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노림수

잦은 ‘대우맨’ 접촉… 화려한 부활 날개짓?

최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행보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던 김 전 회장이 올해 들어 2~3차례 해외 방문길에 오르는가 하면, 행사에 참석해 ‘대우맨’을 만나는 등 폭넓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이 같은 행보를 두고 경제계에 퍼져있는 ‘대우맨’을 등에 업고 경영 일선에 복귀하기 위한 행보를 시작한 거 아니냐는 시각이 팽배하다. 그러나  또 다른 일각에선추징금, 건강문제 등으로 인해 사실상 재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최근 행보가 심상찮다. 김 전 회장과 함께 대우그룹을 이끌며 ‘세계경영’을 외쳤던 ‘대우맨’과의 접촉이 잦아진 것이다. 재계 일각에선 이를 두고 “김 전 회장이 ‘대우맨’을 융합해 재기를 모색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20일 오후 7시, 과거 대우그룹 계열이던 서울 남대문로 밀레니엄힐튼 호텔에서 열린 대우그룹 출범 42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대우그룹이 지난 1999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판정을 받고 해체된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대우그룹 전직 임원 모임인 ‘대우인회’는 지난 2000년부터 매년 3월22일 즈음해 격년제로 그룹 출범 행사를 열어왔다. 3월22일은 김 전 회장이 자본금 500만원으로 시작한 대우그룹의 모태인 대우실업의 창립일이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지금까지 해외 출국,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한 번도 창립행사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지난 2007년 3월 개최된 40주년 기념식에도 김 전 회장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지병 치료를 위한 형집행 정지 상태. 다만 김 전 회장은 측근인 장병주 전 ㈜대우 사장의 입을 통해 인사말만을 전했다.
김 전 회장은 앞서 지난 2월12일에도 서울 강남 포스코센터 서관 19층 중식당 휘닉스에서 대우계열사 사장단 50여 명과 만찬을 가졌다. 모임은 김 전 회장의 초청으로 마련됐다.
이날 모임에는 윤영석 전 대우그룹 총괄회장을 비롯해 서형석 전 ㈜대우 무역부문 회장,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회장, 윤원석 전 대우중공업 회장, 김성진 전 대우경제연구소 회장, 정주호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장병주 전 ㈜대우 사장, 이경훈 전 대우그룹 중국지역본사 사장 등 옛 ‘대우맨’ 5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김 전 회장의 행보에 대해 대우그룹 전직 임원은 “지인들의 얼굴을 본다는 차원에서 참석했으며 식사 한 끼 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10년 만에 만나지 못했던 ‘대우맨’의 안부를 묻는다는 차원에서 만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선 김 전 회장이 10년 만에 참석한 만큼 모임에서는 김 전 회장의 명예회복을 비롯한 향후 거취문제와 사업재개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눴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김 전 회장의 해외 방문도 잦다. 지난해 11월에는 일본과 베트남을 방문하는가 하면 지난 2월에는 베트남을 찾았다. 표면상으로는 신병치료와 요양을 위해서다. 베트남은 김 전 회장에게는 ‘제2의 고국’으로 통하는 곳이다.
베트남 하노이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입안했고 베트남 국토개발 사업을 자문할 정도로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요양을 겸해 새로운 사업 구상을 했고 사업구상이 마무리되자 ‘대우맨’을 만나 이를 구체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러한 해석이 가능한 것은 ‘대우맨’이 정재계 곳곳에서 현재도 활약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들을 융합할 경우 큰 ‘폭발력’을 가진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 중심에는 ‘대우인회’가 있다.
대우그룹이 유동성 위기로 ‘공중분해’되고 10년이 지나면서 ‘대우맨’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대우그룹의 전·현직 임원 모임인 ‘대우인회’를 통해 대우그룹은 망했지만 과거 한솥밥을 먹던 임직원들이 지금도 대우 정신을 일정부분 공유하고 있다.
대우인회는 대우그룹이 해체된 다음해인 지난 2000년 1월 회원간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서울역 부근에 위치한 대우재단 빌딩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정주호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4기 회장을 맡고 있으며, 김선익 전 대우중공업 부사장, 김세중 전 대우자동차 부사장, 윤병철 전 대우자동차 이사, 한용호 전 대우건설 사장이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자문위원으로는 손태일 전 (주)대우자도차수출부문장, 배순훈 전 대우전자 사장, 장영수 대우건설 회장 등이 등록돼 있다. 이 외에도 전·현직 임원 1500여 명이 대우인회 회원으로 있다.
또 다른 모임인 ‘세계경영포럼’도 김 전 회장을 지지하는 그룹이다. 김 전 회장은 지난 1995년 서울대 운동권 출신들을 ‘대우그룹 기업혁신’이란 명분을 내세워 전격적으로 스카우트했다. 현재 세계경영포럼의 실질적인 대표는 김윤 경영발전연구센터 대표와 정필완 인터넷 쇼핑몰업체인 인터넷 밀리오레 대표이사가 맡고 있다.

