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풀살롱-호텔 연계 '풀살롱' 잠입취재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11.30 1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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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티켓 불티…경찰 덮쳐도 불야성

[일요시사=사회팀] 룸살롱과 호텔은 '공생관계'다. 그래서 생긴 게 '풀살롱'이다. 풀살롱은 성매매 단속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오히려 더 생겨났다. 호텔 내에 있는 만큼 적발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또 불황을 맞아 '2차'까지 포함한 가격이 비교적 저렴해진 측면도 손님을 끄는 요소다. 객실 한 층을 통째로 성매매 장소로 이용해온 L호텔을 시작으로 강남권 대형 풀살롱들을 돌아봤다.

 

지난 18일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L호텔 내부에 풀살롱을 차려놓고 성매매를 한 업자와 호텔 운영자, 성 매수 남성 등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호텔 안 풀살롱과 연계해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로 강남 L호텔 사장 고모(56)씨와 F풀살롱 업주 이모(35)씨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또 성 매수남 7명, 여종업원 7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호텔과 룸살롱의
이유 있는 '공생'

지난 14일 단속을 벌인 경찰에 따르면 고씨와 이씨는 지난 2010년 7월부터 최근까지 지하 6층~지상 15층 규모의 L호텔의 12층과 13층에서 F풀살롱을 차려놓고 성매매를 알선했다. 강남 일대에서 '고품격 란제리 클럽'으로 유명한 이 풀살롱은 한 건물에서 2차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편리함 때문에 높은 인기를 누렸다.

호텔 업주와 풀살롱 업주는 호텔 객실을 성매매 장소로 이용하기로 계약한 뒤 손님들로부터 1인당 34만원을 받고 음주와 2차 성매매까지 가능한 풀살롱 영업을 해왔다. 또 열쇠전담 직원까지 두면서 신원 노출을 꺼리는 성 매수 남성들이 로비에 갈 필요 없이 객실로 바로 내려갈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했다.

L호텔과 F풀살롱은 이익 극대화를 위해 협력해왔음이 밝혀진 것이다. 타 호텔 및 숙박업소도 호텔 내 있는 풀살롱과 안전한 '2차'를 위한 공모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


경찰에 따르면 L호텔의 12∼13층에는 661㎡(200평) 규모로 운영되는 룸살롱이 있었고 10층 객실 19개는 성매매 장소로 이용됐다. L호텔의 중국 및 일본 관광객들은 성 매수 남성과 여종업원이 한 엘리베이터를 사용해 불쾌하다는 중국 및 일본 관광객의 민원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이에 경찰은 현장답사 후 호텔을 급습해 성관계 현장을 적발한 것.

당시 경찰은 "호텔 10층 키를 풀살롱 직원이 관리하며 객실로 손님을 안내하는 등 성매매를 알선한 점이 확인됐다"며 "해당 호텔에 대해 관할구청에 행정처분을 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자는 경찰 발표 다음 날 7시30분께 L호텔을 다시 찾아가봤다. 경찰의 단속 후 영업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L호텔에 다다르자 짙은 화장을 한 아가씨들이 호텔로 들어가고 있었다.

L호텔 란제리클럽 단속 직후 가보니 "여전히 성업중"
"나 어제 뉴스에 나왔어" 호스티스·웨이터들 비웃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문에 있어야 할 무궁화 호텔 등급표시가 없었다. 앞서 많은 언론에서 L호텔을 두고 무궁화 5개짜리 특급호텔이라고 보도된 것을 본 터라 의아했다. 프런트 직원에게 "몇 등급 호텔이고 왜 무궁화 표시가 없느냐"고 물으니 호텔직원은 "L호텔은 특2급에 해당한다"며 "지금 등록절차가 진행 중이다"고 답했다.

의문을 품은 채 단속이 있었던 객실을 둘러보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F풀살롱 종업원으로 보이는 아가씨 4명, 남자 직원 1명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우연히 이들의 대화를 엿듣게 됐다.

아가씨들은 전날 있었던 언론보도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듯 했다. 이들은 "뉴스에 나온 거 봤어? 동영상 보니 완전 대박이더라" "어떻게 그렇게 찍혔을까" "뉴스 보니까 정말 끝까지 다 나오더라. 내 모습도 나왔잖아"라는 등의 대화를 하며 웃었다. 의외로 밝은 모습이었다.

