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만난 노동운동의 한계

‘단결 투쟁’은 이제 옛말?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단결’ ‘투쟁’으로 대표되는 한국 노동운동사가 큰 변곡점을 맞았다. 바로 사회 주류로 발돋움하는 MZ세대와의 조우다. 기성세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MZ세대의 성향이 강성 노조의 활동 전략마저 뒤흔들 것이란 전망이다. 노동계 안팎에선 최근 민주노총의 ‘총력투쟁’이 별 소득 없이 일단락된 원인 중 일부도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야말로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노동계의 수난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그렸던 ‘총파업 시나리오’는 시작도 전에 막을 내린 반면 정부의 반격은 멈출 기미가 없다. 아울러 노동계 안팎에서는 “더 이상 단일대오는 없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MZ세대를 필두로 노동계 분화가 본격화됐다는 의미다. 

노동계 
지각변동

민주노총이 총파업 첫 단추로 삼았던 화물연대는 집단 운송거부를 결행했다가 빈손으로 물러났다. 이들은 지난 9일 전 조합원 총투표를 거쳐 파업을 전격 철회했다. 지난달 24일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를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한 지 16일 만이었다.

정부는 시종일관 법과 원칙을 내세웠다. 정부는 “불법 파업과는 타협할 수 없다”며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민주노총은 파업 막바지 물밑협상을 타진했지만, 정부의 ‘선복귀·후대화’ 기조를 깰 수는 없었다.

결국 우려했던 장기전은 없었다. 그 배경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국민 여론 악화 ▲내부 분화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언급된 두 요인의 중심에는 모두 MZ세대가 있다. MZ세대는 국민 여론에서도, 노동계 안에서도 이번 파업을 등졌다. 


우선 여론은 전반적으로 화물연대 파업에 부정적이었다. 지난 9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화물연대가 우선 복귀한 뒤 협상해야 한다’는 응답이 71%에 달했다. 반면 ‘주장이 관철될 때까지 파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응답은 21%에 그쳤다.

어려운 경제 상황 속 파업이 물가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강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화물연대가 국민들 지지를 얻을 마땅한 명분을 찾지 못한 게 원인이라는 시각도 있다. 화물연대는 지난 6월에도 14일간 총파업을 벌인 바 있다. 화물연대가 한 해 두 번 이상 파업을 벌인 건 올해가 2003년 이후 처음이다. 

MZ세대 여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응답자 중 20대의 67%가, 30대의 72%가 우선 복귀 협상을 골랐다. 이는 노년층(60대 82%·70대 이상 84%)보다는 낮지만 기성세대(40대 59%·50대 69%)를 상회하는 수치다.

하지만 MZ세대가 노동운동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파업 대응에 관한 다른 항목에서 20대와 30대의 ‘잘하고 있다’ 응답 비율은 각각 17%, 19%에 불과했다. 이는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낮은 수치였다.

반면 ‘안전운임제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지속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응답은 52%와 57%에 달했다. 전체 응답자 평균(48%)을 가뿐히 넘긴 비율이다.

민주노총과 ‘궤 안 맞는’ 세대?
투쟁 일선서 이탈…새 노조 조직


결국 MZ세대는 파업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파업 강행에는 부정적 의견을 내비친 셈이다. 학계는 일견 모순적인 결과를 놓고 “MZ세대는 파업 여부보다도 투쟁 방식에 불만을 가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노동사회학 전공의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통계자료를 보면 MZ세대는 파업 명분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럼에도 복귀를 원하는 여론이 높은 이유는 총파업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MZ세대는 그 누구보다도 노동 이슈에 관심이 많은 세대다. 다만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세대 특성상 집단주의적 투쟁을 강조하는 민주노총 방식은 수용하기 꺼리는 것”이라며 “단순히 젊은 세대의 정치 성향 우경화를 파업 반대의 원인으로 꼽는 건 설득력 없는 갈라치기”라고 덧붙였다.

