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도 아는 ‘공탁금’ 허점

돈 내면 감형된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범죄 가해자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서 형사공탁은 ‘천사공탁’으로 불린다. 피해자에게 합의금을 주는 것보다, 형사공탁을 해서 감형받겠다고 문의하는 피의자들도 있다. 피해자의 신속한 피해 회복을 위한 제도가 사실상 피고인의 감형을 위한 ‘꼼수’로 악용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형사공탁 특례가 시행된 지 1년2개월여가 지났지만 개선을 향한 정부의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고 범죄 피해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피해자가 합의를 완강히 거부해도 형사공탁을 하면 감형을 끌어낼 수 있다.” 가해자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들이 하는 이야기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형사공탁 특례가 시행된 후 1년간 2만5789건(1심부터 대법원 포함)의 공탁 신청이 있었다. 이 중 공탁금이 지급된 건수는 1만445건으로 신청 건수의 40%에 불과하다.

피해 회복?
뻔한 목적

형사공탁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피해복구나 변제 등을 목적으로 법원의 공탁소에 금전을 맡기는 제도다. 기존에는 피해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알아야 공탁금을 낼 수 있었지만, 2022년 12월 특례 시행 이후 사건번호나 조서·공소장 등에 기재된 내용 등만으로도 공탁이 가능해졌다.

공탁 과정서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일과, 이로 인한 2차 가해 등을 막기 위한 취지로 입법됐다.

하지만 입법 취지와는 다르게 피고인의 감형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어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피해자가 공탁금 수령을 거부했는데도 공탁금 유치로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던 점을 감안해’라는 판결문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심지어는 피해자가 공탁된 사실도 모르는 상황서 공탁금을 내고 감형받는 사례도 나왔다.

최근 대법원서 징역 5년이 확정된 강남 스쿨존 음주운전 사고서도 공탁금 감형은 큰 화두였다. 강남 스쿨존 음주운전 사고는 지난 2022년 12월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 한 초등학교 후문서 방과후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을 40대 A씨가 차로 치어 숨지게 한 사건이다.

수사기관에 따르면 사고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28%로 면허취소(0.08% 이상) 수준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A씨가 B군을 충격한 순간 차량이 흔들렸고 사이드미러 등을 통해 A씨가 사고를 인식할 수 있었지만, 그대로 차량을 몰아 도주해 사고를 당한 B군이 방치됐던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1심 결심서 유족 측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는 점과 예방적 효과를 고려해 A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다만 재판부는 A씨의 도주치사 혐의는 무죄로 판단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20여m 거리에 떨어진 곳에 위치해 금세 발각될 가능성이 있는 주거지 주차장으로 A씨가 들어가기보다는 사고 현장서 직진해 멀리 달아나는 것이 도주 의사에 부합하는 행동”이라며 “피고인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소극적으로 구호 조치한 것으로 볼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이어 “9세에 불과한 피해자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꿈을 펼쳐 보지 못하고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며 “가족은 평생 치유하기 어려운 충격과 고통을 입었다”고 밝혔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아들을 보는 가족의 절망감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다며 무엇보다 유족이 피고 엄벌을 원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이전까지 피고가 아무런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고, 가족과 지인이 선처를 구한다”며 “종합보험에 가입됐고 3억5000만원을 공탁한 점, 암 투병 중인 점 등을 피고에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부연했다.

1년간 2만5789건 신청
피해자 몰래 해도 인정

양형 이유에 공탁금이 들어가자 피해자 유족 측은 “공탁금을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형량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A씨가 사고 현장에 돌아온 직후 사고 사실을 알렸고, 경찰에 체포 이전까지 피해자 주변의 자리를 지킨 점 등을 근거로 도주 고의성이 입증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A씨의 범죄 공소사실과 관련해 상상적 경합 관계에 있다고 판단해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5년으로 형을 낮췄다. 상상적 경합은 1개의 범죄 행위가 여러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를 뜻한다. 형법 40조는 이 같은 경우 가장 무거운 범죄에 대해 정한 형으로 피고인을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1심은 특가법상 어린이보호구역 치사 혐의와 위험운전치사 혐의를 별개의 법률행위로 판단했다. 다만 항소심은 법리상 2개의 치사 혐의가 1개의 법률행위로 평가된다고 판단해 형량이 낮아졌다.