이들이 12층에서 내리는 것을 확인한 후 10층 단속 현장으로 향했다. 기자는 불과 5일 전 단속이 이뤄진 만큼 객실이 비워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 붉은 조명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내고 있는 객실 복도는 단속이 있었던 곳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조용했다. 조금 기다리자 일본인 관광객 2명이 10층의 한 객실에서 나와 대화를 나누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F풀살롱이 있는 12층으로 향했다. F풀살롱도 정상적으로 영업하고 있었다. 업소 직원이 2명이 기자를 반기며 "몇 번 방을 찾아 왔습니까"라고 물어왔다. 이에 신분을 밝히고 언제부터 영업을 재개한 것인지 물었다. 그러자 그와 풀살롱 직원들은 기자를 경계하며 "지금 영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것보다 더 큰 타격이 있겠느냐"며 손가락으로 텅 비어있는 예약판을 가리켰다. 이어 "기자들이 너무 많이 와서 마음 같아서는 입구에서부터 못 들어오게 막고 싶다"며 기자를 엘리베이터 쪽으로 이끌었다.

단속에 걸려도…
성매매 알선 여전

건물을 빠져나온 후 다음 날 F풀살롱이 성매매 영업을 계속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손님을 가장해서 한 직원과 통화했다. 예약을 하고 싶은데 설명해달라고 하자 그는 "1차는 란제리 입은 여종업원과 룸에서 1∼2시간 즐기고, 2차는 호텔 객실로 직행해서 1시간 즐거운 시간을 가지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더 캐묻자 "쩜오급 되는 여성들이 하루에 70명 정도 출근하고 있는 만큼 하드코어 업소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단속이 심해져서 요즘엔 10시 이전에는 정상영업만 하고 10시 이후에 와야 2차까지 가능하다"고 답해왔다.

이 직원의 말에 따르면 불과 며칠 전 갑작스러운 경찰의 단속을 맞아 업주와 종업원이 검거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매매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영업정지가 내려진 것이 아니고 행정처분 대기 중이기 때문에 영업을 계속하는 것"이라며 "성매매를 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면 손님이 떨어져 나가니까 일단 그렇게 말한 것 아니겠느냐. 또다시 적발되면 건물 전체 허가가 취소될 마당인데 성매매 영업을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를 의아하게 만들었던 '무궁화 없는 특급호텔'은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L호텔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다. 호텔 소개 상단에는 '신개념 비즈니스 특급관광호텔'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등급은 '특2급 예정'이라고 돼 있었다. 2008년 12월16일 개관해 4년이 흘렀는데 아직 한국관광호텔업협회 등에 등록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관광호텔업협회 관계자는 "L호텔 업주는 4년 전께 심사절차를 받기 위해 찾아온 적은 있지만 이후 서류가 제출되지 않았다"며 "내년부터 법이 바뀔 예정이지만 현재로는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처벌규정도 없고 강제성도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 시내에서 L호텔 정도의 큰 규모의 호텔이면서 등록하지 않은 곳은 없다"며 "업계에서도 이번 언론보도도 그렇고 L호텔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매직미러 초이스
'아가씨 쇼핑'

기자는 L호텔처럼 호텔 내부에 풀살롱을 두고 성매매를 일삼는 곳을 더 찾아보기로 했다. 서초구 잠원동에 위치한 B관광호텔은 지하에 D풀살롱을 두고 있었다.

B호텔 지하 1∼2층에 있는 D풀살롱은 B호텔 로비를 거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했다. 즉 D풀살롱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곧바로 B호텔 객실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D풀살롱 프런트 근처에 몰려있던 4명 이상의 직원들이 기자를 반겼다. 한 직원이 안내했다. D풀살롱은 규모가 엄청났다. 복도를 따라 다닥다닥 늘어선 룸은 그 수를 셀 수 없었고 직원들만 해도 40여 명은 훌쩍 넘어 보였다.


룸을 둘러보기 위해 직원과 함께 복도를 걷는 동안 가슴이 깊게 파인 복장을 한 아가씨 2명이 지나갔다. 룸으로 향하는 듯했다. 또 한쪽 룸에서는 그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계약을 진행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직원은 룸 세 군데를 보여주며 "지하 2층에도 룸이 있고, 아가씨 대기실이 있다"고 귀띔했다.

비용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비싼 술은 한없이 비싸지만 가격 적당한 17년산으로 해서 거품 줄여 잘 모시겠다"고 대답했다. 이어 "룸비와 호텔비, 그리고 2차비까지 다 포함해서 1인당 55만원"이라며 "현재 강남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곳으로 룸 수 70개에 출근하는 아가씨만 220명에서 23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것이 과장인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기자가 2차 장소에 대해서 묻자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무궁화 3개 호텔인 B호텔로 바로 올라간다"며 "단속 위험 없이 안전하게 2차까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성매매가 호텔 내에서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자는 수소문 해 한 곳을 더 찾아갔다.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R관광호텔 지하는 조금 더 특별한 풀살롱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의 V풀살롱은 밖에서 안을 볼 수 있지만 안에서 밖은 보지 못하는 특수한 유리문 일명 '매직미러 초이스'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는 그 방식이었다.

