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무당 조심하라는 무당 이야기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1.07 17:16:35
  • 호수 14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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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당이 떼돈 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지난달 24일 오후 2시 <일요시사>는 경기도 모처에 신당을 차린 무당 이지선(가명, 40세) 보살을 만났다. 이 보살은 “무당은 넘어진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지금 찾아오는 신도 중에서 무당에게 사기당한 사람도 있고 나도 신내림 받기 전에 그랬다. 이 부분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무당이 100만명을 넘는 시대다. 무당이 아파트나 빌라에 신당을 차린 경우는 티가 나지 않지만 어떤 지역은 한 집 건너 한 집에 무당집 표식인 깃발이 걸려있다. 한국에 그만큼 무당이 많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무당 본인은 무당이 되고 싶었을까? 대부분 무당은 본인이 선택해서 되는 게 아니다. 하고 싶은 일, 공부는 물론, 심지어는 가족까지 버리면서 무당의 길을 택한다.

떡잎부터
다르다

그만큼 무당들은 험난한 길을 걷는다. 이들은 자신의 신당, 굿당 등에서 의례를 한다. 기운이 좋다고 알려진 유명한 산에 직접 찾아가 낮이나 밤이나 치성을 드리고 굿을 한다. 신도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만큼, 끊임없이 도를 닦는 마음으로 산다. 

마음 놓고 연애나 결혼도 하지 못한다. 일반인들에게는 당연한 인생 계획도 이들에겐 사치다. 모든 것은 무당이 모시는 신령에게 물어서 선택한다. 이 보살도 마찬가지였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달랐다. 

이 보살은 “어릴 적부터 예지몽을 많이 꿨고 나도 모르게 점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집은 천주교 집안이어서 어릴 때 일요일이면 항상 성경책을 들고 성당에 가 세례도 받았다. 이런 상황이니 부모님께 많이 혼났다”고 말했다.


어린 이 보살의 말을 부모는 부담스럽게 여겼다. 엄마가 운전면허 시험을 치르러 가는 날에도 특별한 꿈을 꿨다. 이 보살은 운전면허 시험을 치러 가는 엄마를 향해 “엄마, 꿈에서 엄마가 머리에 가위를 가져와서 자르는 느낌이 들었는데 자르진 않았어. 엄마 운전면허 시험 붙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보살은 자신의 꿈에서 엄마가 머리를 잘랐으면 면허에 떨어지지만 머리를 자르지 않았으니 면허에 붙을 거라고 이해했다. 이 보살의 예상대로 엄마는 시험에 붙었다. 시험을 제대로 친 것은 아닌데 시험 감독관이 배려해줘서 붙은 것이다.

8세 때는 농악놀이, 풍물놀이 꿈을 자주 꿨다. 눈을 감으면 상모 돌리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냥 꿈이라고 하기엔 싸한 느낌이었다. 이런 말을 부모님에게 하면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야단맞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냥 넘기기엔 너무 생생한 꿈이었다는 이 보살은 “지금도 어렸을 때 꿨던 꿈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된다. 매일 그런 꿈을 꾸는 것은 아니고 잊을만하면 꿨다. 그래도 어릴 때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안 했는데 학교에 입학하고 친구가 많이 생기니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고 전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방과 후 친구들과 뛰어놀다가 넘어져 무릎을 다쳤다. 놀란 친구가 뛰어와 괜찮냐고 묻자 그는 “내 옆에 할머니가 도와주잖아”라고 괜찮다고 했다.

‘할머니가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이 보살은 “그때는 정확하게 할머니가 보인 것은 아니다. 화사한 빛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던 것”이라며 “지금 생각하면 왕따 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친구들은 ‘쟤 왜 저래’라고 생각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예수님, 부처님 모두 있다고 믿어”
무당 아닌데 사기 당해 무당 되기도


이때부터 이 보살은 정확하게 본인이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보이는 게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정확하게 인지한 것이다.

어쨌든 부모는 이 보살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 ‘미래를 예언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모르는 척했다. 집안 가세가 기우는 것도 이쯤부터였다. 저렴한 콩나물을 잔뜩 사서 한 달을 버텼다. 집안 형편상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취직을 해야 했다. 어린 마음에 집안에 보탬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 그의 영험함을 알고 있던 주위의 지인들은 “무당이 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넌지시 제안했지만 이 보살은 무당이 싫었다. 가까운 지인 중 두 명의 무당이 있었는데 모두 다 너무 가난했던 탓이다. 신당은 차렸지만 손님이 없어서 파리만 날리는 수준이었다.

