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일 만에…’ 이상민 탄핵 불발 후폭풍

죽지 않고 살아 왔지만…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 167일 만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다시 활동에 기지개를 켜면서 여야의 셈법이 복잡하다. 이 장관은 일단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커졌다. 스타가 될지, 빌런이 될지는 이 장관의 향후 행보에 달렸다. 조만간 이 장관을 두고 여야가 다시 충돌할 태세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25일, 국회가 제출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에 대해 ‘만장일치’로 기각했다. 앞서 지난 2월8일, 국회는 ‘이태원 참사’ 대응 책임 부실 등으로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해 헌재로 넘겼던 바 있다. 이 장관의 탄핵 여부는 정치권 안팎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헌정사상 국무위원 첫 탄핵 사례로 남을 수 있는 데다, 참사 책임을 정부 인사가 질지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행안부의 장이므로 사회 재난과 인명피해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도 “헌법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헌정 최초
장관 심판

이 장관은 앞서 이태원 참사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인물로 지목됐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해임건의안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하자 이 장관 탄핵소추안을 의결, 본회의 상정 후 가결시켰다. 이때까지만 해도 야당에서는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적 여론이 팽배했던 만큼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꾸려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는 모습이 연출됐다.

해당 사건을 맡았던 특수본은 이 장관에 대해 서면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피의자로 23명을 송치하는 데 그쳤다. 그러면서 참사 책임을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용산소방서 등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 장관을 비롯해 서울시청, 경찰청 등 ‘윗선’은 구체적인 주의 의무 위반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수사를 종결했다. 이때부터 야당의 압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장관도 끝까지 물러나지 않았다. 야당이 “스스로 도의적·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수위 높게 압박했음에도 꿋꿋이 견뎠다.

대통령실도 이 장관의 거취를 두고 최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등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같은 배경에는 이 장관이 윤 대통령의 측근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야당의 이 장관 탄핵소추 사유는 ▲사전재난 예방 조치 의무 위반 ▲사회재난 대응 조치 의무 위반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및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었다. 

전원 일치 판결로 기각 결정
복귀하자마자 발 빠른 행보

탄핵심판의 핵심 쟁점은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 과정이 적법했는지의 여부 ▲이 장관이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헌법 및 법률의 위반 여부였다. 관련 법령 34조에 따르면,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또 헌법 65조는 공무원이 직무 집행에 있어 헌법·법률을 위반했을 때는 탄핵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야당은 이 장관이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과 정황이 있다며 탄핵을 주도했다. 또 이태원 참사 수습 과정서도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발언으로 2차 가해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당시 기동대 투입과 적절한 대처를 하지 않아 인명구조 골든타임을 놓쳐 피해가 켜졌다는 주장도 펼쳤다. 이처럼 민주당 등 야 4당은 지속적으로 이 장관 탄핵을 위한 여론 주도를 시도했다.

선고를 앞두고 진보당, 정의당, 민주당, 기본소득당 등 의원 182명이 최종 의견서까지 헌법재판소에 제출하기도 했다.


당시 이들은 의견서를 통해 국회의 국정조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를 거치면서 이 장관이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재난 안전 총괄 조정권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방기했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는 네 차례 공개변론을 열고 사건의 쟁점을 따졌고, 이태원 참사 전후로 이 장관이 관련 사안을 지켰는지 심리했다. 

앞서 정치권에서는 탄핵 기각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쟁점은 이 장관 본인에게 잘못이 없더라도 정치적인 책임을 이 장관에게 지울 수 있느냐였다. 

야당의 기대와 달리 이 장관은 끝내 살아 돌아왔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69일 만이다. 탄핵심판은 선고와 동시에 효력이 발생하므로 정지 상태였던 그는 바로 직무에 복귀했다.

이 장관도 이번 탄핵 기각 결정으로 참사 책임으로부터 발을 뺄 수 있는 틈이 생겼다. 특수본으로 송치된 관련자들 역시 수사가 거북이걸음 중이다. 몇몇 핵심 인물들은 불구속 재판을 받고 있고, 여전히 꼬리 자르기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이 장관은 입장문을 통해 “공정과 상식에 기반한 어디서나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지난 6개월간 고심했다”며 “무한한 책임감으로 행정안전부 장관으로서 천재지변, 신종 재난에 대한 재난관리체계와 대응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그는 “10·29 참사와 관련한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고, 다시는 아픔을 겪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래서 누가 
책임 지나?

이 장관의 탄핵 기각 결정이 나오자, 유가족은 크게 반발했다. 유가족 측은 “참사 직후 스스로 물러났어야 했다. 국민의 신임을 배신한 순간부터 행정안전부 장관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첫 행보로 충남 청양군의 수해지역 방문을 택했다. 지난 25일, 청양 지천의 제방 복구 현장을 점검한 뒤 농가도 함께 둘러봤다. 이틀 째인 26일에도 연일 수해 복구현장을 찾는 한편, 발빠르게 관련 대책도 세웠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한 번 이태원 참사라는 대형사고를 겪었던 만큼 위기 의식을 느낀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민주당은 이 장관이 복귀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연일 그에 대한 공격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27일,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트위터에 “탄핵 기각이 면죄부가 아니며 기각됐다고 해도 아무 잘못이 없는 건 아니다. 159명의 목숨을 빼앗은 책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장관 탄핵 기각’ 결정으로 기세가 꺾이긴 했지만 당분간 야당은 이 장관 및 윤석열정부, 여당인 국민의힘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장관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이 내려졌으나 결국엔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탄핵이 기각되면서 정부 인사들 중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고 있다. 비록 직접적인 법적 책임이 없다고는 하지만, 정치적인 책임마저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앞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세월호 참사’ 등 국가적 참사로 불렸던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사건에선 도의적 책임 등의 이유로 자진사퇴했던 바 있다.

