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대담> 헌정회장 출사표 던진 정대철 전 대표

“나라꼴이 어쩌다…정계 원로들이 나설 때”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 노무현 전 대통령과 형·동생하던 사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서운한 게 있다면 대화로 풀어가던 소위 말하는 ‘인싸’ 정치인.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를 대변하는 수식어다. 그런 그가 대한민국헌정회(이하 헌정회) 회장에 자신 있게 출사표를 던졌다. 

“정치는 Agree to disagree다.”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게 진정한 정치라는 뜻이다. 갈등과 모순을 극복하고 조정, 타협해 상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대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헌정회장 후보)가 세워온 ‘정치 모토’다. 지금으로부터 약 46년 전, 정치권에 발을 들인 뒤 긴 시간이 흘러 이제는 정치원로로 불린다.

‘그만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목표가 남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념을 이어나가기 위해 대한민국헌정회장에 도전한다. <일요시사>는 최근 정 후보와 만난 자리서 정치의 정의, 헌정회장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이유, 여야의 대립 해결법 등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강연이나 강의를 자주 나간다. 과거보다 더 바쁜 나날을 소화 중이다. (강연·강의는)20년 전부터 해온 일이다. 최근에는 교황의 남북 방문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거의 성사됐다. 교황이 우리나라에 먼저 방문했다가 육로로 평양 방문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를 위해 남북통일 시대를 대비하는 차원에서는 10년이 넘게 통일시민포럼도 매달 연다. 또 꾸준히 해오던 교정 선교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50개가 넘는 교도소가 있는데 이 중 서울구치소를 정기적으로 찾고 있다. 


-정대철이라는 정치인에게는 선친과 선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어떤 영향을 받았나?

▲선친인 정일형 박사의 인생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평가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항일투사로, 해방 후에는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인물로 평생을 올곧게 살아오셨다. 선친은 개인의 평안함이나 가정의 부유함을 추구하신 분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무엇이 옳은지, 정의로운 게 무엇인지 헤아리던 분이다. 이 부분은 자식으로서 상당히 존경한다. 

선비께도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다. 선친께서 21번 체포됐었는데, 옥바라지는 물론 자식 양육까지 혼자 다 감당했다. 누비이불을 가위로 잘라서 생계를 이어가셨다. 많은 고생 탓에 손가락이 비틀어진 나뭇가지처럼 밖으로 크게 휘었다.

그러나 선비께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까지 하셨다. 선비께서는 내게 늘 인간적인 정, 겸손을 가르치셨다. 이 부분이 내 정치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부분이다. 

-이 같은 영향력을 바탕으로 정치권에 오랜 기간 몸담아왔다. 가장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면?

▲과거 선대위원장을 맡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승리해 정권을 재창출을 견인했던 기억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 부분 중 하나지만, 16대 대선이 좀 더 다이내믹하고, 극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대선 직전 정몽준 전 의원이 지지를 철회했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정 전 의원을 찾으러 다녔었다. 그러다가 내가 노 전 대통령을 태워 정 전 의원 집을 방문했는데,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아 발길을 돌렸던 기억도 난다. 간곡한 모습을 보이는 게 필요했다. 순간적인 판단력이 발휘됐던 거다. 

정치는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전직 대통령 감옥 보내는 일 멈춰야 

-김 전 대통령과도 상당히 가까운 사이였다. 정치철학은 용서와 화해였다. 그러나 최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국가적으로도 매우 불행한 일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 남아프리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떠오른다. 당시 미국은 아파르테헤이트(Apartheid)라는 흑백 분리 정책을 펼쳤다. 이 정책은 학교 교실부터 교통시설, 심지어 화장실까지 따로 사용하게 했다.

상당히 모욕적인 정책이었던 셈이다. 넬슨 대통령은 당선 후 오히려 진실과화해위원회(TRC)를 설립해, 백인이 흑인을 탄압한 사항을 신고만으로 용서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전 대통령도 비슷하다. 자신을 희생시키려고 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맏딸인 박근혜 당시 의원을 만났다. 또 전두환을 직접 만나 용서와 화해의 집권 경험을 들었다. 내게 사법적 판단할 권리는 없지만, 최근에는 전 정부와 현재 정부의 대립이 심하다.

