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특별 인터뷰> ‘불교계 큰 어른’ 여수 향일암 주지 연규 스님이 본 속세 이야기

“우리나라 종교 지도자들 부끄럽지만 게을러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아직 어둠이 다 가시지 않은 시간. 사람들은 해무가 잔뜩 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손을 모아 쥐고 해를 기다리던 이들은 예정된 일출 시간이 넘어가자 하나둘씩 사라졌다. “오늘은(해를) 안 보여 주시려나 보네.” 아쉬움 섞인 한탄과 함께 돌아서는 발걸음 뒤로 “어, 어!” 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짙은 안개를 뚫고 해가 삐져나왔다.

“향일암으로 가주세요.” 여수EXPO역에 도착한 시간은 지난달 10일 오후 6시30분. 따뜻한 기온 때문인지 눈 대신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잡은 택시는 빠른 속도로 달렸다. 향일암으로 가는 길은 굽이친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굴곡졌다. 40여분을 내달려 향일암 입구에 내렸을 때는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바다와 접한
산속의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금오산 향일암.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4년 원효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현재의 관음전 자리에 ‘원통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금오암, 책육암, 영구암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1949년 편찬된 <여수지>에는 ‘100년 전에 지금 이곳으로 옮겨 건축하고 기해년에 이름을 향일암으로 바꿨다. 암자가 바위 끝에 붙어 있고 계단 앞은 벼랑인데, 동쪽으로 향하고 있어 일출을 바라볼 수 있어서 향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쓰여 있다. 

가만히 서있어도 뒷걸음질이 쳐질 만큼 경사진 길을 걷고 또 걸어야 향일암에 다다를 수 있다. 일출 명소로 알려지면서 매년 100만명이 경사 40도의 향일암 돌계단을 오른다. 향일암 관계자에 따르면 코로나19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됐을 때도 연 70만명이 해돋이를 보기 위해 향일암을 찾았다. 


지난달 11일, 여수의 일출 시간은 오전 7시26분. 7시부터 향일암 종무소 주변이 해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가득 찼다. 바다를 뒤덮은 해무가 걷히지 않자 안타까운 탄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던 사람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붉은 해가 해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간은 오전 7시37분. 해가 뜨기 시작하자 거짓말처럼 사위가 고요해졌다. 

향일암 주지 연규 스님은 “향일암의 일출은 특별하다. 대부분 일출 명소라고 하면 바다를 마주하는 높이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곳이 많다. 향일암은 바다보다 100~200m 이상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수평선과 눈높이가 맞다. 이렇게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은 전국에 많지 않을 것”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본사 지리산 대화엄사에서 출가한 연규 스님은 지난해 6월29일 향일암 주지로 취임했다. 취임식 대신 자비행으로 취임을 알렸다. 2021년 화엄사의 말사로 등록된 부산 해동용궁사의 주지를 맡기도 했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용궁사 역시 일출 명소로 유명하다.

용궁사 이어 지난해 6월 취임
취임식 대신 ‘자비행’부터

“용궁사는 바로 눈앞에 바다가 있어요. 용궁사 앞바다는 바람이 많이 불고 파도도 많이 칩니다. 변화무쌍하고 거칠어요. 반면 향일암 앞바다는 ‘은빛 바다’라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일렁임이 거의 없는 고요한 호수 같다고 해야 할까요. 밀물과 썰물의 차이도 심하지 않고 잔잔합니다. 두 사찰에서 보는 일출은 각기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지난달 11일 오후 향일암에서 연규 스님과 마주했다. 그는 지난해 6월 향일암 주지로 온 이후 5개월 동안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연규 스님은 취임 직후 향일암에서 숙식하고 있는 20여명의 ‘식구’(직원)와 불자를 위한 건물 개‧보수 등 시설정비에 나섰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사찰인 만큼 안전사고를 대비해 CCTV도 늘렸다. 


