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화페인트, 굳어지는 김씨 체제

장녀로 쏠리는 경영권 대물림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1946년 설립된 삼화페인트는 평소 친분이 깊었던 김복규·윤희중 창업주가 의기투합해 세운 ‘동화산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 김 창업주는 영업 및 생산, 윤 창업주는 관리를 맡아 오늘날 삼화페인트를 일궜다.

1946년 설립된 삼화페인트는 평소 친분이 깊었던 김복규·윤희중 창업주가 의기 투합해 세운 ‘동화산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 회사는 두 사람의 협업에 힘입어 일찍부터 건설용 페인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사세를 키웠다. 

끝나버린
협력

창업주 세대에 맺어진 끈끈한 유대관계는 오너 2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에도 별 탈 없이 이어졌다. 1993년 김복규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데 이어, 윤희중 창업주가 2004년에 명을 달리했지만 공동경영이라는 큰 틀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 무렵 김복규 창업주의 아들인 김장연 현 회장이 사장을 맡았고, 윤희중 창업주의 2세인 윤석영 전 대표는 부사장을 맡아 회사를 운영했다. 2008년 윤석영 전 대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김장연 회장이 단독으로 회사를 이끌던 시기에도 잡음은 없었다.

그러나 완벽한 동업은 존재하지 않았다. 두 집안의 동업에 금이 간 건 2013년 4월경이다. 당시 그룹의 모태기업이자 주력사인 삼화페인트공업은 자금조달을 위해 만기 5년짜리 신주인수권부사채(BW) 200억원을 산은캐피탈 등을 대상으로 발행했다.


김장연 회장은 BW 발행과 동시에 사채와 분리된 신주인수권(워런트) 100억원어치를 3억5000만원을 주당 173원에 사들였다. 이전까지 김장연 회장 측과 윤석영 전 대표 일가는 지분율 격차가 크지 않았지만, BW 발행이 완료되면 김장연 회장 측 지분율이 높아지면서 힘의 균형이 무너질 것으로 예상됐다.

이렇게 되자 윤석영 전 대표의 부인이자 주요주주(지분 5.20%)로 있던 박순옥씨는 김장연 회장을 상대로 BW 발행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워런트 인수가 김 회장의 경영권 강화와 상대적으로 동업가의 영향력 축소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봤다. 

명실상부
1인 천하

법정 분쟁은 2015년 12월까지 3년여에 걸쳐 진행됐고 최종 승자는 김장연 회장이었다. 1심은 박순옥씨의 손을 들었지만 2심에서 자금 사정상 불가피했다는 김장연 회장 측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대법원 역시 2심을 따랐다.

법적 분쟁에서 패배한 윤희중 창업주 가문은 영향력이 축소됐다. 윤석영 전 대표 직계는 주식 매각을 결정하면서 지분율이 5% 밑으로 떨어졌다. 올해 1분기 기준 윤희중 창업주의 아들인 윤석재씨와 윤석천씨는 각각 지분 6.90%, 5.52%를 보유 중이다.

김장연 회장 측은 법적 분쟁에서 승리한 이래 지금껏 회사에 대한 확고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김장연 회장은 삼화페인트공업 지분 27.30%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특수관계인의 지분율 총합은 28.93%다.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일본 제휴선 츄고쿠마린페인트 지분 7.94%와 자사주 13.28%를 감안하면 실질 지분율은 과반을 넘긴다.  

김장연 회장 체제에서 삼화페인트는 국내외 총 16개 비상장 계열사를 둔 중견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근간이 되는 페인트 제조뿐 아니라 화학제품(삼화대림화학), 시스템 관리(에스엠투네트웍스), 물류(삼화로지텍) 등을 영위하고 있다.


최근 업계에서는 삼화페인트가 본격적인 승계 작업에 착수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2021년 3월 김장연 회장이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것도 승계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시각이다.

