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양재혁 101일 미스터리 행적 추적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10.31 09: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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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에 반전…뒤통수 친 가신 찾아 삼만리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수천여억원에 달하는 잔여자금을 들고 잠적한 측근을 잡기 위해 '작전'을 감행한 양재혁 전 삼부파이낸스 회장. 그의 기묘한 행적은 마치 한편의 첩보영화를 보는 듯 했다.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양 전 회장은 측근보다 먼저 경찰에 붙잡혀 복수에 실패했다. 양 전 회장의 미스터리 행적을 추적해봤다.

지난 10월22일 양재혁 전 삼부파이낸스 회장이 경찰에 검거됐다. 그가 실종 된지 101일만이다. 그는 부산 대연동 커피숍에 지인을 만나러 갔다가 종업원의 신고로 덜미가 잡혔다. 부산 연제경찰서는 양 전 회장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앞서 양 전 회장이 감금·협박으로 실종된 게 아니라 잠적한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양 전 회장이 처벌을 받을 지 관심이 쏠렸다. 처음 경찰은 양 전 회장이 단지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인 데다가 "현재 수배돼 있는 전 삼부파이낸스 재무이사 하인봉씨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행적을 밝히지 않은 이유를 말해 처벌은 애매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고의잠적 잠정결론
공무집행방해 혐의

하지만 고의로 잠적해 수사기관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가 인정돼 불구속 입건됐다. 그동안 경찰은 양 전 회장을 찾으려고 많은 수사 인력을 동원하는가 하면 양 전 회장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있을 때마다 사실 확인에 들어가는 등 적지 않은 경찰력을 낭비해야 했다.

양 전 회장은 '고의잠적' 의심을 극구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 10월23일 그는 "처음부터 자작극은 아니었고 자작극이라고 하면 하씨가 웃을 일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양 전 회장은 무슨 사유로 자택을 떠나 서울의 한 허름한 고시원을 숙소로 삼아 지내다가 갑자기 잠적해야 했을까. 그의 실종 101일간 행적을 추적해보니 마치 한편의 첩보영화 같았다.
지난 7월19일 연제경찰서로 실종신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양 전 회장이 하씨를 만나러 나간 뒤 일주일째 소식이 없다"는 양 전 회장 동생의 전화였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양 전 회장의 행적을 추적하려 했으나 미스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양 전 회장은 지난 7월13일 오후 2시쯤 "하씨를 만나러 간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집을 나섰고 그 뒤 3시간 만인 오후 5시13분 속초항 방파제 부근에서 종적이 끊겼다. 경찰은 휴대폰 위치 추적을 통해 정상적인 배터리 방전이 아니라 누군가 배터리를 강제 분리한 신호가 기지국에 잡힌 것을 확인했다.

양 전 회장의 가족들과 지인들은 세 달이나 연락이 두절된 것을 보아 양 전 회장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여기까지 종합해 보면 양 전 회장은 하씨에 의해 납치나 감금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열흘 후 양 전 회장이 대구의 한 대형마트 CCTV에 찍히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실종 열흘 뒤인 7월23일 오후 4시, 양 전 회장은 아들이 사는 곳에서 7km 떨어진 마트에서 아들 명의 카드로 2만5850원 어치의 식료품을 구입했다. 뿐만 아니라 CCTV 속의 양 전 회장은 눈에 띄는 개량한복을 입고 태연하게 물건을 둘러보는 등 누군가에게 납치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 사건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졌다.

회장님의 기묘한 실종 납치냐? 자작극이냐?
돈 들고 튄 측근 잡기 작전…첩보영화 방불

실종 54일째인 지난 9월5일에는 양 전 회장의 한 측근에게 의문의 전화가 걸려왔다.

"하씨가 중국 교포 둘을 매수해가지고 내가 지금 감금돼있습니다."


발신자는 양 전 회장 본인. 정말 양 전 회장은 하씨에게 납치된 것일까.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아들의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신용카드가 사용됐다는 카드회사의 알림 문자였다. 당시 아들의 카드를 갖고 있었던 이는 양 전 회장이었다.

경찰은 이때부터 실종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고의잠적 가능성을 높게 봤다. 실제로 양 전 회장은 같은 달 22일 경북 포항시 장어집에서 아들 신용카드로 음식값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또 서울에서 택시운전기사 휴대전화를 빌려 친구에게 전화하기도 했다.

이어 지난 10월3일 낮 12시4분께 부산역 공중전화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투자자 김모씨에게 전화해 "부산에 내려왔다"고 말을 한 뒤 도중에 전화가 끊긴 것으로 확인되면서 그의 고의잠적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경찰은 양 전 회장이 마지막으로 행적이 확인된 부산에 있을 것으로 보고 행적을 추적하는 중 22일 오후 5시25분께 커피숍에 양씨와 인상이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종업원의 제보를 받고 출동해 현장에서 그를 붙잡았다.

