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릴루아카스의 지구촌 탐방 ④일본 후쿠오카

북큐슈의 아름다운 자연 속으로 ‘힐링’

<일요시사=조진민 르포라이더터>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온천여행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온천여행은 단순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끈뜨끈한 온천물에 피로를 풀고 오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을 재료로 만든 전통 일본코스요리는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평소 즐기기 어려운 요리 ‘카이세키요리’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카이세키요리는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 후각을 통한 맛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혀끝으로 즐기는 미각까지 만족하게 만드는 요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복되는 일상에 몸도 마음도 지쳐 있다면 온천욕도 즐기고, 눈과 입이 즐거운 맛있는 음식으로 힐링 해보는건 어떨까?

안 사고 못 배길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소품들
큐슈의 상징이자 일본 최초 국립공원 ‘아소’

나무로 만들어진 소박하면서 정겨운 유후인역에 도착했다. 유후인역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유후다케(1584m) 웅장한 산은 포근히 유후인을 감싸고 있었다. 우선 관광안내소에서 유후인 관광지도를 받아 들고 길을 나섰다. 지도에 “ようこそ ゆふいん”(어서오세요 유후인)이라는 문구를 보자 여행의 기대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관광안내소 앞에서 인력거꾼이 어색한 말투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렌탈 자전거, 클래식 버스, 관광 마차도 손님 태울 준비를 마치고 줄 맞춰 있다.

동화책 연상시키는
온천 마을 유후인

오이타현 중앙에 있는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온천 휴양지 유후인은 벳푸에 이어 용출량이 많은 온천이다. 유후인이 단지 느긋하게 온천을 즐기기 위한 곳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온천여관들,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호수라는 의미의 긴린코, 미술관과 개성있는 갤러리, 세련된 상점들이 늘어서 있어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천마을답게 곳곳에 흐르는 작은 강과 아담하고 예쁜 집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런 예쁜 풍경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진 찍기 바쁘다.

유노츠보가이도 양쪽으로 늘어선 상점들을 구경하다 보면 “우와∼우와∼”를 연발하며 안사고는 못 배길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소품들 때문에 나도 모르게 지갑을 열고 있으니 말이다. 커다란 토토로가 “어서 들어와” 라고 속삭이듯 유혹하는 동구리노모리는 이웃집 토토로를 비롯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 상품을 모아 놓은 상점이다. 다양한 물건들을 캐릭터로 만들어 놓은 솜씨가 탄성을 자아낸다. 어느새 토토로와 친구가 되어 손잡고 가게문을 나섰다.


애완동물 강아지와 고양이를 테마로 사이좋게 나란히 위치한 이누야시키&네코야시키는 일본 애니매이션에 나오는 모든 강아지와 고양이가 진열되어 있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가면 예쁜 용품들 덕분에 정신이 없을 정도니 꼭 한번 들러보길 권한다.

외관부터 남다른 고급스런 주택을 연상시키는 오르고르노모리&가라스노모리는 1층은 깨질까봐 만질 수 없어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하는 유리 공예품으로, 귓가에 소곤소곤 속삭이듯 들려오는 멜로디를 따라 발길을 돌리면 2층에는 크고 작은 오르골이 전시 되어 있다. 제법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갖고 싶은 소품을 사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긴린코는 호수의 물고기가 수면 위를 뛰어오르는 모습이 석양에 비닐이 금빛으로 보인다고 해서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호수 바닥에서 온천수가 뿜어져 나오기 때문에 일교차가 큰 계절에는 물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긴린코까지 산책을 마치면 고풍스런 원목으로 세워진 샤갈미술관을 발견하게 된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러시아 출신 화가 마르크 샤갈의 작품 중 ‘서커스’를 중심으로 39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작아 개인 갤러리 느낌이 든다.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아닌지 나 홀로 조용히 관람할 수 있어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유후인역에서 긴린코까지 가는 길 중간중간 유후인의 대표 간식 상점들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비-스피크(B-SPEAK) 롤케이크 전문점 이다. 한번 먹어본 사람들은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예약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유후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유후인에서 꼭 들르는 곳 킨쇼(금상)코롯케는 제1회 전국 코롯케 콩쿠르에서 금상을 수상한 명물이다. 튀김옷은 바삭, 한입 베어 물면 치즈처럼 스르르 녹는 고기맛이 일품이다. Bee-Honey라는 커다란 문구의 간판이 인상적인 하치미츠노모리는 100% 양봉벌꿀과 벌꿀 관련 상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꿀을 살짝 끼얹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가게에 비치되어 있는 여행일기가 눈에 띄었다. 그 동안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의 이야기로 일기장은 가득하다. 유후인에 대한 느낌을 몇 자 적어 보았다. 누군가 이 날의 일기 속 이 글을 읽으며 “아 그때 이런 느낌이었구나” 하며 미소를 띄우겠지….