선대의 애틋함 사라지고…
밑그림 그려진 승계 작업

당시 김장연 회장은 이사회 결의를 통해 삼화페인트 대표이사직을 내려놨고, 삼화페인트는 김장연·오진수 각자대표에서 오진수·류기붕 각자대표 체제로 바뀌었다.  

김장연 회장의 대표이사 사임은 김현정 전무가 주목받는 계기로 작용했다. 1985년생인 김현정 전무는 김장연 회장의 1남1녀 중 장녀다. 변호사 겸 회계사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공인회계사와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2018년 12월 페인트 도매업체인 이노에프앤씨에서 관리본부장을 맡으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 2019년 9월 삼화페인트에 상무로 경영진에 합류해 글로벌전략지원 업무를 담당했고, 얼마 전 전무로 승진하면서 사내 발언권이 강해졌다. 

현재는 경영지원부문에서 역량을 발휘 중이다. 구매와 재무를 책임지는 경영지원부문장으로서 회사의 중추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최고재무책임자(CFO) 역할까지 맡으면서 사내 역할이 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만간 김현정 전무가 이사 명단에 포함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서 삼화페인트 대표이사에서 사임했던 김장연 회장은 사내이사직은 유지하고 있는데, 특정 시점에 김현정 전무가 이사진에 포함될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꽃길 밟는
후계자

다만 지분 승계 속도는 더딘 편이다. 올해 1분기 기준 김현정 전무의 삼화페인트 지분율은 0.04%에 그친다. 27.30%에 달하는 김장연 회장의 지분율과는 현격한 차이다. 

원활한 지분 승계를 위해서라도 김현정 전무에게는 일종의 장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노에프앤씨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이노에프앤씨가 김 전무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자금줄로 활용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노에프앤씨는 2011년 3월 자본금 5000만원(발행주식 5000주·액면가 1만원)으로 설립된 업체다. 총자산은 109억원(2021년 말)이다. 중국과 일본에 2개 해외법인을 두고 있으며 김현정 전무는 이 회사의 최대주주다. 

삼화페인트는 회사 설립 이듬해인 2012년 단순 투자 목적으로 이노에프앤씨에 2500만원을 출자했고, 지분 15%를 확보했다. 이후 보유 지분 가운데 6%를 2020년 9월 매각했다. 인수자는 김장연 회장의 자녀인 김현정 전무와 김정석씨였고, 두 사람은 3%씩 넘겨받았다. 공식적인 삼화페인트의 주식 매각 이유는 “투자자금을 일부 회수하는 차원”이었다.


이를 계기로 김현정 전무의 지분율은 31%로 올랐다. 나머지 69% 가운데 9%는 삼화페인트가 보유 중이고, 60%는 김정석씨 등 3명이 보유 중이다. 

속도 내는
3세 승계

김현정 전무가 삼화페인트로부터 지분을 넘겨받은 2020년을 기점으로 이노에프앤씨는 실적이 개선됐다. 이노에프앤씨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엔 매출액 142억원, 영업손실 3억원을 기록했으나, 이듬해 매출액이 220억원으로 뛰었다. 영업이익은 12억원이었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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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전 서열 2위’ 국회의장 쟁탈전

