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다시 보게 되는 김민재

유럽에 세워진 K-통곡의 벽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선수는 차범근과 박지성, 손흥민 등이다. 박지성을 제외하면 모두 공격수다. 이영표와 설기현, 기성용, 이청용 등의 프리미어리거들도 있지만 앞서 말한 세 사람을 뛰어넘지 못했다. 최근에는 손흥민에 이어 ‘월드 클래스’라고 평가받는 선수가 있다. 바로 수비수인 김민재다. 그는 ‘아시아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며 유럽에서 맹활약 중이다.

‘KIM KONG’. 김민재가 소속된 이탈리아 세리에A SSC 나폴리 선수들이 그를 부르는 별명이다. 키 190cm에 몸무게 90kg에 육박하는 ‘탈 아시아급’ 피지컬로 대한민국에서 나오기 힘든 유형의 선수라고 평가받는다. 최근에는 축구 전문매체 <442>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센터백 10위에 올랐다.

실력 검증
이탈리아로

어릴 적 김민재의 축구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 중 한 명은 삼촌이다. 나이 차이가 14세에 불과한 삼촌은 선수 출신의 축구 코치였다. 김민재는 고향 통영에서 삼촌을 따라다니며 조기 축구회, 축구 강습 등 공이 있는 곳을 자연스럽게 찾아다녔다.

자주 만날 때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삼촌과 동행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삼촌이 던져준 공으로 볼 리프팅 등 축구 기술을 연습했다. 그런 경험이 5학년 때 축구부에 들어가는 계기가 됐다.

중학교 시절엔 김민재가 다니던 학교로 삼촌이 부임하면서 은사와 제자 사이가 됐다. 아직 구타가 남아있던 시절이었고, 조카만 특별대우하기 힘들었던 삼촌은 김민재를 오히려 더 엄하게 대했다.


김민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힘들긴 했지만 그때도 이해할 수 있었다. 조카였지만 많은 자극을 주셨다. 넌 아직 멀었다는 말씀도 많이 해 주셨는데 실제로 그땐 축구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삼촌과 사제관계를 맺고 나자 전처럼 스스럼없이 대하기 힘들어졌다. 고등학교 시절 이후 삼촌과 거리감이 생겼다. 그 거리를 확 좁힌 계기가 프로 데뷔였다. “프로 데뷔를 하고 삼촌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래서 데뷔 이후 많이 친근해졌다. 예전엔 구박만 하셨는데 이젠 칭찬을 많이 해주신다”고 말했다.

삼촌은 김민재를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사람 중 하나다. 국가대표 데뷔전이었던 이란전을 보기 위해 통영에서 서울까지 올라왔다. 자랑스러운 조카를 보여주기 위해 친구들까지 대동했다. 조카의 ‘선수 입장’을 보며 삼촌이 유독 자랑스러워했다고 김민재는 나중에 전해 들었다.

김민재는 “형보다 더 친한 사람은 없어요”라고 잘라 말한다. 둘 사이에는 어떤 비밀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 살 터울인 형은 명지대 주전 골키퍼 김경민이다. 나이는 김민재가 어리지만 축구를 시작한 것도, 프로에 올라온 것도 김민재가 더 빨랐다.

어린 시절 성격은 반대였다. 김민재는 말썽을 많이 피우고, 친구들과 주먹다짐도 많이 하는 초등학생이었다. 태권도는 노란띠에서 멈췄고, 유도는 선수였던 아버지의 권유로 조금 배운 것이 전부였다. 김민재의 무기이자 문제점은 일단 덤비고 보는 성미였다.

반면 형의 성격은, 김민재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형이 맞고 올 때 한 학년 위 교실에 올라가서 괴롭힌 사람을 찾으면 일단 때리고 나서 말을 걸었다고 한다.

김민재는 받아쓰기도 20점을 넘긴 적이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내는 소년이었다. 대신 밖에서 뛰어노는 게 좋았다. 축구선수가 될 기회가 보이자 냉큼 잡은 것도 그래서였다. 반면 형은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차분한 소년이었다.