반면, 윤정부에선 각종 재난, 참사가 발생하고 있지만 그 어떠한 인사 조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과거 박근혜정부 시절 겪었던 국정운영의 타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이 장관을 재신임하는 모양새다. 질책 대신 별도 연락을 취해 재난 대응의 근본 대책 마련을 주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탄핵 기각을 기점으로 여야는 다시 충돌할 것으로 관측된다. 야당 입장에선 여전히 참사에 대해 책임질 인물이 필요하고 국민의힘 입장에선 어떻게든 방어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돌아왔지만 여전히 불안불안
말실수만 해도 타격 불가피

다만 헌재의 기각 결정은 국민의힘이 반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민주당엔 악재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26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상민 장관 탄핵을 주도했던 민주당 지도부가 탄핵 대상”이라며 “권한을 아니면 말고 식으로 무책임하게 행사하고 내지르는 세력은 ‘묻지마 폭력’보다 더 심각한 사회악‘이라고 역공에 나섰다. 게다가 무리한 탄핵이었다는 일부 여론도 부담스럽다. 

게다가 재난 안전 컨트롤 타워의 공백을 초래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또 무리하게 탄핵을 밀어붙였다는 점에서 여러 차례 정치적 피로감을 유발시켰고, 정쟁에 몰두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면서 준비해왔던 입법 법안들은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될 공산이 커졌다.

앞서 민주당 내부서도 “탄핵을 무리해서 밀어붙이는 게 아니냐”는 볼멘 목소리도 나오곤 했다. 이런 탓에 민주당 내에서도 추후 이 장관을 지속적으로 걸고 넘어지는 이들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인물도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이재명 대표는 국회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서 “탄핵이 기각됐다고 해서 아무 책임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국민 한 명도 아니고 무려 159분이나 되는 분들이 졸지에 아무 잘못 없이 정부 잘못으로 목숨을 잃었는데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며 “뭐가 그리 잘났느냐? 무엇을 그리 잘했느냐?”고 질타했다.

이어 “적반하장도 유분수, 후안무치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정부와 용산 대통령실, 여당은 회복하고 정신차려라, 그리고 최소한의 책임을 느끼라”고 촉구했다.

야당 악재
여당 호재

다행히 민주당에게는 아직 ‘이태원특별법’이라는 한가지 카드가 남아 있다. 민주당은 이태원특별법으로 이 장관의 책임을 다시 묻겠다는 방침이다. 해당 법안은 이태원 유가족이 직접 발로 뛰고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발의됐다. 

핵심은 참사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지원으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설치도 포함됐는데 이는 이태원 유가족들의 요구사항이다. 특조위는 어떤 행정기관에도 속하지 않으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와 비슷한 구조를 띤다. 

특별조사위원 추천위원회서 17명의 위원을 특조위에 추천하면 대통령은 무조건 임명해야 한다. 특조위원장 역시 위원들이 선출하는 방식이다. 이 부분을 강화한 이유는 조사 범위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독립성이 인권위보다 더욱 보장됐고, 대상에는 행정안전부, 경찰, 대통령실 등 여러 정부 부처가 포함된다. 여기엔 정부 개입을 최대한 막겠다는 취지가 강하게 녹아 있다. 

이태원특별법은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서 패스트트랙(신속 안건)으로 진행됐고, 야당 의원 183명이 이름을 올렸다. 국민의힘은 참사를 정쟁화하는 법이라며 반대했고 당시 표결을 앞두고 의원 전원이 본회의장서 퇴장했다.

국민의힘은 이태원특별법을 두고 과잉 법안이며, 정쟁을 부추기는 법안으로 정의하는 등 악재로 작용되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현재 국회 행안위에 계류 중인 해당 법안은 여야 간 이견이 심한 상황 속에서 본회의 표결까지는 최장 11개월이 걸릴 수 있다. 추후 이를 두고 여야 공방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각 결정이 났지만, 국민의힘도 반사이익이 약해진 측면이 존재하는 등 마냥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이 장관의 거친 언행이 반복될 경우, 여권에 치명타를 입힐 수도 있는 데다, 헌재로부터 법적 면죄부만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윤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실수하면
바로 끝

현재 야당의 공격 대상 1호인 이 장관으로선 윤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이 장관이 자칫 실수 후 대통령실서 다시 ‘방패 모드’를 취할 경우, 윤정부까지 타격할 게 불보듯 뻔하다.

이 장관은 사퇴 타이밍을 놓쳤다. 이는 앞으로도 그의 행보에 꼬리표처럼 계속 따라다닐 사안이다. 

한 여의도 관계자는 “이 장관은 앞으로 실수가 없어야 한다. 잘못이라고 말할 것들이 생기면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며 “탄핵이 기각됐지만 야권에선 이 장관의 실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상민 ‘총선 출마론’ 민주당이 키워줬다?

이상민 행전안전부 장관이 본격적으로 복귀에 시동을 걸었다. 복귀 첫날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일각에서는 이 장관이 탄핵을 기회 삼아 차기 총선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이 장관을 스타로 키워줬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그러나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즉시 선을 그었다. 

유 대변인은 “야당에서는 말도 안 된다고 하는데 마찬가지다. 총선 출마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며 “이 장관 성향이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게 잘 맞지 않는다. 장관직을 충실히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기각되자마자 정치적 행보를 보였다가 되려 역풍을 맞을까 하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차>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