‘의전 서열 2위’ 국회의장 쟁탈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대한민국 의전 서열 1위는 대통령이다. 그다음은 통상 국회의장으로 분류된다. 의전 서열 2위를 차지하기 위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거물급 잠룡들의 몸풀기가 시작됐다. ‘친명(친 이재명계 일색’ 민주당에 국회의장까지 ‘찐명’ 몫으로 돌아갈 상황이다. 차기 국회의장(이하 의장)에 누가 오를지 관심이 쏠린다. 당초 4파전으로 예고됐던 선거가 지난 주말 사이 우원식·추미애 당선인의 양자구도로 정리되는 등 물밑 경쟁도 치열한 양상이다. 그동안 의장직은 다수당의 5선 이상인 중진급 의원이 맡는 게 관례였다. 원내 정당의 의견을 교섭하고 조율하는 역할인 만큼 계파색이 옅은 인사가 적임자로 여겨졌다. 이는 국회의장에게 주어지는 ‘직권상정’이라는 특권 때문이다. 의장은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시킬 수 있는 힘이 주어진다. 가운데서… 외로운 싸움 현재 국회를 이끄는 수장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출신인 김진표 국회의장이다. 김 의장의 임기는 오는 29일 종료되며 차기 의장은 오는 16일 선출된다. 김 의장은 국민의정부서 중용돼 부총리를 비롯한 장·차관 등을 역임했다. 2002년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한 후에는 수원서 내리 5선에 성공하면서 당내 우직한 인사로 평가받아왔다. 선수가 높았던 탓에 21대 전반기 국회의 의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당시 6선이었던 박병석 의원과 단일화가 이뤄지면서 자연스럽게 불출마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김 의장은 이로부터 2년 뒤인 2022년 21대 후반기에 의사봉을 쥔 후로 지금까지 국회를 이끌고 있다. 당선 당시 김 의장은 “제 몸에는 민주당의 피가 흐른다”며 “당적을 졸업할 때까지 선당후사의 자세로 민주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중립을 유지해야 하는 의장이 당에 대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우려와 달리 김 의장이 무조건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는 일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오히려 임기 막바지엔 친정인 민주당으로부터 쓴소리를 듣기까지 했다. 법안 상정 시 여야 합의를 지나치게 중요시한다는 점에서다. 이와 관련해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본회의에 (법안을)올릴 때 무조건 우리 편을 들어달라는 게 아니다. 적어도 민심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봐야 할 것 아닌가”라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21대 후반기 국회는 ‘역대 최악’이라는 평을 받을 만큼 험난함의 연속이었다. 여야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온갖 특검법이 쏟아지면서 강대강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평소 온화하기로 소문난 김 의장조차 본회의 진행 중 의원들의 고성이 이어지자 처음으로 “국민이 보고 있습니다!”라며 언성을 높이기까지 했다. 4·10 총선 이후 본격적인 수난 시대가 열렸다. 이번 총선을 통해 ‘윤석열정부 심판론’이 힘을 받자 정부·여당을 향한 민주당의 압박 수위가 단숨에 높아진 탓이다. 지난 2일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는 과정서 김 의장의 고초가 그대로 드러났다. 당시 김 의장은 멕시코·인도네시아·대한민국·튀르키예·호주 의회로 구성된 협의체인 ‘믹타(MIKTA)’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야당 내에서 “해당 법안을 상정하지 않을 경우 출장길을 막겠다”며 의장을 압박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어르고 달래도 소용없는 여야 21대 국회 끝도 진흙탕 싸움 본회의 직전까지도 야당 의원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의장실서 나온 김 의장 옆으로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여야 합의가 필요하다”며 끈질기게 쫓아가는 장면이 포착됐다. 강 의원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붙자 김 의장은 “알아들었다” “본회의장서 한다니까”라며 결국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채 상병 특검은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돼 통과하면서 김 의장을 향한 공세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전세 사기 특별법 등 예민한 현안이 산적한 만큼 21대 국회 폐원 전까지 김 의장의 책임은 여전히 막중하다. 국회의원 300명이 모두 만족하는 결과를 도출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김 의장은 언제나 여야 협치에 방점을 찍었다. 이번 21대 국회가 이견 조율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불만이 나오자 차기 의장을 노리는 후보들은 저마다 ‘탈중립’을 강조하면서 대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가장 먼저 신호탄을 쏴 올린 인사는 경기 하남갑에 당선돼 6선 고지에 오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다. 추 당선인은 지난달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국회의장이 될 가능성과 관련해 “국민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혁신 의장에 대한 기대라면 얼마든지 자신감 있게 그 과제를 떠안을 수 있다”고 말해 출마를 암시했다. 