B 교수는 MZ세대식 사고가 이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봤다. 그는 <일요시사>에 “MZ세대에게 맹목적인 지지란 없다. 같은 대상에게도 사안별로 지지 여부가 달라진다. 이게 기성세대와의 차이점”이라며 “이 때문에 명분에는 공감하면서도 파업을 지지하지 않는 입장이 더 명확히 드러난다. 같은 입장의 기성세대였다면 결국 지지·합류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MZ세대의 특징은 사회적으로 익히 알려진 대로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수평적인 소통을 추구한다. 필요성이 확실히 입증되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 실용성과 합리성도 엿보인다. 이 같은 특징들은 기존 노조 문화와 여러 지점에서 충돌한다.

민주노총의 연대·총파업은 주된 투쟁 전략 중 하나다. 이들은 다른 사업장·산업의 이슈에도 함께 목소리를 내고,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왔다. ‘민주노총’이라는 단위 아래에서 서로를 ‘동지’로 여기는 인식도 강하다.

빈손 복귀
더 큰 위기?

하지만 MZ세대는 그렇지 않다. 이들은 다른 사업장·산업 이슈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 때문에 확실한 동기 부여 없이는 연대·총파업 참여율이 저조할 수밖에 없다. 일단 파업에 참여했더라도, 그 동력이 유지되지 않으면 중도 이탈하는 사례도 목격된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에서도 젊은 조합원 다수가 조기 이탈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직후 일부 화물 기사는 국토부에 먼저 연락해 “명령서를 빨리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 중 상당수가 20~30대의 젊은 기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맥락에서 MZ세대는 기존 노조의 경직된 분위기를 기피한다. 조직 내 복잡한 조직관계와 강한 위계질서에 불만을 느끼는 젊은 조합원들이 많다는 것이다. 

주된 활동층인 기성세대와의 세대 차이·갈등도 불만의 한 축이다. MZ세대 조합원은 의견 개진·간부 선발 등에서 기성세대에 밀려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이와 관련된 문제 제기가 나왔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은 지난해 2월 ‘청년 조합원의 경험과 노동조합의 대응과제’ 보고서를 발표했다. 노동연구원 역시 보고서에서 청년층 조합원의 참여율이 저조한 이유로 ▲세대 차이 ▲노조의 빈약한 동기 부여 ▲투쟁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 등을 꼽았다.


노동연구원은 특히 투쟁 방식에 대한 세대별 의견 차이에 관해 “면접 내용에 따르면 젊은 조합원일수록 예전과 달리 언론을 이용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투쟁하는 온건한 전략을 선호한다”며 “(젊은 조합원 사이에서)‘사회 분위기가 변화하면서 노조가 과거와 같은 투쟁을 하면 큰일 날 수 있다’거나 ‘과격한 투쟁으로 문제가 생기면 아무도 책임져 줄 수 없다’는 인식이 있다”고 짚었다.

또 “MZ세대 조합원들이 집회 일변도를 벗어나 유튜브 활용 등 새로운 투쟁 방식을 제시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불만이 많다”는 분석도 언급됐다.

쌓인 불만
떠나는 MZ

민주노총을 비롯한 기존 노조를 향한 불만은 MZ세대가 직접 새로운 노조를 조직하려는 시도로 귀결됐다. 이 중 일부는 민주노총 산하 노조의 ‘대안세력’으로 떠오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올바른노조’가 대표적인 예다. 올바른노조는 지하철 1~8호선 및 9호선 일부 구간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제3노조다. 지난해 8월 결성됐으며, 조합원의 약 90%가 MZ세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교통공사의 제1노조는 민주노총 소속의 공사 노조다.

이들은 지난달 30일 서울교통공사 양대 노조가 6년 만에 총파업에 돌입하자 이를 ‘명분 없는 정치파업’으로 규정하며 불참했다. 그런데 교섭 기간 중 젊은 직원 상당수가 공사 노조에서 올바른노조로 옮겨왔다. 노사 교섭이 진행되던 한 달 사이 조합원 수가 1250여 명에서 1900여 명으로 52%가량 증가했다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파업에 불참하고도 조합원이 급증한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와 관련해 송시영 올바른노조 위원장은 “공사 노조가 주도하는 불합리한 정치투쟁에 염증을 느낀다며 올바른노조로 넘어오는 직원이 많다”고 설명했다.

