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대선판 트러블메이커' 김성주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11.06 09: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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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하면 '막'…박근혜에 득? 실?

[일요시사=사회팀] 스스로 '트러블메이커'라 자평한 김성주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연이어 막말을 내뱉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의 바람대로 정말로 트러블메이커가 되고 만 것. 사태가 악화되자 뒤늦은 수습에 나섰지만 그에 대한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다. '김성주 신화'라고 불릴 만큼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왜 정치권 한복판에 뛰어들어 고생일까.

지난달 11일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된 김성주 위원장(성주그룹 회장)은 첫 기자회견 때부터 스키니진에 빨간 운동화 등 파격 패션을 선보이며 파란을 예고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난 재벌좌파다" "한국을 확 뒤집어 혁명을 일으키고 싶다" "박 후보에게 '그레이스 언니'란 별명을 지어줬다" 등 등장부터 파격적인 발언을 쏟아내 적잖은 논란을 일으켰다.

곧바로 새누리당 내부는 물론 보수 성향 인사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국회 안팎과 언론, 그리고 누리꾼들 사이서도 유명인사가 됐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김 위원장의 거침없는 입담은 멈추지 않았다.

"영계 좋아하는데 
가까이 와서 찍자"

결국 김 위원장은 3주도 못 버티고 성희롱 논란에 휩싸였다. 닷새 후 "제 발언이 누가 됐다면 사과드린다"며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한발 늦은 모양새다.

문제의 발언은 지난달 24일 사무처 2030 당직자 간담회 중 발생했다. 김 위원장은 간담회에서 꽃다발을 받으며 사진을 찍던 젊은 당직자에게 "내가 영계 좋아하는데 가까이 와서 찍자"고 말한 것이 화근이 된 것.


파문이 확산되자 김 위원장은 "회사에서는 (젊은) 사원들을 두고 '영계'라고 자주 지칭해왔다"며 "지난주 2030회의에서도 팀장급 실무책임자들이 모두 40대 초반이라 '영(Young)마인드'를 가진 분까지 다 오라는 의미로 '영계모임'이라고 지칭한 것"이라고 성희롱성 발언이 나오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 같은 발언이 구설까지 오른 것을 보면 내가 공인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며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야권은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김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연일 비상식적인 발언을 자처하는 분답게 하는 입만 열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면서 "성희롱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김 위원장에 대해 새누리당은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의 발언으로 역시 새누리당은 '성누리당'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 후보 캠프 측 이정현 공보단장도 "김 위원장의 발언은 부적절한 농담"이라며 "작은 농담도 공인은 주의를 기울여서 해야 한다는 교훈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성희롱·여성비하 등 솔직 발언할 때마다 파문 
거침없이 말 쏟아내 당내·보수 인사들도 우려

김 위원장의 막말은 처음이 아니다. 특히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이 문제가 됐다.

먼저 김 위원장은 지난 2009년 연세대 특강에서 "입학생의 50%가 여성인데 들어와선 다 올 A로 졸업해놓고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썰렁하다"며 "사회기여도 안 되고 동창 동문회비도 안 걷히고 네트워킹도 안 되고 연세 미래를 너무 약하게 만든다. 두 가지 중 하나만 하자. 아예 여성을 입학시키지 말든가 아니면 확실히 기여할 사람만 뽑자"고 말했다. 이어 특강을 듣는 여학생들에게 "절대 농담 아니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2010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제주 하계포럼에서도 "여성들은 약점이나 조금만 한계 있으면 다 눈물 찔찔 흘리고 도망간다. 다 알지 않나. 잘못하면 남자 탓하고 도망가는 것을. 그런 여자들을 내가 어떻게 (믿고) 일을 시키겠느냐"고 말했다. 또 "요즘 우리나라 여성들 겉은 아름다운데 속은 너무 나약하다"며 "장차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사람이 바로 여자들인 만큼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여성들이 집에 앉아있는 것이 문제"라며 주부 비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여성들이 왜 경제활동에 못 들어왔나. 물론 유교적인, 가부장적인 이유도 있지만 여성들이 남성 탓, 전통 탓하고 집에 있으려 하는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외국서 공부하고 자라왔기 때문에 서구 여성들이 부지런하며 우리나라 여성들보다 10배 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봐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청년들의 겪고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무시한 채 의견을 피력해 비난을 샀다.

