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10대 탈선 부추기는 ‘럽실소’ 실태

공고·상고가면 동거에 임신 기본?

[일요시사=사회팀] 10대 청소년 사이에서 일명 럽실소(러브실화소설의 줄임말)가 유행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럽실소는 인터넷 소설 중 하나로 ‘러브’, 즉 사랑 이야기로만 다룬 10대 학생들의 자작 소설이다. 그런데 이 럽실소는 변태적 성행위와 자살 등 자극적인 내용이 담겨있을 뿐 아니라 아무 재제 없이 인터넷 상에 무분별하게 유포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10대의 또 다른 탈선을 부추기는 럽실소. 그 실태를 파헤쳤다.


<오빠 나 해도 돼> <상가 화장실에서 돌림빵> <짝(짝사랑)남이 섹스하면 사귀어준대>….

얼핏 들으면 3류 성인영화 제목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큼 자극적이고 저질스러운 제목들. 최근 인기리에 성행하고 있는 다양한 럽실소(러브실화소설)들 몇 가지를 나열한 것이다.

럽실소는 기존의 인터넷 소설에 비해 10대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사랑이야기만 다룰 것 같은 럽실소의 실체는 가히 충격적이다. 폭력적이고 엽기적이며 변태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 인터넷에 떠도는 모든 럽실소가 자극적인 제목이나 내용을 다루고 있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욕설과 은어, 폭력이 가미돼 있고 술과 담배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또한 학교 내 일진이나 훈남(훈훈한 남성) 대학생도 단골손님처럼 등장하곤 한다.

문제는 독자층도, 소설을 쓰는 작가도 모두 10대 여학생이라는 것이다. 간혹 여대생이 학창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며 좋아하던 이성과 교제했던 이야기를 카페나 블로그에 텍스트 파일 형식으로 올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럽실소 작가층은 10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한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는 럽실소는 과연 어떤 내용으로 독자를 현혹시키고 있을까.

100% 실화란 말에
댓글만 수천개

럽실소는 10대가 실제 연애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인터넷 소설이다. 이 소설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단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점에 있다. 그렇다고 모든 독자가 럽실소를 무조건 실화라고 믿지는 않는다. 많은 이들은 실화에 어느 정도 픽션(허구)이 첨가돼 있다고 생각하지만, 소설을 읽을 때만큼은 소설 중 여주인공과 자신을 대입시켜 대리만족을 느끼곤 한다.


그들이 대리만족을 느끼는 이유는 간단하다. 즉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과 열망에서 비롯된 것. 보통 럽실소에 등장하는 남주인공은 아이돌 남자가수와 견줄 만큼 빼어난 외모에 소위 ‘나쁜남자’의 성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달달한 연애를 꿈꾸는 청소년 독자들은 럽실소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일부 10대 청소년들은 자극적이고 변태적인 19금 인터넷 소설인 이른바 ‘수위 럽실소’만 다루는 사이트에 방문해 야한 부분만 내려 받아 읽기도 한다. 카페나 블로그에는 럽실소 수위에 대한 특별한 제재가 아직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초등학교 저학년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누구든 내려 받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일명 ‘엄빠(엄마아빠한테 들키지 않게)주의’라는 신조어를 사용해 농도 짙은 럽실소를 게시판에 게재한 후 친구들끼리 공유하기도 한다.

최근 인기를 모은 수위 럽실소는 “연상인 20대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더니 갑자기 자살을 시도했다”거나 “남자친구의 그곳(항문)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더니 피가 철철 흘렀다” “수학여행 가서 OO와 땀을 뻘뻘 흘리며 몸을 뒤섞었다”는 등 변태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이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아름답게 미화돼 있다. 또 10대가 남자친구와 동거하며 벌어지는 해프닝이나 중학교 시절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고 손님과 사랑에 빠졌다는 소설도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다. 이 외에 옆집 아저씨와 불륜을 저지른 고등학생 이야기와 반 남학생들과 둘러 앉아 술 마시다 집단 성폭행을 당한 이야기, 교내 양호실에서 성관계한 이야기 등도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간혹 외국 남성과의 진한 연애담이 게시판에 올라오기도 한다.

