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잔혹사’ 계속된다

이명박 ‘사정칼날’ 2차 대공습 막전막후



강금원 수사 이어 친노 우리들재단 수사 착수
 K·L·H 그룹 등 특혜 의혹 기업  정조준

검찰의 ‘2차 대공습’이 시작된 모양새다. 참여정부 심장부를 겨냥한 검찰발 사정 드라이브가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인 건평 씨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구속한 데 이어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에 대한 수사도 본격화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 역할을 맡아온 박연차·강금원 회장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친노’를 겨냥한 전방위 수사가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심지어 야당 주변에서는 이번 기회에 지방선거 출마를 노리고 있는 민주당 인사들에 대한 비리 등을 추적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는 검찰 사정 칼날은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본게임은 지금부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검찰의 2차 공습 주 타깃은 과연 어디일까.

최근 검찰 수사 동선이 예사롭지 않다. 노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전방위 수사가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야당주변에서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이미 노 전 대통령은 몇 차례 쓴맛을 봤다. 노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 씨와 박연차 회장 등이 이미 구속됐고, 강금원 회장도 검찰 레이더망에 걸려들었던 것. 이른바 ‘친노게이트’로 얼룩지면서 노 전 대통령의 입지가 좁아지기도 했다.

실제 검찰 수사를 통해 노건평 씨의 딸과 사위 그리고 노씨의 사돈도 세종증권 주식을 사고팔아, 모두 6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둔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정원토건의 회삿돈 15억원을 횡령했을 뿐 아니라 세종증권 매각에 깊숙이 관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박 회장 역시 세종증권 및 휴켐스 주식의 미공개정보 이용 혐의와 함께 휴켐스를 헐값으로 인수한 혐의 등으로 구속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여기에다 강 회장과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간의 커녁센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서 고(故)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의 유족들이 노 전 대통령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직접 수사하기로 결정하는 등 노 전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을 점차적으로 압박해가고 있는 분위기다.

친노기업 향한 수사 재개
‘과거 제기됐던 사건부터’

이 때문일까. 친노인사들에 대한 거침없는 사정 칼날 이후에도 정치권 주변에서는 참여정부 당시 급속도로 성장한 기업들에 대한 의혹을 철저히 파헤칠 것이라는 얘기가 끊이질 않고 있다. 공기업과 친노인사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만큼 다음 타깃은 친노기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참여정부 시절에 불거진 의혹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만큼 참여정부 시절 급성장한 기업들에 대한 의혹들을 철저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참여정부 시절 묻혔던 사건들에 대한 수사도 내친김에 철저히 파헤치려는 검찰의 의도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들재단에 대한 의혹이 대표적이다. 참여정부 시절인 지난 2006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양수 한나라당 의원은 “김수경 이사장이 수도약품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내부자 거래 정황이 있다고 증권선물거래위원회가 검찰에 통보했는데도 이를 밝히지 않고 미온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권력의 비호 때문 아니냐”며 “우리들병원이 수도약품을 공짜로 인수한 셈”이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또 국세청이 지난해 11월 우리들재단 계열사인 우리들생명과학 등 4개사가 38여억원의 세금을 포탈했다고 고발, 국정조사를 요구한 바 있다.

검찰에서도 이 점을 유심히 지켜보고 최근 수사를 진행했다. 지난달 26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는 계열사를 운영하면서 거액을 탈세한 혐의로 국세청이 고발한 김수경 우리들재단 이사장(노 전 대통령의 척추디스크 수술을 했던 이상호 우리들의료재단 이사장의 부인)을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김 이사장을 상대로 참여정부 시절 17대 기업을 인수하면서 운영과정에서 탈세여부와 비자금 조성여부를 집중적으로 조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 나아가 계좌추적을 통해 참여정부 인사들이 개입되어 있는지 여부를 파악할 가능성도 농후하다는 전언이다.

검찰과 야당 일각에서는 노무현 정권 시절 성장했던 기업에 대한 수사도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부에서는 참여정부 시절 성장한 기업 4곳이 수사선상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말도 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당 한 인사는 “검찰 고위급 인사 등을 볼 때 참여정부를 향한 사정칼날을 위한 인사이동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추측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도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친노기업에 대한 수사도 본격화될 것”이라며 “참여정부 시절 급성장한 기업들에 대한 비리도 낱낱이 파헤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이 때문에 당시 야권이었던 한나라당 내부에서 주장했던 우리들재단에 대한 의혹들에 관해 검찰 수사를 진행했듯이 이명박 정부가 과거 묻혔던 기업 사건들에 대한 각종 의혹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일환으로 지난 1월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이인규 대검 기획조정부장이 대검 중수부장으로 승진한 만큼 참여정부의 모든 비리를 샅샅이 파헤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남북간 긴장 고조에 따른 비판 여론과 함께 재보선 패배론이 급부상하고 있는 만큼 이런 분위기를 돌리기 위한 이른바 ‘이명박 정부의 회심의 카드’일 수도 있다는 얘기도 파다하다.

