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테마1>돈 권력 그리고 사람들

정권의 2인자들의 권불십년가



‘권력자 오른팔’ 2인자, 정권교체마다 수난사 되풀이
‘그림자, 황태자, 복심’서 각종 게이트 배후로 철창행

세상에 영원히 푸르른 것은 없다. 권력은 특히 그렇다. 권세는 십년을 가기 힘들다는 ‘권불십년’이라는 말은 오랜 시간 증명돼 왔다. 특히 정권의 중심에 섰던 이들은 정권교체와 함께 누구보다도 빠르게 추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두환 정권의 장세동 전 안기부장, 노태우 정권의 박철언 전 의원, 김영삼 정부의 김현철씨, 김대중 정부의 박지원 의원, 노무현 정부의 이광재 의원, 안희정 최고위원 등 ‘2인자’로 불렸던 이들의 부상과 몰락은 판에 박힌 듯한 모습이다. 한때 최고 권력자의 곁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날이 바뀌며 차가운 검찰의 칼날 앞에 놓였다. 정치권을 향한 야망도 좌절되기 십상이다. 이들 중 몇몇은 정계 복귀에 성공했지만 ‘과거의 영광’을 안고 쓸쓸히 돌아선 이들도 적지 않다. 잠깐의 권세 뒤 긴 고난을 견뎌야 했던 각 정권 ‘비운의 2인자’들을 따라가 봤다.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계속되면서 정권 핵심인물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 구속되고 있다. 이중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에 일등공신이었던 ‘좌희정’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과 ‘우광재’ 민주당 이광재 의원 등 전 정권 실세들이 포함돼 있다.

권력 그림자 뒤로
열흘 붉은 꽃이 없다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꼽히며 지난 정권 ‘권력의 푸르름’을 누렸던 그들이지만 정권교체 후 사정 1순위로 떠오른 것이다.

이광재 의원과 안희정 최고위원뿐 아니라 전두환 정권의 장세동 전 안기부장과 노태우 정권의 박철언 의원, 김영삼 정권의 김현철씨, 김대중 정권의 박지원 의원 등 역대 정권의 2인자들은 전 정권의 2인자가 걸었던 길을 되밟았다.

‘살아있는 권력’ 시절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황태자’로 군림했지만 정권이 바뀌자 권력무상을 깨닫기도 전에 사법처리 대상이 된 것.


2인자의 시작은 박정희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2인자는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이었다. 5·16 당시 육군 대위로 쿠데타에 참여, 박정희 소장의 경호 장교를 맡으면서부터 그들의 인연은 시작됐다.

대통령 경호실장에 임명된 그는 단순히 대통령의 신변을 돌보는 차원을 넘어 대통령의 권력을 경호하는 ‘정권의 파수꾼’ 역할을 자 대통령의 안전을 국정 최우선 순위에 두면서 모든 가치 기준을 여기에 맞춘 것. 때문에 당시 경호실은 ‘대한민국 최강의 군대’라고 불렸다.

그러나 그의 말로는 좋지 못했다. 79년 10월26일에 궁정동 안가 연회장에서 박 전 대통령과 같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저격당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군대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이래 그의 ‘그림자’로 불린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자타가 공인한 정권의 2인자였다.

전 전 대통령의 12·12쿠데타에 동참,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이 된 이후 장 전 안기부장은 전 전 대통령이 집권한 7년 중 5년 동안 군부정권의 권력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경호실장과 안기부장을 맡아 대통령의 최측근에 서있었다.

그가 경호실장 시절 생긴 ‘심기경호’라는 말은 전 전 대통령의 안전뿐 아니라 기분까지 챙긴다는 ‘절대적인 충성’을 나타낸다. 이 같은 충성의 대가로 당시 장 전 안기부장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정권의 실세가 될 수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의 밀사로 남북정상회담을 논의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으며 급기야 전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까지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퇴임 직후부터 구치소에 드나들기 시작해 89년 5공 비리사건으로 구속됐다. 권력을 손에 틀어쥔 지 6년 만의 일이다. 이어 93년 용팔이사건(통일민주당 창당 방해사건), 95년 5·18 광주민주항쟁 재수사 등으로 3차례 구속과 수감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는 용팔이 사건 등에서 “나 이외에 더 이상의 배후는 없다”고 강조, 전 전 대통령을 끝까지 보호했다. 현재 5공 인사들의 맏형 노릇을 하며 전 전 대통령의 곁을 지키고 있다.