10년 만에 초청만찬·창립식 참석 ‘광폭 행보’
해외 출국 통해 사업구상 끝 실현만 남았다?

세계경영포럼은 전직 대우그룹 출신 임원들이 주축이 돼 정기적 세미나를 개최하며 옛 대우인들과의 친목을 다졌으나 최근 여론을 의식해 당분간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의 든든한 ‘우군’임에는 틀림없다.
타사 CEO로 변신해 활약하는 ‘대우맨’들도 있다. 건설업체 사장으로 변신한 ‘대우맨’으로는 김현중 한화건설 사장, 김기동 두산건설 사장, 김선구 동아건설 사장, 정태화 TEC건설 사장 등이 있다. 증권계에는 김 전 회장의 직계라인으로 꼽히던 박종수 우리투자증권 사장을 비롯해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김기범 메리츠 증권, 황건호 한국금융투자협회장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추호석 파라다이스 대표이사, 정성립 대우정보시스템 사장, 이승창 대우일렉 사장,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강영원 대우인터내셔널 사장, 윤영석 두산중공업 부회장, 서종욱 대우건설 사장, 최재범 메디슨 대표, 류철호 도로공사 사장 등도 대우 출신 CEO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 박정훈·이재명 전 민주당 의원들도 ‘대우맨’이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대우경제연구소장 등을 역임하며 김 전 회장 옆을 오랫동안 지켰던 정통 ‘대우맨’이다. 운동권 출신인 박정훈 전 의원은 지난 1983년 대우그룹 이사로 입사, 1987년 상무로 승진했다. 지난 1992년에는 김 전 회장이 다리를 놓아 김대중 총재의 민주당 전국구로 14대 국회에 진출했다. 당시 전국구 공천헌금도 김 전 회장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의 경기고 후배인 이재명 전 의원은 미국 유학 중인 지난 1997년 대우실업 과장으로 특채돼 김 전 회장의 수행비서로 출발했다. 이후 대우자동차 부사장, 대우기전 사장, 기조실 사장 등을 지냈다.
1993년 민자당 전국구를 승계 14대 의원이 되면서 대우를 떠났지만 2년 후 김 전 회장이 그룹을 개편하면서 그의 대우 복귀를 제의하자 미련 없이 금배지를 내던져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경기고 인맥도 김 전 회장의 든든한 ‘빽’이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 김원길 전 의원, 고건 전 총리, 장병주 (전) 대우건설 사장, 강영호 전 대우통신 부사장, 이동호 대우자판 사장, 이근현 대우건설 전무, 유춘희 대우엔지니어링 부사장, 김인균 대우엔지니어링 부사장 등이 경기고 동문이다.
이 외 석진강 변호사도 김 전 회장의 측근 중에 측근이다. 김 전 회장은 지난 1999년 10월 중국 공장 방문차 출국했다가 귀국하지 않고 도피행각을 벌였다. 이후 5년 8개월여 만인 지난 2005년 6월 귀국, 사기대출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김 전 회장은 재판 끝에 1심에서 징역 10년에 추징금 21조4484억원을, 항소심에서 징역 8년6월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았다. 이후 지난 2007년 12월 특별 사면됐다. 석진강 변호사는 김 전 회장의 법률고문으로서 당시 ‘대우 분식회계·사기대출·외화도피 사건’에 대한 법적 논리를 정립했다.
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가족들도 빼 놓을 수 없다. 부인 정희자씨는 (주)필코리아리미티드(구 대우개발, 대표 홍진후) 회장으로, 수백억대의 자산가로 알려져 있다. 정씨는 경기도 포천 소재 아도니스골프장을 운영하는 (주)아도니스(대표 김충곤)의 대주주이며, 경주 힐튼호텔의 실질적 소유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의 사업 재개를 거론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많다. 대우그룹은 지난 1999년 8월 (주)대우 등 12개 계열사가 전격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의 평가다. 이유야 어쨌든 이로 인해 60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정부와 국민들이 떠안아야만 했다.