이들의 신 선생은 “굿을 해야 입이 터진다” “특별 기도를 해야 한다”고 종용했으며, 실제로 그에게 쓴 돈만 1억원이 넘을 지경이었다. 

무당이 신당을 차린 후 문을 닫는 과정은 파란만장하다. 초창기엔 호기심에 신도들이 찾아와도 점이 틀리니 재방문은 있을 리가 없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혼자 기도 다녔고, 우연히 만난 무당이 “점을 잘 보게 해준다”고 해서 따라갔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이 보살은 “무당이라고 하면 정말 지긋지긋하다. 주위서 신 선생에게 사기당하는 것을 너무 많이 봤다. 나도 이상한 일을 많이 겪어서 죽어도 무당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20대 초반부터 머리가 돌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여기서 말하는 ‘머리가 돈다’는 의미는 일반적인 정신병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 보살은 평상시에 멀쩡히 생활했다. 그러다가 사람만 보면 뭐가 쓰인 것처럼 점을 보고 싶었고 입을 멈출 수 없었다.

이 보살은 “남들이 보면 그냥 정신병자다. 그때 나도 차라리 그냥 미쳤으면 했다. 그러면 정신병원 가서 고치면 되니까. 집에서는 나를 빙의 환자 취급했다”고 힘들었던 과거에 대해 회상했다.

내 옆에
누군가…

그만큼 웃을 수 없는 사연도 많았다. 친구들과 술집에 놀러 갔을 때의 일화도 털어놨다. 작은 술집이라 옆 테이블 간 거리가 가까웠는데 이 보살 옆에는 또래 남성 4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 이 보살이 갑자기 앉아있던 남성에게 울면서 “야, 내가 너 할머니야”라고 말을 걸었다. 당연히 모두 놀랐고 친구들은 그만 하라며 말렸다. 하지만, 이 보살 입에선 “너, 나 때문에 마음 상하지 마라. 슬퍼하지 마라. 울지 마라. 나 잘갔다. 그러니 나 때문에 힘들어하지 말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 말을 들은 남성도 눈물이 터졌다. 알고 보니 그는 부모가 아닌 할머니 아래서 자랐는데,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 간 사이에 돌아가셨던 것이다. 할머니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마음에 1년 동안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이 보살 몸에 할머니가 들어와서 마음을 전했던 것이다.


이 보살은 “남성 얼굴을 스치듯 보고는 순간 할머니가 그냥 떠올랐다. 이런 식으로 나도 모르게 점을 봤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사람만 보면 점을 보고 싶고 이상한 말이 나왔다. 전혀 통제가 안 됐다”고 말했다.

이 보살은 정신병원에 가자는 말을 듣기 싫어 핸드폰에 만세력 앱도 설치했다. 도무지 참을 수 없을 때는 만세력으로 사주를 봐주는 척하며 점을 봐줬다. 사주를 볼 줄 모르지만 그래도 미친 사람 소리를 듣진 않았다.

이 보살은 “계속 이런 식으로 살다가 어느 순간이 되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일하다가 목이 너무 뜨거워서 화장실에 들어가서 울었다. 계속 말을 토해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결국 신내림을 받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같은 증상을 멈추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부모와 함께 무당을 찾았는데, 이 보살이 빙의된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무당이 빙의됐다고 굿하는 데 끌려가서 눕혀놓고 무구(무당이 굿을 할 때 사용하는 각종 도구)로 때렸다. 그래도 소용없었다”고 설명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니 신내림은 이젠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신 선생을 선택하느냐였다. 당시 무당 지인들은 모두 망해 그만둔 상태였다. 지인들이 만난 신 선생은 모두 사기만 쳤지 제대로 된 무당이 아니었다.

신 선생에 
빚진 제자


그때 방송에 출연했던 한 무당에게 연락했더니 흔쾌히 신내림을 받게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 선택으로 이 보살은 고통을 받았다.

유명하니까 믿었다고 해야 할까? 해당 무당은 스스로 신내림, 퇴송 전문이라고 광고했다. 워낙 유명하고 인지도 있는 무당이라 사기를 당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당시 그는 이 보살보다 나이가 어렸다. 이 보살 외에 다른 제자도 있었는데 일정 기간이 되면 제자를 모았다.