노태우 정권에서는 박철언 전 민자당 의원이 ‘떠오르는 태양’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고종사촌 처남인 박 전 의원은 대통령 비서관, 안기부장 특별보좌관 등을 지내면서 정권의 핵심에서 움직였으며 대북밀사로 비밀리에 20여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노 전 대통령이 취임한 후 제13대 국회의원이 된 그는 ‘6공의 황태자’로 불리면서 정무 제1장관, 체육청소년부 장관 등을 지냈다. ‘노태우’라는 바람을 타고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떠오르는 정권의 풍운아였다.

권불십년 → 권불오년
10년도 못 가서 병난다

하지만 용팔이 사건,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부산기관장 회식 사건 등 각종 사건에 배후자로 지목당하는 등 시련이 적지 않았다.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으나 ‘슬롯머신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1년6개월간 복역했다. 그가 구속된 93년 5월22일은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날이기도 하다.

당시 박철언 전 의원은 “새벽이 왔다고 소리치면서, 왜 닭의 목을 비트는가”라며 혐의를 부인하는 한편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다. 박 전 의원은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나 16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낙선하면서 정계를 은퇴했다.

김영삼 정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정권의 2인자는 ‘소통령’으로 불린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다. 각종 공직인사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권세를 누리던 현철씨는 국정개입 및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아버지’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97년 5월 구속됐다.

한보그룹 특혜비리 수사 때 두양그룹 등 기업체로부터 이권 청탁과 함께 활동비 등의 명목으로 66억원을 받고 증여세 14억원을 포탈한 혐의가 드러나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것. 그는 1992년 대선 때 쓰고 남은 비자금 186억원을 관리하기도 했다.

현철씨와 검찰의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한솔그룹 조동만 전 부회장으로부터 20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두 번째 구속된 것. 정치에 대한 뜻을 버리지 못한 현철씨는 지난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현재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며 정계 복귀를 노리고 있다.

YS의 정치적 아들이자 ‘역사상 가장 센 여당 사무총장’으로 불렸던 강삼재 전 의원도 정권교체 후 ‘2인자들의 전철’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는 ‘안풍(安風)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2001년 국고손실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긴 했지만 국가로부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했다.

연이은 구속으로
빛 못본 비운의 2인자들

김대중 정권에서는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복심’이었다. 성공한 재미동포 사업가였던 박지원 의원은 DJ가 해외에서 민주화운동을 할 때 만나 현재까지 그를 따르고 있다.


86년 DJ의 정치활동이 재개되자 사업을 정리하고 DJ의 비서역할을 하기 시작한 그는 DJ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청와대에 들어가 공보수석을 맡았으며 문화관광부장관, 정책수석, 비서실장 등으로 정권이 끝날 때까지 지근거리에서 DJ를 보좌했다.

특히 박 의원은 DJ의 대북특사로 북측과 접촉,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정상회담의 대가로 대북송금 의혹이 일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하면서 동교동계 인사들과 함께 서울구치소로 향해야 했다.

때문에 박 의원은 노무현 정권 5년에 대해 “교도소와 병원을 들락날락한 기간이었고 한이 맺혀 잠 못 이룬 밤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에게서 받았다는 150억원과 관련, 무죄를 선고 받고 18대 총선을 통해 정계로 복귀했다.

파란만장한 박지원 의원의 사정도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동교동계의 맏형 격인 권 전 고문은 한보·현대그룹으로부터 각각 불법정치자금과 비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김대중 정권 전후로 세 차례에 걸쳐 구속됐다.

반복된 2인자의 행보
징크스 계속 이어질까?

그는 DJ가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참모역할로 그의 곁에 있기 시작해 40여 년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으나 거듭된 구속으로 정권의 햇살을 누려보지 못한 ‘비운의 2인자’로 꼽힌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겐 특별한 ‘2인자’가 없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은 “참여정부에 2인자는 없다. 2인자 문화는 제왕적 대통령 시대의 문화”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이들은 있다.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는 이광재 의원과 안희정 최고위원이다.

