 쌍용자동차는 2005년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됐다가 판매 부진으로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2009년 법정관리체제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는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해고 사태로 노사, 노조간 갈등 등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고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그룹에 인수됐다.

㈜대우는 대우존속법인과 대우인터내셔널, 대우건설 등 3개사로 재탄생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2010년 포스코에 인수, 드물게 ‘대우’로고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된 대우건설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자금난 이후 2010년 한국산업은행으로 인수됐다. 경남기업은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우건설에 인수됐다가 2004년 대아건설을 합병했다.

이리 저리 팔린
대우 계열사들

대우종합기계는 2005년 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로 재탄생했으며 대우조선공업은 대우조선해양으로 사명을 변경, 지난해 국내 조선업계 수주 실적 1위에 올랐지만 현재까지도 새 주인을 찾는 중이다.

대우중공업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현대정공, 한진중공업과 함께 통합법인 한국철도차량을 설립했다. 이후 한국철도차량의 지분이 2001년 현대자동차에 전량 매각되면서 지금의 현대로템이 설립됐다.

대우전자는 지속적으로 규모를 줄이다가 2002년 말 주력사업부문이 대우모터공업으로 양도됐고 이 회사는 2003년 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했다. 채권단이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5년 매각에 나섰지만 인수 가격과 매각 조건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줄줄이 무산되다가 지난 2월 8년 만에 동부그룹 품에 안겼다.

대우그룹 해체 전 채권단에 인수된 대우증권은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됐다가 2009년 한국산업은행 민영화에 따라 새롭게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됐다. 다이너스카드클럽 코리아는 2001년 8월 현대자동차에 매각되어 현대카드로 탈바꿈했으며 대우캐피탈은 아주그룹으로 편입되어 아주캐피탈로 사명을 변경했다.


41조원대의 분식회계와 이를 통한 10조원대의 불법 대출과 재산 은닉 혐의를 받던 김 전 회장은 99년 10월18일 중국 산둥성의 옌타이 자동차부품공장준공식 참석을 마지막으로 종적을 감춘 뒤 해외에서 낭인 생활을 했다. 독일과 베트남, 프랑스 등지에서 지내던 김 전 회장은 2000년 이후 대우차 노조가 체포결사대를 조직하고 수배에 나서자 모로코와 수단 등지로 계속 숨어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끊임없이 나도는
김 전 회장 재기론

2001년 3월 인터폴 적색수배 명단에 오른 김 전 회장은 2002년 한국 여권의 유효기간이 만료됐지만 1987년 가족들과 함께 취득한 프랑스 국적을 이용, 세계 각지를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5년8개월간의 해외 잠행 생활을 마치고 2005년 귀국한 김 전 회장은 바로 철창 신세를 졌다. 이후 심장질환 등 건강 악화로 한 달여 만에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났지만, 2006년 11월 항소심에서 징역 8년6월에 추징금 17조9253억원, 벌금 1000만원이 선고됐다.

2007년 12월3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말 마지막 특별사면으로 사면 복원됐던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구명 로비의혹 수사 과정에서 추징을 피하기 위해 1000억원대 재산을 숨긴 혐의로 2008년 9월 불구속 기소돼 징역1년6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받았다.

김 전 회장의 부실 경영으로 인한 대우그룹 해체는 국가 경제를 흔들었다. 정부는 대우그룹을 살리려고 약 30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대우그룹은 41조원 분식회계를 저질렀고 30조원의 혈세 대부분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런데도 김 전 회장의 추징금은 그대로 남아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빈털터리'지만 김 전 회장과 그의 가족들은 여전히 부유한 삶을 살고 있다. 업계에서 김 전 회장의 재기론이 끊임없이 나도는 이유다.

김 전 회장은 2008년 사면 이후 2009년 2월 고 김수환 추기경 빈소를 찾은 것을 시작으로 3월에는 대우그룹 창립 42주년 기념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같은 해 10월 열린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창립총회에서는 육성이 담긴 영상편지를 대우 전 임직원들에게 보냈다.

가장은 빈털터리…가족 재산은 증가
허공으로 사라진 국민 혈세 30조원


2010년과 2011년, 대우그룹 창립 기념행사에 잇따라 모습을 드러낸 김 전 회장은 베트남 하노이에 거주하면서 매일 골프를 즐기는 등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영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김 전 회장은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실질적인 운영과 자금을 지원하는 해외 청년 취업프로그램 'YBM(Global Young Businessman for Vietnam)'을 이끌고 있다.