검사는 무죄 부분에 대한 채증법칙 위반, 법리오해 및 유죄 부분에 대한 죄수 판단을 주장하며 상고했다. 피고인 A씨는 위험운전치사에 관한 법리 오해, 양형부당을 주장하며 상고했다.

다만 대법원은 양측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며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최종 확정했다.

대법원 확정 이후 유족 측은 “한 줄기 희망을 품고 대법원에 나왔다. 그러나 저의 희망은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며 “재판 과정을 통해 저의 피해가 구제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상처와 고통을 겪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다른 어린이보호구역 음주 사망사건에 비해 현저히 적은 형량이 나온 것을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가해자가 전관 부장판사 출신의 대형 로펌 태평양을 쓴 점, 기습공탁금을 사용한 점 둘 다 모두 금전적인 힘이 작용해 이 같은 판결이 나온 것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또 “1심, 2심 모두 가해자는 기습공탁을 이용했고 저는 매번 피눈물을 흘렸다”며 “피해자인 제가 공탁금이 필요하지 않으며 용서할 의사가 없다고 수차례 밝혔음에도 재판부가 이를 감형 요소로 고려하는 것은 저 대신 용서라도 하겠다는 것이냐”고 호소했다.

프로축구 제주유나이티드 소속 유연수의 축구선수로서의 생명을 앗아간 음주운전의 피고인도 1심 선고를 앞두고 700만원을 형사공탁했다. 지난 1월19일 제주지방법원에 따르면 이날 유연수 선수를 다치게 한 음주운전 피고인 C씨가 700만원을 형사공탁했다. 지난달 25일 선고 공판(제주지법 형사1단독)을 6일 앞둔 시점이었다.


수령
안 해도…

유연수 선수는 지난달 17일 방영된 tvN <유 퀴즈 온더 블록>서 “(가해자는)지금까지도 사과 한 마디 없다. 재판에서는 저희한테 사과하려고 했다고 하던데 정작 저희는 한 번도 연락받은 적이 없다”며 “그걸 듣고 더 화가 나더라. 와서 무릎 꿇고 사과했으면 그래도 받아 줄 의향이 있었는데 너무 화가 났다”고 말했지만 사과하기보다 기습으로 공탁을 한 셈이다.

이에 유연수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오션 소속 오군성 변호사는 “1심 선고를 며칠 앞두고 피고인 측이 사과문을 전달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여기에 형사공탁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유연수 선수와 논의한 결과 1심 선고를 며칠 앞둔 상황 속에 사과문 전달·형사공탁은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C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험운전치상), 강제추행 혐의로 1심서 징역 4년, 40시간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 5년간 취업 제한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양형부당을 이유로 재판부에 항소장을 제출한 상황이다.

이외에도 후임병에게 상습적으로 가혹행위를 일삼은 해병대 선임도 기습공탁을 통해 감형받고 벌금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D씨는 2022년 7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인천 강화 소재의 한 해병대 생활관서 후임병들에게 이른바 식고문을 일삼고 이유 없이 폭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후임병들에게 반복적으로 가혹행위 등을 가했고 수단과 방법도 불량하다”고 지적하면서도 “일부 피해자와 합의하고 합의 못한 피해자를 위해 형사공탁하는 등 피해복구를 위해 노력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들은 모두 판결 선고일이 임박해 형사공탁을 진행한 예시들이다. 이 같은 형사공탁은 소위 기습공탁으로 불린다.

피고인의 형사공탁을 원고가 수령 의사가 없음을 밝히기 위해 공탁금회수동의서 또는 엄벌탄원서를 제출할 시간도 없게 만드는 것이다. 형사공탁 특례법이 시행되기 이전에는 피해자의 동의가 없으면 형사공탁금을 신청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피고인들은 형사변제공탁이 아닌 민사변제공탁으로 돌려서 공탁을 신청하는 꼼수를 사용했다. 대표적인 예로 ‘지리산 산청 펜션 살인사건’ 재판이 있다.

지리산 산청 펜션 살인사건은 2021년 경남 산청서 투숙객이 펜션 주인을 마구 구타해 살해한 사건이다. 해당 사건서 1심 재판부는 피고인 E씨에게 범행이 잔혹하고 심신미약도 인정할 수 없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E씨에게 4년을 감형한 징역 16년을 선고했다.

