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모자’ 쪼개지는 한미약품 막전막후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1.25 14:43:15
  • 호수 14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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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어떻게 키웠는데···골육상쟁 서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OCI그룹과 한미약품 간 통합 과정이 오너가 장남의 반발로 떠들썩하다. 한미약품 창업주의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은 양 그룹의 통합 발표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반대하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통합을 주도한 그의 모친 송영숙 회장과의 갈등은 어떤 결말을 낳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은 각각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와 OCI홀딩스 지분 10.4%를 맞교환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를 OCI홀딩스가 7703억원을 들여 취득하고, OCI홀딩스 지분 10.4%는 임주현 사장 등 한미사이언스 주요 주주가 취득하는 방식으로 양사가 통합을 결정한 것이다. 

임 창업주
떠나자마자…

계약이 마무리되면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의 최대주주이자 통합 지주사가 된다. 한미사이언스는 제약바이오 자회사를 거느리는 중간 지주사가 된다.

한미약품 오너 일가는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통합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 등이 내야 할 상속세는 약 2000억원으로 추산된다. 한미약품은 상속세 마련을 위해 OCI에 지분을 매각하면서도 임주현 사장의 경영권 유지를 조건으로 내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6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2020년 임성기 한미약품 창업주가 별세하면서 아내 송영숙과 세 자녀(2남1녀) 등 오너 일가는 5400억원의 상속세를 안게 됐다. 송 회장과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장,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장,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은 지난 2021년 서울 잠실세무서에 상속세 납부를 조건으로 총 12.29%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담보로 잡혔다. 


이들은 3년간 분할 납부를 해왔지만,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한미약품은 상속세 자금 마련을 위해 MG새마을금고가 주요 출자자인 사모 펀드 ‘라데팡스 파트너스(이하 라데팡스)’에 한미사이언스 지분 11.8%를 320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지난해 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여파로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매입할 자금을 투자받지 못하면서 한미약품은 지분매각 대상을 다시 물색했다.

라데팡스는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사후 배경태 전 삼성전자 부사장을 한미약품에 부회장으로 추천했을 만큼 한미약품과 신뢰관계를 유지한 운용사다. 지분매입이 불발로 돌아갔으나 지분매각 자문 역할은 유지했고, 이 과정서 OCI를 한미약품에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안한 장남···가처분신청까지
이종 결합 실패?···경영권 분쟁

당시 라데팡스는 임주현 사장의 경영에도 힘을 실어줬다. 이번 통합이 한미그룹의 ‘집안싸움’으로 번지게 된 이유다. 통합 후 OCI홀딩스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27.03%가 될 예정이지만,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과 차남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사장의 지분을 합하면 17.69%에 불과하다. 

임종윤 사장은 통합에 반대한다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그는 지난 17일 한미약품과 OCI의 통합중지가처분신청을 냈다. 남동생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도 한배를 탄 형국이다. 임종윤 사장은 이날 개인회사인 코리그룹의 엑스(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한미사이언스의 임종윤 및 임종훈은 공동으로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신청서를 금일 수원지방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임종윤 사장이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는 과정서 차남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사장이 형과 합류한 것은 예상 밖이라는 분위기다. 평소 송 회장 등과 사이가 원만했던 임종훈 사장은 한미약품의 우호 세력으로 평가됐다. 임종훈 사장이 임종윤 사장 편에 서면서 예상은 빗나갔다.


앞서 한미약품 측은 가처분신청 예정일이 지난 16일서 하루 연기된 것을 보며 임종윤 사장 측이 실제 행동에는 옮기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임종훈 사장이 나서면서 판도는 바뀌었다.

임종윤 사장 측은 지난 16일 오후 가처분신청을 하려고 했다. 가처분신청은 임종윤 사장 측이 주도하되 임종훈 사장이 검토하는 방식이었다. 임종훈 사장은 당일까지도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7일에도 검토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면서 신청은 오후 늦은 17시께 이뤄졌다.

임종훈 사장의 결정이 늦춰지자, 임종윤 사장 측은 단독으로 가처분신청을 제출하는 방안까지 고려했다. 한미약품 오너가 경영권 분쟁은 앞으로 장기화될 전망이다. 조기 종결될 수 있던 순간 임종윤과 임종훈 사장이 전격 합류하면서 장·차남 대 모녀 구도가 완성됐다.

상속세 
선택지

임종윤 사장 측 가처분신청에 대해 한미약품 관계자는 지난 18일 <일요시사>와 통화서 “요건상 문제가 없어 가처분 인용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게 우리 측 법률검토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양 그룹사가 합의한 동반, 상생 공동 경영의 취지가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원활한 통합 절차 진행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미사이언스 내 위치와 지분구조 등으로 볼 때 임종윤 사장이 이번 결정을 뒤집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한미약품-OCI 통합 발표가 임종윤 사장의 입지를 불안케 했던 것일까? 2000년대 초만 해도 임종윤 사장은 한미약품의 유력 후계자였다. 

앞서 그는 매체와 인터뷰서 “내가 별도로 경영하는 코리그룹과 국내 기업을 통해 증권가 자금조달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는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과거 임종윤 사장은 지난 2004년부터 북경한미약품 부총경리(부사장), 총경리(사장), 동사장(회장) 등을 거치며 입지를 다져왔다.