잘한 일은 승계하고, 잘못된 일은 반면교사 삼고 국가가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는 전직 대통령이 감옥 가는 상황이 더는 벌어지지 않고, 화해와 용서의 정신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부모님의 말씀과 신념을 새긴 뒤, 오랜 기간 정치권에 몸담았다. 이제 정치원로가 됐는데, 정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다. 통상적으로 정치는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대립을 조정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활동이다. 즉 좀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행위다.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서로 간에 대립이 일어난다. 결국 민주사회에서 정치는 ‘Agree to disagree’ 서로 다르다는 인정해야 하는 게 기본이다.

다름을 인정하면 갈등과 모순이 줄어든다. 

그러나 서로 다르다 보니 모순과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이 부분을 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극복하고 해결해나가야 한다. 정치는 권력을 정당한 방법(투표)으로 획득한다는 것을 모두 안다. 권력이라는 희소가치를 남용하지 않고, 정당하고 공정하게 배분할 필요가 있다.

-여야도 마찬가지다. 대화 자체가 단절된 모양새다. 일각에선 정치가 발전은커녕 퇴보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는데… 


▲과거엔 여야 간 대화가 더욱 활발했다. 여야 의원들이 만나 정말 대화를 많이 했었다. 결국 정치는 협치와 상생이 필요하다. 한 발도 아니고 반 발자국만 물러나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특히 결과에 대한 책임은 대통령이 지게 돼있는 만큼 제일 노력해야 할 모습을 보일 사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없다. 이런 점에서 정치 선배, 자문기관을 통해서 정치에 대한 충고를 받아들이도록 하길 바란다. 최근 국민의힘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준석 전 대표, 나경원 전 대표, 안철수 의원을 발로 걷어차는 인상을 국민에게 줬다.

이 전 대표는 대선서 일정한 역할을 했고, 나 전 대표도 정치적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안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후보 단일화를 통해 정권교체에 도움을 줬던 인물이다. 충분히 포용할 수 있었다고 본다. 

“여야 반 발자국만 물러나자”
민주당 선당후사 정신 필요

-윤 대통령 옆에는 이른바 윤핵관 세력이 있다

▲윤핵관은 권력을 직접 쥐고 흔드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눈에 덜 띄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이해관계가 비교적 적은 정치원로들의 조언이 필요하다. 다만 윤 대통령 경험이 쌓이면 잘 헤쳐나가리라 믿고,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만 일해야 한다. 


-민주당 상황도 녹록지 않다. 국민의힘에게 지지율을 추월당했는데…

▲헌정회장은 당적을 갖고 있으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는 민주당을 탈당한 상태다. 민주당에도 문제는 있다. 윤 대통령이 국민적 지지를 받을 만한 행동을 못 하면 상대적으로 민주당 지지율이 올라가야 정상이다. 그러나 거꾸로 곤두박질쳤다.

심지어는 국민의힘과 지지율이12%p까지 차이가 난 적도 있었다. 민주당이 지지율을 회복하려면 선당후사의 정신이 필요하다. 당은 이재명 대표 개인 문제를 떠나서 당의 발전과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에 힘을 실어야 한다.

자꾸 이 대표 보호에만 빠져 있을 경우, 국민들 지지를 받기는 어렵다. 지금부터라도 국민적 지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개인 문제는 개인 문제대로, 당은 당대로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국회 체포동의안에 당이 몰입돼있으면 정신 못 차린 정당으로밖에 볼 수 없다. 위기는 늘 기회다. 경제, 외교, 민생 등 산적해 있는 대국민적 문제가 많다. 혹여 당이 죽으면 당 대표도 죽는다. 

-국민의힘 측과는 어떤 소통을 하나?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난 적 있는데 당시 이 대표를 만나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윤 대통령도 이 대표를 만나지 않고 있고, 국민의힘도 그렇다. 상당히 잘못됐다. 1년째 정치가 멍하니 흘러갔다. 

-조금은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내년 총선 결과를 전망한다면? 

▲비행기는 양 날개로 중심을 잡고 날아간다. 정치도 비행기의 양 날개처럼 균형이 잡혀야 제대로 비행하는 법이다. 한쪽으로 쏠리면 균형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총선을 전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지만,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 어느 쪽이든 국민감정에 어긋나버리면 그 당은 패배하는 게 자명하다. 