돈으로 사고 
다시 주머니로

2심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인은 별다른 이유 없이 피해자의 얼굴 부위를 주먹과 발로 수회 구타해 살해했는데 그 수단과 방법이 매우 잔혹하며 피해자는 두부에 광범위한 손상을 입어 사망해 범행의 결과 역시 참혹하다”며 “피해자는 사망에 이르기까지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이고 피해자의 유족들 역시 피해자의 죽음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며 피고인에 대해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피고인은 조현병 등의 정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서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 피고인은 이 사건 이전에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전혀 없고 일관되게 잘못을 인정하며 진심 어린 반성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의 가족들이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등 사회적 유대관계가 비교적 분명해 보이며 향후 피고인에 대한 치료와 계도를 다짐하고 있다. 당심에 이르러 피고인의 가족들이 피해자의 유족들을 위해 상당한 금원을 공탁한 점 등을 고려해 이같이 형을 정한다”고 부연했다.

유족 측은 해당 공탁 사실을 알지도 못했으며 받을 생각도 없던 공탁금으로 감형이 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알고 보니 E씨는 선고 일주일 전에 1억5000만원을 민사변제공탁했으며, 심지어 선고 일주일 후 가해자는 공탁금을 회수하기도 했다.

형사공탁금은 돈을 맡길 때부터 공탁금을 가져갈 수 없다는 점에 동의해야 해 회수가 불가능하지만 가해자는 민사변제공탁을 신청해 회수가 가능했다.

대법원 예규에 따르면 변제공탁자가 회수청구권의 행사에 조건을 붙이는 경우의 처리지침에 따른 공탁금 회수 제한 신고서를 첨부하지 않은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판결 선고 전후를 불문하고 피공탁자의 동의 여부에 상관없이 공탁자가 공탁금을 회수할 수 있으므로 공탁 사실을 양형에 참작함에 있어서는 공탁금회수 제한 신고서가 첨부됐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하지만 해당 재판부서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유족 측은 “돈으로 감형을 사고 다시 그 돈을 자기 호주머니에 넣은 상황인데 법원의 묵인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형량에 영향 미치면 안된다”
과거엔 민사변제공탁 꼼수도

피고인 측 변호사는 “해당 사건과 관련해 민사도 진행 중이라 민사변제공탁을 진행한 것이며 당시 형사공탁 특례가 시행되기 전이라 피해자 동의 없이 공탁하려면 민사변제공탁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며 “당시에는 다들 이렇게 공탁했다”고 말했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아무리 같은 사건으로 형사‧민사재판이 둘 다 진행 중이더라도 민사공탁금을 통해 감형을 받고 다시 회수한 것은 법의 허점을 이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변호인은 법의 허점을 파고들었고 법원은 확인 절차를 제대로 하지 못해 유족 측만 고통받은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형사공탁 특례 시행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가해자가 피해자와의 합의가 불가능할 때 공탁을 통해 감형을 노린다는 지적이 나오자 대검찰청은 대응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변론 종결 후 선고가 나오기 전 기습공탁이 접수되면 검사가 법원에 변론 재개를 신청해 피해자의 의사와 공탁 경위 금액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도록 개진하라”는 명령을 일선 청에 내렸다. 또 대검찰청은 법원행정처와 실무협의에도 나섰지만 의미있는 결론은 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회에도 기습공탁을 금지하기 위한 다수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별 다른 움직임은 없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9~12월에 발의된 총 4건의 공탁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황운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법원이나 검찰에 형사공탁 내용이 통지되면 ‘7일 이내’에 피공탁자 또는 법률대리인에게 고지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특히 피공탁자가 공탁수령 의사가 없을 경우 공탁회수동의서 등을 제출해 원치 않는 공탁이 피고인의 양형에 유리하게 반영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핵심 골자다. 같은 당 이탄희·윤영찬 의원도 유사한 취지의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설훈 전 민주당 의원은 형사공탁 기간을 ‘해당 형사사건의 변론 종결기일 14일 전’으로 제한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각종 사건 등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와 합의하려는 노력 대신 변론종결일에 맞춰 기습공탁해 유리한 양형을 받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들 개정안 모두 상임위원회 심사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다음달 22대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국회 법안심사는 사실상 멈춰있는 상태다.

법조인도
비판 목소리

법조계에서는 물질만능주의 선고라며 법원을 비판하는 모양새다.