올바른노조는 독자적인 활동 방향을 구축했다. 이들은 ▲상급단체 없는 직원만을 위한 노동조합 ▲합리적인 조합비 ▲다양한 소통 채널과 빠른 피드백 ▲수평적 문화 구축 등을 내세우고 있다. 

때로는 공사 노조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한다. 2018년 서울교통공사가 무기계약직 노동자 1300명의 정규직 전환을 두고 갈등을 빚은 문제는 올바른노조의 설립 계기가 됐다.

송 위원장은 “당시 정규직 전환에 주도적으로 나선 것이 공사 노조다. 정규직 증가로 기존 직원의 피해는 없다고 했는데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충분한 소통 없이 이뤄진 불공정한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답답했다. 앞으로 직장생활을 오래 이어가야 하는 젊은 직원 중심으로 새로운 노조를 결성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강성 대신 온건 교섭 선호 성향 
정부 압박 커지면 복귀할 수도 

실제로 2019년 감사원은 ‘비정규직의 채용 및 정규직 전환 등 관리실태’ 감사보고서에서 “서울교통공사가 관련 법령에 따른 능력 실증 절차 없이 2018년 3월 무기계약직 1285명 전원을 일반직으로 신규 채용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감사원 감사로 이 중 192명이 기존 재직자의 친인척으로 드러나 논란이 인 바 있다.

다만 ‘MZ노조’가 마주한 현실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단체교섭권 확보, 기존 노조와의 관계 설정 등 난제가 산적했다. 

2011년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라 사업장별로 복수 노조를 설립할 길이 열린 건 맞지만,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있는 노조는 여전히 1곳으로 제한된다. ‘기존 노조 소속 근로자와 근로 조건 등이 크게 다른 경우’에는 노동위원회에 교섭 단위 분리를 신청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있긴 해도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 실정이다.

기존 노조의 견제도 견뎌야 한다. 코레일네트웍스 일반직 노동조합은 지난해 4월 기존 노조와 별개로 단체교섭권을 획득했다. 이 노조 역시 조합원 90% 이상이 MZ세대 직원이다. 

그런데 지난해 7월 민주노총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서울행정법원에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코레일네트웍스 일반직 노조 교섭단위 분리결정을 취소하기 위해서였다.

일반직 노조 측에서는 “노조에 의한 노동3권 침해”라며 “복수 노조 시대에 다른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회사와 교섭창구를 독점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당시 법원은 일반직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제3부는 지난 6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철도노조가 항소하지 않으면서 판결은 확정됐다. 

노동현장 속 MZ세대 비율이 점차 늘어나는 만큼 ‘노동계 대격변’은 앞으로 더욱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 가지 변수는 남아 있다. 정부의 노동정책에 따라 MZ세대의 노동운동 방향이 변화할 여지는 상존한다. 

독자 활동
과제 산적

현 정부는 강도 높은 노동개혁과 함께 반(反)노조 의사를 분명히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우리 경제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2차례의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된 후에야 이 파업이 끝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파업기간 중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사태가 일단락됐다고 해서 과정 중에 있었던 각종 불법·폭력행위에 대해 그냥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후 정부의 노조 압박강도가 임계점을 넘어가면, MZ세대의 강성 투쟁 합류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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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전 서열 2위’ 국회의장 쟁탈전

