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법’ 윤석열정부 반대하는 내막

“나라에 도움 안 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정부가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반대하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사실상 생존자와 유가족들을 돕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는 평가다. 정부 부처가 제출한 ‘반대’ 의견은 법 통과 논의 과정서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특별법 통과가 무산된다면 검찰이 윗선을 제대로 겨누지 못했던 것처럼 추가 조사는 어려울 전망이다.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 특별법)은 지난 4월20일에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야당 국회의원 183명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으나 국민의힘의 반대가 극심하다. 정부도 여당의 행보에 힘을 보태고 있다. 특별법 반대 의견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법 통과 무산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억지 주장
전부 한통속

행안부는 지난달 1일부터 12일까지 이태원 특별법과 관련이 있는 정부 부처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국회에 발의된 특별법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것이었다. 5개 부처(행안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인사혁신처, 감사원)가 의견을 냈다. 모두 이태원 특별법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행안부가 취합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제출한 이 의견들은 이태원 특별법 관련 논의에 반영될 수 있다.

행안부는 이태원 특별법 발의안의 핵심 내용인 특조위 설치, 피해구제심의위원회와 희생자추모위원회 설치에 모두 반대했다. 국회에 낸 의견 자료서 행안부는 “특조위의 진상규명 기능은 현행 경찰 특별수사본부, 검찰,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등과 기능이 중복된다. 별도 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은 기능의 중복과 비효율 등을 고려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피해구제심의위원회와 추모위원회 설치에 대해서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와 행안부 소속 ‘이태원 참사 피해자 지원단’ 등을 통해 이미 역할을 수행 중이다. 기능의 중복과 비효율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노동부는 발의안 내용 중 ‘피해자 치유 휴직 관련 정부 지원’ 조항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치유 휴직의 실시 여부는 ‘노사가 알아서 정할 일’이기 때문에 정부가 관여하거나 지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발의안 66조와 67조에는 ‘참사 피해자는 신체적·정신적 후유증 치료를 위한 치유 휴직을 신청할 수 있고, 사업주는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사업주의 고용유지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국가가 지원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노동부는 국회에 낸 자료서 “치유 휴직은 노사간 원만한 협의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이로 인한 노사간 고용불안에 대한 (국가 차원의)지원 실익이나 지원의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치유 휴직 시 고용유지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는 것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은 감사원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며 ‘감사원 감사 요구’ 조항을 없애야 한다고 봤다. 특별법 발의안 34조에는 ‘이태원 참사 특조위가 조사 과정서 공무원의 비위 등을 적발했을 때 감사원에 감사를 요구할 수 있고, 감사원은 3개월 내 감사 결과를 특조위에 통보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행안·복지·노동·인사혁신처·감사원
5개 부처 공통 의견…통과 무산 계획도?

감사원은 국회에 낸 의견 자료서 “감사원의 감사 권한은 헌법이 부여한 고유 권한이다. 감사원에는 일체의 감사 운영을 독자적·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돼야 한다. 해당 조항은 감사원의 직무상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이미 국회법에 따라 국회가 감사원에 감사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감사원 감사가 필요하면 특조위가 국회에 보고하면 된다. 별도의 감사 요구 조항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사혁신처는 ‘특조위에 대한 국가기관의 공무원 파견 의무’ 조항에 반대 의견을 냈다. 특별법 발의안 24조 ‘특조위 위원장은 업무 수행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국가기관 등에 소속 공무원이나 직원의 파견근무 및 이에 필요한 지원을 요청할 수 있고, 파견 요청을 받은 국가기관 등의 장은 업무 수행에 중대한 장애가 있음을 소명하지 않는 한 30일 이내에 협조해야 한다’는 내용에 태클을 걸었다.

인사혁신처는 “파견은 기관 간 상호 동의를 전제로 운영돼야 한다. 일방의 파견 요청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기관 고유의 인사 권한 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면서 ‘특조위의 파견 요청에 국가기관 등이 협조해야 한다’는 의무 내용을 삭제해야 한다고 했다.

특별법 발의 과정에 참여했던 변호사들은 이 같은 정부 부처의 반대 의견에 동의하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관계자는 “이미 국정조사 결과 책임 규명을 위해 독립적인 조사기구 설치가 필요하다고 결론 났다. 행안부가 재난통신망 기록을 없애면서 진상규명에 필요한 일부 과정이 사라지게 됐다”고 말했다.

해당 시민단체 소속 다른 변호사도 “감사원 요구 중 ‘국회가 감사를 요청할 수 있고 특조위가 국회에 보고하면 된다’며 반대했는데 국회가 감사를 요청하기 전, 정치적 여야 대립으로 불가능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감사원 독립성 침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 수월하게 감사를 진행할 수 있는 길을 정부가 틀어막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대 근거가…
“황당·무책임”

특별법 외에도 비슷한 양상의 참사 재발방지대책으로 발의된 법안 중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한 법안은 단 한 건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직후부터 비슷한 사고를 막고 각종 재난 관리 체계 및 교육 등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은 약 50건이 발의됐다.