대부분 실화에 과장된 픽션…인터넷 소설 보다 인기
미성년자 모텔 가서 연인과 잠자리 등 자극적 내용

럽실소는 10대들의 행위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서술돼있어 일부 독자들로부터 꾸며낸 이야기, 즉 ‘허구가 아니냐’라는 의혹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럽실소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러브소설인 만큼 럽실소를 연재하려면 엄격하고 엄격한 인증절차를 걸쳐야 한다. 우선 럽실소 작가로 인정받으려면 실제 경험임을 밝혀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사진과 이성친구의 인증사진을 카페지기에게 보내거나, 연인이 있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카카오톡 대화내용 등을 이메일로 보낸 뒤 연재 허락을 받는 절차까지 거쳐야 하는 등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이뿐 아니라 심한 욕설과 변태적인 섹스묘사 등을 지속적으로 다뤘을 경우 카페에서 강퇴(강제퇴장)를 당하며 카페 운영자의 강력한 제지를 받기도 한다.

실제로 럽실소가 공유되는 몇몇 인터넷 카페에서는 ‘10대 청소년 회원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자극적인 내용은 피해 달라’며 대대적으로 공지하고 있지만 여지없이 야하고 폭력적인 내용의 럽실소들이 매일 업로드 되는 실정이라 일일이 단속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포털사이트에서 럽실소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만 10여 개가 뜰 정도니 말이다.

야설·야동 맞먹는
수위 높은 성 묘사


럽실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빗나간 성 묘사였다. 12세 이상이라는 나이가 제한돼 있지만 성인코드인 수위 높은 성적 소설들만 난무하다. 특히 럽실소는 초등학생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내려 받아 볼 수 있기 때문에 아직 성에 눈뜨지 못한 어린 학생들에게는 다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럽실소앱이 따로 제작돼 불특정다수에게 무료로 유통되고 있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본 기자는 10대들에게 인기가 높은 럽실소 시리즈 중 몇 가지를 입수했다. 다양한 장르의 럽실소를 훑어본 결과 이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럽실소의 머리말에는 항상 실화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어 작가는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들의 이름은 가명임을 밝히며, 개인소장하시기를 정중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들이 쓰는 가명은 대부분 연예인 이름,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나 지인의 이름을 빌린 것이며, 욕설과 구체적인 성적 은어가 들어갈 때는 자음만 쓰기도 한다. 자음만 쓰는 경우,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괄호 안에 추가설명을 해주는 세심함도 잊지 않는다. 물론 그 흔한 띄어쓰기조차 돼 있지 않은 것은 인터넷 소설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해주는 대목이었다.

성관계·자살 등 대리만족
19금 내용 초중고생 공유

다음은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공고가면 임신한대>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우리는 천천히 내려가면서 뽀뽀했지. 그니깐 갑자기 혁이가 일어서더니 날 눕히고 우린 폭풍 키스했어. 키스를 하는데 고개도 좌우로 바꾸고 내가 혁이 목에 손을 걸치고 있었고 혁인 한손은 침대에 올려놓고 있고 또 한손은 내 골반 근처에 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티 안으로 손이 올라오는 거야. 이런 이야기 별로 안 좋게 보는 언니들도 있을 텐데, 혁이랑 나랑은 오랫동안 사귀었고 그만큼 믿으니깐 성관계도 하는 거야. 이상하게 안 봤으면 좋겠어. 혁이가 목이랑 쇄골 쪽을 번갈아가면서 핥는데 미치겠고. 아무튼 혁이가 내 위에 있었는데 혁이 밑에가 볼록한 느낌(?)이 들고. 그렇게 하다가 혁이가 브라후크를 풀고 또 온몸을 애무했지. 그렇게 하다가 가슴을 만지고 빨고 하는데…. 이렇게 자세히 적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가슴 애무하다가 혁이가 넣으려고 했나봐 ‘아픈데 괜찮겠나?’라고 물어서 난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 혁이는 삽입을 했지. 그리고 막 흔들어댔어. 내가 신음소리 내니까 혁이 더 흥분했어.(중략)”

이는 수위 럽실소지만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구체적인 성적 묘사가 난무한 럽실소는 잘못된 성의식을 심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럽실소에서 나오는 공고나 상고학생들은 모두 공부는 뒷전이고, 질이 낮으며 비행에 거리낌이 없는 학생들로 묘사돼 있던 것이다. 공고나 상고학생들은 임신과 동거는 기본이고, 최악의 경우 선배들이나 또래 남학생들로부터 화장실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서 집단 성폭행을 저지르거나 당한다고 그려지기도 했다. 

