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 김성수 기자가 파헤친 재벌가 신(新)혼맥 [제6탄] 이혼남녀 X파일

씻을 수 없는 상처 ‘파란만장 웨딩잔혹사’

[일요시사=경제1팀] 재벌가 혼맥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한두 다리만 건너면 사돈’이란 말이 통용될 정도로 ‘그들만의 성’은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다. 물론 재벌가문은 정·관계 및 학계 쪽으로도 거대하고 강력한 연줄망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사세 확장을 위해 권력층과의 정략결혼도 서슴지 않는다. 전략적 통혼을 통해 최고의 부와 명예, 권력을 한 손에 쥘 요량에서다. 5년 전인 2004년 시사지 최초로 재벌가 혼맥을 집중 해부해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일요시사>가 2009년 새해를 맞아 새 식구를 포함한 재벌가 신 혼맥을 유형·테마별로 새롭게 재구성해 봤다.



어느 가정이든 숨기고 싶은 가족사가 있기 마련이다. 그중에서도 이혼은 언급조차 꺼려지는 아픔이다. 재벌가도 예외는 아니다. 총수 일가의 파경은 ‘치명타’나 다름없다. 일단 노출되면 집안은 물론 기업 경영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혼 경력을 숨길 수 있다면 끝까지 감추는 게 상책인 이유다.

당연히 해당 그룹은 하나같이 모르쇠로 일관한다. 오너 가족의 개인사란 까닭으로 언급 자체를 극도로 꺼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한 재벌가 사람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재벌가의 파경 사례는 연예인을 식구로 받아들인 집안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자본의 권력인 재벌과 대중의 우상인 스타의 결혼은 대중의 호기심을 끌며 숱한 화제를 뿌린다. 

1971년 결혼한 고 장강재 전 한국일보 회장과 인기 여배우 문희 씨를 시작으로 2006년 8월 백년가약을 맺은 범 현대가의 정대선-노현정(전 KBS 아나운서)에 이르기까지 재벌과 스타의 만남은 그때마다 신선한 충격을 주는 최고의 화두로 떠올랐다.

물론 이들은 대부분 아무런 잡음 없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실과 바늘’로도 불리는 두 부류간 결합이 순탄치 않거나 서슴없이 갈라선 ‘막장 커플’도 적지 않다.


조규영 중앙산업개발 회장은 1970∼80년대 장미희, 유지인 씨와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의 주역인 청순 미녀 정윤희 씨를 아내로 맞았다. 그야말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었다. 문제는 조 회장이 유부남 상태에서 결혼이 진행됐다는 사실. 본부인과 이혼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에서 정씨와 교제를 시작한 것이다. 

결국 1984년 조 회장의 부인이 두 사람을 ‘간통’으로 경찰서에 고발했고 정씨는 유치장 신세를 져야 했다. 당시 ‘유부남과의 불륜’이란 비난이 쏟아졌고 정씨는 이를 계기로 연예계를 완전히 떠났다. 이들은 현재 주변의 걱정과 달리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최원석 전 동아건설 회장은 ‘두 번 이혼, 세 번 결혼’이란 이력을 갖고 있다. 모두 스타와의 인연이었다. 최 전 회장의 첫 번째 배필은 1960년대 유명한 육체파 여배우였던 김혜정 씨다. 그는 1976년 이혼 뒤 ‘펄시스터즈’ 멤버였던 배인순 씨와 재혼했지만 1998년 다시 이혼 후 KBS 아나운서 출신 장은영 씨와 결혼했다.

배씨는 2003년 자서전 <30년 만에 부르는 커피 한 잔>에서 최 전 회장의 사생활을 공개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 책에 따르면 배씨는 22년간의 결혼생활 내내 시부모와 불화를 겪는 등 재벌가 안주인으로서 삶이 순탄치 않았다. 특히 최 전 회장의 외도 경력까지 폭로한 배씨는 “만약 후배 연예인이 재벌과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면 적극 말리겠다”고 말을 하기도 했다.

에스콰이어그룹 일가 2세 이정 씨와 인기 절정이던 황신혜 씨는 1987년 결혼했지만 9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다. 황씨는 이듬해 3살 연하의 사업가와 재혼했지만 2005년 또 다시 이혼했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막내아들 채승석씨도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SBS 아나운서 공채에 합격한 한성주 씨와 1999년 결혼했지만 성격 차이를 이유로 5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외아들 정용진 부회장에게도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다. 바로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고현정 씨와의 결혼과 이혼이다. 


