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사정칼날 ‘친노 게이트’ 정조준 내막


박연차 리스트, 민주당 이광재·서갑원, 한나라당 중진 K·H 거론
노무현-박연차 커넥션 새 국면…50억원 건넨 정황 등 ‘불법성’ 추적

검찰 사정칼날이 예사롭지 않다. 4월 재보선이 갈수록 그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가운데 각종 정치사건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도 탄력을 받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검찰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정치인 30여 명에 돈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한 데 이어 송은복 전 김해시장을 체포하는 등 여의도를 향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대거 검찰문턱을 들락거릴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뿐만 아니라 상이군경회 수익사업 비리에 참여정부 핵심인사들이 대거 연루됐을 가능성을 놓고 전방위 수사를 벌이고 있다. 특히 이번 사정은 참여정부를 향해 거침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여 검찰 수사 추이나 결과에 따라 4월 재보선에 적잖은 변수로 작용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야권 일각에서는 여권 핵심부와 검찰이 ‘친노 게이트’를 터트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던지기도 한다. 여의도 정가를 뒤흔들고 있는 검찰 사정 칼날의 최종 목적지는 과연 어디일까.

검찰의 사정 칼날에 가장 긴장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김해 봉하마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송은복 전 김해시장이 체포됐고, 이정욱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이 구속된 데 이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그리고 친노 핵심 인사들이 대거 검찰 사정 레이더망에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박연차 사건은 여·야 국회의원들까지 대거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어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형국이다. 검찰 사정이 친노 진영은 물론 여의도를 향한 전방위 수사 형태를 갖춰가고 있는 모양새다.

박연차 리스트 ‘폭발’ 초읽기
K 전 의원 ‘호텔서 받았다?’

실제로 검찰은 ‘박연차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는 인사들을 상대로 갖가지 의혹을 확인할 태세다. 이는 그동안 박연차 리스트와 관련해 “소문에 불과하다”, “리스트는 없다”며 모든 것을 일축했던 검찰이 기존의 입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으로 적잖은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박 회장으로부터 3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송 전 김해시장이 부산 자택에서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 18대 총선 당시 김해을 선거구의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을 때 돈을 받았다는 이유에서다. 또 이 전 원장에 대해선 지난 2005년 4월 김해갑 국회의원 재선거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을 때 박 회장에게 불법 정치자금 3억원가량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뿐만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박 회장으로부터 5만 달러 이상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소환될 예정이다. 한 언론사에 따르면 허태열·권경석 한나라당 의원, 서갑원 의원 등에게도 돈을 건넸다는 진술을 박 회장으로부터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다 한나라당 중진 인사인 K·H 의원이 거론되고 있으며, K 전 의원의 경우 ‘호텔에서 만나 돈을 전달받았다’는 소문도 파다한 상태다.

박연차 리스트에 거론되고 있는 이들은 “합법적으로 받았다”, “개인적으로 접촉한 적 없다”, “돈을 받지 않았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검찰은 박 회장의 진술을 토대로 4월 임시국회가 열리기 전까지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특히 박 회장이 이들에게 건넨 돈의 성격을 파악할 뿐 아니라 소환되는 사람은 여야 구분 없이 해야 한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한 관계자는 “친노 인사만을 겨냥한다면 표적수사 논란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여야 구분 없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실질적으로는 친노를 향한 수사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 2월 국회에서 여당은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일부에서는 이명박 정부에서 해당행위를 했다는 점에서 여의도도 긴장감을 줘야 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따라서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박 회장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는 인사들의 불법 정치자금 혐의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이번 사건은 ‘참여정부 게이트’로 확산되면서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도덕성에 큰 치명타를 입힐 가능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이 대통령이 여당인사들을 압박, 이른바 ‘여의도 장악’을 노린다는 점에서 정치권은 검찰 사정 칼날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형편이다.

친노 인사 ‘레이더망’ 속속
노 전 대통령도 좌불안석

검찰의 ‘노무현-박연차 커넥션’에 대한 수사도 활기를 띠고 있어 친노 인사들이 노심초사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지난해 3월 박 회장에게 1년 기한으로 15억원을 빌린다는 내용의 차용증을 작성했으나 검찰은 그보다 더 많은 50억원이 건네진 정황을 파악하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박 회장의 베트남 현지 사업에 도움을 준 것과 관련해 사후에 돈을 받았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지난 2003년 판 반 카이 당시 베트남 수상은 노 전 대통령과 만나 양국간의 무역증진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고, 안상영 당시 부산 시장과 베트남 진출기업인 태광실업의 박 회장과 함께 부산-호치민시 간 직항로를 개설하는 MOU를 체결한 바 있다. 또 노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 부지 매입시기와 세종증권 주식 거래 시점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검은 커넥션 거래가 있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안팎에서는 15억원 돈거래뿐 아니라 50억원을 건넨 과정에서 불법이나 대가성이 발견될 경우 노 전 대통령의 소환조사도 불가피할 것이라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나돌고 있다.

또 친노계에서는 검찰이 한때 친노 핵심인사들에 대해 은밀히 내사를 벌여왔다는 사실에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얘기하면서도 친노를 향한 전방위 수사를 펼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친노계 측 한 관계자는 “친노 인사들 간의 돈거래가 있었더라도 모두가 합법적이며 부정한 방법으로는 돈을 받지 않았다”며 “참여정부 치부를 드러내기 위해 친노 인사 L·L의원에 대한 수사도 극비리에 진행한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혐의를 찾아내지 못해 시간을 끌고 있는 것 아니겠냐”고 피력했다.

검찰의 칼날이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인 박 회장만 겨냥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광재 민주당 의원,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구속하는 등 참여정부 인사를 향한 수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이 지난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의 사위 이모씨가 이사로 있던 S해운 로비스트를 통해 1000만원을 이 의원의 부인이 받은 혐의로 300만원의 벌금에 약속 기소됐다.

검찰은 또 이 전 수석이 지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영남지역의 한전 폐변압기 처리 사업을 특정업체에게 배분해 주고 강달신 상이군경회장 등 상이군경회 임원과 간부들이 수억원을 받았다는 정황과 함께 이 전 수석이 개입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대해 집중 수사를 벌이고 있다. 더 나아가 정치권 인사들의 연루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할 방침이다.

본격화되고 있는 4월 재보선 판세를 뒤흔들 ‘태풍의 눈’으로 부상하고 있는 검찰 수사. 박연차 리스트 등을 통해 여야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활발해질 경우 재보선 판세는 요동을 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친노 향한 전방위 수사
4월 재보선 영향 미치나?

이런 가운데 창신섬유 강 회장의 비자금 사건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어서 언제든지 친노 게이트로 폭발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미 검찰에서는 강 회장 소유의 창신섬유와 시그너스골프장의 경리업무를 총괄하는 강씨 등 회계 임직원 3명을 배임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는 점에서 강 회장에 대한 수사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또 미궁 속에 빠져있는 강금원-안희정 커넥션에도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검찰 수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참여정부의 도덕성은 물론 4월 재보선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검찰주변에서는 참여정부 시절 성장한 L·H·K그룹 등에 대한 내사설이 꾸준히 나돌고 있어, 참여정부-기업간의 커넥션을 파헤치는 데도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 나아가 친노핵심 인사였던 H씨에 대한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어, H씨가 개입된 것으로 보이는 D사에 대한 내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이래저래 결국 검찰 사정은 친노 인사들을 향해 거침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소문만 무성한 각종 의혹들이 살타래처럼 하나둘씩 풀릴지 여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또 열기가 더해가고 있는 4월 재보선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도 또 다른 관전 포인트로 급부상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