지난달 15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여성문제와 청년 일자리 문제를 놓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 위원장은 "저같이 작은 중소기업 사장도 30개국을 정복할 수 있는데 젊은이들이 정부에게 일자리를 창출하라는 것은 수동적인 자세"라며 비판 조로 말을 시작했다. 이어 그는 "20대 일자리 창출 문제를 국내에서만 보지 말라"며 "IT 시대에는 어마어마한 가상세계 안에 어마어마한 창업거리와 일자리가 있다. 한국의 훈련된 인원들이 일할 게 너무 많은데, 다만 요즘 청년들은 불평만 하기 때문에 취업이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여성 육아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은) 애 젖 먹이면서도 주방에 앉아 '진생쿠키(인삼과자)'를 만들고 그것을 구글에 올려 전 세계에 팔았다"며 "요즘 젊은이들에겐 세계로 통하는 길이 열려있는데 왜 수동적으로만 대응하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쏘아댔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발언들로 젊은이들이 노력은 하지 않고 불평만 일삼는다는 것.

"확 뒤집어 혁명 
일으키고 싶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에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트위터에서 "김성주의 망언 퍼레이드"라며 "언제까지 참아줘야 하나?"라고 쏘아붙였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도 "구조의 문제를 개인 문제로 치환하는 게 기득권자들의 흔한 수법"이라고 꼬집었다.

트위터리안 및 누리꾼들 역시 김 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들은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망언과 필적한다" "진생쿠기가 아니라 진상쿠키" 등 김 위원장의 발언을 질타했다.

이뿐만 아니다. 지난달 15일 김 위원장은 서울 홍익대에서 열린 경제민주화와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경제민주화를 강제하는 것은 역사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해 또 논란이 됐다. 당시 김 위원장은 "당이나 박근혜 후보가 반기업적 정책을 내세우는 것은 역사에 역행 한다"며 "반기업적 풍토는 젊은이들의 나아갈 길을 막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김 위원장 측은 "당의 경제민주화 정책에 관한 언급이 아니라 야권 후보의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한 언급"이라며 "박 후보야말로 경제민주화를 반기업적인 형태가 아닌 유연하게 실천할 분"이라며 말을 바꿨다.

지난달 24일 김 위원장은 당 사무처 당직자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해 "과거사 문제 때문에 우리(새누리당)가 너무 당한다"며 "(정치판에)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 왜 우린 저격수가 없나"라고 말했다.

최근 인혁당 사건과 정수장학회 등 과거사 문제로 박 후보가 곤욕을 치르고 있는 데 대해 맞대응을 촉구한 것이다. 그는 또 "왜 야당은 박 후보를 두고 30∼40년 전에 일어난 일들을 가지고 물고 뜯느냐"며 "노무현 정부는 100%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가"라며 반문하기도 했다.

출근 첫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 위원장은 '여성 비하' 논란에 대해서 해명하기도 했다. 이날 그는 "일생에 있어 첫 번째 사명이 여성의 권리를 높이는 것인데 내가 여성 비하를 할 리가 있느냐"며 반박했다.


구설수에 오른 자신의 발언들은 여성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실제 사업 세계에 들어가 보니 여기는 여성들이 빨리 실력과 체력, 그리고 근성을 채우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자기 자신의 고백일 뿐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여성은 섬세하고 제 일을 잘하지만, 여성의 한계는 어려움에 직면하면 눈물 흘리고 도망가는 것"이라며 "극기하는 사람만이 남을 지도할 수 있다는 것이며, 여성이 꼭 군대 가야 한다는 취지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좌충우돌 재벌좌파
새누리당과 코드는?

김 위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박 후보를 '화이트골드미스'라고 칭하기도 했다.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여유를 갖춘 미혼여성을 일컫는 표현 '골드미스'에, 깨끗함을 연상케 하는 단어 '화이트'를 붙인 신조어인 것.

그는 박 후보에게 "골드미스 리더십을 가진 박 후보는 여성취업 문제, 육아 문제, 고령자·은퇴자 등을 우선하는 '여성 대통령' '육아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기자들이 박 후보와 김 위원장이 겪어온 인생을 보면 결혼, 육아, 취업 등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오늘날 젊은 세대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적어 보인다고 지적하자 김 위원장은 "직장, 결혼, 육아를 포기하는 '3포 시대'라고 하던데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며 "나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제결혼을 강행했고 계획하지 않았던 임신과 출산을 하며 육아문제를 겪었다"고 말했다.