그런데 동생이 먼저 선수생활을 시작하자 형도 몇 년 후 자연스럽게 축구화를 신기 시작했다. 김민재가 형의 진로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초등생 때 선수 출신 삼촌이 기본기 알려줘
한국서 나오기 힘든 190cm 90kg 괴물 피지컬

김민재는 과거 전형적인 ‘파이터형 수비수’로 컷팅 능력과 슬라이딩 태클 능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유럽 진출 이후 성장하면서 공격적으로 오버래핑하거나 뒤쪽에서 기다리면서 커버하는 롤도 수행하는 등 팀과 전술에 맞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본인 말로는 대부분 감독의 주문을 많이 따르려고 하며, 그 안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플레이를 한다.

수비수 본연의 임무인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다방면에 우수한 모습을 보여준다. 패스 차단, 스탠딩 태클, 슬라이딩 태클, 헤딩을 비롯한 수비수라면 갖춰야 하는 필수적 능력들로 직접적인 수비 모두에 뛰어난 편이다. 육중한 체격에 비해 발도 순간 최고 34.3km/h로 굉장히 빠르고 최고 시속에 도달하는 가속도도 빠르다.

거기에 순발력도 좋으며 프로 데뷔 이후 2kg 정도 벌크업에 성공해 튼튼한 어깨와 견갑골, 상체 근육과 함께 전반적인 피지컬과 몸싸움 능력이 매우 좋아졌다. 그래서 2020년 이후로는 피지컬이 좋은 선수들과의 경합에서도 쉽게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SSC 나폴리로 이적해서는 안드레아 페타냐, 치로 임모빌레,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 등 건장한 체격을 가진 선수들을 말 그대로 찍어 눌러버리는 등 세리에A에서도 톱 클래스의 피지컬을 과시하는 중이다.

거기가 주발은 오른발이지만, 왼발 또한 수준급으로 잘 다뤄 수비 라인 어디에나 설 수도 있다. 4백에선 양쪽을 번갈아 뛰기도 하며, 3백에서도 중앙은 물론 양 측면 스토퍼 모두를 뛸 수 있다.

현대 축구에서 왼발 센터백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생각하면 오른발잡이지만 양쪽 센터백 위치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김민재의 특징은 좋은 강점이 될 수 있다.

최대 강점이 적극성을 앞세운 수비력이다. 하지만 김민재는 넓은 시야를 활용한 긴 패스와 빌드업도 주저하지 않으며, 모험적인 로빙 패스도 자주 시도한다. 잘 먹히는 날에는 패스로 공격 전개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탄탄한 피지컬
파이터형 수비수

혹은 과감하게 자신이 기습적으로 공을 몰고 전진하기도 하며, 공이 끊기면 스피드를 활용해 빠르게 수비에 복귀해 공격을 끊기도 하는 등 괴물이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은 플레이를 자주 보여주곤 한다.


프로 초창기에는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투박한 수비를 했으며, 그로 인해 오프사이드 라인을 잘 맞추지 못하는 등 라인 관리 능력이 미숙해 실수가 자주 나왔다. 그러나 김민재를 눈여겨본 파울루 벤투 국가대표 감독의 개인 강습을 받으면서 현재는 많이 개선된 상태다.

하지만 체력이 저하되면 패스 미스가 많아지고, 경기에 따라 패스에서 잔실수를 범한다는 단점은 아직 남아있다.

또 전보다 라인을 잘 맞추고 무작정 뛰쳐나가는 일은 줄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활동 범위가 넓은데다 라인을 비우고 마킹을 하기에 필연적으로 뒷공간 노출의 위험이 수반된다. 그렇기에 옆에서 적절하게 조율하고 공격 전개를 해줄 수 있는 커맨더형 수비수+수비형 미드필더와의 역할 분배가 이뤄져야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김민재에 대해 세밀한 패스나 패스 선택지를 선정하는 과정 등에서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경험 많은 김영권의 약점이던 수비 라인 조절이나 빌드업 능력이 좀 더 발전한 모습을 보면 김민재도 프로 경험을 통해 나아지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국대에서는 기회가 생기면 직접 드리블하며 올라가 경우에 따라서 중앙선까지 넘어가서 패스를 뿌려주는 오버래핑을 자주 시도하는데, 거구에 속도도 빠르고 발 밑도 준수한 데다가 패스 성공률도 높기 때문에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우며, 아군 입장에서는 침체된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좋은 요소다.