추 당선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의장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중립도 아니다”라는 파격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후 강성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그를 차기 의장으로 밀어줘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다른 후보 역시 앞다퉈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5선인 민주당 우원식 당선인은 후보 등록 첫날인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개혁 의장이 되겠다”며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우 당선인은 자신을 이 대표의 ‘사회개혁 가치의 동반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윤정부에 맞서기를 주저한 적이 없다. 국회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마음으로 임하겠다”며 “말로만이 아닌 온몸을 던져 싸워왔다. 윤정부의 민주주의 후퇴, 삼권분립 훼손에 단호히 맞서 제대로 싸울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6선 민주당 조정식 당선인도 같은 날 출마를 선언했다. 조 당선인은 입장문을 통해 “국회 국토교통위원장과 예결위 간사, 당 정책위의장 및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며 실력을 검증 받았다”며 “특히 지난 1년 8개월 간 당 사무총장으로서 이 대표와 함께 민주당을 지키고 총선 승리를 이끄는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확 바뀐 패러다임 조 당선인은 이번 총선의 민의를 ‘민생회복과 윤정부에 대한 심판과 견제를 제대로 하라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22대 국회는 국민의 명령을 제대로 실현해야 한다”며 “당원과 국민의 뜻을 받들고 개혁국회의 성과를 낼 국회의장이 선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 당선인은 후보 마감일인 지난 8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민의를 따르는 ‘개혁국회’를 만들어 민생을 되살리고 평화를 수호하며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며 “첫 번째 민생 입법으로 이 대표가 제안한 신용사면 등 처분적 법률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친명 좌장으로 불리는 5선의 민주당 정성호 당선인도 같은 날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빛나게 하는 ‘뒷바라지 국회의장’이 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정 당선인은 “이번 총선의 민의는 소극적 국회를 넘어서는 적극적이고 강한 국회를 실현하는 것”이라며 “이를 받들어 국회의 권위를 회복하고 민생과 민주주의의 효능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국회를 만들어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하던 5선 민주당 박지원 당선인은 “지금은 제가 나설 때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어 “22대 국회가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우리 당의 좋은 국회의장 후보가 선출되기를 기대한다”며 “이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나라를 살리고 민주당이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렇듯 4파전으로 치러질 예정이었던 의장 선거는 주말 사이 급격한 변화를 보였다. 지난 12일, 조 당선인과 정 당선인이 자진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추 당선인과 우 당선인으로 후보군이 압축됐다. 조 의원은 이날 추 당선인과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뒤 “민주당이 대동단결해서 총선 민심을 실현하는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해 제가 마중물이 되고자 의장 후보직을 사퇴한다”며 “추 후보가 연장자라는 점을 존중했다”고 설명했다. 정 당선인도 입장문을 내고 “민주당의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해 더 열심히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 당선인과 달리 추 당선인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진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친명계 핵심부가 의장 선거를 앞두고 추 당선인으로 교통정리에 나섰다고 해석했다. 추 당선인은 후보 중 가장 선수가 높고 연장자인 만큼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기 위해 관례에 따랐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추 당선인의 선명성을 높이 샀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선명성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은 데에는 김 의장의 과도한 중립성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풀어지는 중립 기어 추 당선인은 “옳은 방향으로 갈 듯 폼은 다 재다가 갑자기 기어를 중립으로 넣어버리고 멈춰버려 죽도 밥도 아닌,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리는 우를 범한 전례가 있다”고 꼬집은 바 있다. 선명성 경쟁에 대해 최요한 시사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김진표 학습 효과’라고 해석했다. 