당시 북경한미약품의 연 매출이 600억원대로 성장하면서 임 사장의 경영 성과는 돋보였다. 이어 2009년 한미약품과 지주사 한미사이언스가 나뉘기 전에 한미약품의 등기임원(사장)으로 선임됐다. 분할 이후에는 사내이사에서 물러난 아버지 임성기 회장 대신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에 단독대표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다 2020년 임성기 회장이 별세하면서부터 찬밥 신세에 놓였다. 모친 송 회장이 임 전 회장의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임종윤 사장의 동생 2명을 모두 한미약품 사장으로 승진시킨 것이다. 2021년 한미약품그룹은 임종훈 사장의 동생 임주현·임종훈 남매의 한미약품 사장 선임을 발표했다.

후계구도가 송 회장이 지시한 ‘삼남매 검증 후 결정’으로 바뀐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임종윤 사장의 경영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임씨 집안 내에 형성됐다고 전해진다. 임종윤 사장은 한미사이언스 대표 자리서 물러났고 이사회서도 제외됐다.

OCI 집안과
가깝게 지내

모자간 갈등이 본격화된 계기는 임종윤 사장이 중국서 벌인 신사업의 부진과 이에 대한 모친의 불만이 누적된 결과라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2008년 홍콩 소재에 한미사이언스 계열사 오브맘컴퍼니와 임종윤 사장 개인회사인 코리그룹 계열사 코리포항의 실패다.


임종윤 사장은 오브맘그룹을 통해 프리미엄 산후조리원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산후조리원을 사들이기 위해 SG프라이빗에쿼티·플루터스에쿼티파트너스서 공동 조성하는 200억원대 사모펀드에 개인자금을 투자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브맘컴퍼니의 한국 법인인 오브맘코리아컴퍼니는 매년 수십억원대의 적자를 냈다. 오브맘코리아컴퍼니는 2022년말 기준 자본총계가 마이너스(-) 34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코리포항의 2021년 기준 연 매출은 4700만원에 불과하다.

부진한 사업 결과에도 임종윤 사장이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 보스턴칼리지 생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버클리음대 재즈작곡분야 석사과정을 마쳤다. 업계에선 “임종윤 사장은 한미사이언스 대표 시절에도 자유로운 행동으로 주변을 당황시켰다”고 했다.

그의 독특한 행보는 한미약품 경영에 관여해온 ‘여장부’ 송 회장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송 회장은 임 전 회장 생전에 가현문화재단 이사장, 한미사진미술관장 등의 자리서 문화사업을 이끌면서도 경영 일정 부분에 참여해왔다.

송 회장이 북경한미약품의 어린이 유산균정장제 ‘마미아이’를 직접 작명하기도 했고, 북경한미가 성장하는 과정서 중국 진출에 대해 조언하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직접 경영을 맡게 된 2020년부터는 안팎서 ‘저돌적으로 경영한다’는 평가가 자자했다. 이번 OCI그룹과의 통합 역시 송 회장이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는 후문.

여장부 엄마-음대 출신 아들
갑자기 사이 벌어진 까닭은?


임종윤 사장도 송 회장이 자신을 배제했다고 했다.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서 “2020년부터 한미약품 그룹서 밀실 경영이 시작됐고 그때부터 경영권 확보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 언급했다. 현재 임종윤 사장은 한미약품 사내이사이지만 대표이사가 아닌 ‘미래전략 담당’이다. 내부에선 그가 사내에 역할이 없는 상징적인 자리에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선 한미 오너 일가가 안정적인 경영권 방어를 위해 OCI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했다. 다만, OCI가 산업재료용 화학제품 전문기업으로 제약업과 접점이 없는 점에 대해서는 지분을 인수할 상대 기업의 업종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업계 관계자는 “한미약품은 타 국내 제약사와 비교해 협업 없이 독자적으로 사업을 해왔다”며 “한미약품이 헬스케어나 제약·바이오사업 경험이 없는 대기업 그룹사와 협업을 결정한 것은 이례적이다. 아무래도 약국부터 시작한 임성기 전 회장과는 다른 송영숙 회장의 리더십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이 OCI를 통합 대상으로 수용한 배경에는 송 회장과 이우현 OCI 회장의 모친인 김경자 송암문화재단 이사장의 친분이 깔려 있다고 한다. 송 회장은 OCI를 제안받고 “점잖고 믿을 수 있는 집안”이라며 통합 추진을 승인했다고 전해졌다.

송 회장과 김 이사장은 문화활동과 사회공헌활동을 함께하면서 가깝게 지낸 사이다. 송 회장은 국내서 유일한 사진미술관을 운영할 만큼 국내 예술사진계를 지원하고 있다. 이 회장이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점도 신뢰 형성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OCI 측에서는 이 회장의 OCI홀딩스 지분율이 6.55%에 불과하고, 작은아버지 두 명의 지분이 15%에 육박하는 점도 한미약품과의 지분 일부 교환을 결정한 요인으로 해석된다. 양사가 상부상조할 수밖에 없는 위기의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양사가 이번 지분거래를 ‘합병’이라는 경영 용어 대신 ‘통합’이라고 표현한 배경이기도 하다.

한편, 제약업계에서는 ‘이종결합’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OCI는 제약·바이오산업 진출을 위해 2022년 부광약품을 인수했으나 인수 후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부광약품 내부에서는 OCI가 제약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상태서 영업망 축소 등 부광약품 조직개편과 건강기능식품 진출 등을 추진해 회사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한판 붙은 
오너 일가

또, 차세대 승계를 진행하지 못한 다른 제약사들이 향후 한미약품과 유사한 방식으로 지분을 이종 기업에 파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OCI가 이번 통합 발표 내용대로 한미약품의 경영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미약품의 신약 연구개발(R&D) 능력 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봤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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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