페네르바체 이적 후에는 통곡의 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대에서 보여주던 드리블을 통한 오버래핑과 정확한 롱패스로 공을 공격진에게 배달하고, 웬만한 윙어보다 빠른 속도로 복귀하거나 공을 가진 선수를 뒤에서 따라잡아서 커팅을 해내는 것은 물론, 기본적인 수비력마저 뛰어나서 사실상 완전체 센터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튀르키예 내에서도 반응이 굉장히 좋고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바이아웃(소속 구단 동의 없이 선수와 직접 협상을 진행할 수 있는 최소 이적료)이 낮아서 팬들은 6개월 만에 이적해버리는 게 아니냐고 불안해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이적 초부터 팀의 핵심선수가 됐다. 특히 튀르키예에서 한 시즌만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주간 베스트 수비수에 여러 번 선정될 정도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검증된 실력
저돌적 플레이

튀르키예에서의 활약으로 빅리그에서도 김민재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면서 스타드 렌 FC, SSC 나폴리 간의 치열한 영입 경쟁이 펼쳐졌다. 그 외에 PL에서도 여러 팀이 관심이 있다는 소식도 나오는 등 몸값이 크게 상승했다.

SSC 나폴리로 이적한 김민재는 팀을 떠난 레전드 수비수 칼리두 쿨리발리의 역할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쿨리발리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매우 부담이 될 수 있는 상황임에도 프리 시즌과 리그 초반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리그 시작 이후 곧바로 이달의 선수상까지 받을 정도로 성공적으로 쿨리발리의 빈자리를 꽉 채웠다.

현재 이탈리아 현지 언론에서는 김민재가 쿨리발리보다 유벤투스의 레전드 수비수인 키엘리니에 더 가깝다고 평가한다. 풋볼리스트에서도 쿨리발리가 깔끔한 태클에 우아한 드리블을 펼치는 데 비해, 키엘리니는 어깨를 이용한 몸싸움 수비에 능하며 기세 좋게 밀고 올라가는 드리블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에 동의하는 듯한 의견을 냈다.

나폴리가 김민재를 데려가기 위해 전 소속 팀 페네르바체(튀르키예)에 지불한 이적료는 2000만유로(약 286억원)다. 7월 기준 여름 이적 시장에서 나폴리가 선수 영입에 쓴 최고 금액이다.

1년 전 베이징에서 페네르바체로 옮길 당시 이적료(300만유로)에서 6배 이상 가치가 상승했다. 나폴리가 설정한 바이아웃은 여기서 두 배 이상 더 뛴다. 4500만유로(약 591억원)로, 2023년 여름부터 해외 팀으로 이적할 경우 발동된다.

한국 중앙 수비수의 유럽 도전은 김민재 이전에도 있었다. 심재원(2001~2002년, 프랑크푸르트)과 홍정호(2013~2016년, 아우크스부르크)가 각각 당대 월드컵을 앞두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다. 그러나 빅리그 클럽들의 러브콜을 집중적으로 받는 수비수로 성장한 사례는 김민재가 처음이다.

김민재의 가치는 2022 여름 이적 시장에서 확인됐다. 김민재에 대한 빅리그 클럽들의 수요가 늘었다. 관심을 보인 팀명만 나열해도 현실감이 떨어질 정도다. 종착지가 된 나폴리 외에 인터 밀란, 유벤투스, AC 밀란(이상 이탈리아 세리에A), 토트넘, 에버턴(이상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타드 렌, 마르세유(프랑스 리그1) 등이다.

당초 김민재의 행선지로 알려졌던 곳은 렌이다. 베이징 시절 김민재와 함께했던 브루노 제네시오 감독이 영입에 적극적이었다. 뒤늦게 나폴리가 바이아웃에 해당하는 2000만유로를 제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나폴리서 역대급 활약 “월드 클래스”
세계적 전·현직 선수들 모두 ‘엄지 척’

나폴리는 칼리두 쿨리발리의 대체자를 확보해야 했다. 지난 시즌까지 나폴리 수비 주축으로 활약하던 쿨리발리는 이번 여름 첼시로 이적했다. “쿨리발리가 떠나면 감독직을 사임하겠다”고 공언했던 루치아노 스팔레티 감독이 그 대체자로 김민재를 콕 집어 “나폴리 수준의 선수”라고 언급한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나폴리는 2021-2022시즌 세리에A에서 AC 밀란과 함께 최소 실점(38경기 31실점)의 수비력을 유지한 팀이다. 단순히 수비 자원 확보 정도에 그친 것이 아니라 김민재를 주축 센터백으로 활용하겠다는 심중이 드러난다.