“독불장군 있어선 안 된다”
현실 정치에 가감 없이 조언

-헌정회장 출마를 결심한 이유와 포부를 밝혀달라

▲헌정회장은 정치에 관여하지는 않지만, 원로 기관으로서 현직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에 대한 극단의 대결구도를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이다. 정치 선배로서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유도하는 일은 당연하다. 주변서 출마 권유를 상당히 많이 받아 결국 출마를 결심했다. 

전·현직 국회의원의 모임인 만큼 국가의 원로 집단으로 봐도 무방하다. 지금까지는 그 역할을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원로 모임단체로서 국가 발전에 대한 지혜를 나눠야 한다. 출마한 이유도 국가 원로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헌정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나?

▲헌정회원으로서 평소 느낀 점을 이번에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헌정회의 위상을 제고시켜야 한다. 헌정회는 회원 스스로를 위하는 단체다. 정치 원로로서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더라도 현실 여야 정치인에게 가감없이 조언할 수 있는 단체가 돼야 한다. 

국가 원로라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 대통령과 국회의장, 여야 지도부 등을 두루 만나 정치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 국가 지도자나 정치인이 국민을 걱정해야 하며,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해선 안 된다. 

-내세우는 공약을 알려달라

▲국민은 퇴직한 국회의원이면 마냥 잘 산다고 생각하지만, 식권을 타러오는 사람도 더러 있다. 헌정회원의 복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회의원 공제회를 만들 계획이다. 국민 세금만 자꾸 축내는 모습은 국가 원로 처지에선 민망할 만한 사안이다. 세금으로만 유지하는 단체가 아니라 국회의원 공제회를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단체가 되도록 하는 게 목표다. 

특히 정계 은퇴 후 현실정치서 물러난 이들의 후생 복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군인공제회와 비슷한 개념이다. 군인공제회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이미 헌정회에는 국민 세금 70억원이 투입된다. 공제 시스템을 도입하면 퇴직한 의원의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고, 수입을 올려 장학사업까지 할 수 있는 이점이 존재한다. 

-여야 원로에게 동시 지지를 받고 있다. 이유에 대해 분석해본다면?

▲정치에는 독불장군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정치는 함께해나가는 것이다. 가두리 양식장 같은 정치는 결국 필패의 길이다. 내 정치 역정을 되돌아봤을 때 우리의 세력만으로, 우리 지지자만을 바라보는 정치를 해오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여야 원로들이 동시에 지지해준 게 아닌가 싶다. 정치인으로 살면서 항상 상대를 존중해왔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어의 몸이 됐을 때도 안부 편지를 보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중도통합의 정치를 해와서 특별히 척을 진 정치인이나 정치단체도 없다. 요즘 말로 인싸였다. 정치라는 환경에 늘 살아왔지만, 불철주야 수많은 곳을 찾아 희망을 이야기하는 모습과 교도소 교정위원으로 활동한 모습에 점수를 많이 얻는 게 아닌가 싶다. 

-정치인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정치를 논할 때는 시대적 소명을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시대의 정치적 소명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는 이 나라에 민주주의가 더욱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만들겠다. 전두환이 물러난 이후 민주화하는 데 좋은 과정을 겪고 있지만, 민주주의가 더욱 깊이 뿌리내리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인 건가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경제적으로 더욱 성장시켜 양극화를 함께 극복하고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 GDP는 세계 10위다. 아프리카 55개국 GDP 합산(2020년 기준)과 같다. 그러나 양극화가 점점 더 심해지는 추세다.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극복해내겠다.

마지막으로는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나아가 평화적 통일을 이뤄내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평화통일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시대적 소명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원로정치인로서 맡은 역할을 해나가겠다. 나의 정치 역정의 마지막 목표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헌정사상 최초 3대가 국회의원

고 정일형 박사, 정대철 헌정회장 후보, 새정치민주연합 정호준 전 의원은 3대가 모두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유일무이한 일이다. 

정 박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광복운동을 했고, 광복 후에는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힘을 쏟았다.

아들인 정 후보 역시 5선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까지 지냈다.

손자 정 전 의원은 19대 총선서 당선됐다. <차>

[정대철은?]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전 민주화추진협의회 통일문제특별위원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
▲9·10·13·14·16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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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