‘의전 서열 2위’ 국회의장 쟁탈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대한민국 의전 서열 1위는 대통령이다. 그다음은 통상 국회의장으로 분류된다. 의전 서열 2위를 차지하기 위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거물급 잠룡들의 몸풀기가 시작됐다. ‘친명(친 이재명계 일색’ 민주당에 국회의장까지 ‘찐명’ 몫으로 돌아갈 상황이다. 차기 국회의장(이하 의장)에 누가 오를지 관심이 쏠린다. 당초 4파전으로 예고됐던 선거가 지난 주말 사이 우원식·추미애 당선인의 양자구도로 정리되는 등 물밑 경쟁도 치열한 양상이다. 그동안 의장직은 다수당의 5선 이상인 중진급 의원이 맡는 게 관례였다. 원내 정당의 의견을 교섭하고 조율하는 역할인 만큼 계파색이 옅은 인사가 적임자로 여겨졌다. 이는 국회의장에게 주어지는 ‘직권상정’이라는 특권 때문이다. 의장은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시킬 수 있는 힘이 주어진다. 가운데서… 외로운 싸움 현재 국회를 이끄는 수장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출신인 김진표 국회의장이다. 김 의장의 임기는 오는 29일 종료되며 차기 의장은 오는 16일 선출된다. 김 의장은 국민의정부서 중용돼 부총리를 비롯한 장·차관 등을 역임했다. 2002년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한 후에는 수원서 내리 5선에 성공하면서 당내 우직한 인사로 평가받아왔다. 선수가 높았던 탓에 21대 전반기 국회의 의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당시 6선이었던 박병석 의원과 단일화가 이뤄지면서 자연스럽게 불출마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김 의장은 이로부터 2년 뒤인 2022년 21대 후반기에 의사봉을 쥔 후로 지금까지 국회를 이끌고 있다. 당선 당시 김 의장은 “제 몸에는 민주당의 피가 흐른다”며 “당적을 졸업할 때까지 선당후사의 자세로 민주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중립을 유지해야 하는 의장이 당에 대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우려와 달리 김 의장이 무조건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는 일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오히려 임기 막바지엔 친정인 민주당으로부터 쓴소리를 듣기까지 했다. 법안 상정 시 여야 합의를 지나치게 중요시한다는 점에서다. 이와 관련해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본회의에 (법안을)올릴 때 무조건 우리 편을 들어달라는 게 아니다. 적어도 민심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봐야 할 것 아닌가”라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21대 후반기 국회는 ‘역대 최악’이라는 평을 받을 만큼 험난함의 연속이었다. 여야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온갖 특검법이 쏟아지면서 강대강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평소 온화하기로 소문난 김 의장조차 본회의 진행 중 의원들의 고성이 이어지자 처음으로 “국민이 보고 있습니다!”라며 언성을 높이기까지 했다. 4·10 총선 이후 본격적인 수난 시대가 열렸다. 이번 총선을 통해 ‘윤석열정부 심판론’이 힘을 받자 정부·여당을 향한 민주당의 압박 수위가 단숨에 높아진 탓이다. 지난 2일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는 과정서 김 의장의 고초가 그대로 드러났다. 당시 김 의장은 멕시코·인도네시아·대한민국·튀르키예·호주 의회로 구성된 협의체인 ‘믹타(MIKTA)’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야당 내에서 “해당 법안을 상정하지 않을 경우 출장길을 막겠다”며 의장을 압박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어르고 달래도 소용없는 여야 21대 국회 끝도 진흙탕 싸움 본회의 직전까지도 야당 의원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의장실서 나온 김 의장 옆으로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여야 합의가 필요하다”며 끈질기게 쫓아가는 장면이 포착됐다. 강 의원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붙자 김 의장은 “알아들었다” “본회의장서 한다니까”라며 결국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채 상병 특검은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돼 통과하면서 김 의장을 향한 공세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전세 사기 특별법 등 예민한 현안이 산적한 만큼 21대 국회 폐원 전까지 김 의장의 책임은 여전히 막중하다. 국회의원 300명이 모두 만족하는 결과를 도출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김 의장은 언제나 여야 협치에 방점을 찍었다. 이번 21대 국회가 이견 조율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불만이 나오자 차기 의장을 노리는 후보들은 저마다 ‘탈중립’을 강조하면서 대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가장 먼저 신호탄을 쏴 올린 인사는 경기 하남갑에 당선돼 6선 고지에 오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다. 추 당선인은 지난달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국회의장이 될 가능성과 관련해 “국민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혁신 의장에 대한 기대라면 얼마든지 자신감 있게 그 과제를 떠안을 수 있다”고 말해 출마를 암시했다. 