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김현희 카드’ 4대 노림수

AL기 폭파 주범인 김현희가 12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11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BEXCO)에서 일본인 납북자 다구치 야에코씨의 장남 이즈카 고이치로씨, 오빠 이즈카 시게오와 면담을 갖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특히 이번 일을 계기로 MB정부와 일본 간의 관계가 돈독해졌다. 김현희-납북자 만남이 이뤄진 다음날 공교롭게도 일본은 북한 미사일 발사 움직임과 관련 대책 및 6자회담 진전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양국은 북한 문제 등을 명분으로 우호적인 관계로 급진전 양상을 띠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현 시점에서 ‘김현희 카드’를 꺼내든 배경에 강한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 금융위기 등이 맞물린 상황에서 ‘국면 전환 카드’로 꺼내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야권 일각에서는 MB정부가 김현희 카드를 이용, 나름의 더 큰 노림수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협력해준 데 대해 (한국 정부에) 감사를 드린다.”
아소 다로 일본 총리가 김현희와 다구치씨 가족들의 면담을 보고 일본 언론과의 기자회견장에서 던진 말이다. 일본 언론들 역시 “다구치씨 가족들이 이전에도 김현희와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실현되지 않다가 한일관계를 중시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에 의해 성사됐다”고 전하는 등 MB정부와 일본 사이에 따듯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게다가 MB정부가 위기에 빠진 아소 다로 내각을 살려줬다는 말도 나온다. 

김현희 카드 통해
MB 대북정책 어필?

실제로 일본 언론들은 10%대의 저조한 지지율로 실각 위기에 놓인 아소 다로 총리 내각이 납치문제를 지지율 반전카드로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김현희-다구치씨 가족들 간의 면담 이후 한·일관계가 급진전되고 있다. 지난 12일 나카소네 히로후미 일본 외상의 요청으로 유명환 외교통일부 장관과 전화통화를 가졌고, 일본을 방문하기로 한 것.

회담 의제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과 관련대책 및 6자회담 진전 방안에 초점이 맞춰질 분위기다. 특히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와의 협의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대응 방안을 협의하기로 했다. 김현희가 12년 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한·일 관계뿐 아니라 북한 문제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얘기다.

김현희 카드로 인해 양국간에 따뜻한 기류가 형성된 배경을 놓고 세간에서는 구구한 해석이 흘러나오고 있다. 또 정치권에선 남북관계가 단절된 시기에 MB정부에서 김현희 카드를 꺼내든 그 이면에 또 다른 노림수가 있다는 관측이다. 미래지향적 양국관계를 위한 긴밀한 공조체제 구축에 나섰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북한 압박용 국면전환용 노무현 죽이기가 아니냐는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김현희는 국정원 등으로부터 철저하게 감시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김현희가 공식석상에 선 것에 대해 여러 의구심이 생긴다”면서도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의 일환으로 김현희 카드가 나온 것 같다”고 관측했다.

김현희-다구치씨 가족 지난 12일 면담…한일관계 급진전
납북자 문제 통해 참여정부 대북정책 비판…강경정책 고수

전문가는 물론 정치권 인사들 역시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한 의지가 강경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동안 일본 정부가 납북자 문제에 집착한 탓에 북핵 6자회담 진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참여정부의 주장을 단번에 뒤집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 준비 등 각종 위협 공세를 펴고 있는 데에 정부가 더 이상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MB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해오던 민주당 한 인사는 “북한은 정권교체에 대해 별다른 의미 부여를 하고 있지 않고, 남한 정부의 진정성을 보고 있다”며 “북한과의 신뢰관계는 하루아침에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MB정부의 대북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MB정부 내내 ‘냉기류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김현희가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이 KAL기 폭파 사건과 관련해 진실과 다른 증언을 강요했다”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한 의혹도 증폭되고 있다. MB정부가 ‘노무현 죽이기’를 위해 꽁꽁 숨겨놨던 김현희 카드를 꺼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

KAL기 사건 조작
MB정부 수사 중

김현희는 기자회견장에서 “(KAL기 폭파 사건에 대해)지난 정부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오늘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것은…”이라며 말꼬리를 흐리면서도 “현 정부가 지난 정부에서 있었던 일을 조사하고 있다고 하니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참여정부가 김현희 사건을 왜곡하려 했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함과 동시에 ‘노무현 죽이기’에 직·간접적으로 적잖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만든 국정원 진실위는 지난 2006년 8월 KAL기 폭파 사건에 대해 다른 결론을 내린바 있다. ‘KAL기 사건은 북풍을 노린 안기부의 자작극’, ‘안기부가 폭파계획을 알고도 방조했다’는 등 각종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발표했던 것.

하지만 MB정부의 김현희 주장에 대한 사실 확인과정을 통해 참여정부에 대한 의혹이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게다가 MB정부에서 김현희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발표할 경우에는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여론이 극에 달할 뿐 아니라 각종 ‘음모론’이 제기될 소지도 다분하다. 이른바 ‘노무현 죽이기’인 셈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일부에서는 MB정부가 국면전환용으로 ‘참여정부 손보기’ 카드를 꺼내들었다”며 “김현희가 MB정부에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든다”고 귀띔했다. 김현희 카드를 통해 ‘노무현 죽이기’를 가동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 셈이다.

MB정부가 남북관계·경제 위기론 등에 시달리고 있는 시점에서 김현희가 12년 만에 등장한 배경을 둘러싼 궁금증도 증폭되고 있다. 김현희를 국면 전환카드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게 의혹의 주된 골자다.

이중 MB정부의 대북정책은 여야간의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뜨거운 감자’다. 북한의 강경체제는 MB정부가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고 민주당이 강하게 주장해왔기 때문. 이에 따라 김현희 카드를 통해 북한 정국의 실상을 밝힘과 동시에 현재의 강경 대북정책을 정당화시키고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자는 고도의 노림수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위기 극복 위한
국면 전환 카드

실제로 이 대통령은 대북정책에 대한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12일 제1차 국민원로회의를 주재하며 “남북관계를 잘 해나가고 있다는 얘기를 듣기 위해 단기적 처방을 내놓는 것은 옳지 않다”며 “민족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남북이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 존중하면서 대화할 필요성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북한을 진정으로 돕고자 하는 게 현 정부의 정책”이라며 “쌀과 비료만 준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경기침제 장기화 등 총체적 위기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이 대통령이 김현희 카드를 꺼내 국면전환용으로 사용할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설일까. 모든 것은 12년 만에 나타난 김현희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