이 의원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 1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이 과정에서 의원직 사퇴의 뜻을 밝혔다. “새 인생을 위해 정치를 떠날 것이고 인생을 걸고 정치를 버리겠다”는 게 사퇴의 변이었다. 안희정 최고위원도 강금원 창신섬유 대표와 관련해 사법처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정권의 2인자치고 ‘좋은 날’ 가고 검찰에 불려가지 않은 사람 없다는 ‘징크스’가 깨지지 않았다”며 권세는 10년을 가지 못한다는 ‘권불십년’에 대한 경고를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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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광주 노른자위 땅을 개발하는 사업이 건설사 간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총사업비 2조여원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양측이 제기한 고소·고발로 표류하는 모양새다. 갈등의 본질은 사업을 좌지우지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의 최대주주 지위가 누구에게 있는지다. 최근 지분확보를 위한 소송 과정서 의문의 돈거래가 포착됐다. 2020년 7월1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도시계획시설서 도시공원으로 지정해놓은 개인 소유의 땅에 20년간 공원 조성을 하지 않을 경우 땅 주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도시공원서 해제하는 제도인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됐다. 도시공원 일몰제의 도입으로 민간공원 특례사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민관 합작 윈윈 사업 민간공원 특례사업은 민간에 사업시행권을 주고 공원을 조성해 지자체에 기부채납하도록 하는 제도다. 민간 사업시행자는 공원부지 30% 범위서 아파트 건설 등 비공원사업을 진행해 수익을 챙길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는 민간 자본으로 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간 사업시행자는 주택 공급 사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서로 이득 볼 수 있는 구조다. 현재 전국 각지서 진행하고 있는 민간공원 특례사업 중 ‘중앙공원 1지구 민간공원 특례사업’의 규모가 가장 크다. 광주시 서구 금호동과 화정동, 풍암동 일대 243만5027㎡에 공원시설과 비공원시설을 건축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비공원시설 부지에는 지하 3층~지상 28층, 39개동 총 2772세대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총사업비가 2조2000억원에 달한다. 2020년 1월 사업시행사인 특수목적법인(SPC) 빛고을중앙공원개발(이하 빛고을)이 설립되면서 추진되기 시작한 사업은 최근 시행사 지위와 시공권 등을 두고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SPC 설립 시점부터 컨소시엄에 참여한 한양과 이후 시공자로 들어온 롯데건설, 지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우빈산업, 케이앤지스틸 등이 갈등의 주체다. SPC 빛고을 설립 초기 한양이 30%로 최대주주, 우빈산업(25%), 케이앤지스틸(24%), 파크엠(21%)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한양이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의 SPC 빛고을 참여를 위한 초기자본 49억원을 댔다. 한양이 우빈산업에 49억원을 빌려주고 우빈산업이 다시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대여해 지분을 분배했다. 이때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콜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콜옵션은 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우빈산업은 언제든지 원할 때 케이앤지스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을 걸어둔 것이다. ‘초대형’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이면 한양-케이앤지스틸 모종의 관계 의혹 SPC 빛고을 주주구성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컨소시엄 구성 당시 한양이 맡기로 한 시공권이 롯데건설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의 지분 24%를 위임받아 주주권을 행사해 롯데건설과 중앙공원 1지구 아파트 신축 도급 약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서 30% 지분의 한양은 배제됐다. 롯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할 당시 우빈산업에 지분을 위임했던 케이앤지스틸의 태도가 변한 시기는 2022년 5월경으로 추정된다. SPC 빛고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25억3000만원(대여금 24억원+이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빌린 돈을 갚았으니 24% 지분만큼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맺었던 콜옵션을 행사하고 49%의 지분을 확보해 SPC 빛고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우빈산업 내부 사정이 변하면서 한 차례 더 지분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우빈산업은 대출금 100억원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부도 처리됐다. 지급보증을 섰던 롯데건설은 우빈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넘겨 받으면서 49%를 확보했다. 지분양도는 롯데건설이 근질권(담보물에 대한 권리)을 행사해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빈산업이 빠진 자리에 롯데건설이 들어오면서 현재 기준 빛고을 SPC 지분구조는 한양 30%, 롯데건설 29.5%, ㈜파크엠 21%, 허브자산운용 19.5%로 재편된 상태다. 허브자산운용이 보유한 19.5%는 롯데건설로부터 양도받은 것이다. SPC 빛고을 내에서 롯데건설의 발언권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뉜 지분 콜옵션으로? 사업시행권과 시공권을 두고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이 궤를 같이 하면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쟁점은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이 가진 지분이 최종적으로 누구의 소유냐는 것이다. 두 회사의 지분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을 갚았으니 24%에 대한 주주권이 자사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양은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우빈산업에 49억원의 출자금을 대여하면서 맺은 특별약정을 내세웠다. 