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금 5억 A사, 340억…자본금 13억 B사,
500억…자본금 1000만원 C사, 70억원….’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뭉칫돈 흐름이 포착됐다.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 씨를 중심으로 전씨 가족들이 경영하는 회사의 자금이다. 금액이 무려 1000억여원에 이른다. 이 자금은 용인 한 부지에 신탁 설정돼 있다. 하지만 이 자금의 출처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법정에서 “전 재산이 29만원”이라고 주장했던 전 전 대통령의 무일푼 신세와 대조된다는 이유에서다. 사정기관도 최근 이런 첩보를 입수해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돈의 출처를 캐는 게 관건. 사정기관은 또 회사들이 몇 년 새 급성장한 배경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차남 재용씨, 투자사 3개 법인 대표이사로 경영 행보
‘깜짝결혼’세 번째 부인 박상아 등 처갓집 식구도 참여
용인 땅 5000평에 970억 신탁
전두환 처남 이창석씨도 합작
사정기관, 극비리 출처 내사 착수
사정기관이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경영하는 회사들의 돈 흐름을 포착해 출처 등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 씨 등이 대표이사로 있는 회사 자금에 대한 내사에 착수한 것. 검찰은 이 회사들이 지난 몇 년 사이 기형적으로 급성장한 배경에도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전처 회사에 후처가…’
박씨 가족 참여후 ‘베팅’
최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재용 씨는 현재 기업 인수·합병(M&A) 및 부동산 투자 등을 목적으로 하는 A사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지난해 4월 취임했다. A사는 재용씨의 두 번째 부인 최모씨가 2001년 10월까지 대표이사로 있던 회사로, 재용 씨의 현 부인 탤런트 박상아 씨가 2006년 9월부터 감사로 등재돼 있다.
재용 씨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딸 박모 씨와 결혼 2년5개월만인 1990년 이혼 뒤 1992년 최씨를 만나 결혼생활을 하다 2007년 2월 또다시 갈라섰고, 같은 해 7월 탤런트 박상아 씨와 세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박씨가 결혼 1년 전부터, 나아가 재용 씨 부부가 이혼 전부터 A사의 감사로 활동한 셈이다.
지난해 12월엔 재용 씨의 장모 윤모씨와 처제 박모씨가 추가로 이사에 올랐다. 검찰의 ‘170억원 괴자금’ 수사 과정에서 윤씨의 계좌에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흘러들어간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전재용-박상아의 은밀한 관계가 세상에 알려진 것도 이때부터다.
이들은 서울 강남의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버젓이 대형 승용차를 끌고 유유자적하는 모습이 목격되는 등 초호화 결혼생활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A사는 재용 씨가 대표이사로 재취임한 지난해 4월을 전후해 사옥을 이전하는가 하면 건설업 등 20여개의 사업 목적이 추가돼 재건 움직임이 감지됐다. 재용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A사는 휴지조각과 같다. 언젠가는 회사를 다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죽이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전까지 복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사실상 수년간 업무가 마비돼 있던 A사는 재용씨의 처가인 박씨 가족이 경영에 참여한 직후 본격적인 ‘베팅’에 나섰다.
<일요시사> 확인 결과 A사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대한물류센터 부지에 신탁을 설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수원지방법원에 따르면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A사는 지난해 12월말 신한은행, 국민은행에 이어 이 부지의 우선수익자 3순위로 올라있다. 신탁금은 무려 340억원이다.
A사는 이 돈을 한도로 대한물류센터 땅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권리를 내세울 수 있다. 10여년째 각종 암투와 비리 의혹으로 얼룩져 ‘제2의 수서 사건’으로도 불리는(본지 10월24일자 666호 참조) 이 부지의 면적은 1만6544㎡(약 5000평)에 이른다.
눈에 띄는 대목은 A사와 함께 공동 3순위에 올라있는 명단이다. 서울 서초동 14○○-○○ ××빌딩 3층에 자리 잡은 A사와 주소지가 같은 B사도 우선수익자로 설정돼 있다. 자본금 13억원인 B사의 신탁금은 무려 500억원이다.
공교롭게도 신탁 명부엔 낯설지 않은 인사도 포함돼 있다. 바로 전 전 대통령의 처남(이순자 남동생)이자 재용씨의 외삼촌 이창석 씨다. 이씨는 검찰의 2004년 ‘전두환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은닉자금으로 추정되는 ‘뭉칫돈’ 수십억원이 발견된 계좌의 주인이다.