박 후보의 삶에 대해선 "(박 후보에게) 어느 남자가 용기 있게 결혼을 신청하겠느냐"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후보는 강인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이어 "여성은 결혼하든 안 하든 본능적으로 모성애를 타고난다"며 "때문에 박 후보는 정부도 더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집안 살림하듯 이끌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특히 박 후보의 청렴을 강조하며 "요새 많은 정치인들이 배우자를 잘못 만나 잡혀 들어가는데 그런 가족이 없어 오히려 좋은 것 같다"며 배우자의 부동산 투기나 수뢰 등으로 구설에 올랐던 인사들을 꼬집었다.

이어 김 위원장에게 박 후보를 선택한 연유를 묻자 "정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라면서도 "박 후보가 세 후보 중엔 최선이다.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바타인 것 같고, 안철수 후보는 이론에 밝아도 현실정치엔 한계가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의 반이 여성이고 5000년 역사를 자랑하는데, 지금쯤은 여자 대통령이 나올 때"라며 박 후보 캠프에 합류한 이유를 밝혔다.

대성그룹 창업주 김수근 전 회장의 막내딸인 김 위원장은 1997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선정한 '차세대 글로벌 지도자 100명'에 들면서 세계적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2004년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주목할 만한 여성기업인 50인'에 선정되는가 하면, 지난 7월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이 주최한 'DNA 회의(Decide Now Act Summit)'에선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비전을 가진 101명의 리더'에 선정되기도 했다.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정치판 뛰어들어 생고생 왜?
"정치엔 무식하나 세 후보 중 박근혜가 최선이라"

김 위원장은 이화여고를 나와 연세대에서 신학을 전공했고, 미국 애머스트대에서 사회학을, 하버드대에선 경영학을 전공했다, 또 런던 정치경제대(LSE)도 거쳤다. 하지만 국제결혼에 반대한 아버지로부터 재정 지원이 끊어지면서 유학을 중단해야 했고 돈이 궁해 고생을 시작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외국인과 결혼을 고집하면서 유산을 일절 받지 못해 곤궁한 신혼생활을 해야 했다. 미국 유학시절엔 뉴욕 뒷골목에서 1센트를 아끼려고 걸어 다녔고 블루밍데일 백화점에서 근무할 때는 월 18만원을 받으며 상자를 날랐다고 한다.

1990년 한국으로 돌아온 김 위원장은 성주인터내셔널(현 성주그룹)을 세워 패션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20여 년간 패션산업에 종사하면서 2005년 독일 유명브랜드인 MCM 본사를 인수해 세계 30개국에 300여 개 매장을 두는 등 성주그룹을 글로벌 패션회사로 키웠다. 그에 따르면 여자의 몸으로 혼자 애를 키우면서도 1000여 명의 한국 직원과 15개 국적의 외국 직원을 둔 글로벌기업으로 성장시켰다고 한다. 또 김 위원장은 여성의 사회활동 확대, 빈곤가정 학생과 탈북 주민을 돕는 일에도 열성을 보여 왔다. 노무현 정부 인수위 글로벌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이에 많은 여성들은 세계적인 '커리어우먼'으로 성공한 김 위원장을 롤 모델로 삼았다. 김 위원장의 말 대로면 그는 재벌가 출신이라는 자신의 배경을 버리고 바닥부터 '홀로서기'를 통해 차근차근 실력을 다져 세계적인 최고경영인으로 우뚝 선 것. 이에 '김성주 신화'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일각에선 김 위원장을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자수성가한 경영인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1990년 아버지 회사로부터 3억원을 빌려 '패션사업'을 시작한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또 1998년 외환위기로 경영 상황이 악화되면서 김 회장은 대성의 지급보증을 받고 30억을 대출받기도 했다. 그동안 대성그룹과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했는지까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관계가 지속해 온 것이다.

재벌가 막내딸의
자수성가 코스프레

이를 요약하면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고, 미국과 영국의 명문대에서 공부할 기회를 가졌으며, 사업을 시작할 때 아버지 도움을 받았고, 경영난을 겪자 아버지 회사의 지급보증으로 돈을 빌렸다는 얘기가 된다.

이를 두고 대다수 누리꾼들은 "김 위원장은 밑바닥 경험이라고 해봐야 유학 시절 아버지로부터 자금이 끊긴 것 아니냐"며 "재벌2세로 태어나 혜택을 받을 만큼 받은 그가 청년들에게 왜 자신처럼 못하냐고 구박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어느 날 갑자기 정치권 한복판에 나타나 거침없는 입담으로 조용할 날이 없는 그.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을 각오가 됐고, 그걸 칭찬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자칭 재벌좌파 김 위원장. 그의 앞길은 어떨지 우려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기대된다.

김민석 기자 <ideaed@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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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