최 평론가는 “김 의장은 ‘일단 여야가 합의를 해오지 않으면 상정하지 않겠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데 대다수의 민주당 당원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때문에 22대 국회의장 선거에서는 기계적 중립이 필요 없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의장 선거를 약 일주일 앞두고 “기계적으로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기류가 점차 굳어지는 분위기다. “의장이 아닌 정부·여당과 맞서 싸우기 위한 당 대표를 뽑는 것 같다”는 여권의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지난 3일 친명계 박찬대 의원이 신임 원내대표로 선임된 가운데 의장까지 친명 체제로 꾸려진다면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22대 국회처럼 여소야대 국면서 야당이 강경 입법 드라이브를 예고한 상황이라면 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9개의 법안을 21대 국회서 마무리하겠단 방침이다. 폐원 전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22대 국회로 넘어가게 된다. 그동안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은 양곡관리법을 비롯한 ▲간호법 ▲노란봉투법(노조법) ▲방송 3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등이다. 민주당 박찬대 신임 원내대표는 “우선순위를 정해 순차적으로 발의할 수 있다”면서도 “필요 시에는 이들 법안을 묶어 ‘패키지’ 형태로 재발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여기에 민주당이 국회 법사위와 운영위원회(이하 운영위) 등 중요 상임위를 모두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여당은 협상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민주당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모두 가져가면 야당이 추진하는 법안을 빠르게 통과시킬 수 있게 된다. 대통령 재의요구권인 거부권 외에는 막을 방법이 없는 만큼 여당의 부담이 가중되는 셈이다. “한쪽으로 기운 의장은 꼭두각시” 우려에도 ‘찐명’ 내세운 이유? 그동안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밀어붙일 때마다 ‘입법 폭주’라며 “타협과 절충으로 이뤄낸 협치의 싹이 또다시 거대 야당의 폭주로 꺾였다”고 비판해 왔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국회의원 개인의 목소리를 억제하고 이 대표의 엄명을 따르라 강요하는 것은 국민 기만행위”라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대한민국 의전 서열 2위이자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 후보로 나선 민주당 후보들조차 이 대표의 눈에 들어보겠다며 위헌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며 “이 대표 연임 추대론까지 밀어붙이고 있는 민주당은 전체주의 집단으로 전락한 것인가”라고 견제에 나섰다. 민주당 단일 체제에 우려를 표하는 건 여권뿐만이 아니다. 김 의장도 “한쪽 당적을 계속 가지고 편파된 의장 역할을 하면 그 의장은 꼭두각시에 불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MBN과의 인터뷰서 중립의무를 비판한 후보를 겨냥한 듯 “조금 더 공부하고 우리 의회의 역사를 보면 그런 소리한 사람 스스로 부끄러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장 선거를 앞두고 의장의 중립적인 태도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커지자 이를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의장은 “국회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가적 현안을 여야 간에 협의하라고 국민이 위임한 기관 아니냐”며 “끝까지 협의해야 제대로 된 선진 민주정치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력이나 국민의 의식은 다 높은 수준에 가 있는데 정치인들만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 전부 아니면 전무)’의 정치를 한다”며 지적하기도 했다. 싹쓸이 한다면… 정치권에서는 의장 후보들이 선명성을 강조하는 모습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김 의장의 국회 운영 방식에 갈증을 느꼈다는 평이 대부분이지만 거대 야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실행력 있는 의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점차 무게가 쏠린다. 민주당 내에서는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과 ‘민심’은 다르다며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당 일각에선 “여당과 협치보다는 총선서 승리를 이끈 이 대표와 호흡이 잘 맞는 사람이 의장직에 어울리지 않겠냐”는 설이 나오면서 민주당이 22대 국회 고삐를 꽉 죄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민주당은 민심을 빠르게 좇지 못한 김 의장이 비판받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며 “(민주당이)국회를 쥐더라도 민심을 잘 파악한다면 지금과 같은 비판은 잦아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회부의장도 친명전 차기 국회부의장(이하 부의장)을 거머쥐기 위한 경쟁도 막을 올렸다. 야당 몫의 부의장 후보로 4선의 남인순·민홍철·이학영 의원이 물망에 오르면서 해당 선거 역시 최소 3파전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후보들은 이번 총선 승리의 의미를 강조하며 국회의장(이하 의장)과 합을 맞춰 22대 국회를 ‘개혁 국회’로 이끄는 데 방점을 찍었다. 부의장은 의장과 달리 당적 보유가 가능하다. 이들 중 대다수가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만큼 22대 국회가 개원하는 동시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영향력이 강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