그러나 신내림을 받은 뒤에도 이 보살을 부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 “신 선생을 만나러 가는데 왜 안 오느냐”며 무당 제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 정도로 연락이 없었던 만큼 그는 열흘에 한 번씩 연락했다. 원래는 무당에게 점치는 법이나 굿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이런 게 전혀 없었다.

이 보살에게 굿을 하고 싶어하는 신도가 있어 도와달라고 무당에게 연락했지만, 그를 쏙 빼고 신도와 굿을 했다. 이런 일이 있어도 제자 중 한 명이 알려주기 전까진 까맣게 모를 수밖에 없었다.

화가 났지만 당장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차분히 다른 제자들의 말을 들어보니 무당은 말이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의 제자는 20대 초반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제자들에게 “너는 부모와 연이 좋지 않다” “부모와 계속 연락하면 점을 잘 볼 수 없다”면서 부모와 연락하지 못하게 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말 그대로 ‘신적’인 존재였다. 어린 제자들은 그에게 내쳐질까 무서워서 반발하지 못했고 대부분은 2~3년 동안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

제자의 신용카드로 마음대로 쇼핑을 하기도 했다. 물론 돈이 많았던 제자도 아니었다. 그는 백화점 명품관서 물건을 샀는데, 카드값만 3000만원이 나왔다. 결국 이 결제 금액은 제자의 부친이 대신 갚았다.

2000만원 정도 돈을 빌리는 건 예사였고 한 제자에겐 1억5000만원의 빚까지 졌다. 이런 상황에도 제자들은 오랜 시간 무당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 반발하지 못했다. 1억5000만원 빚이 생긴 제자는 결국 파산 신청을 했다.

“말도 안 될 정도 비싼 점사비 요구
갑자기 굿 하자고 하면 믿지 마라
유튜브 광고해도 안 믿는 게 좋다”

결국 제자들은 그의 곁을 모두 떠났다. 20대 초반에 신내림을 받은 이들은 빚쟁이가 돼 흩어졌다. 결국 무당은 제자들의 돈을 마음대로 쓰기 위해 부모와의 연까지 끊었던 것이다.

이 보살은 “나도 처음이라 잘 몰랐는데 신내림을 받을 때 이상하게 신 선생의 무구가 계속 망가졌다. 방울을 들고 흔들면 방울이 떨어졌고 칼을 들고 뛰면 부러졌다. 그때 이상한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첫 번째 신 선생은 제대로 된 무당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그를 만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만약 이 보살이 신 선생의 제자로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아직까지 제자들이 고통받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보살은 무당이 일반인들에게 사기 치는 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 보살의 신도도 한 무당에게 사기를 당했다. 해당 신도가 무당에게 점을 보러 갔는데 “당장 굿을 해야 한다”고 재촉하는가 하면 “바로 굿을 하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도 했다.

결국 신도는 돈을 끌어모아서 급하게 굿을 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사기당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무당은 “내가 굿을 해서 네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사 예정인 두 집을 두고 고민하다가 무당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신도 중 한 명은 두 집 모두 마음에 들어 어디를 선택해야 좋은지 물었다. 신도는 무당이 선택해준 집으로 이사했는데, 전세 사기를 당했다. 무당의 공수가 잘못된 것인데 결국 신도는 전 재산을 다 잃고 말았다.

무당에게 사기당하는 모습을 경험했던 이 보살은 자신은 이렇게 하지 않겠다고 항상 다짐한다. 그래서 ‘인건비만 받는 무당’으로 소개받기도 한다. 큰돈을 들여서 차리는 제사상보다 정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으로 오늘도 이 보살은 108배를 한다. 이것이 신 선생에게 사기당했을 때 잘 이겨낸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이 보살은 “나는 우리 종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예수님도 계실 거다. 결국 부처님, 예수님처럼 신 선생이 자신을 신격화해서 제자를 가스라이팅하고 돈을 착취한 것이다. 나도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있으면 나보다 더한 사람이 많이 온다”고 허탈해했다. 

스스로 신격화
가스라이팅도

이어 “내 지인도 무당에게 사기당해서 쓴 돈만 1억원이다. 나 같은 사람은 이상한 무당을 피할 수 있지만, 일반인들은 힘들다. 무당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비싼 점사비를 요구하거나 갑자기 굿을 보자고 하면 믿지 마라. 특히 유튜브서 광고하는 무당도 안 믿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지인 무당은 점 보는 걸 그만뒀는데 같은 제자였던 무당 중에는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신 선생을 찾는다면 신중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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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