이쯤에서 김민재의 능력을 점검해보자. 축구에서 센터백은 흔히 ‘욕받이’로 통한다. 상대의 자극과 도발이 있어야 반응하는, 태생적으로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포지션이라서 그렇다. 시대 불문 센터백의 최고 미덕은 ‘실수 줄이기’로 통하는데 김민재에 관한 평가는 사뭇 다르다.

국내 축구인 열이면 열, 동일하게 평가한다. “수비수에게 필요한 능력을 모두 갖췄다.” 한국 축구 수비 레전드인 홍명보(울산 감독)도, 이영표(강원 단장)도 같은 목소리다.

국가대표 수비수 출신 오범석 ‘Sky Sports’ 해설위원은 이렇게 평한다. “수비 능력을 모두 갖췄는데, 심지어 그 능력이 다 압도적이다.”

일단 피지컬이 월등하다. 190㎝, 87㎏ 신체조건을 활용한 다툼 능력을 갖고 있다. 제공권 싸움에도 능하다. 키 큰 선수들은 느리다는 통념과 달리 김민재는 발 빠른 수비수다. 볼을 다루는 기술이나 패스의 정확성도 높다. 경기 운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때는 빈틈이 없다.

김민재라는 후방 조율사 덕에 벤투호의 ‘빌드업’ 기조가 유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큰 강점은 역시 수비 능력이다.

나폴리가 베테랑 쿨리발리의 대체자로 김민재를 낙점한 것도 이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년 계약과 바이아웃으로 선수의 잠재력을 인정했다. 당장은 나폴리 적응과 세리에A에서의 활약이 우선이지만 길게 보면 선수의 시장가치가 상승할 거라는 기대다.

리그에서의 활약상을 기반으로,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 상위 클래스로 올라서기 수월해진다. 현역 최고 수비수로 평가받는 버질 판 다이크(리버풀)는 셀틱 시절 챔피언스리그에서 바르셀로나와 AC 밀란을 상대하며 프리미어리그의 선택을 받았다.

박지성과 이영표도 챔피언스리그에서 통한 덕분에 네덜란드에서 잉글랜드로 무대를 옮겼다. 챔피언스리그 외에 도약을 노릴 수 있는 또 다른 무대가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이다. 월드컵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선수들은 그 입지와 위상이 급격히 달라진다.

압박감 속에서도 무언가를 성취하는 선수들은 팀 전체에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손흥민이 그런 선수였고, 이제는 김민재가 그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전설들의
연이은 극찬

파비오 칸나바로 전 광저우 헝다 감독은 지난 8월8일(현지시각) 나폴리 지역 매체 <일마티노>와 인터뷰에서 김민재를 두고 “빠르고 신체조건도 좋다”며 칭찬했다. 칸나바로 전 감독은 나폴리의 전설적 수비수로, 현역 시절 수비수로는 역대 3번째로 발롱도르를 수상한 이탈리아의 축구 영웅이다. 김민재 역시 입단 기자회견에서 칸나바로를 ‘롤모델’로 꼽았다.

한국 선수가 나폴리의 수비를 맡게 되는 생각을 해본 적 있냐는 취재진 질의에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국 축구는 성장 중이고, 내가 감독 생활을 하던 중국 리그에서도 김민재가 뛰었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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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샘 시흥공장 그린벨트 훼손 의혹

