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태영호발 국힘 리스크 딜레마

실수? 더는 안 봐준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두 달 만에 국민의힘 지도부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한 사람도 아닌, 한꺼번에 두 명이 날아가 버렸다. 끊임없는 설화를 만들어냈던 인사들은 엄벌에 처해졌지만 이것만으로는 속이 개운하지 않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위기일 수 있어서다. 가까스로 버텨내고는 있지만, 다음 행보에도 비슷한 실수가 나온다면 정말 위태로워진다. 과연 계속되는 살얼음판의 김기현호는 괜찮을까?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 태영호 의원에 대한 징계 수위가 결정됐다. 윤리위원회는 김 최고위원에게 ‘당원권 정지 1년’, 태 의원에게 ‘당원권 정지 3개월’ 징계를 내렸다. 김 최고위원은 여전히 버티는 반면, 태 의원은 징계 수위가 결정된 날 최고위원 사퇴를 통해 한숨 돌렸다. 

공백 생긴
당 수뇌부

황정근 윤리위원장에 따르면 두 인물의 징계 사유는 각각 세 가지다. 김 최고위원은 5·18 헌법 전문 수록 반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우파 천하 통일 및 제주 4·3 사건 발언이 결정적이다. 태 의원은 제주 4·3 사건이 북한 김일성 지시라는 주장, 대통령실의 공천 개입 녹취록, 더불어민주당을 사이비 종교 단체인 JMS에 빗댄 발언이 문제가 됐다. 

앞서 국민의힘 지도부는 통상 월요일, 목요일마다 열었던 최고위원회를 두 차례 개최하지 않았다. 표면상 미개최 이유는 다른 일정 때문이었으나 일각에서는 사실상 김 최고위원·태 의원의 자진 사퇴의 종용을 위한 게 아니었냐는 해석도 나왔다. 

앞서 윤리위는 이들에 대한 징계 논의에 대해 한 차례 결정을 미뤘던 바 있다. 징계 결정을 두고 두 인사가 최고위원직서 물러날 경우 양형에 반영되냐느는 질문에 황 위원장은 “정치적인 해법이 등장하면 징계 수위는 예상하는 바와 같다”고 답했다. 결국 정치적 해법은 사퇴로 이어진 태 의원만 받아들인 모양새가 됐다.


자진 사퇴한 태 의원의 징계 수위는 윤리위서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윤리위 4차 회의가 열렸던 지난 10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태 의원은 “부족함으로 당과 윤석열정부에 큰 누를 끼쳤다”며 “당과 대통령실에 누가 된 점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윤리위도 태 의원이 스스로 물러난 것을 감안해 징계 수위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버티는 김 최고위원과 징계 수위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 일각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말이 나온다.

자진 사퇴 시 차기 총선서 공천 신청이 가능하지만, 버틸 경우 기회조차 주지 않을 가능성이 다분히 높기 때문이다. 같은 당 김용태 전 최고위원은 두 인사의 처신에 대해 ‘용산의 의중이 아니냐’고 추측하기도 했다. 버티던 태 의원이 사퇴 카드를 꺼낸 이유가 일종의 거래가 있었냐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징계는 ▲가장 낮은 수위인 경고 ▲당원권 정지 ▲탈당 권고 ▲제명의 4단계로 돼있다. 

당내에선 두 인물에 대한 징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한 최고위원도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김 최고위원·태 의원의 중징계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징계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왔던 초반, 이들은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며 여론전을 펼쳤다.

버티면 1년, 물러나면 3개월
당원보다 입김 센 전국위 표


지난 6일, 김 최고위원은 자신의 SNS에 징계를 반대하는 온라인 탄원서에 참여를 부탁한다며 지지자들을 독려하고 나섰다. 라디오 인터뷰서도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는 데 집중했다. 앞서 그는 김기현 대표로부터 경고를 받고, 한 달간 자숙하는 시간을 보냈으며 제주도를 방문해 4·3 사건 유족들에게도 사과했다.