여기까지 경찰의 입장을 바탕으로 한 실종사건의 전말이다. 그런데 양 전 회장의 말은 달랐다. 양 전 회장은 하씨는 만나지 못했지만 하씨의 대리인을 만났다고 주장했다.

양 전 회장에 따르면 지난 7월6일 인천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상대방은 "하씨를 만나려면 13일 오후 6시까지 강원도 속초 방파제로 와라"라고 일방적으로 말한 후 끊었다. 양 전 회장은 고민 끝에 동생에게 이 사실을 알린 후 약속한 장소로 갔다.

약속시간 30분이 지나자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조선족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자신이 하씨의 대리인이라며 양 전 회장의 휴대전화를 배터리를 분리토록 요구했다. 그리고 수신만 가능한 노키아 휴대전화를 양 전 회장에게 줬다.

속초 방파제에서
조선족 만났을까

속초에서 하룻밤을 보낸 양 전 회장은 다음 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이 대리인과 함께 자신이 거처하고 있던 서울 역삼동의 고시원으로 갔다. 영 전 회장은 이때 자신의 휴대전화를 고시원에 두고 나왔다.

이후 양 전 회장과 대리인은 경북 울진으로 내려가 3일을 보냈고 포항에서 또 3일을 보냈다. 대리인은 또 대구로 가자고 했다. 영 전 회장은 "현금이 충분히 있었지만 아들에게 자신이 무사하다고 알리기 위해 아들의 체크카다를 이용했다"고 말했다.

양 전 회장에 따르면 대리인은 하씨를 선처해 달라고 요구했고, 양 전 회장도 잡히는 것보다는 자수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회유했다고 한다.

지난 8월30일 이 대리인은 양 전 회장에게 "하씨와 함께 갈 테니 원룸 인근에 있는 호텔에서 만나자"고 했다. 하지만 4시간이 지나도 하씨는 나타나지 않았고 대리인은 "하씨가 11월30일에 자수를 할 것이다. 그렇게 알고 있어라"는 말을 남긴 후 사라졌다.


양 전 회장은 과거 자신의 경호원이었던 A씨와 함께 하씨를 찾아 나섰지만, 하씨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수중에 돈이 떨어진 양 전 회장은 지인으로부터 돈을 빌리기 위해 부산 남구 대연동의 한 커피숍에서 지인을 만나려다 결국 자신을 알아본 커피숍 직원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잡혔다는 것. 여기까지 양 전 회장의 진술을 바탕으로 한 사건의 전말이다.

양 전 회장은 1999년 파이낸스 사태로 부도가 나기 전까지 국내 최대 규모였던 삼부파이낸스와 삼부건설 등 계열사 5개를 거느렸던 부산에서 이름난 거물이었다. 자산 규모만 1조5000억원에 달했고 연예계와 체육계도 주물렀다.

양 전 회장은 유사수신행위로 부산 경제를 뿌리째 뒤흔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는 1996년 1월 부산 삼부파이낸스를 설립한 뒤 '연수익률 30% 보장'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그러나 1999년 회사설립 불과 4년 만에 내부 부실운영과 이자 돌려막기에 의한 경영악화로 파산했다.

당시 부산지역 90여 개 파이낸스사 중 '삼부사태'로 29개 업체가 파산했고 피해액만 1조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회사가 부도나면서 삼부파이낸스에 돈을 맡긴 투자자 6500여 명의 2280억원이 날아갔다.

당시 이 사건의 피해인원이 3만 여명으로 추산돼 부산경제에 막대한 파장을 몰고 왔다. 특히 높은 수익률 보장이라는 대대적인 광고에 속은 부산지역 영세서민들은 피땀 흘려 번 돈을 삼부사태에 날린 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그 와중에 양 전 회장은 고객투자금 1116억원을 빼돌려 계열사를 설립하고 호화생활 경비로 써버린 혐의 등으로 지난 1999년 9월 대검 중수부에 구속됐다.


경찰이 대신 추적하도록 유도?
잔여자금 챙긴 하씨는 어디에?

2004년 1월 출소 후 재기를 꿈꾸던 양 전 회장은 최측근이었던 하씨에게 맡겨둔 2200여억원을 손실 정산법인 ㈜CKA를 통해 찾으려 했다. 양 전 회장은 구속 수감 중에 피해자 구제를 위한다는 취지로 ㈜CKA를 설립하고 삼부파이낸스 재무담당부사장을 맡았던 하씨를 대표이사로 앉혀 잔여자금을 맡겼었다. 하지만 하씨가 2200여억원과 함께 잠적해 그의 계획은 무산됐다. 출소 후 양 전 회장은 복수의 칼을 갈며 8년 넘게 하씨를 뒤쫓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질긴 악연은 시작된 것이다.

경찰의 수사가 진척되면서 이 실종사건의 주요 열쇠는 양 전 회장이 아니라 삼부파이낸스 부도 잔여자금을 관리해오던 하씨에게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씨가 어디에 있는지, 그를 찾을 수 있는지가 사건을 풀 핵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하씨는 현재 양 전 회장 등으로부터 회사자금 횡령 혐의로 고소된 상태이며 2010년 자수해 조사를 받다 다시 잠적했다.

