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아킬레스건

2% 부족한 인적 네트워크 ‘약 일까 독 일까’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재계의 조연에서 주연급 스타로 발돋움한 지 오래. 검찰발 사정바람과 금융발 불황폭풍 속에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치고 나가는 ‘공격력’이 무서울 정도다. 하지만 스피드를 내고 있는 강 회장에게도 건드리면 아픈 ‘아킬레스건’이 있다. 흠집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벽하고 강한 강 회장의 2% 부족한 점이 무엇일까.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거침없는 질주가 화제다.
우선 STX그룹의 초고속 성장이 눈부시다. STX그룹은 창립 10년도 안 돼 재계순위 12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 밑으론 신세계그룹, CJ그룹, 동부그룹 등 재계에서 내로라하는 그룹들이 즐비하다. 2000년 그룹 출범 당시 매출은 2605억원. 지난해 STX그룹 총매출 28조원과 비교하면 100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올해 목표는 30조원이다.

사정바람·불황폭풍 속 거침없는 질주 화제
지연 학연 등 큰인맥 부재 “너무 평범했나”
‘월급쟁이서 총수로’자수성가 성공스토리
‘스페셜 코스’ 밟은 재벌 사이서 ‘왕따?’

STX그룹이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인수·합병(M&A)이다. STX그룹은 출범 이후 활발한 M&A를 통해 꾸준히 몸집을 불려왔다.
2000년 STX중공업(옛 쌍용중공업) 인수를 시작으로 2001년 STX조선(옛 대동조선), 2002년 STX에너지(옛 산단에너지), 2004년 STX팬오션(옛 범양상선) 등을 차례로 먹어치웠다. 매번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말이 나왔다.

2000년 그룹 출범 
총매출 100배 증가

지난해엔 유럽연합(EU)으로부터 노르웨이 크루즈선 업체 STX유럽(옛 아커야즈)을 인수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M&A시장에선 STX그룹이 ‘단골손님’일 정도로 매물 후보군에 빠짐없이 거론되고 있다. 그만큼 ‘실탄’이 넉넉하다는 얘기고, 강 회장이 ‘M&A 귀재’로 불리는 이유다.
STX그룹은 먹잇감들을 바탕으로 지주사격인 ㈜STX를 포함해 STX엔진, STX중공업, STX엔파코, STX건설 등을 일궈냈다. 이렇게 하나둘 늘어난 계열사가 모두 17개다. STX그룹은 주력인 ‘조선기자재-엔진제조-선박건조-해상운송’으로 이어지는 사업 구성을 통해 경영전략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룹의 경영 성과를 기반으로 강 회장은 최근 재계에서도 급부상하고 있다. 그는 올 들어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에 이어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으로 선출됐다. 조선업계에서 유일하게 재계를 대표하는 3대 단체 부회장단에 선임된 것. 강 회장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 부자 순위에서 20위권에 안착하기도 했다.
그룹 측은 “STX의 초고속 성장의 배경엔 강 회장의 탁월한 경영전략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강 회장은 안주하지 않고 시선을 해외로 돌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을 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언뜻 보기엔 강 회장이 그저 재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신흥재벌 쯤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는 맨손으로 지금의 STX를 일군 자수성가한 오너다. 이 과정엔 한편의 드라마 같은 우여곡절이 가득하다. 월급쟁이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대기업 총수’에 오르기까지 구구절절한 성공 스토리가 그것이다.
문제는 강 회장의 너무 평범한 과거가 지금의 아킬레스건으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바로 초라한 인맥이다. 강 회장이 “인재가 재산”이란 ‘인재론’을 강조하며 우수 인재 확보에 힘을 쏟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경영자에게 필수로 인식되고 있는 대인관계는 곧 기업 자산과 다름없기 때문에 강 회장으로선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강 회장이 여느 재벌그룹 오너와 다른 길을 걸어온 결과다.

어려서부터 자라온 환경이 한 울타리에 있는 재벌가 사람들은 ‘끼리끼리’명문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자연스레 친분을 쌓다가 미국 유학 등 ‘스페셜 코스’밟으면서 탄탄한 인맥을 갖게 된다. 반면 강 회장은 그동안 재벌가와 동떨어진 탓에 재계에서 ‘왕따’를 당한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재계 관계자는 “강 회장이 앞만 보고 살아온 세월과 기업을 일군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변에 유명한 인사들이 그리 많지 않다”며 “지연, 학연, 친인척, 대외활동 등 어디를 둘러봐도 내세울 만한 큰 인물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재벌가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문 순수 국내파다. 1950년 경북 선산 출생인 그는 동대문상고, 명지대 경영학과, 서울대 국제대학원 GLP과정(Global Leadership Program·최고경영자과정)을 거쳐 1973년 쌍용양회에 입사했다. 이후 쌍용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긴 강 회장은 부도에 직면한 회사의 대표이사로 선임된 뒤 사재를 털어 회사를 인수하면서 인생의 전기를 마련하는 ‘뱃고동’을 울렸다.
여기까지 강 회장이 쌓은 인맥을 살펴보면 이렇다.