정 부회장은 1995년 고씨와 결혼했지만 8년6개월여 만인 2003년 이혼했다. 법원에 제출한 이혼사유는 ‘성격 차에 따른 가정불화’였다. 이들의 만남은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이혼 사실이 알려지면서 또 한 번의 화제를 낳았다.
정용진-고현정 못지않게 세간의 시선을 끈 만남과 이별은 홍승표 전 계몽사 회장과 역시 미스코리아 출신의 탤런트 오현경 씨다. 오씨는 1998년 ‘O양 비디오’가 유포되면서 연예계를 떠났고 2002년 홍 전 회장과 극비리에 결혼식을 올렸으나 4년 만인 2006년 갈라섰다.

재벌과 스타의 이혼은 결혼만큼 화제를 뿌린다. 재벌가는 물론 연예인들이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탓이다. 결혼에 이은 이혼 소식이 빠짐없이 세상에 알려지는 이유다.

그러나 재벌가에서 ‘끼리끼리’은밀하게 이뤄지는 ‘그들만의 혈맹관계’는 외부로 잘 노출되지 않는다. 이혼 또한 마찬가지다. 대부분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조카이자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누나 이미경 CJ엔터테인먼트 부회장과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간 파경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 전 사장은 연극배우 윤석화 씨와 재혼했다. 이 부회장은 독신생활을 고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삼성가에선 이병철 창업주의 3녀 순희 씨가 김규 전 서강대 교수와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다시 결합해 잘 살고 있다는 후문이다.

롯데가에서도 이혼한 로열패밀리가 한둘이 아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장녀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은 1967년 대구의 유지였던 장오식 전 선학알미늄 회장과 결혼, 1남3녀(재영-혜선-선윤-정안)를 뒀다. 신 사장은 이런 인연으로 선학알미늄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해 1973년까지 이사로 재직했다.

그러나 신 사장은 그리 만족할 만한 결혼생활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는 1979년 장 전 회장과 이혼하면서 회사를 롯데쇼핑으로 옮겼다. 장 전 회장은 재혼했다가 다시 이혼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4년 막내딸 정안 씨와 국제변호사인 이승환 씨의 결혼식에 장 전 회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문화·성격 차이로” 총수일가 파경 비일비재
베일 속 은밀한 만남…이별도 극비리 마무리

신 사장은 현재 혼자 살고 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장남 재영 씨와 장녀 혜선 씨도 결혼에 실패해 독신으로 지내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공교롭게도 신 사장의 차녀 선윤(호텔롯데 상무) 씨도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결별 시점과 사유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다. 그의 전 남편이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게 전부다.

선윤 씨는 2007년 양성욱 아우디코리아 상무와 전격 재혼했다. 외할아버지인 신 회장의 각별한 총애를 받고 있는 선윤 씨는 어머니 신 사장의 뒤를 이어 롯데쇼핑의 ‘후계자’로 점쳐졌다. 하지만 선윤 씨는 지난해 4월 호텔롯데 마케팅부문장에서 돌연 물러나 사임 배경을 놓고 갖가지 관측이 나돌기도 했다.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의 막내딸인 경주 씨는 광명덕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의 장남 광태훈 씨와, 김수근 삼양그룹 창업주의 장녀 상경 씨는 아폴로 박사로 유명한 조경철 씨와 각각 결혼했지만 가정불화로 헤어졌다. 고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의 장남 석원(전 쌍용그룹 회장) 씨는 첫째 부인과의 결혼에 실패, 1981년 박문순(성곡미술관장) 씨와 재혼했다. 


재벌가와 정·관계 집안간 결합이 이혼으로 끊기는 경우도 많다. 류찬우 풍산그룹(옛 풍산금속) 회장의 장남 류청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차녀 근령 씨와 1982년 결혼했다가 불과 6개월 만에 헤어졌다. 근령 씨는 지난해 10월 14세 연하인 신동욱 백석문화대 교수와 재혼했다.

고 이원만 코오롱그룹 창업주의 차남 동보(전 코오롱TNS 회장) 씨와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장녀 예리 씨도 한때 부부였지만 성격 차이로 갈라섰다. 양 가문은 이로 인해 급속도로 냉랭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 전두환 전 대통령도 사돈관계를 원만히 유지하지 못했다. 박 명예회장의 4녀 경아 씨와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 씨는 1988년 결혼했으나 불화를 견디다 못해 2년5개월 만에 이혼했다. 