김 전 회장의 직계 가족들은 기업의 대주주이거나 최고경영자 자리에 있다. 김 전 회장의 부인인 정희자씨는 아트선재센터의 관장을 맡고 있으며 차남인 선엽씨는 경기도 포천에 있는 아도니스CC의 대주주를 맡고 있다. 2005년 아도니스CC 대표이사에 취임한 선엽씨는 2010년 이경재 이사를 대표이사로 올린 뒤 등기 임원에서 빠졌다. 장남 선재씨는 1990년 미국유학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김 전 회장의 외동딸 선정씨는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을 지냈고, 지금은 수석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로 활동했고, 지난해에는 광주비엔날레 공동 예술감독을 맡기도 했다.

특히 선정씨는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의 안사람으로서 이수화학 지분 3.8%와 이수페타시스 지분 6.5%를 보유하고 있다. 선정씨의 주식보유액 가치는 241억원에 이른다.

매년 빠짐없이 창립 기념식을 열고 있는 옛 '대우맨'들의 목소리도 여전히 우렁차다.

여전히 막강한
총수일가 영향력

대표적 인물이 장병주 전 ㈜대우 무역부문 사장이다. 대우그룹 사태의 책임을 지고 형사처벌을 받다 지난 2007년 12월 사면 복권된 장 전 사장은 지난 2011년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을 맡아 세계경영의 재평가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1976년 대우그룹에 입사한 뒤 지난 30여 년 동안 '대우외길'을 걸어왔던 이성 전 대우일렉트로닉스 사장은 최근 대우일렉이 동부에 인수된 후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선임됐으며 지난해 3월 선임된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사장도 1980년 대우그룹 입사 후 대우밥만 먹은 정통 대우맨이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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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신학원 이사의 수상한 영전

