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인문학> 세계 최초 공식 골프대회는?

정형화된 골프 규칙에 의거해 공식적으로 조직화된 골프대회는 언제 열렸을까? 지금부터 280년 전인 1744년 4월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 위치한 리스 골프장. 오전부터 일찌감치 11명의 골퍼들이 모였다. 영국 전역에 널리 대회를 알렸지만 에든버러 지역의 골퍼들만 모였다.

참가 인원은 적었지만 이 대회는 ‘에든버러 젠틀맨스 골프클럽(The Gentlemen Golfers of Edinburgh)’의 전신인 리스 골프클럽이 주최하고, 에든버러가 후원하는 스코틀랜드 최초의 골프 시합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참가 선수를 모집할 때 주최 측은 리스 골프장 소재 모텔에 대회 8일 전까지 선수 등록을 위한 신청서와 5실링의 참가비를 제출토록 했다.

작지만 큰 걸음

참가 선수는 ▲존 라트레이 ▲휴 달림플 ▲로버트 비가르 ▲제임스 고든 ▲제임스 카마이큼 ▲혼 레스리 ▲리차드 코크번 ▲조지 서티 ▲윌리엄 크로세 ▲제임스 비스 ▲데이빗 달림플 등 총 11명이었다. 이들은 스코틀랜드 상류층서 특출난 골프 실력을 자랑했다. 

에든버러는 대회를 위해 드라이브우드 형상의 트로피를 준비했다. 이 트로피는 1709년 왕실 전용의 활을 제조하는 공방서 최고의 궁수에게 증정하기 위해 만든 실버화살로부터 영감을 얻어 제작됐다.

클럽 헤드 위쪽에 에든버러 문양이 새겨졌다. 대회 홍보를 위해 시 공보관이 실버클럽을 들고, 뒤에서 전통 스코틀랜드 복장을 한 악대들이 북을 두드리며 대회를 알리는 시가행진이 거행됐다.


대회가 열린 리스 골프장은 왕실 전용 5홀이었다. 사우스밀로 명명된 414야드짜리 1번 홀, 노스미드 461야드 2번 홀, 이스트 426야드 3번 홀, 사우스미드 495야드 4번 홀, 톤트리 435야드 5번 홀 등으로 구성됐다. 당시 기준으로 다소 길고 어려운 코스였고, 5번 홀을 3번 도는 15홀을 한 라운드로 정했다.

리스 골프장 및 시의회 관계자는 대회가 열리기 한 달 전 13조항으로 이뤄진 골프 룰을 만들어 이 대회부터 적용토록 했다. 세계 최초의 성문화된 골프 룰 제작을 위해 1744년 3월 세인트앤드루스와 에든버러 등지서 조직된 골프동우회 멤버가 한자리에 모였다.

왕실 코스서 스코틀랜드 상류층
골프동우회 멤버 한자리에 모여

규칙의 제정을 위해 가장 중심에 있었던 골프클럽은 젠틀맨스 클럽의 전신인 ‘에든버러 골프클럽회(Honourable Company of Edinburgh Golfers)’였다. 명망 있고 인사들의 모임이었던 이 클럽은 훗날 ‘영국왕실골프협회(The Royal and Ancient Golf Club of ST. Andrews)’로 탈바꿈했다.

당시 골프장들은 회원을 위해 멋진 클럽하우스를 짓고 유니폼을 만들어놨다. 당시 사회서 골퍼는 격식 있는 유니폼을 입고 골프를 쳤다. 골프장서 유니폼을 입지 않으면 벌금을 내기도 했다.

에든버러서 가장 유명했던 리스 골프장에서는 격식을 갖춘 동호회를 중심으로 비공식 대회가 열리곤 했다. 또 만찬장에 모인 회원은 은으로 만든 트로피에 최고로 비싼 샴페인을 부어 마시면서 자축하곤 했다.

협회의 조직화와 함께 골프 룰에 대한 체계화가 절실히 요구되던 시기였다. 수백년에 걸쳐 제대로 된 규칙 없이 골프장마다 로컬룰(지역 규정)이 적용됐기에 시시비비가 끊이지 않았다.


프리메이슨 회원들이 골프 룰을 제정하는 데 중심이 됐다. 당시 상위클래스의 근간을 이루는 클럽 회원 대부분은 석공인 프리메이슨이었고, 모임을 주도한 의장은 프리메이슨의 초대 그랜드마스터이자 로슬린성의 성주였던 싱클레어경이었다.

시대의 요구에 의해 제정된 13조항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영국왕실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SA)는 13조항을 수정해 제정한 34조항을 모든 대회에 적용하고 있다.

트로피에 새겨진 우승자 이름
골프 체계화를 위한 첫 시도

한 가지 특기 사항은 13조항 어떤 문장서도 규칙을 어기면 벌타를 준다는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즉, 최초의 골프 룰은 벌타를 규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공교롭게도 골프 룰이 제정되고, 수차례에 걸쳐 수정되는 동안 13조항 원본은 자취를 감췄다. 다행히 1937년 에든버러 젠틀맨스클럽이 발행한 회보 뒷장에 연필로 적혀있었던 원본 내용이 발견됐다.

문헌에 따르면 이날 대회 11명의 선수가 각 조에 2명씩, 마지막 조는 3명이 한 조를 이루는 스트로크 방식으로 경기를 치렀다. 하지만 선수들의 개개인 성적이 기록된 문헌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5번 홀을 3번 도는 총 15홀 스트로크 플레이로 대회를 치렀고, 존 레트레이 선수가 우승을 했다는 것은 기록돼있다. 대회 우승자인 존 레트레이는 에든버러 로얄 대학의 외과교수로, 궁수챔피언을 수차례 차지했던 만능 스포츠맨으로 알려져 있다.

우승 후 레트레이는 리스골프클럽 캡틴으로 자동 임명됐으며, 13조항의 원본에 서명하는 영광을 얻었다. 또 은으로 만든 골프 볼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졌다. 그 골프 볼은 실버클럽 샤프트에 매달아 마치 포도알맹이가 주렁주렁 매달린 것 같이 보이도록 했다.

전통의 시작

이후 매년 하나씩 우승자의 볼이 걸렸고, 이 샤프트는 보관됐다.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졌다. 2010년 에든버러협회는 4번째 실버클럽을 제작해 골프 볼을 걸고 있다. 4자루의 실버클럽은 현재 스코틀랜드의 뮤어필드골프장 내에 보관돼있다. 세계 최초의 공식적인 골프대회인 실버컵 토너먼트는 11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고, 존 레트레이가 최초의 골식 토너먼트 우승자로서 골프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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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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