재용 씨는 두 번째 아내인 최모씨와 결혼생활을 하다 2007년 2월 또다시 갈라선 뒤 같은 해 7월 탤런트 박상아 씨와 세 번째 결혼을 올렸다. 박 명예회장은 막내딸에 이어 1984년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과 혼인한 차녀마저 2002년 파경하는 아픔을 겪었다.

무엇보다 재벌가에서 간간이 터지는 ‘황혼 이혼’소식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은 2006년 부인 박모씨와 합의 이혼했다. 박씨는 2005년 8월 강 회장을 상대로 서울가정법원에 위자료 53억원 등을 요구하는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사실 강 회장 부부는 오래 전부터 상당기간 별거했을 만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강 회장의 파경은 당시 79세였던 나이는 물론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와 전경련 회장직을 맡고 있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했다. 주변인들은 “강 회장이 사업은 성공했지만 가정은 실패했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 사건은 강 회장과 배다른 자식 간 갈등이 증폭되는 계기가 됐다. 강 회장은 슬하에 5남4녀를 두고 있는데 이중 장·차남만 박씨의 자녀다. 나머지는 후처 최모씨와 사이에서 태어났다. 강 회장이 박씨 소생인 장·차남을 배제하고, 배다른 3·4남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후계구도 정비에 나섰고 이 일은 동아제약 경영권 분쟁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회장의 황혼 이혼도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이 회장의 나이는 77세였다. 그의 부인 신모씨는 2000년 무려 1000억원의 이혼 위자료 및 재산분할청구 조정신청을 서울가정법원에 냈다. 국내 이혼 위자료로 사상 최고의 액수였다.

“남편의 외도와 구타를 참을 수 없었다”는 게 신씨의 주장. 이 회장은 이에 대해 모두 부인했다. 그룹 측은 “이 회장이 사재출연을 반대하는 가족들과 마찰 끝에 부인에게 이혼을 당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이 회장은 평생 모은 재산 6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한 바 있다. 이 소송은 신씨가 50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마무리됐다가 8년 만인 2007년 재결합해 세상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창업 1세대 ‘세컨드 스토리’

십중팔구 아슬아슬 ‘양다리’

‘정주영, 이원만, 이병철…’ 창업주 대부분 애첩 관리

재벌그룹을 일군 창업주 치고 ‘애첩’을 곁에 두지 않은 사례는 드물다. 아슬아슬한 ‘양다리’를 걸치다 이른바 ‘세컨드’로 들인 경우는 창업 1세대에 집중되고 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한국에 부인이 있었지만 일본에서 일본인과 결혼해 2명의 자녀를 더 뒀다. 이 창업주는 모두 10명의 자녀가 있는데 이중 8명(3남5녀)만 본처인 고 박두을 씨의 소생이다. 나머지 4남과 6녀는 이 창업주가 일본을 드나들면서 만난 일본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았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도 한국인 첫 번째 부인 고 노순화 씨와 결혼해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을 낳았다. 이를 모른 채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간 신 회장은 1952년 일본인 시게미쓰 하츠코 씨와 사이에서 동주-동빈 두 아들을 얻었다. 

시게미쓰 씨는 당시 일본 외무성 대신의 여동생이었다. 이런 탓에 배다른 남매인 신 사장과 신동빈 부회장의 갈등설은 호사가들의 단골 메뉴다. 여기에 신 회장은 미스롯데 출신인 서미경씨와 사이에 두 딸을 더 두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부친 이맹희 씨는 혼외 아들을 뒀다. 2006년 대법원은 뒤늦게 나타난 아들이 이씨를 상대로 제기한 친자확인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확정 판결을 내렸다. 

2007년엔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배다른 자녀인 두 자매가 100억원의 추가 상속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각각 20억원씩 더 챙겼다. 고 이원만 코오롱그룹 창업주도 미국에 혼외 아들을 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고 최준문 동아그룹 창업주도 아슬아슬한 양다리를 걸쳤다. 최 창업주는 4명의 부인 사이에 모두 7명의 자식을 뒀다.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 3남매를, 둘째 부인과의 사이에 1명을 낳았다. 그 뒤로도 셋째 부인 사이에서 딸 둘, 넷째 부인 사이에서 아들 하나를 더 낳아 호적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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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