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김용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1.02 13:5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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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더니 역시나…깜짝 발탁 없었다

[일요시사=경제1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파격'보다는 '안정'을 택했다. '깜짝인물'은 없었다. 대선 캠프 '재탕 인사' 성격이 강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에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등용됐다. '만 19세 고시 수석합격' '서울법대 수석졸업' '소아마비 출신 최초의 대법관'이라는 이색 이력을 갖고 있는 김 위원장은 누구일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2월27일 오후 2시 제18대 대통령 인수위원장에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했다. 박 당선인은 평소 김 위원장에 "제가 존경하는 분"이라며 "앞으로 새누리당이 지향하는 소중한 가치, 법치와 원칙, 헌법의 가치를 잘 구현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인수위 부위원장에는 전북 고창 출신의 진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을 임명했다. 박 당선인은 이날 오전 외부 일정을 잡지 않고 인선작업에 몰두했으며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윤창중 수석대변인을 통해 인수위원장과 부위원장을 포함한 인수위 1차 인선안을 발표했다.

전북 고창 출신
"박 소신 뒷받침"

국민대통합위원장에는 전북 전주 출신인 한광옥 전 선대위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 국민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에는 전남 여수 태생인 김경재 전 민주당 의원을 각각 발탁하고 청년특위위원장에는 김상민 의원을 기용했다.

대선 과정에 참여했던 '파란 눈'의 전남 순천 출신인 인요한 연세대 교수와 윤봉길 의사의 손녀 윤주경 매헌기념사업회 이사, 김중태 전 서울대 민족주의비교연구회장은 국민대통합위 부위원장단에 합류했다.


전현호 전국대학총학생회모임 집행장과 윤상규 네오위즈게임즈 대표, KBS 2TV <남자의 자격> 합창단을 이끌면서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박칼린 '킥뮤지컬' 스튜디오 예술감독, 하지원 에코맘 코리아대표, 오신환 새누리당 중앙청년위원장, 이종식 채널A기자도 청년특위 위원으로 인수위에 합류했다. 하지원 대표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모두 전북 출신인데다가 목포대에서 약 3년간 겸임교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어 준 호남 출신으로 분류된다.

윤 대변인은 김 전 소장의 임명에 대해 "당선인의 법치와 사회 안전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뒷받침하고 대통령직 인수위를 통해 새 정부가 원활하게 출범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장애 딛고 헌재소장까지…여의주 문 원로법조인
선대위 공동위원장으로 활동 "캠프 인사 재탕"

이와 관련 야권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지만 일부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정성호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이날 오후 논평에서 "나름대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 인사로 평가하며 박 당선인의 고뇌한 흔적이 엿보인다"며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비롯한 인수위원 모두 박 당선인이 국민에게 약속한 국민대통합시대, 100% 국민행복시대를 실현하는데 앞장서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정미 진보정의당 대변인도 기자회견을 통해 "박 당선인이 1차 인선안 발표를 통해 선거기간 때와 마찬가지로 국민대통합을 다시 간조하고, 특히 우리 사회 고통 받는 청년문제의 해결 의지를 밝힌 것은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부 인사에 대해서는 '국민 대통합'의 취지와 어긋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정성호 대변인은 "대선시기에 극단적 언사를 일삼은 공로로 국민대통합위원회에 합류한 김경재 수석부위원장과 김중태 부위원장이 과연 48% 국민은 통합하는 데 얼마나 기여할 지는 의문이 든다"며 "윤창중 수석대변인은 단연 '옥에 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윤관석 원내대변인도 "가장 큰 특징은 기존 선대위 조직과의 별 차이가 없는 인수위 인사발표였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뇌 흔적 보이지만
'옥에 티'도 존재

이어 "특히 국민대통합위원회와 청년특별위원회의 경우 조직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사까지도 선거 당시 선대위 인사들이 자리만 이동한 회전문인사였다"고 비판했다.

이정미 대변인도 "비도덕적 가치관과 저열한 발언으로 국민 분열과 상처를 불러일으킨 윤 대변인을 포함,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이민가겠다'고 한 김경재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부엉이 귀신'으로 비유한 김중태 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 등 막말, 극언 인사는 국민대통합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아쉽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만 3세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2급을 받았고 학창시절을 어머니 등에 업혀서 보냈다. 이 때문일까. 학구열이 남 달랐던 김 위원장은 서울고 2학년 재학 중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법대에 입학, 대학 3학년 때인 1957년 고등고시(현 사법고시)에 수석합격했다. 당시 그의 나이 만 19세, 최연소였다. 당시 언론은 '최연소 판사 탄생'을 앞다퉈 보도했다. 1960년에는 '최연소 판사'라는 타이틀로 법조계에 입문했다.