[단독] 한신학원 이사의 수상한 영전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한신학원 이사였던 A씨가 한신대학교 총장과 이사장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다가 취하했다. 공교롭게도 고소를 취하하기 직전에 열린 이사회에서 그는 교육인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고소가 이뤄진 배경은 지난 5월22일 열린 한신대학교 이사회에서 비롯됐다. 이날 회의에는 총장을 비롯해 이사 17명이 참석했다. 당시 학교법인 한신학원의 감사가 “그동안 한신대에서 사내 공사를 한 금액이 70억원이 넘는데 모두 입찰을 피하기 위한 쪼개기 공사로, 수의계약으로 공사를 했다”고 보고하면서다. 학원 감사 내부 폭로 당시 감사의 충격적인 발언으로, 한신학원 이사 A씨는 고민 끝에 업무상 배임 및 횡령으로 한신대 총장과 이사장을 상대로 고소를 진행했다. A씨가 지적하는 부분은 세 가지다. 첫 번째로 한신학원 재산인 거제도 땅과 관련한 배임을 주장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한신학원은 거제시에 임야 약 55만평을 보유하고 있었고, 도로가 연결되지 않은 ‘맹지’로 분류된 해당 부지에 대해 논의 중이었다. 그 곳은 수익용 기본재산임에도 장기간 활용이 어려운 상태였다. 한신학원 측은 이 토지를 단순 보유할 경우 관리비만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가치 상승도 제한적이라고 판단해 활용 방안을 모색 중이었다. 당시 M 건설은 2016년부터 경남 거제시 아주동 일원에서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업 대상 부지 중 일부가 학교법인 한신학원 소유의 임야로 포함돼있었고, 한신학원 역시 해당 지역 임야를 공동개발 방식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M 건설은 경상남도로부터 지구 지정에 대한 조건부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 한신학원 이사들은 당시 이사장이 학원 소유 토지를 공공임대주택 개발에 제공하는 대가로 20억원을 받기로 했다는 사실을 용역업체 대표의 제보를 통해 알게 됐다. 이사회는 즉시 M 건설 측에 협상단을 파견해 토지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요구했지만, 협상은 결렬됐다. 이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한신학원의 상급기관인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이하 기장총회)는 사업 자체를 중단시켰다. 이로 인해 M 건설은 한신학원 측의 토지 사용 승낙을 얻지 못하게 됐고, 결국 조건부 지구 지정이 취소될 위기에 놓이면서 개발사업은 사실상 좌초됐다. 이후, 한신학원 법인 산하 ‘한신영림운영위원회’는 열린 회의에서 해당 부지를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사업에 참여하는 형태로 개발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이 회의에는 삼부토건 관계자라고 주장하는 B씨와 C씨가 직접 참석해 사업 구조와 예상 수익, 한신학원의 참여 방식 등을 설명했다. 이들은 명함까지 주며 자신들을 “삼부토건 고문”과 “부사장”이라고 소개하며 접근했다. 한신대 상대로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 고소 불법 매각·쪼개기 공사·교비 횡령 의혹 제기 두 사람이 제안한 내용은 “삼부토건이 M 건설로부터 사업권을 인수해 시행하며, 한신학원은 부동산투자회사(REITs)에 현물출자하고 주식 지분을 배당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때 M 건설에도 B씨와 C씨가 접근했다. 이들은 “한신학원과 협의를 주선해 사업을 재개시키겠다”고 제안했다. M 건설은 이 제안을 믿고 2023년 8월 ‘사업시행대행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조건은 B씨 측이 같은 해 9월20일까지 한신학원으로부터 토지 사용 승낙서를 받아오면 용역비를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M 건설은 계약금 명목으로 1억원을 지급했다. 같은 해 이사회는 한신영림운영위원회의 보고를 바탕으로 관련 헌의안을 기장총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한신학원은 기장총회가 한신대 운영을 위해 설립한 법인으로, 모든 사업은 기장총회의 허가가 필요하다. 보고서에는 구체적인 사업 예측치도 포함됐다. “지구 단위 승인을 거쳐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변경될 경우 평당 100만~150만원의 감정가가 예상되며, 현물출자 후 10년 임대 기간이 끝나 분양 전환 시 내부수익률(IRR)은 약 6.77% 이상”이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기장총회는 “한신학원 소유 토지는 공공개발 참여 대신 현금 매매로 전환한다”는 결의를 내렸다. 한편, 약속된 기한이 지나도 M 건설에 토지 사용 승낙서는 발급되지 않았다. M 건설이 계약 해지를 통보하자 B씨 측은 “승낙서가 곧 발급된다”며 시간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승낙서는 끝내 발급되지 않았다. M 건설은 곧바로 계약을 해지하고, 실제 B씨가 대표로 있는 S사를 상대로 계약금 1억원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이 시기 한신학원은 삼부토건에 이들의 신원을 확인했다. 삼부토건은 “B씨와 C씨는 우리 회사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답변했다. 즉, 자신들을 삼부토건 관계자라고 밝힌 B씨와 C씨가 실제로는 삼부토건 관계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삼부토건 본사는 “이들과 별도의 위임이나 계약관계를 맺은 사실이 없다”고 확인했다. 대형 건설사인 삼부토건의 이름을 내세워 사업을 추진하려 한 것이다. 실체 없는 부동산 리츠 이후 B씨는 자신의 배우자 명의의 P사로 이름을 바꿔 사업을 계속 추진했다. B씨 일행의 만행을 알게 된 M 건설은 지난해 3월, 한신학원에 ‘토지 매수의향서’를 보내 “거제 아주동 임야를 평당 50만원에 매수할 의사가 있다”고 전달했다. M 건설은 인근 토지를 이미 평당 44만원에 매입했다고 밝히며, 한신학원 토지는 “13% 이상 높은 가격으로 정당하게 매입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B씨는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한신학원은 같은 해 5월30일, B씨의 부인이 대표로 있는 P사와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A씨는 “총장과 이사장이 이 제안을 알고도 이사회나 총회에 보고하지 않았다”면서 “M 건설의 제안이 있었음에도 총장과 이사장이 P사와 불공정한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했다. 문제로 지적한 점은 계약 내용이었다. 부동산 매매계약서에 따르면 계약금 총액은 10억5000만원으로 명시됐지만, 실제 한신학원이 받은 금액은 1억원뿐이었다. 잔금 9억5000만원은 “4년 이내 부동산투자회사(REITs)와의 매매계약 재체결 시 지급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고, 심지어 한신학원은 받은 계약금 1억원을 매수인에게 반환하기로 명시돼있었다. 또 특약 사항에는 ‘매도인은 계약 체결 시 토지 사용 승낙서를 발급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즉, 계약금 실수령액이 전체의 100분의 1에 불과한 상황에서 매수인이 토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한 셈이었다. 