[단독] 한샘 시흥공장 그린벨트 훼손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우리나라는 개발이 제한돼있는 토지가 있다. 해당 토지들의 개발을 위해선 지자체장의 승인이나 대통령령 승인이 있어야 한다. 부동의 가구 1위 기업인 한샘이 개발제한구역을 마음대로 훼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상은 시흥 제1공장 부지 주변 필지다. 행정조치가 완료됐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원상복구는 되지 않았다. 한샘은 주방·인테리어가구를 판매·제조하는 대한민국 부동의 1위 가구 업체다. 1970년 9월 한샘으로 창립한 뒤 1977년 국내 최초로 주방가구를 수출해 1979년에 수출 100만달러 돌파의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한샘의 2023년도 기준 매출액은 1조9669억원에 달한다. 영업이익은 19억4660만원이다. 최초의 공장 성장 시발점 한샘의 성장은 시흥 공장과 함께했다. 조창걸 명예회장이 자본금 200만원으로 은평구 대조동에 23.1㎡의 매장으로 시작했던 한샘은 1976년 시흥시 조남동에 최초의 공장다운 공장을 설립했다. 제1공장을 통해 한샘은 생산 체계를 크게 개선하며 큰 실적 향상을 이뤘다. 한샘은 현재 시흥과 안산 등에 4개의 물류센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당초 한샘 시흥 공장은 조남동 ▲594-1번지 ▲91-144번지 ▲91-145번지 세 곳의 필지, 약 1만4610㎡의 면적으로 지어졌다. 현재는 한샘은 91-117번지 매수해 총 1만8429.8㎡의 면적을 공장 부지로 사용 중이다. 등기사항전부증면서 확인 결과 한샘은 해당 부지 외 시흥 공장과 인접한 4개 필지 ▲조남동 91-163번지, 2076㎡ ▲조남동 91-165번지, 207㎡ ▲조남동 91-166번지, 109㎡ ▲조남동 산 57-1번지, 3273㎡도 소유하고 있다. 항공지도에 따르면, 한샘 시흥 공장의 정문 바로 앞을 3개의 필지 ▲조남동 91-163번지 ▲조남동 91-165번지 ▲조남동 91-166번지가 둘러싸고 있으며 산 57-1번지는 공장 뒤편 산과 맞닿아 경계를 이루는 형세를 나타낸다. 그런데, 가장 오래된 2008년 항공사진부터 지금까지 해당 필지를 야외주차장 및 자재 적재용으로 사용해 왔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점은 해당 필지의 지목이 모두 ‘임야’라는 것이다. 임야는 산림과 원야로 구성된 토지로, 공간정보관리법에서는 죽림지, 수림지, 암석지, 모래땅, 습지, 황무지, 자갈땅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임야는 대부분 산림자원보호법에 따라 산림보호구역 또는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다. 즉, 산림청의 허가 없이는 토지의 용도변경이나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간혹 산림보호구역이나 지역이 아닌 임야도 있지만 이 역시 산림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토지의 용도변경이나 개발이 가능하다. 시흥 제1공장 주변 4필지 무단 개발 개발제한지역·공익용 산지에 해당 한샘이 야외주차장과 자재 적재용으로 사용한 필지는 모두 개발제한구역에 포함돼있다. 한샘이 산림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개발제한구역 땅을 개발해 무단으로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는 의심이 드는 사안이다. 실제로 시흥시 도시정책과는 해당 필지와 관련해 많은 민원을 접수했다. 민원은 해당 필지들의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12조 위반이 주된 내용이었다.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12조에 따르면, 개발제한구역에서는 건축물의 건축 및 용도변경, 공작물의 설치, 토지의 형질변경, 죽목의 벌채, 토지의 분할, 물건을 쌓아놓는 행위(적재) 또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1항에 따른 도시·군계획사업의 시행을 할 수 없다. 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축물의 건축 또는 공작물의 설치와 이에 따르는 토지의 형질변경 ▲개발제한구역의 건축물로서 제15조에 따라 지정된 취락지구로의 이축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른 공익사업의 시행으로 철거된 건축물을 이축하기 위한 이주단지의 조성 ▲건축물의 건축을 수반하지 않는 토지의 형질변경으로서 영농을 위한 경우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토지의 형질변경 등 9가지의 경우만 예외로 하고 있다. 이렇듯 한샘의 4 필지 사용은 예외 사항에 포함되지 않는다. 산림청장 허가받았나 민원을 접수한 시흥시 건축과 개발제한구역지도팀은 2020년에 해당 필지에 관한 현장조사 이후 한샘에 원상회복 행정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한샘은 이에 불복하고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감행했다. 