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일본 효고의과대학 주임교수 니시오 하지메

“부검은 국가의 마지막 서비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법의학자는 주검을 통해 죽음을 본다. 부검대 위에 오른 주검은 몸에 남은 흔적으로 법의학자와 마지막 교신을 나눈다. 일본의 법의학자 니시오 하지메 교수는 20여년 동안 수천구에 달하는 주검의 이야기를 들었다. 저마다의 사연 속에서 그는 ‘죽음에도 격차가 있다’는 하나의 진실을 찾아냈다.

스테인리스 부검대 위에 놓인 주검을 멀리서 바라본다. 주검 전체를 한 눈에 담은 뒤 가까이 다가가 구석구석을 자세히 살핀다. 떠오르는 의문을 머릿속에 정리하고 메스를 든다. 니시오 하지메 일본 효고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주임교수가 ‘죽음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하는 과정이다. 

불행한 죽음

196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니시오 교수는 가가와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을 다녀온 뒤 오사카의과대학 법의학교실에서 일했다. 2009년부터는 효고의과대학에 재직하며 효고현 한신지구 6개 시와 1개 정의 법의부검을 담당하고 있다. 25년 동안 3000구에 이르는 주검을 부검하면서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마주했다. 

2019년 3월 <죽음의 격차>라는 제목의 책이 한국에 상륙했다. 앞서 일본에서는 2017년 3월 <死體格差 解剖台の上の「聲なき聲」より>라는 제목으로 발간됐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시체격차 해부대 위의 ‘소리 없는 목소리’에서>다.

니시오 교수는 오랫동안 마주해온 부검대 위의 죽음에서 가난과 고독, 그리고 노화가 만들어낸 ‘격차’를 발견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부검대에 오르는 주검은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많다. 일부 사람은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한 채 ‘변사체’로 통칭돼 법의학자와 만난다. 니시오 교수는 저서에서 “변사체가 되는 죽음 자체가 일본 사회의 음지에 속해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서술했다.

지난 14일 오후 줌 인터뷰를 통해 니시오 교수를 만났다. 다음은 니시오 교수와 일문일답.

-<죽음의 격차>를 저술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경찰의 요청이 있을 때 사체 부검을 한다. 부검 결과는 기본적으로 경찰 이외의 사람에게는 공개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그래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책을 쓰는 일을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한 기자가 ‘법의학 현장을 일반인에게 전달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말해 관심을 갖게 됐다. 

현장에서 본 죽음의 격차
부검대 위의 사회적 약자

-죽음의 격차는 왜 생긴다고 생각하는지?

▲부검 과정에서 만나는 주검은 평온한 죽음을 맞지 못한 경우가 많다. 고독사 등 여러 사회문제로 인해 사망한 사람이나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을 부검대에서 마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크게 보면 경제 상황이나 건강 문제가 근본적으로 작용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죽음의 격차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보는지?

▲현재 불거진 사회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상 계속될 것 같다. 예를 들어 고독사의 경우 처음 그 단어가 보도됐을 때는 다들 놀라고 충격을 받았지만 지금은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도 죽음에 이르게 된 한 과정으로 흔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으니까.

-저서에서 법의부검을 ‘인생 최후에 받는 주민서비스’라고 표현했다

▲부검을 하다 보면 혼자 살다가 사망해 오랜 시간 뒤에야 발견된 사체들이 굉장히 많다. 사체가 손상되거나 부패된 상태로 부검실에 오는 것이다. 부검 후에 이들의 사체를 정돈해 마지막 가는 길을 깨끗하게 갈 수 있도록 하는 건 법의학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가 하는 최후의 주민서비스라고 표현했다.

-죽음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안전망이 있다면?

▲고독사로 사망하는 사람은 주변인과의 교류가 거의 없어 사회시스템이 존재하는데도 이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은 구청 등에 생활보호 신청을 할 수 있도록 돼있는데 이를 거부하는 식이다. 공공기관에서 나서서 그런 사람과 관계를 맺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음지·사회적 그늘에서
죽음의 진실을 찾아라

-법의학의 역할이 있다면?

▲법의학에 종사하는 사람이 앞에 나서서 여러 가지 의견을 말하는 일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알게 되지만 아무래도 법의학은 사회의 그늘진 뒤편에서 사인을 정확하게 규명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니 더 이상 불행한 죽음을 맞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도록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이 여러 대책을 세워주면 좋겠다.

일본의 법의학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니시오 교수에 따르면 일본에는 약 80개의 의학부가 있고 부검을 할 수 있는 인정의는 150명 정도다. 경찰이 부검을 의뢰하면 전국의 법의학교실에서 맡아서 진행하는 방식이다.

도쿄나 오사카 등 대도시에는 한 대학에 인정의가 여러 명 있는데 효고의과대학 등 지방 의학부에는 1명이 모든 부검을 담당하기도 한다. 


니시오 교수는 <죽음의 격차>에서 법의학자에 대해 생죽음을 당한 이들이 저 세상으로 떠나기 전에 만나는 ‘마지막 면회자’라고 표현했다. 또 유족의 의구심을 하나씩 지워 일종의 구원을 안겨주는 존재로도 설명했다. 그는 “유족에게 감사 편지를 받거나 할 때 이 길을 걸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배웅

법의학은 ‘음지’에 속한 학문으로 여겨진다. 니시오 교수는 빛을 받지 못하는 음지라서 오히려 보이는 것이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그는 “법의학은 일반인과 크게 접점이 없는 분야라고 생각한다”며 “법의학자와 관련되는 것 자체가 그다지 바람직한 일은 아니므로 법의학과 그다지 관련 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웃음으로 당부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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