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박근혜 발목 잡는 측근들 <내막>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9.28 16:4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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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잘린 꼬리들 수두룩 "진짜 개인문제 맞아?"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선거는 단체전이다. 각 후보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후보자를 돕는 주변 인물들의 면면도 승부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다. 때문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측근들의 '사고'에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다. 후보자의 대권행보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는 박근혜의 사람들.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 분석해봤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지난9월24일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계된 과거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며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박 후보는 이날 처음으로 박 전 대통령의 5·16과 유신, 인혁당사건 등에 대해 "헌법가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인정했다. 끝을 모르는 지지율의 폭락과 여론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선택한 최후의 방법이었다.

측근 헛발질
분통 터지네

박 후보는 "우리나라에서 자녀가 부모를 평가한다는 것, 더군다나 공개적으로 (부모의) 과오를 지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아시리라 믿는다"며 자식으로서 국민 앞에서 아버지의 역사적 과오에 대해 인정해야 하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기자회견 직전 신임 대변인으로 내정된 친박계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의 '막말 논란'이 알려지면서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갔다.

김 의원은 전날 대변인으로 내정된 뒤 기자들과 가진 저녁식사 자리에서 "박 후보는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정치를 시작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리고 이 발언이 주위에 알려지자 동석했던 기자들을 향해 "누가 정보보고를 했느냐"며 "야 이 XX들아, 너희가 기자가 맞느냐"고 욕설을 퍼부었다. 박 후보가 눈물을 머금고 쌓아올린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또? 연이어 터진 팀킬에 대권가도 '빨간불'
측근인사 시스템 오류 없나 되짚어 봐야


박 후보가 전당대회를 통해 새누리당의 정식 대선후보로 선출된 지 벌써 한 달 가량이 지났다. 후보 선출 직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방문하는 등 '대통합 행보'로 지지율 상승세를 이어가던 박 후보는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 측근들의 연이은 '자살골' 때문이다.

지난 8월2일 현영희 의원의 공천헌금 의혹이 터져 나왔을 때만해도 박 후보의 지지자들은 해당 사건을 현 의원의 개인비리로 치부하며 박 후보에게 흔들리지 않는 지지를 보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자고 일어나면 터지는 측근들의 사건사고에 이제는 박 후보의 지지자들조차 할 말을 잃은 모양새다.

지난 9월6일에는 정준길 전 새누리당 공보위원이 안철수 무소속 후보 측에 대선 불출마를 종용하는 협박을 했다는 주장이 나와 박 후보를 당황케 했다. 정 전 위원은 안 후보 측 금태섭 변호사와의 친분을 강조하며 "친구사이의 대화였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정 전 위원을 태웠던 택시기사의 증언이 나오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정 전 위원은 처음에는 택시에 탄 일이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해당 택시기사가 블랙박스 등의 구체적 증거물을 제시할 움직임을 보이자 자신이 착각했다며 사실을 인정하는 웃지 못할 코미디를 연출했다.

불법자금부터
말 실수까지

정 전 위원의 불출마종용 파문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 9월17일에는 홍사덕 전 새누리당 의원이 지방 소재 중소기업 진모 대표에게서 6000만원의 불법 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중앙선관위의 고발을 당하는 악재를 만났다. 특히 이번 사건의 주인공이 친박계의 좌장격인 홍 전 의원이기에 박 후보의 충격은 더욱 컸다.

홍 전 의원은 박 후보 경선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낸 6선 의원이다. 홍 전 의원은 친박계 핵심 중에서도 핵심으로 손꼽히는 인사로 진위여부를 떠나 불법 정치자금이라는 구설수에 오른 것만으로도 박 후보에게는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했다.

홍 전 의원을 고발한 선관위는 "운전기사 고모씨의 제보를 받고 이를 토대로 기초조사작업을 벌여 검찰에 고발한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여 그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홍 전 의원은 "큰일을 앞둔 당과 후보에게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어드리겠다"며 하루 만에 자진 탈당했지만 바로 다음 날인 19일에는 박근혜 서포터즈 중앙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송영선 전 의원의 비리의혹이 터져 박 후보 진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번엔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필요하다"며 금품을 요구한 녹취록까지 공개됐다. 녹취록에는 송 전 의원이 한 기업인에게 변호사비 등 금품을 요구하는 내용이 적나라하게 담겨있었다. 게다가 송 전 의원은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해당 기업인이 지난 2007년 경선 때 박 후보 측근에게 25억원을 빌려줬는데 받지 못했다는 얘기를 갑자기 꺼내면서 나보고 대신 돈을 받아달라고 해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발언은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 후보 측근이 20억대의 돈을 받아 정치자금으로 썼다는 주장이어서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새누리당 공천을 둘러싼 비리가 상상 이상의 규모이며 박 후보와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점차 커져가고 있다.