추 당선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의장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중립도 아니다”라는 파격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후 강성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그를 차기 의장으로 밀어줘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다른 후보 역시 앞다퉈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5선인 민주당 우원식 당선인은 후보 등록 첫날인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개혁 의장이 되겠다”며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우 당선인은 자신을 이 대표의 ‘사회개혁 가치의 동반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윤정부에 맞서기를 주저한 적이 없다. 국회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마음으로 임하겠다”며 “말로만이 아닌 온몸을 던져 싸워왔다. 윤정부의 민주주의 후퇴, 삼권분립 훼손에 단호히 맞서 제대로 싸울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6선 민주당 조정식 당선인도 같은 날 출마를 선언했다. 조 당선인은 입장문을 통해 “국회 국토교통위원장과 예결위 간사, 당 정책위의장 및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며 실력을 검증 받았다”며 “특히 지난 1년 8개월 간 당 사무총장으로서 이 대표와 함께 민주당을 지키고 총선 승리를 이끄는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확 바뀐 패러다임 조 당선인은 이번 총선의 민의를 ‘민생회복과 윤정부에 대한 심판과 견제를 제대로 하라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22대 국회는 국민의 명령을 제대로 실현해야 한다”며 “당원과 국민의 뜻을 받들고 개혁국회의 성과를 낼 국회의장이 선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 당선인은 후보 마감일인 지난 8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민의를 따르는 ‘개혁국회’를 만들어 민생을 되살리고 평화를 수호하며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며 “첫 번째 민생 입법으로 이 대표가 제안한 신용사면 등 처분적 법률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친명 좌장으로 불리는 5선의 민주당 정성호 당선인도 같은 날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빛나게 하는 ‘뒷바라지 국회의장’이 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정 당선인은 “이번 총선의 민의는 소극적 국회를 넘어서는 적극적이고 강한 국회를 실현하는 것”이라며 “이를 받들어 국회의 권위를 회복하고 민생과 민주주의의 효능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국회를 만들어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하던 5선 민주당 박지원 당선인은 “지금은 제가 나설 때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어 “22대 국회가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우리 당의 좋은 국회의장 후보가 선출되기를 기대한다”며 “이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나라를 살리고 민주당이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렇듯 4파전으로 치러질 예정이었던 의장 선거는 주말 사이 급격한 변화를 보였다. 지난 12일, 조 당선인과 정 당선인이 자진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추 당선인과 우 당선인으로 후보군이 압축됐다. 조 의원은 이날 추 당선인과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뒤 “민주당이 대동단결해서 총선 민심을 실현하는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해 제가 마중물이 되고자 의장 후보직을 사퇴한다”며 “추 후보가 연장자라는 점을 존중했다”고 설명했다. 정 당선인도 입장문을 내고 “민주당의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해 더 열심히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 당선인과 달리 추 당선인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진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친명계 핵심부가 의장 선거를 앞두고 추 당선인으로 교통정리에 나섰다고 해석했다. 추 당선인은 후보 중 가장 선수가 높고 연장자인 만큼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기 위해 관례에 따랐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추 당선인의 선명성을 높이 샀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선명성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은 데에는 김 의장의 과도한 중립성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풀어지는 중립 기어 추 당선인은 “옳은 방향으로 갈 듯 폼은 다 재다가 갑자기 기어를 중립으로 넣어버리고 멈춰버려 죽도 밥도 아닌,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리는 우를 범한 전례가 있다”고 꼬집은 바 있다. 선명성 경쟁에 대해 최요한 시사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김진표 학습 효과’라고 해석했다. 