대리만족 러브스토리
나이 불문 인기 만점

서울 중랑구의 한 여중생 이모(15)양은 “요즘 학교에서 럽실소 안 보는 애들을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다. 전교 학생들이 돌려가며 럽실소를 공유하고 있고, 요즘은 스마트폰 앱도 출시돼 수업시간에도 선생님 눈치 보며 몰래 읽곤 한다”며 “야하고 폭력적인 럽실소들이 인기가 높은 이유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소설과 같은 일을 경험한 친구들이 실제로 있다. 우리 나이대와 딱 맞고, 소설 속 주인공처럼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끊기가 힘들다”고 털어놨다.

인근의 모 초등학교 여학생 고모(12)양도 “야한 럽실소는 남자 애들한테도 인기가 많다. 남자애들은 일부러 야한 것만 골라서 보는 것 같다. 나나 친구들이 럽실소를 보는 이유는 재밌기도 하지만 내가 럽실소에 나오는 훈남이랑 사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더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학부모 단체의 한 관계자는 “성인물이나 마찬가지인 이런 소설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으니 청소년들이 이를 사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며 “해당 소설들을 강제로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주변으로부터 주목받고 싶어 하는 10대의 심리가 자칫 왜곡된 성의식을 표현하는 자극적인 글을 양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이 이런 소설을 쓰기 위해 상상 속의 일을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고, 보는 10대 역시 ‘아,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 식의 학습에 따르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사회성 결여 부추기는
인터넷 소설의 함정


인터넷 소설 중 하나인 럽실소. 최근 10대 청소년들이 럽실소 등 인터넷 소설 읽기에 중독되면서 타인과 소통하기 보다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자칫 사회성 결여라는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어 또 다른 사회적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한 심리 전문가는 “인터넷 소설 읽기에 빠질수록 타인과 소통하지 않고 혼자있는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인터넷 소설에만 빠지지 않도록 학부모와 교사가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노욕?’ 한덕수 대선행 진짜 이유