고소인은 이를 “매매계약을 가장한 사실상 사용 허가서”라고 주장했다. 한신학원 정관 시행세칙 제18조에는 “기본재산의 매도·증여·교환 또는 용도 변경 시에는 재적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이사회 의결을 거쳐 관할 관청 허가를 득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그러나 고소인은 “삼부토건으로 의결된 사업을 P사로 변경하면서 이사회가 새로이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토지 처분 신고도 문제점으로 꼬집었다. 한신학원은 지난해 1월 교육부에 ‘수익용기본재산 처분 신고서’를 제출하면서 “감정가 이상(16억7000만원 이상)에 토지를 처분하고 대체 부동산을 구입하겠다”고 보고했다. 이후, 교육부는 이 신고를 ‘처분 허가’로 정정해 승인했으며 “1년 내 매각 완료, 대금 완납 전 소유권 이전 불가”를 조건으로 달았다. 그러나 P사와의 계약서에는 잔금 지급 시점이 명확히 적시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고소인은 “교육부에는 단기 매각으로 보고하고 실제로는 장기 임대 형태로 계약했다”며 기망 가능성을 제기했다. 계약서상 ‘잔금 수령일’이 없고, 2차 계약금도 부동산투자회사와의 별도 계약 체결 이후로 미뤄져 있다. 쪼개기 공사? 교비도 횡령? 가장 큰 문제점은 잔금을 받기로 한 부동산투자회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당 회사는 현재 설립 예정으로 실체가 없는 곳이다. 게다가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토지 사용 허락서는 교육부의 허락을 받아야만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토지 사용 허락서가 교육부에 신고되지 않은 채 발급됐다는게 A씨의 주장이다. 실제 교육부는 민원 답변을 통해" 해당 토지의 사용 승낙 신청을 접수하거나 허가한 내역이 없으며, 우리부 허가가 없는 토지 사용 승낙은 효력이 없다"고 못 박았다. 두 번째로, 한신대가 진행한 각종 시설공사와 관련해 수의계약 체결 과정의 절차 위반이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A씨는 “학교법인 및 산하 대학이 사립학교법과 학내 재정세칙에 따라 공개경쟁입찰을 원칙으로 해야 하는 공사계약을 다수 수의계약 형태로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한신학원 정관과 세칙에는 ‘2000만원 이상의 공사는 공고를 해서 경쟁에 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2인 이상의 견적서와 시방서, 설계서를 징수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그러나 한신대학교는 2022년부터 2024년 사이 약 40억원 규모의 공사 57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절차를 대부분 생략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법인 내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도 교내 공사 57건이 40억원에 진행됐다. 동일 공사인데도 나눠서 계약을 하고, 2억원까지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는 명목으로 쪼개기 공사와 공사 지정 업체의 중복이 발견되는 등 부실 흔적이 많다. 앞으로 전자입찰이 되도록 공사 입찰 규정을 반드시 만들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A씨는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계약단가가 낮아져 수억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규정을 어긴 업무처리로 한신학원 및 한신대에 수억원의 재산상 손해를 입혔다”며 이를 업무상 배임 행위라고 주장했다. 세 번째로 한신대학교 교비 회계 자금이 학교 운영과 직접 관련 없는 법률 비용으로 사용됐다는 점도 지적했다. A씨는 “교비 회계는 학교 운영과 교육에 필요한 경비로만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음에도, 교비 자금이 법적 분쟁 비용으로 전용됐다”고 강조했다. 문제가 된 것은 노무사 선임비용 약 6800만원이다. 고소장에 따르면, 한신대 총장은 2023년 고용노동부에 진정이 제기된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노무사 및 법률대리인 선임 비용을 교비 회계에서 지출했다. 해당 진정은 한신대 내부 인사·노무 관련 사안으로, 교직원 고용 문제 및 근로계약 분쟁에 대한 것이었다. 이사회 후 돌연 취하, 왜? 학원 교육인사위원장 임명 A씨는 이를 업무상 횡령에 해당하는 행위로 판단했다.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교비는 학생 교육에 직접 필요한 용도로만 집행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법인 소송이나 노무 분쟁처럼 학교 운영 전반과 직접 관련이 없는 항목은 교비에서 부담하면 안 된다는 것이 고소인 측의 입장이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비용 지출의 성격이다. 즉 ‘노무사 선임이 학교 교육활동에 직접 관련된 행위인가’가 판단 기준이 된다. 실제로 올해 대법원은 노무법인 자문 비용을 교비회계 자금으로 집행한 행위를 업무상 횡령으로 판단하는 판결을 내렸다. 제주의 한 대학교 총장 A씨는 소속 교수가 자신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그 비용 330만원을 포함해 총 1880만원의 변호사 비용을 교비 회계에서 지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1심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며 “교수 및 노조 등과 관련한 분쟁 대응을 위한 변호사 비용은 학교의 교육활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현재 해당 고소 건은 취하된 상태다. 지난달 <일요시사>가 이 사건을 취재하던 과정에서 한신대 비서실을 통해 A씨가 고소를 취하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제보자 역시 “해당 이사가 면직 압박을 받고 고소를 취하했으며, 그 직후 인사위원장 보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기자가 한신학원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지난달 10일 인사위원장으로 임명됐고, 같은 달 11일부터 공식 업무가 시작됐다. 추가로 확보한 녹취에서 A씨는 고소를 취하한 이유에 대해 “이사회에서 강제로 면직시키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언급했다. 한신학원 인사위원회는 내부 교직원의 인사와 징계 등을 담당하는 핵심 기구로, 교육인사위원장은 실질적인 권한이 큰 자리로 알려져 있다. 통상 이사장은 교육인사위원장 출신 가운데에서 선출되는 경우가 많아, 해당 보직이 사실상 이사장 자리로 가는 주요 루트인 셈이다. 대가성 보직? 이사장 루트 한편, 한신대는 해당 고소 건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한신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토지 매각 문제의 경우 한신학원의 문제고 한신대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수의계약 문제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2억원 미만이면 가능하다”고 밝혔고, 교비 횡령 의혹은 “사건 조사 관련된 비용으로 지출된 부분이라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