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재판 대반전 시나리오

CMIT·MIT 폐 도달 최초 확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가습기살균제 재판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이 커졌다. 가습기살균제 성분 물질 중 하나인 CMIT·MIT가 호흡기를 통해 폐에 도달할 수 있다는 보고서가 증거로 채택된 것이다. 해당 물질이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건 지난해 12월이다. 전문가들은 이 보고서가 재판부 논리의 허점을 파고들 ‘스모킹건’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재판부는 1심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가해기업 관계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MIT)의 인체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고 인과관계가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다. 재판부의 판단에 반박할 증거가 생겼지만 힘겨운 싸움이 될 전망이다. 통상 사실심인 1심과 2심의 결론이 다른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인과성 인정
조건 모두 충족

서울고법 형사5부는 지난달 27일,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사건 2심 공판서 검찰이 제출한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 연구보고서를 증거로 채택했다.

앞서 2021년 1월 1심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가해기업들이 가습기살균제 제조에 사용한 CMIT·MIT가 폐 질환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성분들이 폐 질환과 천식에 영향을 준다고 결론 내린 보고서는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옥시·롯데마트·홈플러스 등은 가습기살균제 제조에 사용한 성분이 폐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선행 연구 결과가 이미 있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번 항소심 재판부가 새롭게 증거로 채택한 정부 연구 결과는 지난해 12월에 발표됐다. CMIT·MIT가 폐에 도달해 폐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정량적으로 입증한 첫 연구라는 평가를 받는다. CMIT·MIT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합성해 쥐의 코에 노출한 뒤 추적한 결과 5분 뒤 폐와 간, 심장 등에서 CMIT·MIT가 확인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들은 지난달 26일 광화문광장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연구 결과를 증거로 채택하라고 재판부에 촉구해왔다.

피고인 측 변호인은 “새로운 실험 결과를 항소심서 증거로 제출하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따라서 증거 조사 절차를 통해 검찰 측과 연구 결과의 신빙성 여부를 다투게 됐다.

지난 공판에는 김재용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가 나와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노출과 간질성 폐 질환·천식은 역학적 상관관계가 인정된다는 취지로 역학조사 결과를 증언하기도 했다.

SK케미칼과 애경 등은 지금까지 법적으로 인체 유해성이 인정되지 않은 CMIT·MIT를 제조·판매했다. SK케미칼은 ‘가습기 메이트’를 만들고, 애경산업이 이를 판매, 이마트는 이 제품을 납품받아 자체 브랜드 상품으로 출시했다.

2006년부터 원인미상 폐 손상 주범으로 가습기살균제를 지목한 질병관리본부는 CMIT·MIT 제품 제조사들에 대해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고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HMG·PGH) 계열 제품들에 대해서만 강제 수거 명령을 내렸다.

환경과학원 발표 논문 “질환 일으키기 충분”
손상 관련 염증·섬유화 노출 농도 따라 증가


당시 실험서 PHMG·PGH에 노출된 쥐들은 이상 소견을 보였으나 CMIT·MIT에 노출된 쥐들은 명확한 ‘폐 섬유화’ 증상이 나오지 않았다는 게 질본의 설명이다.

문제는 CMIT·MIT 계열 제품을 사용했다가 병을 얻거나 사망한 피해자가 상당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정부에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신고한 사람은 약 8000명이다. 정부가 구제급여 지급을 결정한 사람이 4417명인데, 이 중 SK케미칼·애경·이마트의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사람은 1600여명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지원을 결정한 피해자 3명 중 1명이 CMIT·MIT 계열 제품을 사용한 셈이다.

재판부는 CMIT·MIT 노출과 건강 영향 간 인과성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3가지 기준이 충족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 기준으로 ▲CMIT·MIT가 폐 질환이나 천식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어야 함 ▲CMIT·MIT가 흡입으로 폐에 도달한다는 사실이 확인돼야 함 ▲폐에 도달해 폐 질환을 일으킬 정도의 양이 축적돼야 함 등이 있다.

CMIT·MIT가 비강이나 기도를 통해 폐까지 도달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다. 1심 재판부가 판단한 ‘CMIT·MIT의 폐 도달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논리를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앞서 1심 재판부는 물리화학적 특성상 CMIT·MIT가 폐까지 도달하기 어렵다고 봤다. 고분자중합체로 체내에 잔류하기 쉬운 PHMG·PGH와 달리 저분자 화학물질인 CMIT·MIT는 물에 잘 녹고, 몸에서 잘 분해돼 몸 밖으로 쉽게 배출된다는 변호인 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호흡기로 흡입한 물질은 상기도와 하기도를 거쳐 폐로 전달된다. 재판부는 CMIT·MIT를 흡입하더라도 대부분 비강 등 상기도서 흡수돼 폐까지 전달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허점 파고들
‘스모킹건’

환경과학원은 몸속에서 CMIT·MIT가 실제 어떻게 이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CMIT·MIT에 방사성 추적자를 합성했다. 방사성 추적자는 방사성 동위원소가 포함된 화합물이다. 방사성 동위원소가 붕괴될 때 방출하는 에너지를 측정하면 해당 물질이 몸속에서 어디로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방사성 추적자를 합성한 CMIT·MIT를 실험용 쥐의 비강과 기도에 노출시킨 결과, CMIT·MIT가 비강과 기관지를 거쳐 폐까지 이동하는 것이 시각적으로 확인됐다. 폐를 통해 전달된 물질이 간과 신장, 위장과 심장, 뇌 등 전신으로 퍼져나간 사실도 추가로 확인했다.