해당 약정에 한양이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비공원시설 시공권을 전부 갖는데 우빈산업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항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우빈산업이 주도해 롯데건설로 시공사를 바꾼 것은 특별약정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이 각각 우빈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서 모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주주권 확인 소송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SPC 주식을 실제로 소유한 주주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양 관계자도 “1심 법원은 우빈산업이 한양에게 49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보유 주식 25% 전량을 양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건설은 소송 판결 한 달 전, 우빈산업의 지분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우빈산업이 한양에 양도할 주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한양은 우빈산업의 ‘고의 부도’를 의심하고 있다. 한양은 1심 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사가 지분 55%(한양 30%+우빈산업 25%)의 SPC 빛고을 최대주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서 한양에 ‘시공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으면서 시공자 지위는 잃게 됐다. 소송 이겨도 지위 잃었다 최근 SPC 빛고을 지분 갈등서 케이앤지스틸의 역할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케이앤지스틸은 상하수도 설비공사 업체로 2003년에 설립됐다. SPC 빛고을에 우빈산업과 함께 참여했다가 현재는 빠진 상태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전 대표가 우빈산업과 친분이 있어서 (SPC 빛고을에)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사태서 롯데건설과 우빈산업은 이른바 ‘비한양파’로 묶여있다. 두 업체의 지분 이동도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반면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은 두 업체 모두 우빈산업과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서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적(우빈산업)이 같을 뿐 특별히 관계가 있는 업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양의 모기업인 보성그룹 계열사에 속한 ‘앤유’라는 업체가 케이앤지스틸에 2022년 4월, 2억원을 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앤유는 이기승 보성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점식씨가 지분 83.6%를 가지고 있는 친족회사다. 전기 조명장치 제조업체로 2007년에 설립됐다. 2022년 기준 매출은 28억2900만원, 영업이익은 3억300만원으로 확인된다. 한양과의 거래를 통해 27억79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앤유는 케이지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주는 과정서 1주일짜리 주식근질권을 설정했다.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이 2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케이앤지스틸의 주식이 전부 앤유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의 대표이사를 비롯해 사내이사 3명 등 4명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1명은 앤유 대표인 정모씨의 아내로 추정된다. 케이앤지스틸 수뇌부가 물갈이된 것이다. 당시 케이앤지스틸의 채무가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로 적자가 누적된 상태였다고 해도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배권을 넘겨준 것을 두고 석연찮은 의문이 일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주식 근질권 설정도 의문으로 떠올랐다. 보성그룹에 기생하는 ‘앤유’ 푼돈 주고 1주 만 회사 꿀꺽? 더 흥미로운 대목은 같은 해 5월 케이앤지스틸이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 25억3000만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의혹이 동시에 불거진 점이다. 다시 말해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분 100%를 앤유에 넘겨주고 한 달 만에 20억원이 넘는 돈을 융통해 SPC 빛고을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여기에 우빈산업을 상대로 한 주주권 확인 소송 등에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면서 수임료에 대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케이앤지스틸이 지분확보를 위해 사용한 자금 출처가 한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양 입장서 케이앤지스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확보하면 54%로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로 시공자 지위는 상실했지만 롯데건설에 넘어가 있는 시공권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분 갈등 구조가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로 정리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양과 케이앤지스틸 모두 두 업체 간 모종의 관계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앤유라는 계열사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앤유서 케이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줬다거나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빈산업서 (1심)소송에 져서 계속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대응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보다 광주시가 우빈산업과 결탁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게 상황을 봐주고 있다고 판단해 광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시는 사업시행자이자 감독관청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아 공모 제도가 다 무너졌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광주시의 행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석연찮은 자금 출처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한양이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에 대해 “우빈산업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주주가 들어와 투자가 이뤄지면서 주금 대여금을 갚은 것이다. 우빈산업에서는 (우리가)한양의 위장계열사 아니냐, 대표이사 선임 과정이 의심스럽다, 자금 출처가 어디냐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건 주주권 확인 소송서 져서 그러는 것이다. 한양이랑 우리랑은 큰 관계가 없는데 자꾸 엮어서 흠집을 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케이앤지스틸 대표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 회사에 300억원 정도의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행이익을 1100억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 회사 지분이 24% 정도니까 그렇게 계산한 것이다. 수익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맡게 됐고, 새로운 주주들도 그 사업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