대구지법 판사로 법조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서울가정법원, 광주고법, 서울고법 등에서 부장판사 생활과 서울가정법원장을 거쳐 1988년 대법관에 임명됐다. '최초 장애인 대법관' 타이틀까지 거머쥔 것이다. 1994년부터 2000년 임기를 채울 때 까지 6년간은 헌법재판소장으로 근무했다.

헌법재판소장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김 위원장은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 헌법재판소 자문위원장, 대검찰청 공안자문위원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등으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해왔다.

현재는 법무법인 넥서스에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다.

박 당선인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직후 군사정부의 '병역 미필 공직자 추방' 방침에 따라 지체장애로 군대를 안 갔다는 이유로 쫓겨날 위기에 처했으나 당시 법조 출입 기자들이 문제를 제기해 판사직을 유지했다.

활동·예산사용
백서로 공개한다

김 위원장은 '소신판결'로도 유명하다. 판사 재임 중이던 1963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를 반대하는 글을 써 구속됐던 송요찬 전 육군 참모총장을 구속적부심에서 석방시키면서 달게 된 타이틀이다. 헌법재판소장 재임 시절에는 과외 금지, 군제대자 가산점제, 택시소유상한제, 영화 사전검열, 동성동본 혼인 금지 등 국민 기본권 침해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헌법에도 '능력에 따라서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돼 있다"며 "그 규정을 만든 전두환 정권 시절엔 금지가 맞을 진 모르지만, 20년이 지났고 시대에 따라 국민의 법의식도 변한다. 법은 그 의식에 맞춰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가족으로는 아내 서채원씨와 2남 2녀의 자녀가 있다. 두 사위와 장남이 김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법조인의 길을 걷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1년 6월 보수 성향의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과 함게 "동북아의 냉전과 북한의 중국화를 막고 새로운 통일의 시대를 열겠다"는 선진통일연합에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정치권과는 거리를 둬 온 김 위원장은 대선을 두 달여 앞둔 지난해 10월11일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 정몽준 전 대표, 황우여 대표와 함께 박 당선인의 중앙선대위 공동위원장에 임명돼 선거를 도왔다.

김 위원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인수위원장으로서 임무 수행에 최선을 다해 박근혜 당선인이 선거 기간 국민들께 반드시 지키겠다고 한 민생 대통령, 약속 대통령, 대통합대통령 등 세 가지 약속 공약을 지킬 수 있도록 보좌하겠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법에 의한 지배가 확립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박 당선인 민생 약속 지키도록 보좌"
권한 살펴보니 "당선인 부럽지 않다"


김 위원장은 법조인답게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활동할 계획"이라며 법치주의를 기조로 인수위를 운영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또 "위원회는 위원회 활동이 끝난 후 30일 이내에 위원회 활동 경과와 예산사용 명세를 백서로 정리해 공개할 것"이라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그는 "인수위원장, 부위원장, 위원, 직원 등은 맡은 바 업무에 전념하되, 직권을 남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비밀을 누설하거나 대통력직 인수업무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추가 인선에 대해서는 "위원장, 부위원장, 24명 이내 위원의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 업무이니까 나와 아무 관계가 없고 당선인이 의견을 물어보면 이야기할 수는 있다"면서 "위원회 업무 수행에 적절한 인물을 당선인이 임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수위원장은 무보수 명예직이다. 이들 중 공무원이 아닌 사람들도 위원회 업무와 관련해서 형법 등 벌칙을 적용할 때는 공무원으로 본다. 따라서 직무에 전념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활동비만 지급되고 실비로 소요되는 비용만 법 시행령에 근거해 지원받게 된다. 하지만 권한은 '막강'하다. 특히 전례를 비춰볼 때 '박근혜 정부' 내각 등 핵심 요직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인수위원장은 박 당선인을 보좌해 차기 정부의 조직, 예산, 정책기조, 취임행사 등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모든 사항을 관장한다. 업무수행을 위해 정부 각 부처 파견근무도 요청할 수 있다. 필요 시 정부기관 직원을 소속기관장 동의를 얻어 전문위원, 사무직원 등으로 차출할 수 있고 자문위원회도 둘 수 있다.

요청을 받은 관계기관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요청에 따라야 하며, 위원회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자료, 정보, 의견 제출 등 필요한 협조에도 응해야 한다.

명예직이지만
'막강' 권한

행전안전부 장관은 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산정해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예비비 등 협조를 구하고 위원회의 효율적인 업무수행을 위해 사무실, 비품, 통신서비스, 차량 등 필요한 업무지원을 하게 된다.

각 분과위원은 위원회 회의에 참여하면서 위원장의 명을 받아 업무를 지휘·감독한다. 전문위원은 위원장, 부위원장, 위원을 보좌하고 소관분과위원회의 업무를 수행한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김용준 위원장 약력>

서울 출생(74)
서울대 법대
고등고시 9회
서울가정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 소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법무법인 넥서스 고문
새누리당 중앙선대원 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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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