‘노욕?’ 한덕수 대선행 진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한 전 총리는 이미 내란죄 공범으로 지목돼 수사 대상에 올랐다. 그래서 살길을 열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다. 과연 그 절실함은 ‘방탄’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 2일,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설은 지난해 9월부터 거론됐다. 한 전 총리가 국회 대정부질문 등 야당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반박하면서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그 당시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건재했다. 따라서 모두가 차기 대선이 오는 2027년에 진행될 것이라고 여기던 시점이었다. 윤 어게인 대타 역할?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헌법재판소서 파면돼 정계서 사라졌다. 차기 대선은 오는 6월3일로 앞당겨졌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란 절대 강적을 이길 방법을 놓고,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에선 다양한 논의가 일어났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는 그 다양한 논의 중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에 대해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비롯돼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서 퍼졌던 ‘윤 어게인’이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한 전 총리는 지난달 8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이완규 법제처장을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주요 보직 임명 자체에 대한 논란도 있었지만, 이 처장이 내란 공모 혐의 피의자란 사실도 큰 문제였다. 한 전 총리와 이 처장은 이미 지난해 12월 경찰 조사를 받았다. 지난 2월엔 소환 조사까지 받았다. 이 처장을 지명했던 시점은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였기 때문에 “한 전 총리가 추후 진행될지도 모르는 국민의힘 정당해산심판 방어에 협조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의심도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란 거대한 사건의 공범 의혹을 받는 사람들끼리 상부상조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의심이었다. 이는 곧 “윤 어게인의 구체적 구현일 수도 있다”는 흐름으로 연결됐다. 윤 어게인의 본질은 윤 전 대통령의 복귀 추진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을 지냈고, 파면됐다. 헌법·국가공무원법에 따라 다시는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친윤(친 윤석열)계 진영 일각서도 이를 고려해 “윤 전 대통령의 정신과 노선을 계승한다는 취지를 본질로 삼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 대신 출마하는 것”이란 해석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한 전 총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윤 전 대통령을 총리로 지명할 수도 있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년 중임제인 헌법 규정 때문에 지난 2008년엔 3선을 위한 출마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통합 러시아 대표가 대신 출마해 당선됐고, 푸틴 대통령은 총리로서 실권을 휘둘렀다. 메드베데프 대표는 푸틴 대통령의 첫 대선 당시 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내는 등 정치 경력이 있다. 하지만 한 전 총리는 정치 경험이 전혀 없다. 메드베데프 대표조차 대통령 재임 당시 바지사장·허수아비로 통했다. 따라서 한 전 총리가 설령 대통령으로 당선되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행보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한 전 총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정치 기반은 국민의힘 내 친윤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현실적 구도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처럼 총리로서 국정을 주도하지 않겠느냐”는 관측까지 나온 것이다. 푸틴·메드베데프처럼… ‘윤 총리’ 임명 관측도 이 같은 조롱 섞인 관측에 굴하지 않고, 한 전 총리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만 75세의 나이에 강한 정치적 집념을 보이는 이유로는 ‘내란 혐의 피의자’라는 현실적인 상황이 언급된다. 김 전 장관은 수사기관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면서 “계엄법 규정대로 한 전 총리를 거쳐 윤 전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건의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한 전 총리도 비상계엄 실행에 참여한 것이 된다. 물론 한 전 총리는 이를 일관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이 아니더라도, 한 전 총리는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 심의 소집 협조·참여 ▲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 소집 건의 회피의 다수 혐의를 받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내란죄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제는 ‘내란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사람도 없다. 이렇게 되면, 한 전 총리가 새 정부 출범 이후 수사기관에 줄곧 소환될 가능성이 크다. 법원 재판을 거쳐 징역형을 선고받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 전 총리로선 생존을 위해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인 이 후보의 집권을 막거나, 자신의 생존을 담보하기 위한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스스로 대선에 출마해 이 후보의 경쟁자를 자처함으로써, 향후 진행될 가능성이 큰 수사에 대해 “대선 경쟁자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국민의힘에도 큰 여파를 남겼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수시로 대표·비상대책위원장을 교체하면서 집요하게 당 장악에 집착했다. 지난 2022년 7월엔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나눈 텔레그램 대화가 공개됐고, 윤 전 대통령은 여기서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를 일컬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고 지칭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거나 반발하는 것을 ‘내부 총질’로 인식한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당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했다. 대통령이 당 장악에 집착하면, 내부서 차기 주자를 키우기 어렵다. 국민의힘의 인물난은 전직 대통령들의 지나친 당 장악 집착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면서 외부인을 대선후보로 옹립하는 기조가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연결됐다. 국민의힘이 한 전 총리에게 강한 시선을 두는 이유 중 하나로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된 반면교사를 거론할 수 있다. 권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중진들은 겉으로는 윤 전 대통령에게 전혀 반기를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감정이 있다. 사실은 당권 경쟁?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 2022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자녀 수에 따라 대출금을 탕감하거나 면제한다”는 취지의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을 제시했다가,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일각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어 부위원장직서 해임됐고, 당 대표 출마마저 저지당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당 대표로 선출됐지만, 국민의힘 인요한 의원이 주도하던 혁신위원회와의 갈등 끝에 사퇴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김 의원에게 대표직 유지를 조건으로 총선 불출마를 요구했지만, 김 의원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김 의원에 대한 격노를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자신이 원내대표로 선출되던 날 윤 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자 “뭐하는 거야, 이게 지금”이라고 말하는 등 순간적으로 반발 심리를 드러냈다. 