유후인 마을 산책을 마치고, 온천 여관으로 향했다. 가격을 이것저것 비교해 보고 고민 끝에 예약한 곳은 숲 속에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는 ‘반딧불의 거처’라는 료칸이다. 일본사람들이 주로 예약하는 곳이 어딘지 검색해서 선택한 곳이다. 예약한 방을 안내받고 료칸 이곳저곳을 소개 받았다. 짐을 풀고 료칸에서 마련해 놓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고급스런 레스토랑
다양한 간식 넘쳐나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노천탕 뜨끈뜨끈한 물에 몸을 푹 담갔다.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누볐던 심신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숲으로 둘러쌓여 있어 그런지 고즈넉한 분위기가 더해진다. 몸이 건강해지는구나 생각이 드는 건 아마도 기분 탓이겠지…. 노천탕에서 충분히 몸을 담근 후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별채에 따로 자리하고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이미 내가 예정해 놓은 시간에 맞춰 정성스럽게 세팅이 되 있는 상태였다. 준비된 메뉴에 대한 설명으로 보이는 종이도 보인다. 이곳의 특산물은 자라와 닭 이었다. 자라는 조금 버거워서 닭을 선택했다. 처음 맛보는 닭 샤브샤브 맛은 의외로 느끼하지 않고 깔끔했다. 준비된 음식은 남김없이 싹싹 비웠다.
이곳을 예약한 가장 큰 이유는 개인탕이 있다는 점이었다. 한 시간 간격으로 개인이 나무욕조에서 혼자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예약할 당시 유혹적이었다.

혼자 느긋하게 온천욕을 즐기고 방으로 돌아오면, 다다미방에 보는 것만으로도 포근한 이불이 깔려있다. 머리맡에는 차와 다과도 준비 되어 있다. 온천욕을 즐겨서일까? 낮의 피로 때문일까? 이부자리에 눕자마자 스르르 눈이 감긴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몸이 녹는다.

아침 일찍 저절로 눈이 떠진다. 노천탕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후 온천 이곳저곳 둘러보고 있자니 어쩐지 이곳을 떠나는 게 싫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유후인 버스센터로 향했다. 큐슈횡단버스 아소2호를 타고 아소로 갈 예정이다. 이 구간은 꼭 사전예약을 해야 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전화로 예약해 둔 상태였다.

아소2호는 온천마을 (벳푸-유후인-쿠로가와) 이곳저곳을 돌아 아소로 향한다.
큐슈의 중심 구마모토현 아소 지방에 위치한 세계 최대급 크기를 자랑하는 칼데라 (동서 약 17km, 남북 약 25km, 면적 약 350k㎡) 안에 지금도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나카다케를 비롯해, 5개의 산봉우리인 아소고다케로 이루어져 있다.

아소고다케란 타카다케, 나카다케, 에보시다케, 키지마다케, 네코다케를 말하며 이중 가장 높은 것은 해발 1592m인 타카다케다.

아직도 화산활동 중인 봉우리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화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나카다케의 화산 활동을 보기 위해서는 아소산로프웨이 역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5분을 더 올라가야 한다.

화산활동 상황이나 풍향에 따라서 안전 확보를 위해서 구역을 구분해 놓았다.

‘A구역 : 상시 출입금지 / B1, B2 구역 화구 견학이 가능 / C구역 : 화구는 볼 수 없지만 나카다케 외벽 등 화구 주변의 웅장한 경관을 즐길 수 있음 / D구역(전망대) : 화구는 볼 수 없지만 쿠사센리, 키지마다케, 에보시다케 등 웅장한 경관을 즐길 수 있다. (B1, B2, C, D구역 이외의 구역은 출입 금지, 화구 부근에서는 유독한 화산가스가 흐르고 있으니 건강상 우려가 되는 사람은 주의)’

다행히도 이 날은 나카다케를 견학할 수 있는 안전한 날이었다. 화산가스의 농도 상황을 ‘색표시’로 알려 화산폭발의 징후가 있으면 나카다케로 향하는 차량과 케이블카의 운행을 중단하고 있다고 한다.

온천욕 즐기고
전통요리 맛보기

아소 주변은 수백만년 전부터 화산활동이 계속되어 왔으며, 10만년 전 화산 대폭발로 만들어진 아소산은 역사가 기록되어진 이래 몇 번이나 폭발이 반복되었다.


깊이는 100m, 둘레 4km의 분화구 속에는 불덩이 같은 마그마가 끓어오르고 있어 그것으로 인해 피어나는 새하얀 분연에 가리어 분화구 속은 볼 수 없지만, 아소의 화구는 확실히 아직도 살아 있다는 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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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