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클래식 월드스타 바리톤 김태한

  • 옥지훈 기자 ojh34522@daum.net
  • 등록 2023.06.12 12:57:34
  • 호수 14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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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국내파, 세계를 휩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옥지훈 기자 = 한국인 남성 성악가 김태한이 세계 최고 성악가 반열에 올랐다. 세계 3대 클래식 콩쿠르 중 하나인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서 아시아 남성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해당 대회서 한국인 성악가가 우승한 건 2011년 여성 성악가 홍혜란 이후 두 번째다. 두 사람의 차이점을 꼽자면 홍혜란은 2009년 줄리어드 음악학교에 입학한 ‘유학파’인 데 반해 김태한은 국내서 성악을 배운 ‘순수 국내파’라는 점이다.

세계 3대 클래식 음악 콩쿠르 중 하나인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서 바리톤 김태한(22)이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이번 우승으로 아시아 남성 성악가로서 최초, 2000년생 만 22세로 최연소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세계 3대 콩쿠르
‘퀸엘리자베스’

김태한은 클래식 불모지로 꼽히는 국내서 성악을 공부했다. 그의 우승은 해외 유학 경험 한 번 없는 순수 국내파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한국은 지난해 같은 대회서 첼로 부문으로 우승을 한 최하영에 이어 2년 연속 우승자를 배출했다.

그동안 홍혜란(2011년), 황수미(2014년·이상 성악), 임지영(2015년·바이올린), 최하영(2022년·첼로) 등 여성 음악가가 해당 콩쿠르서 수상한 바 있지만, 남성 음악가가 우승을 거머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콩쿠르 성악 부문은 성악가 412명이 지원했다. 예선에는 영상 심사를 통해 68명이 본선에 진출했는데, 그중 18명이 한국인이다.


지난 1일부터 시작해 사흘간 진행된 결선에 진출한 12명 중 한국인 결선 진출자는 최연소인 김태한을 비롯해 바리톤 권경민, 베이스 정인호까지 총 3명이었다. 이번 콩쿠르서 국적별로 최다 진출이다. 결선 진출 입상자 순위는 1위부터 6위까지다.

베이스 정인호가 5위를 기록하면서 입상자 순위에 올랐고, 바리톤 권경민은 아쉽게 순위에 들지 못했다.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국제 음악 콩쿠르서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수상을 이어가면서 K클래식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인 음악가들이 세계 무대서 독보적으로 활약하면서 결선 진출자 숫자가 클래식 본고장인 유럽을 압도했다. 2015년 쇼팽 피아노 콩쿠르서 우승한 조성진 또한 순수 국내파로 국내 클래식 열풍에 기여했다.

지난해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우승한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선 한국인 연주자 12명이 준결선에 진출해 화제가 됐다. 임윤찬도 순수 국내파로 알려져 있다. 해외 유학 경험이 없는 국내파 음악가들이 세계 대회서 연이은 승전보를 올리고 있다.

김태한은 우승 직후 현지 인터뷰서 “한국 가수들이 워낙 노래를 잘하기 때문에 사실 국제 콩쿠르보다 국내 콩쿠르서 노래할 때 더 떨린다”며 “지금 당장 한국대회에 나가도 1등을 할 자신이 없을 만큼 실력자가 많다”고 전했다.

‘K클래식’ 콩쿠르서 연달아 승전보 
아시아 최초·최연소 타이틀 섭렵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는 벨기에 출신 바이올린 거장 외젠 이자이(1858~1931)를 기리기 위해 1937년 ‘이자이 콩쿠르’라는 명칭과 함께 바이올린 부문을 대상으로 처음 열렸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부문으로 진행됐으나 세계 2차 대전으로 휴지기를 맞았다. 이후 1951년 벨기에 왕비 엘리자베스 본 비텔스바흐의 후원 아래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어 재개됐다.


1951년 바이올린 부문을 시작으로 1952년 피아노 부문으로 번갈아 열리다가, 1953년 작곡 부문, 1988년 성악 부문, 2017년 첼로 부문이 추가됐다. 2012년 이후로는 작곡 부문이 개최되지 않고 있다. 현재는 바이올린, 피아노, 성악, 첼로 부문이 번갈아 가며 매년 개최되고 있다.

역대 주요 수상자로는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레오니드 코간·바딤 레핀과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등이 있다. 한국 출신은 1976년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이 3위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50명 넘는 입상자를 배출했다.

