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등 공기업에 뇌물 주고 계약 따냈다”
“미국 계좌서 한국 계좌로 5만7658달러 송금”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뇌물 스캔들’에 휩싸였다. 미국의 밸브 제조사 임직원들이 지난 3일 법정에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한수원을 포함한 15개 해외기업에 각각 100만 달러, 62만8000달러의 뇌물을 제공했다고 진술했기 때문. 이로 인해 ‘한수원은 비리조직’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됐다. 특히 이러한 사실이 국내 언론이나 수사과정을 통해서가 아닌 해외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국가적 망신을 시켰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국가의 이미지와 위신을 훼손시킨 이번 사건의 전말을 좇았다.
국내 원전 개발 공기업인 한수원이 발칵 뒤집혔다. 미국의 한 제조업체 간부의 법정진술 내용 때문이다. 이 간부가 법정에서 한수원을 비롯한 외국의 공기업에 뇌물을 주고 계약을 따냈다고 혐의를 인정한 것.
美법정서 한수원 비리 폭로
미국의 일간지 <오렌지카운티 레지스터> 인터넷판에 따르면 지난 3일 샌타애나 연방지법에서 열린 재판에서 리처드 몰록(55)은 지난 2002년부터 6년간 한수원 등 4개국의 공기업에 62만8000달러를 뇌물로 제공했다고 진술했다.
이 회사의 전직 임원 마리오 코비노는 또 2003년 3월부터 2007년 8월까지 해외 영업 중 한수원 등 6개국 12개사에 모두 100만 달러의 뇌물을 제공한 사실을 재판 중 시인했다.
그는 2004년 회사 회계 담당자에게 거짓 회계 정보를 제공하고, 뇌물 제공 내역이 언급된 이메일 등을 삭제하기도 했다. 코비노가 이들 회사에 제공한 뇌물 규모는 각각 8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의 다른 재무담당 임원 리처드 몰록 역시 한수원을 포함해 루마니아,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4개국 국영 에너지 회사에 62만8000달러를 뇌물로 제공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이 같은 뇌물을 제공한 대가로 모두 350만 달러의 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고 답변했다.
특히 몰록은 법정에서 “2004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 은행계좌에서 한국 계좌로 5만7658달러를 송금했다”며 “이는 한수원 관계자에게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진술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한수원은 이에 대해 “미국 법무부 공시 내용을 지난달부터 파악하고 곧바로 후속 조치에 착수했다”며 “2003년 3월부터 2007년 8월까지 밸브 구매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200여명을 직급별로 확인했고 혐의 사실이 확인되면 관련자에 대해 법률적 조치 등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도 사건 다음날인 8일 “사실로 확인되면 사장을 포함해 관련자들에게 단호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한수원이 공판과정에서 드러난 2003∼2007년 거래뿐 아니라 2008년 거래분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지난 11일 한수원은 서울중앙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계좌 추적권 등 조사권한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사실관계를 명백히 밝혀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수사를 의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검찰 “끝까지 수사”
지난 12일 검찰은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검사 황인규)에 배당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한수원 측으로부터 문제의 밸브회사와의 거래에 관여한 직원 200여명의 명단을 넘겨받아 자료를 검토 중이다. 또 수사의 필요성이 있는 인원에 한해 계좌추적 작업을 진행하면서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도 금명간 실시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계좌추적과 자료분석 등을 통해 미국업체가 송금했다는 뇌물이 어떤 목적으로 누구에게 전달됐는지 등을 조사하고 위법성이 드러나면 형사 처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