김 전 회장은 또 지난 2007년 말 사면·복권됐음에도 추징금 부분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는 2006년 11월 항소심에서 징역 8년6월에 추징금 17조9253억원,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고 이 형은 확정됐다.
추징금은 법원이 김 전 회장이 영국의 대우그룹 비밀금융조직인 BFC를 통해 관리한 자금이 200억 달러(당시 환율로 25조원) 규모로 파악하면서 나온 금액이다.
구체적인 내역을 보면 해외 유령회사에서 물건을 수입한 뒤 수입대금을 송금하는 방식으로 조성한 26억 달러, 해외 현지법인들의 자동차 판매대금을 국내를 거치지 않고 BFC로 직접 송금한 14억1000만 달러, 해외법인 명의로 현지 금융기관에서 빌린 157억 달러 등이다.
이중 해외공장 인수와 운용에 투입한 자금, 해외차입금, 이자를 제외한 돈이 비자금으로 조성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은 김 전 회장에 대한 추징을 지속적으로 집행해왔다.
김 전 회장은 1999년 7월 대우그룹 자구대책을 발표할 당시 전 재산(당시 주식 1조2553억원과 임야 452억원 상당)을 금융권에 담보로 제공한 탓에 공식적으로는 국내에 재산이 없다. 유일한 재산이던 서울 방배동 자택과 숨진 큰아들이 묻힌 안산농장도 경매에 넘어갔으며 부인 정희자씨 소유의 서울힐튼호텔도 오래전에 처분됐다.
이어 대우경제연구소와 한국경제신문의 김 전 회장 명의 주식을 압수했다. 하지만 이는 추징금에 비하면 미미한 상태. 더욱이 은닉했을 재산에 대한 적발은 전무한 상태다.
이로 인해 17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추징금이 그대로 남아있어 재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김 전 회장의 개인 건강문제와 ‘대우맨’으로 일컬어지는 후원자들도 대부분 현역에서 은퇴한 ‘노병’이란 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과의 애증 관계
김우중과 전직 대통령 각별한 인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누구보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인물로 통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폐허상태에 놓였던 옥포조선소를 인수, 박 대통령으로부터 “김우중 그 사람밖에 없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후에도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각별한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회장과 YS의 첫 인연은 악연으로 시작됐다. 1992년 대선 당시 YS의 심기를 건드렸던 김 회장은 당시 YS의 핵심 참모였던 K 변호사의 도움으로 YS와 관계를 복원했다. 그 이후 YS시절 대우그룹을 국내 4대그룹으로 성장시키는 등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다.
김 회장과 DJ는 좋은 인연과 악연을 모두 경험했다. 김 전 회장은 1997년 당시 대선 과정에서 DJ를 앞장서 지원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DJ 정부시절 김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된 것 역시 ‘청와대의 의중’이란 소문이 나돌 정도로 김 회장과 DJ는 막역한 관계를 유지했다.
김 전 회장의 경기고 동창이자 무기 중개상인 조풍언씨는 DJ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조풍언씨는 외환위기 당시 김 전 회장으로부터 대우그룹 퇴출을 막아달라는 청탁을 받고 돈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이후 지난 1월 법원은 대우 구명로비 혐의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어쨌든 외환위기가 오기 전까지 김 전 회장과 DJ는 각별한 사이였다. 그러나 DJ정부시절 대우그룹을 해체해야만 했었고, 이로 인해 해외에서 5년8개월을 떠돌아 다녀야만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 전 회장은 1987년 대우조선사건 때 노 대통령이 노동자였던 이석규의 사인 규명 작업을 하다 구속, 변호사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던 악연으로 첫 인연을 맺었다. 이런 악연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지난 2001년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대우 사태와 관련해 김 회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2003년 11월 대우조선을 직접 방문하는 등 대우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김우중 신화 몰락 일지
중국 준공식 참석 후 잠적…추징금 18조여원

지난 1999년 8월 대우그룹이 외환위기로 워크아웃을 결정한 이후 1999년 10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중국 부품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뒤 잠적했다.
2001년 11월, 프랑스 인터폴이 김 전 회장이 프랑스 국적을 취득해 독일서 치료 중이라고 발표한 후 2005년 4월 김 전 회장은 베트남에서 목격됐다. 당시 대법원은 대우그룹 임원 7명에게 23조358억원의 추징금 선고했으며 법원은 “김 전 회장에게 법적 책임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2005년 5월에는 법무부가 대우그룹 분식회계 사건 관련자 4명 특별복권 조치했고 같은 해 6월 김 전 회장은 귀국했다. 며칠 후 검찰은 김 전 회장을 구속기소했으며 같은 해 8월 김 전 회장의 건강악화로 구속집행정지처분이 떨어졌다.
김 전 회장은 신촌세브란스병원 입원했다. 입원 중 법원은 김 전 회장의 첫 공판을 시작해 1심에서 징역 10년, 추징금 21조4484억원,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이후 2006년 11월 항소심에서는 징역 8년6월, 추징금 17조9253억원, 벌금 1000만원을 선고,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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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