이렇듯 국민의힘 주요 중진과 경선 출마자 중 상당수는 윤 전 대통령과 상당한 갈등 끝에 손해를 본 기억이 있다. 이들이 윤 전 대통령 같은 강성이 대통령후보로 출마하는 것을 원할 가능성은 적다. 이번 대선서 범 국민의힘 계열 대선후보들은 이 후보와의 승부서 이길 가능성이 적으므로, 경선은 사실상 당권 경쟁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다. 대권후보들도 당권에 강한 아쉬움이 있다. 당 대표에 취임했다가 당내 주류들과의 갈등 끝에 힘없이 물러났던 경험이 있고, 당으로부터 등을 떠밀려 출마했던 선거서 패배해 치욕을 겪은 적이 있다. 이들이 다시 당권주자로 등장하는 것을 중진들이 원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따라서 당 대표를 다시 세운다고 하더라도, 의원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나갈 사람을 선호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평생 관료로 살았고, 국민의힘·민주당 정권서 모두 총리를 지냈던 한 전 총리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카드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헌법재판소가 위헌이 아니라고 인정했다지만, 한 전 총리는 “여당 대표와 정기적으로 회동하면서 책임총리의 권한을 행사한다”는 과도 정부체제를 발표했다가 엄청난 비난을 들은 적도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한 전 총리가 이래도 따르고, 저래도 따를 것”이라고 인식했을 여지가 있다. 그래서인지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에게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를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수사 피해 대선 출마? 자당 대선후보와 외부 대선후보 단일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자당 대선후보에 대한 적대감으로부터 비롯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 정몽준 전 의원의 단일화도 노 전 대통령에게 적대적인 당시 새천년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후보 단일화 협의회(이하 후단협)를 구성해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한 후 진행됐던 것이었다. 이 갈등은 노 전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으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직계 의원들과 함께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그러자 새천년민주당은 한나라당과 협조해 노 전 대통령을 탄핵했다. 이 같은 연유로 당시의 후단협은 지금도 안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런데도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외부 정치 원로에게 단일화 지원을 요청했단 것은 당내 대권주자들과의 불신·갈등을 외부로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약점이 있는 사람은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다. 한 전 총리는 현재 내란중요임무종사자란 의심을 받고 있다. 형법 제87조 제2호에 따르면, 내란중요임무종사자는 최대한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5년 이상의 징역형이다.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는 혐의가 적용돼 수사를 받고 있어서 국민의힘의 지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 지원을 매개로 한 전 총리와 국민의힘은 하나가 될 수 있다. “정치 보복”과 “야당 탄압”이란 구호로 함께 묶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점이 있다고 해서 아무 목소리도 못낼 것이란 기대는 섣부른 것일 수도 있다. 한 전 총리 못지않게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사람은 한 전 총리의 부인 최아영 여사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해 12월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서 “최 여사는 화가이자 미술계의 큰손”이라며, “무속에 너무 심취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건희 여사·김 여사의 모친 최은순 여사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무속의 지배를 받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부인 무속·해몽 일화 정치 공세 가능성도 최 여사에 대해선 한 전 총리의 인사청문회서도 같은 논란이 제기됐던 적이 있다. 민주당 이해식 의원은 “최 여사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어느 여성이 강남에 있는 유명 점집을 함께 드나드는 사이란 제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 전 총리는 “공직 생활 동안 명리학에 대한 배우자의 관심이 공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 일은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최 여사가 무속에 관심을 가진단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공개적으로 거론됐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는 지난 2014년 8월 <조선일보> 연재 칼럼 <조용헌 살롱>서 최 여사의 해몽 과정을 언급했다. 칼럼에 따르면, 최 여사는 한 전 총리가 무역협회장이 되기 전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가 자신의 침실로 들어오는 꿈을 꿨다.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장이 되기 전엔 헬리콥터 조종사가 권총으로 부부를 쏘는 꿈을 꿨다. 부총리가 되기 전엔 스프링 콩콩을 타고 뛰는 꿈을 꿨다. 현재 소유 중인 주택을 사들이기 전엔 집이 물에 잠겨 물바다가 되는 꿈도 꿨다. 최 여사는 특이한 꿈을 꾸면 ‘영험한 해몽가’로 알려졌던 고 임훈씨와 해몽 상담을 했다고 전해진다. 최태민씨 일가가 박근혜 전 대통령 일가에 접근한 연결고리 중 하나가 해몽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심상치 않은 대목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아울러 역사적으로 해몽은 야심을 동반한단 측면서 의미심장하다. 신라 원성왕과 조선 태조 이성계 등 권좌에 오른 사람의 설화 중엔 꿈과 해몽이 곁들여진 사례가 많다. 최 여사가 정기적으로 해몽가를 방문했단 것이 사실이라면, 야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이 대목이 사실이라면, 두 전직 대통령의 전례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국민의힘이 세 번째 배신을 당할 가능성으로 연결될 소지가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임기 내내 주변인의 구설수로부터 야당의 공세가 시작돼 파면됐단 공통점이 있다. 대선서 낙선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정당들로부터 파상 공세를 당해 체면을 구기거나 끊임없이 이어질 정치 공세의 소재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한 전 총리까지 포함한 빅텐트를 친다고 해서, 밝은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후보는 시종일관 강고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달 27일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명백한 중범죄자를 봐주는 것이 정치적으로 바람직한지는 국민 판단에 따를 일”이라고 말했다. 압도적 의석 이재명 경고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던 이 후보가 윤 전 대통령 등 비상계엄 관련 사안에 대해선 이를 적용하지 않을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이 후보가 집권한다면, 압도적 의석을 가진 여당과 그 여당을 일극 체제로 지배하는 대통령을 배경으로 진행될 각종 수사 등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특히 이 후보는 한 전 총리에 대해서도 “내란 주요 종사자들과 부화뇌동자들이 여전히 정부의 중요 직책을 갖고 남아있는 것 같다”며 “내란 세력이 끊임없이 귀환을 노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다.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의 발언이기 때문에 의미심장하다. 한 전 총리와 국민의힘의 ‘몸부림’은 이를 막는 방패가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