박근혜 몰랐나?
무능한 박근혜?

박 후보 측근의 사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송 전 의원의 녹취록이 공개된 다음 날인 20일에는 박 후보가 야심차게 영입한 안대희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이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송 전 의원 사건과 관련한 해명을 하는 과정에서 "항상 어떤 비리나 부정이 발생할 수 있는데 그것을 녹취로 해서 보도를 한다든지, 이런 모습은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라고 말해 누리꾼들의 융단폭격을 받아야만 했다.

한 누리꾼은 "비리가 발생했으면 거기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런 것을 보도한 언론을 꾸짖는다는 것은 적반하장"이라며 "독재정권으로 회귀해 언론을 통제하겠다는 거냐"며 분노했고, 또 다른 누리꾼은 "청렴강직한 검사로 이름을 날린 안대희가 새누리당에 합류하더니 최소한의 양심도 버린 것이냐"며 한탄했다.

그렇다면 박 후보의 측근들은 왜 연이어 사고를 치는 것일까? 박 후보 측의 주장대로 개인적 비리, 개인적 실수일 뿐일까? 전문가들은 겉으로 볼 땐 박 후보가 측근들의 돌발악재로 억울하게 발목을 잡힌 듯이 보이지만 박 후보 측도 분명히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불법정치자금과 관련한 측근들의 사고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난 4·11총선은 박 후보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진두지휘했고 당명까지 바꿔가며 쇄신을 외칠 때였다"며 "아직 혐의가 확실히 입증되진 않았지만 설사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는다고 해도 친박계 의원들이 그 시기를 전후해 불법 정치자금과 연루되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정황증거가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박 후보는 책임이 있다. 말로는 쇄신을 외쳤지만 정작 쇄신을 이끌 근본적인 시스템 마련이나 측근 단속에는 소홀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권 돕기는커녕 발목이나 잡지 말아야지"
측근은 재 뿌리고 박근혜 나 홀로 고군분투

특히 송 전 의원의 경우 박 후보가 곁에 두고 수 년간 지켜봐온 인물인데 박 후보의 이름을 거론해가며 기업인에게 금품을 요구할 정도였음에도 그동안 비리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또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박 후보의 인사관리능력 자체에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측근들의 잦은 말실수 역시 박 후보와 직접 연관이 있다는 평가다. 일단 지난 9월23일 기자들에게 욕설을 해 파문을 일으킨 김재원 의원의 경우 평소부터 과격한 언변으로 유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인물에게 이토록 중요하고 민감한 시기에 대변인이라는 중책을 맡긴 것 자체가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박근혜 라인'의 과도한 충성심을 요구하는 분위기도 문제라고 지적된다. 박 후보의 강력한 카리스마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때문에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의 주변 인사들은 박 후보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감히 누구도 박 후보에게 직언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캠프 내 분위기가 구성원들의 공명심을 자극하고 과도한 충성경쟁이 말실수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박 후보 측근들은 박 후보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다 문제를 일으킨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김병호 전 새누리당 공보단장은 인혁당사건과 관련 "사과를 피해자 당사자들이 아닌 그들의 가족이나 후손까지로 확대하기 시작하면, 전 국민 중에 사과를 안 받을 사람이 있겠느냐"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같은 발언은 사건 피해자의 가족과 후손들이 그동안 겪어야만 했던 엄청난 고통을 간과한 매우 경솔한 발언이었다는 평가다.


정준길 전 공보위원의 '안철수 불출마 종용파문'도 결국 정 전 위원의 공명심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박 후보의 측근들이 연일 문제를 일으키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유유상종'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박 후보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인사들만 주변에 모이는 것이라는 원색적인 비판이다.

개인적 문제?
시스템 오류!

한 정치 전문가는 "박 후보 주위에는 어느새 잘린 꼬리들이 수두룩하다. 박 후보 진영은 측근문제가 발생하면 무조건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고 사퇴로 마무리 짓는데 그런 인식 자체가 문제"라며 "무조건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다보니 재발방지책 마련이 소홀 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시스템적 오류는 없는지 스스로 되돌아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전문가 역시 "한국 정치의 불행 중 상당 부분은 무능하고 부패한 측근들의 권력 횡포 및 남용에서 비롯됐다"며 "본인은 억울하다고 항변할지도 모르겠지만 대선후보 시절부터 측근문제로 곤혹을 겪고 있는 것은 분명 대통령의 자질이 부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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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