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대표팀이 제2회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잘했다’는 찬사와 격려가 쏟아지고 있다. 이번 대회를 지켜본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은 ‘한국의 선전을 보고 행복감을 느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야구대표팀이 결승에 진출한 이유로는 김인식 감독의 지도력을 꼽은 응답자가 48.7%로 가장 많았고 ‘선수들의 실력’이 39.9%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 이번 경기를 통해 일본은 WBC 2연패에 따른 경제적 파급 효과가 506억엔(약 7190억원) 이상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의 국가브랜드 가치 향상으로 인한 수출증대효과도 6360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대회기간 동안 벌어졌던 이야기들을 다시 정리해봤다.
WBC 경기를 앞두고 한국야구팀은 초반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타자인 이승엽, 김동주와 함께 해외파 투수인 박찬호, 김병현, 구대성 등이 이번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승엽은 1회 대회 때 6개의 팀홈런 중 5개의 홈런을 날려 전체 85%의 비중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타점도 26타점 중 10타점을 기록할 만큼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을 정도다.
투수진 역시 1회 대회 때는 박찬호, 구대성, 김병현 같은 해외파의 이닝비중은 70%대에 가까웠고 평균자책점도 해외파(1.48), 국내파(3.10)로 해외파 투수진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영화로 따지면 블록버스터를 제작하려고 하는데 톱스타 없는 주연들로만 영화를 제작한 셈이다.
악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병현은 여권이 없어서 출전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고, 전쟁을 코앞에 두고 추신수의 출전문제 역시 대표팀의 발목을 잡았다. 클리블랜드 구단 관계자는 추신수의 MRI 검사결과를 보고 대회출전 여부를 공식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었고, 검사에서 약간의 이상이라도 발견되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 하차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반면 상대팀인 일본은 다르빗슈, 오가사와라 등 일본을 대표하는 톱스타들이 자발적으로 출전 요청을 한데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마쓰자카, 조지마, 이치로, 이와무라까지 참여해 막강 전력 팀이 갖춰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 경기 한 경기 치러지면서 선수들의 진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승엽을 대신해 김태균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등장하고, 게다가 막강한 계투진(정대현, 정현욱, 임창용)의 경이적인 호투는 시합이 더해 갈수록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준결승에서 맞붙은 베네수엘라는 애초 비교자체가 될 수 없었다. 한국 선수들 전체의 몸값이 베네수엘라의 간판선수 1명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 한국에는 메이저리그 선수가 추신수 1명밖에 없었지만 베네수엘라는 무려 22명에 달했다. 올 시즌만 비교해 봐도 1000만 달러 연봉을 받는 선수가 상당수 포진해 있는 상태였다. 베네수엘라는 축구를 좋아하는 일반 남미국가와는 달리 메이저리거만 216명을 배출한 전통의 야구 강국이다. 대표팀 28명 중 18명이 현역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으며 18명의 연봉 총액은 무려 1억187만 달러(1431억원)에 달한다.
추신수를 포함한 한국대표팀 연봉 총액은 76억7000만원 정도로 베네수엘라 야구팀과 비교하면 19배나 차이가 난다. 더욱이 한국전에 나선 선발 10명의 총연봉은 7910만 달러(1111억원), 한국 주전 10명의 연봉 총액은 29억원으로 베네수엘라와는 무려 38배 차이다.
선발 중 우익수 바비 어브레이유(LA 에인절스)의 연봉은 1600만 달러(224억8000만원)로 최고액이고, 좌익수 매글리오 오도네스가 1576만8000달러(약 211억5000만원)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이에 비해 유일한 메이저리거 추신수(클리블랜드)의 연봉은 40만 달러(약 5억6000만원)가량이다. 선발투수 실바(116억원)와 윤석민(KIA·1억 8000만원)은 연봉차이가 64배였다.
이번 대회에서 총 다섯 번을 맞붙은 일본의 막강전력도 한국야구팀을 충분히 흔들고도 남을 만큼 우수한 선수진을 구성하고 있었다. 선수진도 그렇지만 일본은 야구와 관련된 시장규모나 인프라에서 한국을 월등하게 압도했다.
단순히 연봉으로만 선수들의 진가를 판단하기는 어렵겠지만 일본대표팀의 연봉 총액 역시 무려 1315억원(81억5천200만엔)에 이른다.
최고액은 역시 메이저리그의 타격왕인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로 올해 연봉이 1700만 달러이고 지난 2006년 보스턴 레드삭스와 6년 동안 5200만 달러에 계약한 마쓰자카 다이스케는 연평균 865만 달러다. 또 지난해 시카고컵스에 입단한 후쿠도메 고스케는 700만 달러, 시애틀의 주전포수 조지마 켄지는 630만 달러를 각각 받는다. 일본대표팀 28명의 평균 연봉은 약 47억원으로 한국선수들 보다 대략 17배나 비싼 몸값이다.
여기엔 최근의 환율 폭등도 단단히 한몫했지만 국내 유망주들이 너도나도 해외진출을 노리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야구대표팀은 강했다. 4번 타자 김태균을 비롯한 타자들은 베네수엘라 투수들을 집중 공략해 투수들에게 유리하다는 LA다저스타디움에서 홈런과 장타를 펑펑 터뜨렸다. ‘한국은 스몰볼을 친다’는 선입견은 멕시코전에서 홈런 3방을 날리면서 말끔히 씻었고, 베네수엘라전에서도 홈런 2방을 터뜨리면서 ‘한국야구도 한 방이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이런 선수들 뒤에는 김인식 감독의 ‘믿음의 야구’가 큰 몫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번 썼으면 부진하더라도 끝까지 믿고 맡기는 게 김 감독 특유의 ‘믿음의 야구’였던 것. 이는 적장인 상대팀 감독들과 야구의 본고장 미국의 전문가들도 인정한 부분이다.