강 회장이 나온 명지대 출신의 정·관·재계 인사는 이강래 의원(민주당), 최욱철 의원(무소속), 김휘동 안동시장, 홍성은 미국 레이니어그룹 회장, 양재열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권오형 한국공인회계사 회장 등이 전부다. 또 서울대 국제대학원 GLP과정을 밟은 유명인사는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 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등이 대표적이다.

“사람이 재산인데…”
‘이희범 카드’통할까

강 회장은 ‘쌍용맨’시절 기획금융·경영관리 등 핵심부서를 두루 거치면서 미래의 ‘동지’를 만났다. 최근 강 회장이 영입한 이희범 에너지부문 총괄 회장이다.
그룹의 해외 에너지 및 자원 개발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 회장은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국내외 정·관·재계에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다. 재계에서 이 회장이 강 회장의 2% 부족한 인맥 네트워크를 채워줄 적임자란 평가가 나오는 까닭이다. 강 회장도 대외활동의 부담을 덜기 위해 이 회장 영입에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이 회장은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공대 출신으론 최초로 행시(12회)에 수석으로 합격한 이후 상공부 수출과장, 주미 상무관, 산업정책국장, 자원정책실장, 산자부 차관·장관에 이어 2006년 2월부터 지난 2월까지 한국무역협회 회장을 지냈다.
무엇보다 이 회장 영입 배경엔 강 회장과의 오랜 우정도 한몫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은 1990년대 수출 담당 공무원과 기업 임원으로 만나 인연을 놓지 않았다. 각각 59세와 60세로 한 살 터울인 강 회장과 이 회장은 고향이 경북 안동과 선산으로 사실상 동향이다.

강 회장이 무역협회 부회장으로 선임된 것도 이 회장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이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부터 (강 회장과) 친분이 있었다”며 “서로 생각이나 처지가 비슷했던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쌍용맨’출신인 김선동 전 에쓰오일(S-oil) 회장도 강 회장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의 성공스토리는 강 회장과 판박이다. 김 전 회장이 쌍용정유를 인수한 시기나 배경, 과정 등이 강 회장의 쌍용중공업 인수와 거의 유사하다. 채권단의 신임을 얻어 수장에 오른 점 또한 닮은꼴이다.
김 전 회장은 1974년 에쓰오일의 전신인 쌍용정유에 부장으로 입사한 뒤 1991년 사장에 올랐다. 1998년 모그룹인 쌍용그룹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쌍용그룹 지분을 매입, 에쓰오일을 독립경영체제로 전환시켰다. 회장에 취임한 것은 2000년 3월이다.

두 사람의 친분은 2006년 김 전 회장이 강 회장에게 에쓰오일 지분 인수전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2007년 5월 에쓰오일 회장직에서 물러난 김 전 회장은 현재 지난해 사재를 털어 설립한 장학재단인 미래국제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강 회장이 STX그룹의 사세를 확장하면서 친분을 쌓은 인사도 있다. 공교롭게도 김 전 회장과 정유업계 맞수였던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다. 강 회장과 허 회장은 무역협회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친분을 쌓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 허 회장은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인수전 당시 GS컨소시엄을 구성하면서 강 회장에게 ‘SOS’를 보내기도 했다.

김 전 회장과 허 회장은 1942년생 동갑내기로 정유업계에서 잔뼈가 굵으면서 미운정 고운정이 들었다. 강덕수-김선동-허동수 ‘3각 라인’이 엮어지는(?) 셈이다. 이들 세 사람은 서로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에 평소 친구처럼 편하게 대화하면서 교감하는 사이로 알려졌다.

김선동·허동수 친분
본격 인맥쌓기 스타트

업계 관계자는 “강 회장이 재계에서 주목받은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에 이렇다 할 인맥이 없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며 “큰 단체의 부회장직을 맡는 등 본격적으로 대외 활동을 시작한 만큼 강 회장의 인맥 쌓기는 이제부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STX그룹 내부 관계자는 강 회장의 인맥 부재에 대해 사뭇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요즘 같은 시끄러운 정국에 여기저기 발을 걸친 문어발 인맥은 자칫 독이 될 수 있다”며 “특별히 줄을 댈 만한 아는 사람 없이 기업을 크게 일궜다면 그만큼 깨끗하고 투명하다는 반증이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강덕수 회장 약력
▲1950년 경북 선산 출생 ▲동대문상고, 명지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국제대학원(GLP) 수료 ▲창원대 명예경영학 박사 ▲1973년 쌍용양회 입사 ▲1995년 쌍용중공업 이사 ▲2000년 쌍용중공업 대표이사 ▲2001년 ㈜STX 대표이사 ▲2003년∼현재 STX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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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