V풀살롱은 호텔 지하에 위치해 있지만 입구는 따로 있었다. 그리고 입구는 다른 곳보다 경비가 삼엄했다. 풀살롱 직원 2명이 입구를 지키며 손님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었다. 기자는 "미리 둘러보고 싶다"는 핑계를 대며 풀살롱 직원과 미리 통화를 한 터라 직원을 밖으로 불러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지하 1층에 있는 V풀살롱도 규모가 상당했다. 기자가 "룸이 몇 개 정도 되느냐"고 묻자 직원은 50개 정도 된다고 말했다.


겉은 '특급호텔' 안은 '성매매 소굴'
엘리베이터 타면 2차까지 논스톱 서비스
진열장 상품처럼…매직미러 초이스 인기

룸을 몇 군데 둘러본 후 직원은 "룸에서 한 시간, 호텔에서 한 시간 코스는 1인당 38만원, 룸에서 한 시간 반, 호텔에서 한 시간 코스는 1인당 43만원"이라고 설명했다.

성매매 장소를 묻자 그는 "바로 위에 있는 호텔로 모신다"며 "호텔이기 때문에 성매매를 할 수 있지 안 그러면 요즘 단속이 심해서 못 한다"고 말했다. 이곳 역시 호텔과 연계한 풀살롱이 운영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직원은 "아가씨들 출근 시간이라 많은 아가씨들이 와 있을 것"이라며 기자를 '초이스방'으로 안내했다. 유리 넘어 한껏 치장한 아가씨들이 가슴에 번호를 달고 빨간 의자위에 50여 명 정도 맞춰 앉아 있었다. 그중 몇몇은 앳된 얼굴이었다. 이들은 미소를 머금은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소위 '매직미러 초이스'로 불리는 이런 영업방식은 이미 지난 4월 서울청 상설단속반에 의해 적발된 바 있다. 하지만 이제 강남 유흥가의 '대세'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실정이다.

변종 룸살롱인 풀살롱은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 이후 성매매 단속이 심해지면서 오히려 우후죽순 생겨났다. 또 경기불황에 맞춰 풀살롱들이 비교적 싼 가격을 내세워 안전하게 2차까지 가능하다는 점을 내세우면서 성 매수자들이 풀살롱으로 몰리고 있다. 이제는 호텔이나 모텔 등 숙박업소 내 유흥주점들이 자리잡고 있으면 당연히 성매매까지 가능한 업소로 여겨질 정도다.

이처럼 강남구의 특급호텔과 관광호텔 내 운영되는 풀살롱이 서로 연계하여 퇴폐문화를 조장한다는 제보가 잇따르면서 강남경찰서도 관내 호텔 등 숙박업소 51개소(호텔 26개소), 풀살롱 79개소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 작업을 벌이고 있다.

강남경찰서는 L호텔 단속을 포함해 올해 호텔 연계 성매매 8건을 적발해 102명을 검거했다. 앞으로도 호텔 등 숙박업소에 풀살롱이 있는 업소 51개, 숙박업소 79개 풀살롱에 대해서 특별 관리하여 지속적인 단속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아무리 단속해도 성매매가 줄지 않는 건 대형 풀살롱을 운영하기만 하면 이 같은 고수익이 보장되는 반면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기 때문일 것이다.

성매매 알선에 대한 처벌은 7년 이하의 징역과 7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게 되어 있다. 하지만 법원은 인신매매나 폭행, 감금 등의 혐의가 없을 경우 실형을 선고하지 않고 있고 벌금도 대부분 수백만원 이하다.

성매매 방치하는
솜방망이 처벌

이렇다 보니 2004년 성매매처벌법 제정 이후 단속 사범은 늘었지만 경찰이 기각될 것을 우려해 영장 신청을 소극적으로 하면서 구속률과 기소율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 강남지역 성매매업소가 호텔과 연계해 대형화되는 것도 이와 맞물려 있다.

이대로 가다간 관광객들이 찾는 모든 관광호텔이 성매매의 온상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 시정 당국의 강력한 처벌 의지와 철저한 단속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민석 기자 <ideaed@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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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