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범죄학> ‘공개 망신 주기’의 비극

  • 이윤호 교수
  • 등록 2024.01.05 10:54:18
  • 호수 14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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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명 배우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세상을 놀라게 했고, 부고를 접한 많은 사람들은 분노했다. 나아가 그의 죽음은 ‘공개 망신 주기’의 어두운 단면을 부각시켰다.

물론 이 유명 배우의 죽음이 공개 망신 주기가 초래한 비극의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과거에도 유사한 사건은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던 유력 기업인이나 정치인의 안타까운 죽음도, 어쩌면 공개 망신 주기에서 비롯된 비극일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이토록 치명적일 수 있는 공개 망신 주기를 공론화하려는 움직임은 지금껏 그리 부각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종종 목격하게 되는 어두운 사회적 그림자임에도 말이다.

그렇다면 공개 망신 주기란 무엇일까? 미국에서는 공개 망신 주기를 ‘Public Humiliation’ 또는 ‘Public Shaming’이라고 표현한다. 보통은 범법자나 수형자, 특히 공적인 위치나 지위에 있는 사람을 불명예스럽게 만들거나 망신을 주는 형벌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형태의 형벌은 물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고,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멍석말이’와 같은 사례가 공개 망신 주기의 과거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공개 망신 주기가 ‘Digital Sphere’로 이동했고, 더 많은 사람이 더 손쉽게 특정인 및 단체를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행동이 수월해졌다.


예전에는 공개 망신 주기가 사회봉사명령의 일환으로 사회봉사명령이라는 처벌을 수행하거나 정해진 복장을 하고 교통위반 벌점을 상쇄하기 위해 교통정리 활동을 하던 것처럼, 직접 보고 듣는 범위 안에서만 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최근엔 세금 미납자 명단을 공개하거나 성범죄자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에서 ’디지털 교도소‘나 개인 SNS 등을 이용한 사적 제재에 이르기까지 특정인을 사적으로 응징하는 등 공개 망신 주기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문제는 공개 망신 주기가 갈수록 통제 범위를 벗어난다는 데 있다. 오늘날 공개 망신 주기는 일종의 대량 굴욕 형태를 드러낸다. 더 공개적이고, 더 광범위하고, 더 큰 상처를 남기기에 잠재적으로 더 위험할 수 있다. 과거의 인민재판식 공개비판이 디지털 인민재판화되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더 큰 망신을 더 오래 주게 됐다.

공개 망신 주기와 같은 사적 제재는 사회정의 구현이라는 선의를 앞세우곤 한다. 하지만 흔히 ‘영혼의 살인‘이라고 하는 악영향과 공개 망신 주기가 전파하는 두려움의 크기를 생각해봐야 한다.

트위터·페이스북·유튜브 등을 통해 특정인을 공개적으로 망신주는 행위는 우리가 표적을 대면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더 높은 단계의 적개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더욱이 과거에는 공개 망신 주기가 시작과 끝이 있었으나, 현대의 망신 주기는 지워지지 않는 영구적 얼룩과도 같다. 

결국 공개 망신 주기는 어쩌면 사회정의 구현에 기여할 수도 있겠지만, 지나치거나 잘못된다면 오히려 부정의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부정의가 국가와 권력기관에도 귀인된다면, 공개 망신 주기의 피해자가 호도된 여론과 잘못된 여론재판, 그리고 거대 권력과 맞서야 하는 무고한 피해자라면 공개 망신 주기를 극복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최근 어느 배우의 유언처럼 극단적인 선택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지도 모른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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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