머리 꼭대기에 있던 해가 오후 시간이 되면서 찬찬히 넘어가 햇살이 길게 들이쳤다. 찻물을 데우고 거르고 따르기를 반복하는 연규 스님의 손놀림은 조심스러우면서도 거침없었다. 질문에 대한 답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사다난했던 2022년에 대한 소회를 밝힐 때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고 2023년 새해를 맞는 국민에게는 따뜻한 당부를 건넸다. 

“올해(2022년)는 참 힘들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아직 못 벗어나다 보니 사람들이 전부 마음을 닫고 사는 것 같아요. 경쟁 구도도 더욱 심해졌고요. 얼마 전에는 이태원 참사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2023년)도 대한민국이 그렇게 밝아질 것 같진 않습니다.”

매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 해’라고 표현하지만 지난해는 유독 사회 전체가 들썩일만한 사건 사고가 많았다. 대통령선거(3월)와 지방선거(6월)라는 대형 이벤트가 연이어 열리면서 여야, 진보·보수 등 정치적 갈등이 극에 달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이태원 참사로 159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일출 보러
100만명씩

연규 스님은 “코로나는 종식 단계로 가는데 사람들의 마음 속 코로나는 종식되지 않은 것 같다. 밝은 사회를 만들려면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다 보니 곳곳에서 부작용이 자꾸 생긴다. ‘빨리빨리’ 문화가 조급증으로 이어지고 여유가 없어지면서 불안감이 늘었다”고 진단했다.

특히 세대를 넘나드는 불안감을 갈등의 제일 큰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갈등 해소에 나서야 할 정치인과 종교인의 행태를 비판했다. 정치인은 사회 갈등을 야기하고 있고 종교인 역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연규 스님은 “정치인이 제일 반성해야 한다. 가끔 정치인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묻곤 한다. 그럼 한결같이 정치학적 답변을 한다. 나는 그게 정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민을 잘 살도록 하는 게 정치인데 대부분의 정치인이 편 가르기를 하면서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집단이 세속화되고 종교인들이 부패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소신을 밝혔다. 종교인이 나서서 국민에게 잘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해시키고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종교에 대한 불신이 날로 커지고 종교 인구가 줄어드는 현 상황에 종교인의 책임도 있다는 작심 발언이다. 

실제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2021년 3월18일부터 4월7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1500명을 상대로 조사한 종교 현황에 따르면 국민의 60%는 ‘무교’다. 20대(78%), 30대(70%), 40대(68%) 등 젊은 층의 탈종교 현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속되는 양상이다. 호감 종교가 없다는 응답도 61%에 달한다. 

종교 불신
종교인 책임


“종교를 믿는 사람의 수가 줄어드는 이유로 출산율 하락을 꼽기도 하는데 그 부분도 분명히 영향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종교인이 국민에게 이정표가 돼주지 못한 게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인은 청렴해야 하며 국민에게 길을 열어주고 물음표가 아니라 느낌표를 줘야 합니다. 그런데 계속 물음표만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국민이 ‘종교도 별 거 없구나’ 생각하는 거죠.”

종교인이 갖는 말의 파급력이 일반인과 비교해 1000배 정도 큰데, 일부 종교인이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사회를 아프게 하고 병들게 하고 갈라치고 있다고 일갈했다. 또 종교가 국민과 함께 발맞춰 걸어야 하는데 실제 대중 속으로 뛰어드는 종교인이 많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종교인, 종교 지도자가 ‘우리(국민)와 같이 가는구나’라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국민이 아픔을 드러내고 의지할 수 있도록 국민과 마주하고 나눔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교와 국민 사이에 있는 괴리를 종교인과 종교 지도자의 활동을 통해 좁혀 나가자도 했다. 

연규 스님은 “부처님도 그렇게 하셨다. 길 위에서 태어나 길 위에서 45년간 설법을 하시다 돌아가셨다. 그 훌륭한 분도 그렇게 살다 갔는데 부처님의 발뒤꿈치에도 못 따라가면서 그분의 행동보다 훨씬 못한 모습으로 있다는 자체가 참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게을러서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코로나로 비대면이 확산되면서 마음을 닫은 사람이 많아진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눈치를 보는 사회가 돼야 한다. 나쁘고 무시하는 눈치가 아니라 스스로를 경계할 수 있는 눈치가 필요하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있고 욕심을 채우고 싶어도 조금씩 덜어낼 수 있는 눈치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다”고 지적했다.