특히 재난 관리의 근간이 되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을 강화하는 개정안은 33건이 발의됐다. 핼러윈 축제처럼 명확한 주최·주관자가 없다면 개최지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이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게 법안의 핵심 내용이다.

실제 지난해 11월 민주당 임오경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재난안전법 개정안에는 대규모 인원 밀집이 예상될 때 지자체장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사전에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행안부 장관이 안전관리계획의 이행 실태를 지도·점검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재난안전법 개정안에는 심리상담 지원 대상으로 재난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긴급구조활동과 응급대책 등에 참여한 자원봉사자 등도 포함되는 내용이 담겼다.

다중운집 시 정부가 이동통신사 데이터 등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은 지난 4월27일 본회의 문턱을 겨우 넘었다. 여야는 이 법안이 통과한 날과 참사 6개월을 맞은 날, 관련 논평조차 내지 않았다. 참사 초기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나서겠다고 하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나머지 법안들은 여전히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이를 두고 그동안 여야가 이태원 참사 책임 공방과 이상민 행안부 장관 해임건의안 및 탄핵소추, 특별법 제정 등을 놓고 공방만 벌이면서 법안 통과가 늦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에 대한 법적 책임이 확정됐을 때 통과가 이뤄져야 한다는 언급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전에 법이 통과돼 박 청장이 무죄를 받으면 솜방망이 처벌도 하지 못할 우려가 나왔었다”고 말했다.

진상 규명,
재난 정쟁화?

특별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쟁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재난의 정쟁화’라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 특별법과 관련해 “특조위원 추천의 구성이 지나치게 편파적”이라며 “추천위원 9명 중 유가족과 야당이 6명을 추천하게 돼있어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내년 총선 때까지 쟁점화해 정치적 이득을 얻어보겠다는 총선 전략 특별법”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민주당은 이달 중으로 법안 통과를 밀어붙일 계획이다. 지난달 19일, 박광온 원내대표는 국회서 열린 유가족 간담회서 “특별법 논의가 시급하게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독립적 조사기구를 설치해 명명백백하게 그날의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특별법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민주당 간사 김교흥 의원은 비공개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여야 합의로 통과돼야 특별법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며 “6월 내에 법안이 통과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송진영 유가족협의회 대표직무대행은 “양곡관리법이나 간호법처럼 정쟁의 대상이라는 이유로 (특별법에)거부권이 행사될 수 있어 여야 합의로 통과되기를 원한다”며 “여당 설득을 통해 정쟁이 아닌 합의에 의한 법안 처리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대표직무대행도 “국민의힘도 법안에 동참할 수 있도록 계속 호소할 생각”이라고 했다. 다만, 민주당은 상임위 논의가 지지부진해 처리가 늦어질 경우 단독 강행 처리도 고민하고 있다. 오는 29일이 지나면 행안위원장 자리를 민주당이 가져올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상황서 상임위원장을 민주당 의원이 맡게 되면 야당 단독 상임위 통과, 본회의 직회부로 법안을 넘기는 게 가능해진다.

발의 한 달 넘었는데 제자리
야 “6월 처리” 여 “반대”

특별법 통과에 먹구름이 끼면서 윗선에 대한 책임론도 사그라들고 있다. 이 장관과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 외에도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이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은 참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을 거부하면서 대부분 사법 절차를 밟고 있다.

이 장관은 야권의 사퇴 요구를 거부하다 지난 2월 국회 본회의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됐다. 직무가 정지된 상태서 현직을 유지하며 탄핵심판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윤 청장은 지난 1월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 수사서 무혐의 처분을 받고, 법적 책임이 없다는 명분으로 현직을 유지하고 있다. 김 청장은 특수본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송치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박 구청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상태지만 사직하지 않고 있다. 법원서 법적 책임이 있는지 끝까지 다퉈보겠다는 것이다. 박 구청장이 지난 2월 말까지 사직하지 않으면서 지방자치단체장의 재보궐선거서 새 구청장을 뽑을 수도 없었다.

한편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 농성에 돌입했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지난 7일 오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별법이) 숙려기간을 한참 지난 오늘까지도 관련 소관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에 안건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며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농성 돌입을 밝혔다.

이날 유족들은 “특별조사기구의 조사를 통해 참사의 진실을 마주하게 해달라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왜 정쟁으로 간주하는지 묻고 싶다”며 “진상규명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할 정부의 책무고,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피해자의 정당한 요구이자 권리”라고 호소했다.

책임지지
않는 윗선

특히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미 국정조사가 진행됐고, 책임자들에 대한 공판이 진행 중이니 특별법이 필요하지 않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참사의 책임자들은 국정조사에서도, 공판서도 책임을 부인하고 기록을 자의적으로 삭제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독립적인 진상조사기구를 통해서만 진실을 규명할 수 있고, 진실이 규명돼야만 제대로 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특별법 제정 촉구의 취지를 밝혔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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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