또 지난해 4월 경기도 여주에서 불심검문에 걸려 부산으로 인계된 후 경찰 조사를 받았으나 당시 양 전 회장이 해외에 나가있었던 데다 48시간 내 혐의점을 밝히지 못해 석방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은 "당시 양 전 회장 이외의 고소인과 대질심문도 벌였지만 혐의를 다 확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하씨는 정산법인의 돈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4월부터 검경에 의해 수배된 상태다.

삼부파이낸스가 한참 잘나가던 시절 양 전 회장은 하씨를 만났다. 당시 하씨는 세무공무원으로 삼부파이낸스와 밀접한 관계를 맺다 양 전 회장의 신임을 얻어 영입된 후 삼부파이낸스 재무담당 부사장을 지냈다. 양 전 회장이 구속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양 전 회장의 하씨에 대한 신뢰는 두터웠다고 알려졌다. 양 전 회장이 구속되면서 2200여억원에 달하는 삼부파이낸스 잔여자산을 하씨에게 모두 맡긴 것만 봐도 그렇다. 그랬던 하씨가 양 전 회장의 출소에 맞춰 그가 관리해오던 2200여억원과 함께 돌연 잠적하면서 두 사람은 졸지에 철천지원수가 되어버린 것.

하지만 일각에서는 '수천억 원대 재산 은닉설'은 양 전 회장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하씨가 실제 이 정도 규모의 자금을 갖고 있는지 확인된 것은 없다는 지적이다. 당시 양 전 회장이 횡령한 회사자금 대부분을 방탕한 호화생활로 탕진해 버려 수중에 남은 재산은 별로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더불어 하씨가 실제 관리하는 돈은 2200여억원이 아닌 수십여억원일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믿는 도끼에 발등…·
8년 동안 추적

연제경찰서 측은 양 전 회장의 속초에서 하씨를 만나게 해 주겠다는 조선족 2명을 만났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자작극으로 잠정적 결론을 내린 경찰은 양 전 회장이 애초에 하씨의 소재를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도 배재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양 전 회장이 속초 방파제에서 하씨를 만나기로 한 것 역시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

경찰 측의 예측이 틀리지 않다면 양 전 회장은 잔여자금을 들고 달아난 하씨를 경찰이 찾아내게 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 아래 가족까지 속이며 연극을 한 셈이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하씨와 잔여자금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연제경찰서 관계자는 "은닉 재산이 과연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인지는 도피 중인 하씨의 신병을 확보해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씨는 수배 중인만큼 소재파악 등 수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 의령 출신인 양 전 회장은 삼부파이낸스를 설립하기 전에는 주택건설과 컴퓨터유통업을 하다가 1980년대 말 사채업체인 부민투자금융을 운영하면서 금융업계에 뛰어들었다.

양 전 회장은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속에 동남은행과 부산지역 4개 종금사들이 무더기 퇴출당하면서 자금운용에 큰 어려움을 겪던 지역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영업을 펼쳐 부산에서 알아주는 거물급 인물이 됐다.

삼부파이낸스가 승승장구하던 시절 양 전 회장은 심형래 감독이 제작한 영화 <용가리>에 22억원을 투자하고 <짱> <엑스트라> 등 100억여원을 영화산업과 공연물에 투자했다. 한때 부산을 쥐락펴락 했다. 또 삼부건설, 삼부엔터테인먼트, 삼부벤처캐피털, 한결파이낸스 등의 계열회사를 거느리기도 했다.

 

[양재혁 전 회장 검거되기까지]

▲1999년 1월       삼부파이낸스 설립
▲1999년 9월       양재혁 회장 구속
▲1999년 10월     삼부파이낸스 도산
▲1999년 12월     검찰 양재혁 회장 징역 15년 구형
▲2000년 1월       법원 양재혁 회장 징역 5년 구형
▲2000년 6월       정산법인 ㈜CKA 설립(최측근 하인봉씨 대표 선임)
▲2004년 1월       양재혁 전 회장 출소
▲2004년 4월       ㈜CKA 대표 하씨 잠적, 검찰 수배
▲2011년 11월      58억원 횡령한 ㈜CKA 직원 2명 구속
▲2012년 7월13일 양 전 회장 속초에 하씨 만나러 간 후 실종
▲2012년 7월19일 양 전 회장 아들 경찰에 신고
▲2012년 7월23일 대구 남구 대형마트 CCTV에서 양 전 회장 모습 포착
▲2012년 9월5일   양 전 회장 감금당했다고 한 측근에게 전화
▲2012년 9월22일  양 전 회장 경북 포항 장어집에서 아들 신용카드로 음식 값 지불
▲2012년 10월3일  양 전 회장 지인 김모씨에게 "부산에 내려왔다"고 전화
▲2012년 10월22일 양 전 회장 부산 대연동 커피숍에 지인을 만나러 왔다가 경찰에 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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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