법무법인 영민의 김슬아 변호사는 “한국 법원은 유독 금전공탁을 피해복구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며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공탁은 피해자의 피해복구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정신적 피해를 입히고 있는 것을 재판부는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형사전문 변호사는 “공탁을 양형 요인으로 보는 것은 재판부의 재량인데 유독 후하게 공탁 감형을 하는 모습”이라며 “사기, 절도 등 금전적 피해가 회복될 수 있는 선고형이 아닌 피해자를 인격적,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성범죄, 아동학대, 무고 등에 관한 선고형에 공탁이 왜 감형 요소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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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광주 노른자위 땅을 개발하는 사업이 건설사 간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총사업비 2조여원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양측이 제기한 고소·고발로 표류하는 모양새다. 갈등의 본질은 사업을 좌지우지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의 최대주주 지위가 누구에게 있는지다. 최근 지분확보를 위한 소송 과정서 의문의 돈거래가 포착됐다. 2020년 7월1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도시계획시설서 도시공원으로 지정해놓은 개인 소유의 땅에 20년간 공원 조성을 하지 않을 경우 땅 주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도시공원서 해제하는 제도인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됐다. 도시공원 일몰제의 도입으로 민간공원 특례사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민관 합작 윈윈 사업 민간공원 특례사업은 민간에 사업시행권을 주고 공원을 조성해 지자체에 기부채납하도록 하는 제도다. 민간 사업시행자는 공원부지 30% 범위서 아파트 건설 등 비공원사업을 진행해 수익을 챙길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는 민간 자본으로 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간 사업시행자는 주택 공급 사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서로 이득 볼 수 있는 구조다. 현재 전국 각지서 진행하고 있는 민간공원 특례사업 중 ‘중앙공원 1지구 민간공원 특례사업’의 규모가 가장 크다. 광주시 서구 금호동과 화정동, 풍암동 일대 243만5027㎡에 공원시설과 비공원시설을 건축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비공원시설 부지에는 지하 3층~지상 28층, 39개동 총 2772세대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총사업비가 2조2000억원에 달한다. 2020년 1월 사업시행사인 특수목적법인(SPC) 빛고을중앙공원개발(이하 빛고을)이 설립되면서 추진되기 시작한 사업은 최근 시행사 지위와 시공권 등을 두고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SPC 설립 시점부터 컨소시엄에 참여한 한양과 이후 시공자로 들어온 롯데건설, 지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우빈산업, 케이앤지스틸 등이 갈등의 주체다. SPC 빛고을 설립 초기 한양이 30%로 최대주주, 우빈산업(25%), 케이앤지스틸(24%), 파크엠(21%)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한양이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의 SPC 빛고을 참여를 위한 초기자본 49억원을 댔다. 한양이 우빈산업에 49억원을 빌려주고 우빈산업이 다시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대여해 지분을 분배했다. 이때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콜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콜옵션은 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우빈산업은 언제든지 원할 때 케이앤지스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을 걸어둔 것이다. ‘초대형’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이면 한양-케이앤지스틸 모종의 관계 의혹 SPC 빛고을 주주구성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컨소시엄 구성 당시 한양이 맡기로 한 시공권이 롯데건설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의 지분 24%를 위임받아 주주권을 행사해 롯데건설과 중앙공원 1지구 아파트 신축 도급 약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서 30% 지분의 한양은 배제됐다. 롯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할 당시 우빈산업에 지분을 위임했던 케이앤지스틸의 태도가 변한 시기는 2022년 5월경으로 추정된다. SPC 빛고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25억3000만원(대여금 24억원+이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빌린 돈을 갚았으니 24% 지분만큼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맺었던 콜옵션을 행사하고 49%의 지분을 확보해 SPC 빛고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우빈산업 내부 사정이 변하면서 한 차례 더 지분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우빈산업은 대출금 100억원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부도 처리됐다. 지급보증을 섰던 롯데건설은 우빈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넘겨 받으면서 49%를 확보했다. 지분양도는 롯데건설이 근질권(담보물에 대한 권리)을 행사해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빈산업이 빠진 자리에 롯데건설이 들어오면서 현재 기준 빛고을 SPC 지분구조는 한양 30%, 롯데건설 29.5%, ㈜파크엠 21%, 허브자산운용 19.5%로 재편된 상태다. 허브자산운용이 보유한 19.5%는 롯데건설로부터 양도받은 것이다. SPC 빛고을 내에서 롯데건설의 발언권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뉜 지분 콜옵션으로? 사업시행권과 시공권을 두고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이 궤를 같이 하면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쟁점은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이 가진 지분이 최종적으로 누구의 소유냐는 것이다. 두 회사의 지분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을 갚았으니 24%에 대한 주주권이 자사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양은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우빈산업에 49억원의 출자금을 대여하면서 맺은 특별약정을 내세웠다. 