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TV> 세계적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는 원래 흑사병 치료하던 의사?

1503년 12월14일, 프랑스 남부의 한 유대인 가문서 태어난 노스트라다무스.

그의 본명은 ‘미셸 드 노스트르담(Michel de Nostredame)’으로 노스트라다무스는 라틴어식 발음인데요.

노스트라다무스의 친조부와 외조부는 모두 의사였는데, 그들은 의학이나 점성학 등의 지식을 모두 노스트라다무스에게 전수했습니다.

당시 유럽은 1345년부터 시작된 흑사병이 200년이 넘도록 계속돼오던 상황이었는데요.

당시 의사였던 노스트라다무스는 1남1녀의 자녀를 두고 흑사병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나가 있었는데, 그사이 아내와 자식들이 흑사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후 10여년간 노스트라다무스는 종적을 감췄습니다.


그러던 중 1546년, 흑사병이 퍼져있는 프랑스 남부에 그가 새로운 치료법을 가지고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가 공개한 새로운 치료법은 당시 의학 수준으로서는 획기적이었는데요.

거리의 시체를 모두 수습해 매장하고 한 번 쓴 붕대나 죽은 환자가 사용했던 옷가지들은 재활용하지 않고 모두 소각했으며, 물은 무조건 끓여서 마시고 끓인 물로 목욕하기, 신선한 공기 마시기 등이었습니다.

또 노스트라다무스는 환자를 만나기 전에 반드시 몸을 씻고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중세시대의 유럽에는 소독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였는데요.

1800년대, 이그나츠 제멜바이스라는 의사가 “수술할 때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가 미치광이 소리를 들으며 정신병원에 갇혔던 일화가 있는데, 그보다도 300년 전에 위생과 소독의 개념을 이끌어냈다는 점은 지금도 고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치료 활동을 이어나가던 노스트라다무스는 1547년부터 ‘살롱 드 프로방스’라는 마을에 정착해 재혼하면서 3남3녀의 자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예언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3년 뒤인 1550년경부터인데요.

이듬 해에 일어날 일들을 기록한 달력을 발간 후, 잘 맞는다는 소문이 돌면서 예언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555년경부터 3797년까지 무려 2242년간의 예언이 담긴 책도 출판했는데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 <레 프로페티스(Les Prophéties)>의 초판입니다.

그의 책은 당시 프랑스 지식인들 사이에 불고 있던 오컬트 열풍에 힘입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의 책을 좋아했던 인물 중에는 당시 왕비였던 카트린 드 메디시스도 있었습니다.

열렬한 오컬트 신봉자였던 그는 예언서에 남편인 국왕 앙리 2세의 죽음이 적혀있는 것을 보고 그를 왕궁으로 불러들여 앙리 2세에게 전했는데요.

하지만 앙리 2세는 카트린 왕비의 걱정에도 예언을 믿지 않았고 노스트라다무스를 그냥 돌려보냅니다.

그로부터 4년 뒤, 앙리 2세는 젊은 귀족과 마상 창 시합 도중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상대의 창이 앙리 2세의 투구를 뚫고 들어갔는데, 상처로 인해 열흘 만에 사망하고 맙니다.

예언이 적중하자, 카트린 왕비는 노스트라다무스를 곧장 왕궁으로 불러들인 뒤 정책 자문위원으로 곁에 두는데요.

“세 아들이 모두 왕이 되지만 짧은 생이 될 것”이라는 자문위원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적중하면서 유럽 전역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이후 카트린 왕비의 총애를 받으며 풍족한 노후를 보낸 노스트라다무스는 1566년에 6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는데요.


당시 16세기 프랑스의 평균수명이 27세인 점을 고려해보면 그는 남들보다 2배가 넘는 삶을 누렸습니다.

게다가 죽기 전날 밤, 그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는데요.

그것이 그의 생전 마지막 예언이었습니다.

런던 대화재, 9·11 테러, 케네디 미국 대통령 암살 등을 예언한 노스트라다무스지만, 1999년 종말을 예언하는 데 에는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예언가로서 어떨지는 몰라도 의사로서는 훌륭한 사람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기획: 임동균
구성&편집: 임동균



<pariah93@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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