최 평론가는 “김 의장은 ‘일단 여야가 합의를 해오지 않으면 상정하지 않겠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데 대다수의 민주당 당원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때문에 22대 국회의장 선거에서는 기계적 중립이 필요 없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의장 선거를 약 일주일 앞두고 “기계적으로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기류가 점차 굳어지는 분위기다. “의장이 아닌 정부·여당과 맞서 싸우기 위한 당 대표를 뽑는 것 같다”는 여권의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지난 3일 친명계 박찬대 의원이 신임 원내대표로 선임된 가운데 의장까지 친명 체제로 꾸려진다면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22대 국회처럼 여소야대 국면서 야당이 강경 입법 드라이브를 예고한 상황이라면 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9개의 법안을 21대 국회서 마무리하겠단 방침이다. 폐원 전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22대 국회로 넘어가게 된다. 그동안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은 양곡관리법을 비롯한 ▲간호법 ▲노란봉투법(노조법) ▲방송 3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등이다. 민주당 박찬대 신임 원내대표는 “우선순위를 정해 순차적으로 발의할 수 있다”면서도 “필요 시에는 이들 법안을 묶어 ‘패키지’ 형태로 재발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여기에 민주당이 국회 법사위와 운영위원회(이하 운영위) 등 중요 상임위를 모두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여당은 협상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민주당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모두 가져가면 야당이 추진하는 법안을 빠르게 통과시킬 수 있게 된다. 대통령 재의요구권인 거부권 외에는 막을 방법이 없는 만큼 여당의 부담이 가중되는 셈이다. “한쪽으로 기운 의장은 꼭두각시” 우려에도 ‘찐명’ 내세운 이유? 그동안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밀어붙일 때마다 ‘입법 폭주’라며 “타협과 절충으로 이뤄낸 협치의 싹이 또다시 거대 야당의 폭주로 꺾였다”고 비판해 왔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국회의원 개인의 목소리를 억제하고 이 대표의 엄명을 따르라 강요하는 것은 국민 기만행위”라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대한민국 의전 서열 2위이자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 후보로 나선 민주당 후보들조차 이 대표의 눈에 들어보겠다며 위헌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며 “이 대표 연임 추대론까지 밀어붙이고 있는 민주당은 전체주의 집단으로 전락한 것인가”라고 견제에 나섰다. 민주당 단일 체제에 우려를 표하는 건 여권뿐만이 아니다. 김 의장도 “한쪽 당적을 계속 가지고 편파된 의장 역할을 하면 그 의장은 꼭두각시에 불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MBN과의 인터뷰서 중립의무를 비판한 후보를 겨냥한 듯 “조금 더 공부하고 우리 의회의 역사를 보면 그런 소리한 사람 스스로 부끄러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장 선거를 앞두고 의장의 중립적인 태도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커지자 이를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의장은 “국회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가적 현안을 여야 간에 협의하라고 국민이 위임한 기관 아니냐”며 “끝까지 협의해야 제대로 된 선진 민주정치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력이나 국민의 의식은 다 높은 수준에 가 있는데 정치인들만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 전부 아니면 전무)’의 정치를 한다”며 지적하기도 했다. 싹쓸이 한다면… 정치권에서는 의장 후보들이 선명성을 강조하는 모습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김 의장의 국회 운영 방식에 갈증을 느꼈다는 평이 대부분이지만 거대 야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실행력 있는 의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점차 무게가 쏠린다. 민주당 내에서는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과 ‘민심’은 다르다며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당 일각에선 “여당과 협치보다는 총선서 승리를 이끈 이 대표와 호흡이 잘 맞는 사람이 의장직에 어울리지 않겠냐”는 설이 나오면서 민주당이 22대 국회 고삐를 꽉 죄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민주당은 민심을 빠르게 좇지 못한 김 의장이 비판받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며 “(민주당이)국회를 쥐더라도 민심을 잘 파악한다면 지금과 같은 비판은 잦아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회부의장도 친명전 차기 국회부의장(이하 부의장)을 거머쥐기 위한 경쟁도 막을 올렸다. 야당 몫의 부의장 후보로 4선의 남인순·민홍철·이학영 의원이 물망에 오르면서 해당 선거 역시 최소 3파전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후보들은 이번 총선 승리의 의미를 강조하며 국회의장(이하 의장)과 합을 맞춰 22대 국회를 ‘개혁 국회’로 이끄는 데 방점을 찍었다. 부의장은 의장과 달리 당적 보유가 가능하다. 이들 중 대다수가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만큼 22대 국회가 개원하는 동시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영향력이 강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