환경과학원은 이들 물질이 체내에 얼마나 머무는지 확인하기 위해 5분, 6시간, 1주일 단위로 방사능 농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최초 노출 후 1주일이 지난 후에도 기관지와 폐에서 CMIT·MIT 성분이 검출됐다. 특히 지금까지 불명확했던 CMIT·MIT의 위험성도 확인됐다.

CMIT·MIT를 반복 노출한 후 실험용 쥐의 기관지 폐포세척액을 분석한 결과, 폐 손상과 관련 있는 염증 및 섬유화 지표가 노출 농도에 따라 증가했다.


연구진의 이번 연구 결과는 환경과학 분야 상위 5% 수준의 국제학술지인 <국제환경>에 ‘비강 및 기관 내 투여 후 CMIT·MIT의 체내 거동 및 호흡독성’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연구진은 논문서 “CMIT·MIT가 호흡기를 통해 폐로 전달돼 폐 손상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첫 번째 보고서”라며 “이 연구의 결과는 CMIT·MIT 노출과 폐 손상 사이의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적시했다.

항소심
뒤집힐까?

연구진은 “최근 한국서 진행된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의 노출이 폐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재판서 제조사들은 무죄를 선고받았다”며 “법원 판결문에는 현재까지 CMIT·MIT 노출과 폐 손상 사이의 연관성을 나타내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고 명시됐다. 그러나 연구 결과를 고려하면 이 같은 결론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SK케미칼 등의 항소심 재판서 기존의 판단을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보고 있다. 재판부가 제시했던 3가지 판단 기준을 모두 충족하기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규홍 안전성평가연구소 인체유해인자 흡입독성연구단 단장은 “이번 연구는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된 CMIT·MIT가 호흡기 노출을 통해 폐까지 도달돼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체내 분포와 독성 연구 결과로 종합 분석해 입증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며 “CMIT·MIT가 함유된 제품이 호흡기 이외의 장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근거로 건강영향 평가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단장은 “1심 재판부가 판단 근거로 들었던 3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연구”라며 “CMIT·MIT가 폐 손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음이 확인됐고, 물질이 코를 통해 폐까지 이동하며, 폐 내에서 꽤 오래 잔류하는 것도 확인됐다”고 부연했다.

국립환경과학원 관계자는 “같은 기술로 분석한 것이지만, 이번에 사용된 방사성 동위원소는 PHMG·PGH 때 사용한 인듐-111보다 반감기가 훨씬 길어 분석하기가 까다로웠다”며 “다행히 CMIT·MIT가 비강→기관지→폐로 이동한다는 사실이 방사선 영상기법으로 확인돼 눈으로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최신 보고서 증거 채택
깨지는 재판부 논리 왜?

그러나 상황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통상적으로 형사소송은 민사소송보다 피고의 책임을 입증하기 힘들다. 1심서도 CMIT·MIT의 위해성을 보여주는 동물실험 결과가 증거로 제출된 바 있다. 한 실험에서는 CMIT·MIT에 노출된 실험용 쥐가 6일 만에 사망했고, 또 다른 실험에서는 CMIT·MIT에 노출된 임신한 암컷 쥐가 사산하거나 체중이 감소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실험용 쥐에 사용한 용량이 지나치게 과도했다 ▲코로 물질을 흡입한 게 아니라 기관에 물질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사망의 원인이 폐 손상에 의한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등의 이유로 이 실험 결과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것과 같은 환경서 동물실험을 진행했을 때, 폐 섬유화 등 명확한 증거가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 반면 학자들은 CMIT·MIT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증거 확보에 집중하면서 물질의 노출 농도와 실험 방식 등을 바꿨다.

한 전문가는 “폐에서 염증 지표가 증가했다고 해도 폐 섬유화까지는 여러 단계가 있기에 1심 재판부처럼 완벽한 증거를 요구한다면 여전히 상황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의 시각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CMIT·MIT의 물리화학적 특성에 대한 1심 재판부의 오해로 부득이하게 이번 연구가 수행됐다는 견해도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는 “CMIT·MIT를 비강에 노출했을 때 폐까지 간다는 결과는 과학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다. PHMG·PGH가 폐로 들어가서 석회층을 일으킨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그런데 PHMG·PGH는 고분자인 반면, CMIT·MIT는 단분자로 크기가 훨씬 작다. PHMG·PGH가 폐까지 들어가는데, 그보다 작은 CMIT·MIT가 폐까지 들어가지 않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같은 시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학자들은 추가 연구를 진행 중이다.

상황 바꾸기
역부족 지적

일부 연구자들은 CMIT·MIT 성분의 동물흡입시험을 수행했다. 시험 결과가 나오면 비강과 기도에 물질을 묻혀 체내 반응을 관찰한 이번 실험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해당 실험에서는 염증이 일어나기 전, 단계의 면역반응을 관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사망 원인의 인과관계가 아닌 CMIT·MIT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진행되는 SK케미칼 등 재판의 주요 혐의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인데 가습기살균제와 상해 간 인과관계 입증의 어려움으로 검찰의 어깨가 무거운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