‘재계 저승사자’ 귀환
친노, 정경 유착 파헤치나

그렇다면 검찰 사정 칼끝에 걸려든 기업들은 과연 어디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K·H·L 기업 등이 거론되고 있다. K기업은 참여정부 시절 A사를 매각하는 과정에서의 특혜의혹이 일고 있다. 검찰에서도 이 점을 예의주시해 내사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정보를 입수하는 데 총력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쳐 급성장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는 만큼 성장배경을 두고 이명박 정부에서 사정칼날을 거침없이 휘두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K기업은 A사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입찰제안서와 다르게 자금을 조달했을 뿐 아니라 경쟁사보다 유리한 점수를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K사가 A사 인수대금으로 자기자금 2조4279억원, 타인자금 자금 2조2500억원, 재무적 투자자 3조8200억원 등 8조4979억원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었지만, 실제로는 계획에 없던 인수금융 1조8609억원을 동원해 자기자본과 타인자금을 합쳐 2조3376억원, 재무적 투자자 2조2310억원 등 자기자금 비중을 크게 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K기업은 도덕성 평가에서 경쟁사에 비해 낮은 감점을 받았다는 점 등을 봤을 때 누군가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논란과 함께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L기업 역시 B사업 로비·특혜 의혹으로 인해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고 있는 기업 중 하나다. L기업은 B사업을 추진해왔지만 정부기관은 지난 1995년부터 줄기차게 반대해왔다. 환경파괴를 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지난 2004년 오염물질 배출총량을 규제하는 제도를 도입하면서 B사업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각종 비리 의혹이 터져 나왔던 것. 당시 야당 인사였던 P씨가 구속 수감돼 실형을 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정치권에 대한 로비설이 나돌았지만, P 전 의원에 대한 수사만 진행될 뿐 검찰 수사는 아무런 혐의점을 찾아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수사를 종결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최근 검찰에서는 참여정부 시절 수사가 활발하게 진행될 시기에 수사가 중단된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H기업도 주 타깃으로 거론되고 있다. H기업은 수입부품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가격을 부풀려 200억원 이상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H기업 인사들에 대한 혐의가 드러나기는 했지만, 비자금에 대한 명확한 사용처에 규명하는데 수사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검찰이 2차 공습 일환으로 참여정부 시절 성장한 기업을 중심으로 수사를 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 인사들의 유착관계에 대해서도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참여정부의 핵심 실세로 불렸던 L씨와 L의원이 거론되고 있는 것. 이는 참여정부 시절 성장했던 기업, 핵심인사, 심지어 노 전 대통령의 심장부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이명박 정부가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사정칼날을 계속 휘두를 것이라는 얘기가 야당 주변에서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참여정부에 대한 수사를 비롯해 2010년 지방선거 패배론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야당 인사들에 대한 비리 등을 집중적으로 파헤칠 것이라는 것.

예사롭지 않은 사정칼날
2010년까지 계속된다?

소문의 진상을 따라가 보면, 이명박 정부가 지방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얘기가 확산되면서 사정을 적극 활용해 승리를 일궈내겠다는 복안이라는 것. 그 일환으로 지방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보이는 야당 인사들을 예의주시하고, 지방선거와 관련된 행보가 보이는 즉시 바로 내사를 시작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례로 지방선거를 겨냥한 비선팀이 차려졌을 경우 자금출처 등에 대한 진상을 낱낱이 파헤치겠다는 계산이다.

지방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보이는 A의원실 한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2010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소문은 익히 들었다”며 “4월·10월 재보선, 지방선거 패배론에 대한 얘기가 조금씩 나돌면서 여권 패배론을 잠식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검찰 사정을 이용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이미 국정원 등에서는 우리 의원에 대한 모든 파일을 다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의 사정칼날은 참여정부를 향한 전방위 수사는 물론 지방선거를 겨냥한 야당 인사에 대한 내사설까지 이어지면서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검찰의 사정칼날이 참여정부의 꽁꽁 숨겨진 비리 판도라상자를 열 수 있을지 여부에 정·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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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