그럼에도 여론은 점점 악화됐다. 

태 의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고 오히려 반박에 힘을 쏟았다. 날을 세우기도 했다. 자신은 때릴수록 강해진다며 태영호 죽이기에 의연하게 맞서겠다면서 물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공천 개입 녹취록 논란으로 징계 수위가 최대 1년이 나올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결국 꼬리를 내렸다. 

두 인물을 향한 비판이 끊임없이 나오자 내부서도 김 대표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팽배했다. 논란 초기만 해도 김 대표는 두 인물을 옹호했던 바 있다. 지도부에 날을 세우고 있는 홍준표 대구시장을 오히려 상임고문서 해촉하는가 하면, 경고 발언으로 논란을 종식시키려 했다. 

결국 두 인물의 징계 수위가 결정되자 김 대표는 “일부 최고위원의 설화로 당원과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러면서 앞으로 언행에 신중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윤리위가 열리는 동안 김 대표는 “잠시 (최고위원이)결원인 경우가 있지만 어떻게 그게 공백이냐? 다른 지도부는 투명 인간이냐?” 등 다소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끊임없는 설화가 터지는 사이 중도층은 줄줄이 등을 돌리며 이탈했고,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의 ‘60억 코인’ 의혹이 눈덩이가 됐지만 국민의힘은 전혀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다시 또
비대위?

게다가 강성 보수층을 의식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국민의힘으로선 과도한 우클릭으로 인한 이탈표까지 신경써야 한다. 

김 최고위원과 태 의원의 징계가 이뤄진 강성 보수층만 바라보기에는 위험 요소가 따른다는 지도부의 계산이 깔려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국민의힘은 점점 극우 이미지가 극에 달했다.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끌었으며 국민의힘과 합당을 했던 안철수 후보는 전대 기간 내내 색깔론에 휘말렸다. 심지어 최고위원, 당 대표 후보에 극우 유튜버들이 출사표를 던졌고, 자신의 조직을 과시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대부분 컷오프되긴 했지만, 국민의힘 안팎에는 판을 뒤흔들 만큼 극우 세력이 컸다. 


이번 김 최고위원의 징계 결정으로 잠시나마 극우 프레임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앞으로다. 김기현호가 출범한 지 불과 두 달여 만에 곳곳서 사고가 발생한 데다 현재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2명이 공백 상황이다.

최고위원은 당원권 정지 시 사고로 규정하며 탈당 권유부터 궐위로 인정된다. 탈당 권유 또는 제명에 따른 최고위원 궐위 시에는 30일 이내에 전국위원회를 소집해 후임을 선출할 수 있다. 당원권 정지는 궐위가 아닌 직무정지에 해당해 공석이 유지된다. 

김 최고위원이 버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당원권 정지가 의결돼 현재로선 지도부서 김 최고위원을 내칠 방법이 딱히 없다. 대신 지도부는 태 의원의 자리를 빠르게 채울 계획이다. 조만간 최고위에서는 최고위원 보궐선거 선관위를 구성하는 등 후임 선출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국민의힘 당헌 27조에 따르면 선출직 최고위원 궐위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한 달(30일) 이내에 전국위원회서 최고위원을 선출해야 한다. 데드라인은 다음달 9일까지다. 

위태로운
김기현호

전국위원회 구성은 당 대표,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최고위원, 상임고문, 시도당 위원장, 당 소속 국회의원, 시장·도지사 등 1000명 이내로 구성되며 통상 보궐선거가 진행된다. 선관위 구성 후 선출 규정을 준용하게 돼있으나 선관위 의결로 지도부가 다른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규정은 맞추기 나름이다. 내부에선 지명직으로 바꾼다는 얘기까지 나온다”며 “지명직이든 선거를 치르든, 말만 선거다. 후보 등록 기간을 주고 나서 등록해도 100% 당원 선거보다 힘이 세다”고 말했다.