김태한은 처음엔 록 가수가 하고 싶어서 음악을 시작했다. 가장 좋아하는 록밴드는 캐나다의 섬41(Sum 41)이고, 중학교 때는 밴드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어머니의 권유로 비교적 늦은 나이인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성악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어머니가 성악을 권유하셔서 성악을 시작했다가 뒤늦게 빠졌다”며 “선화예고에 진학해 비슷한 전공을 하는 친구들 만나면서 시너지가 생겨 꿈을 더 키우게 됐다”고 말했다. 김태한은 선화예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음대에 진학한 국내파 수재다.

시작은 록으로
지금은 오페라

그는 바리톤 나건용 교수를 사사했고, 현재는 국립오페라단의 젊은 성악가 육성 프로그램인 오페라 스튜디오 멤버로 활동하면서 김영미 교수의 가르침을 받고 있다. 2021년에 국내서 열린 한국성악콩쿠르, 한국성악가협회 국제성악콩쿠르, 중앙음악콩쿠르서 각각 2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지난해에는 비냐스 국제성악콩쿠르와 리카르도 잔도나이 국제성악콩쿠르서 특별상을 받으면서 해외로 발을 뻗었다.

김태한은 콩쿠르 우승 직후 현지 매체와 가진 인터뷰서 ‘롤 모델’이 누군지 묻는 질문에 주저없이 “저희 선생님”이라고 말하면서 국내에 있는 스승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스승인 바리톤 나건용 교수는 제자에 대해 “24시간 노래를 흥얼거리며 연습할 만큼 열정의 불씨가 꺼지지 않는 성악가”라고 전했다.

김태한은 2018년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에 10회 신한음악상 성악 부문 수상으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신한음악상은 일반적인 기업 메세나 프로그램과 달리 신한은행 직원들의 기부금으로 조성해 만 19세 이하의 순수 국내파 클래식 유망주만을 발굴해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김태한은 이번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서 진행되는 곡을 신한아트홀서 실전 연습하고 녹화하여 경연에 대비하는 과정을 거쳤다. 신한음악상 수상자는 모든 비용이 무상이다.

수상자는 매년 400만원씩 총 1600만원의 장학금과 함께 해외 유명 대학교수에게 받는 마스터클래스 및 공연 관람, 세종체임버홀서 정기연주 기회 등 국제적인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혜택을 제공받는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신한음악상 수상자들의 ‘음향시설이 잘 갖춰진 홀에서 연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수렴해 세종문화회관과 정기연주회를 정례화했다”며 “수상자들이 해외 콩쿠르에 나가는 사례가 많아짐에 따라 신한아트홀서의 녹화 및 연습도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선 무대
발음 극찬

신한은행은 순수 국내파를 배출하는 데 큰 디딤돌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금까지 6회 피아노 부문 수상자 박진형(2016년 프라하의 봄 피아노 콩쿠르 1위), 10회 첼로 부문 김가은(2022년 어빙 클라인 국제현악콩쿠르 1위), 12회 첼로 부문 한재민(2021년 에네스쿠 콩쿠르 1위) 등 61명의 수상자가 배출됐다.

김태한은 결선 무대에 올라 바그너 ‘탄호이저’ 중 ‘오, 나의 사랑스러운 저녁별이여’를 시작으로 말러의 연가곡 ‘내 가슴 속에는 불타는 칼이’, 코르골트의 ‘죽음의 도시’ 중 ‘나의 열망, 나의 집념’, 베르디의 ‘돈 카를로’ 중 ‘카를로가 듣는다-아, 나는 죽어가고 있어’까지 4곡을 불렀다. 그는 독일어와 불어를 정확하게 발음해 극찬을 받았다.

특히 베르디의 ‘오, 카를로 내 말을 들어보게’는 원래의 이탈리아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불렀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가 열린 벨기에가 불어권이라는 이유에서다. 김태한은 “프랑스어 버전으로 부른 건 내 아이디어”라며 “프랑스어가 음악적으로 표현하기 좀 더 부드럽고 편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어권이기도 하고, 프랑스 요청을 받아 베르디가 작곡한 ‘돈 카를로’ 원래 버전도 프랑스어였다”며 “작품이 크게 성공하면서 나중에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것인데 마지막 소절인 ‘플랑드르를 구해 달라’는 의미가 플랑드르가 벨기에 땅이어서 여러 모로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국제음성기호(IPA)상 발음기호 공부가 정석인데 그 또한 (실제 발음과)다른 부분이 있어서 원어민 노래를 많이 듣고 세세한 부분까지 따라 해보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곡의 음정, 박자뿐 아니라 시를 분석하고 시인에 대해 공부하는 등 곡에 대해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을 열심히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지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서 자신의 꿈을 묻자 부족한 영어 탓에 “슈퍼스타가 되는 것(I want to be a super star)”이라고 답했다고 웃어 보였다. 클래식 비평가 마르띤느 메르제는 “김태한의 목소리는 웅장하고 풍부해 멜로디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며 “보기 드문 우아함과 권위를 가진 그의 연주는 아름답게 절제돼 감동을 전달한다”고 호평했다.