일본이 WBC 2연패를 달성하면서 얻은 경제적 파급 효과는 506억엔(약 7190억원) 이상으로 전망하고 있다. 스포츠경제 전문가인 미야모토 가쓰히로 간사이대 교수는 경제뉴스 사이트인 ‘비즈니스 아이’를 통해 처음엔 경제 효과를 506억엔으로 예상했지만 한국과의 결승전에서 연장전 접전 끝에 일본이 승리한 만큼 경제효과가 당초 추산치보다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승엽·박찬호·김병현 등 간판스타 빠져 불안한 출발
부진선수도 끝까지 믿는 ‘믿음의 야구’로 세계 놀라게 해
K방송국에서는 우리나라가 WBC에서 준우승함으로써 국가브랜드가치 향상으로 인한 수출 증대 효과만도 6000억원이 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일 월드컵 당시 계산식을 준용할 경우 국가브랜드 상승효과는 약 4억6000만 달러, 우리 돈 약 6360억원으로 추산된다는 것.
이러한 수치는 야구에 관심이 큰 미주지역에 대한 지난해 수출액 837억 달러를 기준으로 추산한 것이다. 이 지역 시장 점유율이 한일 월드컵 당시 효과의 1/5수준인 0.11%p씩 앞으로 5년간 상승할 것으로 추정해 나온 것. 이와 함께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대표팀은 총 65억원이란 거금(상금, 포상금, WBC 이익 배당금 포함)을 받게 됐다.
우승한 일본은 79억원 정도를, 미국대표팀과 대회를 주최한 WBC 등 미국 측은 총 100억원을 챙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대표팀은 준우승까지의 상금만 28억원을 거머쥐게 됐고 대회 수익분배금 27억원(추정)과 한국야구위원회(KBO)의 포상금 10억원도 함께 받게 됐다.
국내 포상금의 경우 KBO가 정한 ‘올림픽 금메달 및 WBC 4강 이상’에 해당하는 포상금이라 포상금액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우승을 차지한 일본은 상금 310만 달러와 12% 정도 순수익 배당금(36억원)을 일본 몫으로 챙기게 됐다. 그렇지만 일본대표팀은 상금 310만 달러 중 150만 달러를 아마추어 야구발전기금으로 내놓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팀과 비슷한 액수를 챙길 것으로 보인다.
WBC 2연패를 달성한 일본은 전국에 4100개가 넘는 고교야구팀을 보유하며 엄청난 인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지만 한국에는 고교야구팀 수가 55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일부지방에서는 건립된 지 40여년이 넘어 개보수를 거듭하고 있지만 협소한 관중석과 열약한 부대시설은 둘째치고라도 안전문제까지 지적당하고 있다.
일본엔 돔구장이 6개가 있다. 1988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돔구장인 도쿄돔이 1호다. 프로리그 12개 팀이 있고, 돔구장이 6개라 대략 2개 팀마다 1개꼴이다.
미국은 현재 7개를 쓴다. 1965년 휴스턴 홈구장 애스트로스돔이 최초다. 이후 70년대 후반부터 돔구장 건설 붐이 불어 한때 10개까지 있었지만 지금은 7개만 쓰고 있다.
야구관계자들은 “돔구장 건설과 관련 반대의 목소리도 있지만 중요한 건 국내 프로야구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데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돔구장 건설 이후 관중들은 우천 등 기상조건으로 발걸음을 돌리지 않아도 되고, 선수들은 규칙적인 시즌 일정으로 박진감 넘치는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야구 관계자에 따르면 “일본과 한국 야구의 인프라는 단순한 수치상으로 놓고 볼 때 다윗과 골리앗”이라며 “그런 가운데서도 한일전이 매번 접전이 펼쳐지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로 여겨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야구팬들은 WBC를 통해 한국야구계가 국가로부터 많은 지원을 얻어내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대표팀이 승승장구하면서 돔구장 건립에 희망적인 소식도 있다. 돔구장 계획을 백지화한 안산시가 2013년 WBC 유치를 목표로 돔구장 건설을 재추진하고 있고, 문화체육관광부도 돔구장 건설과 지방도시 야구장 시설 보완 등 야구계의 숙원을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한국 야구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돔구장 건설이 해결되면서 다시 한 번 야구 중흥기가 도래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인식 감독이 걸어온 길
제1회 WBC서 4강 신화 ‘국민감독’
한국 야구를 세계만방에 알린 김인식 WBC 국가대표팀 감독은 1947년 5월생으로 돈암초등학교, 배문중학교. 배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1965년 크라운 맥주에서 투수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69년부터 1972년까지 한일은행에서 선수생활을 한 후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3년부터 1977년까지는 배문고 감독으로, 1978년부터 1980년까지는 상문고 감독, 1982년부터 1985년까지는 동국대에서 감독을 활동했다. 이후 프로팀 지도자로 변신, 1986년부터 1989년까지는 해태 타이거스 수석코치로 활동하다 1990년부터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으로 데뷔했다. 지난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두산 베어스를 이끌었다. 이후 2004년부터 현재까지 한화 이글스 사령탑을 맡아 활동 중이다. 지난 2000년에는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팀 코치로 활약하며 일본을 꺾고 사상 첫 동메달 따내는데 일조했다. 2002년에는 부산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2005년 김인식 감독은 메이저리거들이 거의 모두 출전한 제1회 WBC 대회에서 대한민국 야구를 4강에 올려놓음으로서 ‘국민감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