정치·종교인에 쓴소리…국민에 덕담
“욕심 버리세요, 절대 못 가져갑니다”


‘아무거나 막 해도 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해 의무와 책임을 저버리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 

패륜 범죄가 늘어나는 등 가족관계가 위험하다고도 우려했다. 연규 스님은 “모든 게 연결돼있다고 생각한다. 인용하지 못하는 마음, 하고자 하는 욕심, 의무와 책임은 버려버리고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한다’는 생각이 사회현상으로 나타나면서 통제가 안 되고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수 김국환의 노래 ‘타타타’를 언급했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라는 부분이다. 태어날 때는 옷 없이 태어나지만 죽을 땐 옷(수의)을 입고 간다는 뜻이다. 살아생전 아무리 큰 부귀영화를 누렸어도 세상을 떠날 때는 무엇 하나 가져갈 수 없다. 가져가고 싶어도 가져갈 수 없다는 것. 

“욕심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욕심이 없으면 미래가 없고 미래가 없으면 오늘이 없어요. ‘이걸 하겠다’는 마음이 욕심이잖아요. 제 말은 무게를 잘 달자는 겁니다. 요즘 사람은 저울에 너무 많은 것을 올려두고 있어요. 못 가져갑니다. ‘한 만큼만 가져가자’ 이게 제 생각입니다.”

막힘없이 쓴소리를 이어가던 연규 스님은 계묘년을 맞아 국민에게 덕담을 해달라는 요청에 잠시 머뭇거렸다. 덕담이 가장 어렵다면서 잠깐 말을 골랐다. 그는 “매일매일 같은 날이면 참 좋을 것 같다. 365일이 왜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다. 늘 선물 같은 날이면 얼마나 좋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구시화문’(입은 화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계묘년에는 구시화문이 아니라 구시화복이 됐으면 한다. 서로에게 따뜻한 말을 건넴으로써 누군가에겐 의사가 되고 약사가 되고 배고픈 자에게는 식당 주인이 되는 그런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SNS나 메신저가 발달하면서 보여주기식으로 자신을 가꾸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한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꾸미는 게 아니라 나를 꾸며서 남들이 따라올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늘었으면 좋겠어요. 지식보다는 배려하는 마음, 같이 가려는 마음으로 계속 노력하다 보면 희망찬 내일, 희망찬 미래가 오지 않을까요?” 

남이 나를 
따르도록

연규 스님 등에 닿았던 햇살이 기자에게까지 다다를 무렵에야 인터뷰가 마무리됐다. 마지막으로 부처님 말씀 중 좋아하는 구절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에 연규 스님은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고 답했다. ‘어디를 가든지 그곳에서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그곳이 진리가 되리라’.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명승지 향일암 왜? “역사·학술적 가치 있다”

전남 여수 향일암 일대가 국가지정문화재가 됐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20일 ‘여수 금오산 향일암 일원’을 명승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향일암은 강원 양양 낙산사, 경남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4대 관음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금오산 기암괴석 절벽에 세워진 암자는 마치 거북이가 경전을 등에 짊어지고 남해 용궁으로 들어가는 듯한 지형적 형상과 거북의 등껍데기 무늬를 닮은 암석, 울창한 숲 등이 조화를 이룬다는 평가다. 

백도 이어 43년 만에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문화재청 관계자는 “인근에 돌산군관청, 돌산향교, 은적암, 방답진성 등 문화유적들이 다수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향일암 일원의 명승 지정은 1979년 ‘상백도와 하백도 일원’이 명승으로 지정된 이후 여수에서는 43년 만이다.

향일암 주지 연규 스님은 “향일암 곳곳이 명승이 아닌 게 없고 문화재가 아닌 게 없다. 대한민국의 보물”이라며 “아주 의미 있고 크게 축하받을 일이고 경사스러운 일”이라고 기쁨을 드러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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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