지도부 의중이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셈으로 후임 최고위원의 관건은 친윤(친 윤석열)이냐 아니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미 ‘친윤 일색’이라는 비판서 자유롭지 못했던 만큼 영남권 후보와 비영남권 후보 중 누구를 선택할지 고심하고 있다.

만약 또다시 친윤 인사로 채울 경우 지역 배제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 

당내에서는 벌써부터 최고위원에 도전했던 허은아 의원, 김용태 전 최고위원이 하마평에 올랐으나 정작 당사자들은 출마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현실적으로 출마를 해 이득을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닌 탓이다.

또 다른 후보군으로 직전 원내대표 선거서 비윤(비 윤석열)계의 파란을 일으켰다고 평가받았던 이용호 의원이다. 국민의힘 내 유일한 호남(전북 남원임실순창)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이 의원은 대선 기간 무소속에서 당적을 옮겼다. 

이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최고위원직에 대해)아직까지는 제안이 없었다”고 말했지만 요청이 올 경우 최고위원직에 도전할 수도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게다가 김 대표가 취임 직후 연포탕(연대·포용·탕평) 원칙을 내세웠던 만큼 비윤계 인사의 지도부 입성 가능성도 배제할 수만은 없다. 

다급해진 지도부 최고위원 고심
용산의 뜻에 따라 다시 비대위?

문제는 대통령실의 ‘입김’으로 또다시 비대위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닻을 올린 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은 김 대표 입장에서는 비대위 구성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최고위원을 이른 시일 내에 선출해야만 한다. 비대위설은 실제 가능성은 많지 않지만 마냥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다. 

앞서 이준석 전 대표 시절에도 최고위원들이 잇따라 사퇴하면서 비대위가 구성된 바 있다. 사퇴하지 않고, 비대위를 반대한 인물은 김용태 전 최고위원뿐이다. 

이와 관련해 김 전 최고위원은 “남아 있는 최고위원들이 하루, 이틀 뒤에 줄줄이 사퇴했다”며 “비공개 회의서 대통령실의 의중이 어딘지,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할 것인지, 사퇴를 통해 비상 상황을 유발시킬 것인지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당시에는 최고위원들의 줄사퇴로 이어졌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번에도 용산의 의중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나는 국민의힘이 비대위 체제로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윗선서 비대위로 간다, 혹은 지도부를 유지한다는 결정이 서면 최고위원들이 의중을 파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2명의 최고위원이 사퇴할 경우, 두 달 만에 김기현호는 침몰할 수도 있는 만큼 이른 시일 내에 공석인 최고위원을 채워 넣어야 한다. 대외적로는 윤석열정부 출범 1년을 갓 넘긴 상황서 집권여당이 또다시 비대위 체제로 진입할 경우, 리스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관리형·안정형 대표로 선출된 김 대표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이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최고위원들이 용산의 의중을 좇는다면 김 대표 입장에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최고위원 4명 전원 사퇴 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직접 나서
수습해야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최고위원 공백 문제를)김 대표가 빠르게 수습해야 한다. 현 상황을 제대로 수습해내지 못하면 김 대표 역시 상당히 힘든 상황에 빠질 수 있어 보인다”며 “총선까지는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하루 빨리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공천 개입 의혹 수사 나서는 공수처

윤석열 대통령과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에 대한 공천 개입 의혹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특별수사본부(이하 공수처)가 수사를 맡는다.

지난 9일 공수처는 이 정무수석,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 공천 발언과 관련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 고발 사건을 특수본에 배당했다.

최근 한 언론에 의해 폭로된 태 의원의 녹취 발언과 관련해 한 시민단체가 이 수석을 직권 남용, 윤 대통령이 배후에 있다며 직권 남용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지난 2월 신설된 특수본은 비직제 기구로 김진욱 공수처장의 직속으로 운영된다.

특수본은 다른 수사 부서와 달리 통상의 결재선도 거치치 않고, 김 처장에게 직접 보고하고 지시받는 구조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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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