이씨는 개인 명의로 130억원이 설정된 상태다. 부동산개발 업체인 B사의 대표이사도 다름 아닌 이씨와 재용 씨가 공동으로 맡고 있으며 재용 씨의 처제 박씨도 이사로 있다.
재용 씨의 또 다른 회사로 확인된 C사는 신탁 변경 전 70억원을 설정했지만 A사와 B사, 이씨로 변경된 이후 삭제됐다. 역시 부동산임대업 등이 사업 목적인 C사는 재용 씨가 대표이사로, 이씨가 이사로 등재돼 있다. 자본금은 1000만원에 불과하다. C사도 A·B사와 주소지가 같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용인 대한물류센터 부지는 수도권 마지막 노른자로 개발 시 막대한 투자 가치가 예상되는 지역”이라며 “지역 부동산업자들 사이에선 요즘 땅값 하락 등을 감안해 몇 년 뒤 호재가 발생하면 적게는 수백 배에서 많게는 수천 배까지 수익을 장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3개 회사 같은 주소지
사업 모두 건설·부동산
사정기관 관계자는 “A사와 B사, 그리고 이씨 등 전씨 일가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회사들이 투자와 위치가 한곳에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것이 뭔가 석연치 않다”며 “이들 회사의 밑천과 투자금이 은닉 재산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출처와 용처 등을 추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들 회사는 본지의 취재를 거부했다. 회사 측의 반론이나 해명을 듣기 위해 사무실을 찾아가는 등 수차례 공식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재용 씨 측근에게도 공식 취재를 요청했으나 어떠한 답도 오지 않았다.
다만 A사 한 직원은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관계자는 “개인이 운영하는 회사가 무슨 사업을 하든지 언론이 무슨 상관이냐”며 “현재 진행되는 사업 내용도 자세히 모르고 알아도 알려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전씨 부자의 공식적인 재산은 없다. 전 전 대통령은 1997년 2월 비자금 조성 혐의로 선고받은 추징금 2205억원 가운데 검찰이 강제 집행한 재산 등 납부한 532억원을 제외한 1673억원을 지금껏 내지 않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2003년 4월 법원의 재산명시 심리에서 “전 재산은 예금 29만원뿐”이라고 밝힌 뒤 ‘전 재산’마저 추징금으로 납부했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의 숨겨진 재산을 끝까지 찾아내 모두 추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2006년 6월 서울 서초동 땅 추징을 마지막으로 3년이 다 되도록 추징이나 납부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검찰이 초조해 하는 이유다.
전 전 대통령 추징금에 대한 강제집행 소멸 시효는 올해 6월까지다. 그 사이 그의 재산을 추가로 찾아내 추징하면 시효는 다시 3년 연장되지만 아직까지 추징 작업은 제자리다.
‘무일푼 가족인데…’
자금 흐름 예의주시
사정은 재용 씨도 마찬가지다. 재용 씨도 국가에 납부해야 할 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벌금과 증여세 등 100억원이 넘는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전씨 가족 모두의 재산 내역을 지속적으로 샅샅이 들여다보고 있다. 특히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 씨는 검찰이 항상 예의주시하는 인물이다. 그동안 ‘전두환 비자금’과 관련해 여러 번 수사선상에 오른 탓이다.
재용 씨는 2004년 2월 외할아버지(이규동 씨)로부터 167억원어치의 국민주택채권을 받고 71억여원의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 재판은 1심과 항소·상고·파기환송심 등으로 이어졌고 결국 2007년 6월 재용 씨가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28억원을 최종 선고받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재용 씨는 2004년 10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당시 법원은 재용 씨가 외조부에게 받은 채권이 사실상 전 전 대통령이 증여한 돈이란 해석을 내렸다.
국세청은 이에 따라 재용 씨에게 80억여원의 증여세를 부과했고 재용 씨가 불복해 부과처분 취소 소송을 법원에 냈으나 지난해 7월 “증여세 77억원을 납부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검찰은 2006년 11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5공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뭉칫돈 수십억원의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재용 씨의 계좌를 추적했지만 공염불에 그친 바 있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전씨 일가가 은닉한 비자금이 얼마나 되고 어디에 숨겨져 있을지는 아직 미스터리”라며 “해외 유출과 부동산 투자에 주목하고 있는데 두 부분 모두 유출 경로와 명의 확인이 쉽지 않아 추징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