록 가수 꿈꾸던 중학생이…
7년 뒤 세계 최고 성악가로

앞서 소프라노 조수미가 이번 대회서 심사위원으로 참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심사위원장 베르나르트 포크롤을 비롯해 메조소프라노 베르나르다 핑크, 소프라노 파트리샤 프티봉 등 심사위원진 17명 중 일원으로 활약했다.

조수미는 김태한 우승 직후 인터뷰서 “나도 콩쿠르서 여러 번 우승했는데, 내가 우승한 것보다 더 기쁘다”며 “우승자뿐만 아니라 결선에 진출한 한국 성악가 3명 모두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 심사위원단은 공정한 심사를 위해 대회 기간 내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엄격히 금지된다. 순위는 심사위원들이 각자 매긴 점수표를 일괄적으로 합산해 결정된다. 조수미도 발표 직전에 이번 대회 순위 최종 결과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김태한이 이번 대회서 우승이 확정됐을 때 심사위원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묻는 질문에 “당연하다고 했다. 다들 거의 만장일치”라고 답했다. 이어 “나이가 굉장히 어린데도 진정성 있게 노래한 게 심사위원들에게 큰 감동을 준 것 같다”며 “원더풀 퍼포먼스였다”고 치켜세웠다.

‘대선배’ 조수미는 “이번 우승이 끝이 아니고 시작이니 자만하면 안 된다. (김태한이)아직 나이가 어리니 정신을 바짝 차려서 열심히 해야 한다”며 진정 어린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기뻐하는 것도 오늘 하루만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내일부터 다시 열심히 갈 길을 가야 한다”며 “앞으로 갈 길이 멀고도 험난할 수 있으니까, 제가 옆에서 잘 도와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태한은 오는 9월부터는 독일 베를린 슈타츠오퍼의 오페라 스튜디오 멤버로 2년간 활동할 예정이다. 가장 해 보고 싶은 역할로 조아치노 안토니오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의 피가로를 꼽았다. 이어 “조연·단역부터 가리지 않고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가겠다”며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하는 오페라 가수”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열심히 준비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어 기쁘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행복하다”며 “오페라 무대에 많이 서면서 행복하게 음악을 하고 싶다. 지켜봐 달라”고 덧붙였다.

대선배 조수미
진정 어린 충고

김태한은 지난 6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 인근 워털루에 있는 음악 고등교육기관인 ‘퀸엘리자베스 뮤직샤펠’서 열린 공식 시상식서 마틸드 왕비로부터 직접 상장을 받았다.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상장 명칭도 ‘마틸드 여왕 상’으로 2만5000유로의 상금도 함께 수여됐다. 그는 오는 13일 브뤼셀서 열리는 퀸엘리자베스 폐막 공연을 통해 우승자로 첫 무대를 선보인다. 이후 현지 일정을 모두 소화한 뒤 오는 20일경 귀국 예정이다. 

<ojh34522@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세계 클래식 홀린 K클래식

한국인의 최근 세계 3대 콩쿠르서 활약이 심상치 않다.

세계 무대서 한국인 콩쿠르 입상자 수는 압도적이다.

지난해 세계적인 콩쿠르서 우승한 한국인 음악가 중 악기 부문만 보더라도 피아노(임윤찬·밴 클라이번), 바이올린(양인모·시벨리우스) 첼로(최하영·퀸 엘리자베스)로 3명이나 된다.

한국인 음악가가 세계대회를 휩쓰는 건 이제 흔할 지경이다.

세계 3대 콩쿠르 중 먼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서 2011년 소프라노 홍혜란이 우승하면서 4년 주기로 돌아오는 바이올린, 피아노, 성악, 첼로 부문서 2014년 소프라노 황수미가 또 한 번 정상에 오르는 진기록을 세웠다.

한국인 여성 성악가 목소리가 세계 무대를 떨친 건 꽤 오래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프리 마돈나’ 홍혜경부터 1990년대 소프라노 조수미 등 한국 소프라노는 세계 무대에 이름을 떨쳐왔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는 2011년 베이스 박종민과 소프라노 서선영이 각각 남성·여성 성악 부문 정상을 차지했다.

2012년에는 베르디 국제 콩쿠르서 테너 김정훈, 바리톤 김주택, 테너 윤승환이 각각 1~3위를 휩쓸었고, 2021년에는 바리톤 김기훈이 BBC 카디프 국제 성악 콩쿠르 오페라 부문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면서 한국 남성 성악가의 국제 무대 경쟁력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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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