해당 약정에 한양이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비공원시설 시공권을 전부 갖는데 우빈산업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항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우빈산업이 주도해 롯데건설로 시공사를 바꾼 것은 특별약정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이 각각 우빈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서 모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주주권 확인 소송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SPC 주식을 실제로 소유한 주주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양 관계자도 “1심 법원은 우빈산업이 한양에게 49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보유 주식 25% 전량을 양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건설은 소송 판결 한 달 전, 우빈산업의 지분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우빈산업이 한양에 양도할 주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한양은 우빈산업의 ‘고의 부도’를 의심하고 있다. 한양은 1심 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사가 지분 55%(한양 30%+우빈산업 25%)의 SPC 빛고을 최대주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서 한양에 ‘시공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으면서 시공자 지위는 잃게 됐다. 소송 이겨도 지위 잃었다 최근 SPC 빛고을 지분 갈등서 케이앤지스틸의 역할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케이앤지스틸은 상하수도 설비공사 업체로 2003년에 설립됐다. SPC 빛고을에 우빈산업과 함께 참여했다가 현재는 빠진 상태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전 대표가 우빈산업과 친분이 있어서 (SPC 빛고을에)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사태서 롯데건설과 우빈산업은 이른바 ‘비한양파’로 묶여있다. 두 업체의 지분 이동도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반면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은 두 업체 모두 우빈산업과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서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적(우빈산업)이 같을 뿐 특별히 관계가 있는 업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양의 모기업인 보성그룹 계열사에 속한 ‘앤유’라는 업체가 케이앤지스틸에 2022년 4월, 2억원을 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앤유는 이기승 보성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점식씨가 지분 83.6%를 가지고 있는 친족회사다. 전기 조명장치 제조업체로 2007년에 설립됐다. 2022년 기준 매출은 28억2900만원, 영업이익은 3억300만원으로 확인된다. 한양과의 거래를 통해 27억79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앤유는 케이지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주는 과정서 1주일짜리 주식근질권을 설정했다.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이 2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케이앤지스틸의 주식이 전부 앤유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의 대표이사를 비롯해 사내이사 3명 등 4명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1명은 앤유 대표인 정모씨의 아내로 추정된다. 케이앤지스틸 수뇌부가 물갈이된 것이다. 당시 케이앤지스틸의 채무가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로 적자가 누적된 상태였다고 해도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배권을 넘겨준 것을 두고 석연찮은 의문이 일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주식 근질권 설정도 의문으로 떠올랐다. 보성그룹에 기생하는 ‘앤유’ 푼돈 주고 1주 만 회사 꿀꺽? 더 흥미로운 대목은 같은 해 5월 케이앤지스틸이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 25억3000만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의혹이 동시에 불거진 점이다. 다시 말해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분 100%를 앤유에 넘겨주고 한 달 만에 20억원이 넘는 돈을 융통해 SPC 빛고을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여기에 우빈산업을 상대로 한 주주권 확인 소송 등에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면서 수임료에 대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케이앤지스틸이 지분확보를 위해 사용한 자금 출처가 한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양 입장서 케이앤지스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확보하면 54%로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로 시공자 지위는 상실했지만 롯데건설에 넘어가 있는 시공권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분 갈등 구조가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로 정리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양과 케이앤지스틸 모두 두 업체 간 모종의 관계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앤유라는 계열사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앤유서 케이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줬다거나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빈산업서 (1심)소송에 져서 계속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대응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보다 광주시가 우빈산업과 결탁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게 상황을 봐주고 있다고 판단해 광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시는 사업시행자이자 감독관청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아 공모 제도가 다 무너졌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광주시의 행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석연찮은 자금 출처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한양이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에 대해 “우빈산업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주주가 들어와 투자가 이뤄지면서 주금 대여금을 갚은 것이다. 우빈산업에서는 (우리가)한양의 위장계열사 아니냐, 대표이사 선임 과정이 의심스럽다, 자금 출처가 어디냐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건 주주권 확인 소송서 져서 그러는 것이다. 한양이랑 우리랑은 큰 관계가 없는데 자꾸 엮어서 흠집을 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케이앤지스틸 대표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 회사에 300억원 정도의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행이익을 1100억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 회사 지분이 24% 정도니까 그렇게 계산한 것이다. 수익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맡게 됐고, 새로운 주주들도 그 사업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