재판부는 개발제한구역 지정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한 한샘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이행강제금 일부를 한샘에 돌려주도록 판단했다. 하지만 이는 시흥시의 행정조치가 잘못됐다는 판결이 아니었다. 법적 싸움 끝에 시흥시의 원상복구 행정조치는 진행됐다. 시흥시 개발제한구역지도팀에 따르면, 한샘은 행정소송 이후 2022년부터 2023년에 걸쳐 원상복구를 완료했다. 시흥시 개발제한구역지도팀 관계자는 “행정조치 이후 원상복구까지 불법으로 개발한 것을 모두 해체하고 폐기물 처리까지 완료해야 하는 만큼 많은 시일이 걸린다”며 “해당 필지(조남동 91-166번지와 산 57-1번지)는 지난해 11월 원상복구 이행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샘 관계자는 “해당 부지는 한샘이 소유하고 있거나 소유했던 땅으로 불법 점용한 적이 없으며, 해당 부지는 개발제한구역 지정 전과 동일한 상태로 복구를 완료한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한샘은 여전히 해당 필지들을 불법 점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흥시가 원상복구 이행을 확인한 필지는 조남동 91-166번지와 산 57-1번지다. 하는 척 얼렁뚱땅 <일요시사> 확인 결과 조남동 91-166번지는 도로와 인접한 부분의 절반의 울타리만 철거됐으며 여전히 4~5대의 차량이 주차돼있는 상태였다. 해당 필지는 개발제한구역이면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역‧지구로는 도시지역, 자연녹지지역로 구분된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해당 지역에 4층 이하의 건축물을 지을 수 있지만, 개발제한구역이므로 건축물의 건축 및 용도변경 등이 불가능하다. 시장 혹은 도지사·군수 등의 허가를 받을 경우 가능하지만, 시흥시에서는 해당 부지의 주차장 사용을 허가해주지 않았다. 행정조치 이후에도 계속 불법으로 점용하고 있는 셈이다. 산 57-1번지도 마찬가지다. 항공사진을 분석한 결과 2008년부터 해당 필지를 덮고 있던 콘크리트는 2013년에 사라졌지만 자재가 적재돼있었다. 이후 2020년에 다시 콘크리트가 덮였다가 2022년 흙밭으로 복구됐다. 하지만 여전히 자재는 적재돼있다. 게다가 <일요시사> 확인 결과 조남동 산 57-1번지와 조남동 산 57-5번지가 개발제한구역이면서 공익용 산지로 지정돼있어 보전산지로 분류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산 57-5번지가 산지 그대로 있는 것과 다르게, 산 57-1번지는 콘트리트가 지반을 받치고 있으며 경계선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다. 행정조치 완료? 완전 복구 안돼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공익용 산지를 마음대로 개발하면 산지관리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다”며 “해당 부지 명의가 한샘이더라도 시장 등 지자체의 허가 없이 개발하면 안되는 곳으로 구조물을 통해 공장부지와 평행을 맞추는 지반을 만드는 것도 허가가 필요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행정조치가 진행 중인 상황에 문제가 되는 필지를 매매한 정황도 포착됐다. 한샘은 조남동 91-163번지의 필지를 1985년 매입했다. 이후 야외주차장으로 사용하던 해당 필지를 2022년 11월4일 갑자기 팔아버렸다. 2022년은 한샘과 시흥시의 행정소송이 끝나고 행정조치가 진행되던 시기였다. 현재 해당 필지는 ㈜효경개발이 매수해 크레인과 덤프트럭 등 중장비 주차장으로 이용 중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원상복구에 많은 금액이 들어가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토지를 매매한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한 토지 전문가는 “일반적으로 야외주차장으로 사용하던 토지를 원상복구하는 데 많은 금액이 들어가지 않지만 해당 필지는 공익용 산지로 산지 조성까지 해야 해 상황이 다르다”며 “산지 조성에 들어가는 금액도 지불하지 않고 토지를 매매한 것은 이중으로 이익을 얻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샘 관계자는 “크레인 등 장비가 있는 부지는 한샘의 소유가 아니므로 저희가 알 수 없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문제의 필지 매매한 정황 한샘 측은 이번 불법 점용 의혹에 관해 개발제한구역 지정이 공장 설립보다 늦게 이뤄져 어쩔 수 없이 불법적인 개발로 분류됐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해당 필지들은 지난 1976년 12월에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됐다. 시기상 한샘의 공장 설립 이후에 묶인 셈이다. 하지만 산 57-1번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필지들은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 이후인 1985년 매입한 땅이라 불법임을 알고도 마음대로 개발했다는 지적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