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빈’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운명

갈 길 먼데…노동자 없이 간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윤석열정부의 노동개혁 복안이 출범 이후 공전을 거듭해온 가운데, 일각에서는 ‘탈선’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윤정부가 내린 결단이 매번 악수로 작용하면서 노동계와의 관계가 계속 악화됐다. 분수령은 내년 초 예정된 한국노총 새 위원장 선거다. 이 결과에 정부 노동정책의 사활이 달렸다. 민주노총에 이어 한국노총마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불참을 선언한다면, 윤정부의 노동개혁 동력에 큰 타격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부의 굵직한 노동정책은 모두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를 거쳐서 나온다고 봐도 무방하다. 경사노위의 협의를 거친 노동정책은 대표성과 정당성을 보장받는다. 그 자체가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정부 들어 경사노위가 유명무실화될 위기에 처했다. ‘노동개혁 드라이브’를 예고한 윤정부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

경사노위는 근로자·사용자 등 경제·사회 주체와 정부가 고용 노동정책을 비롯해 이와 관련된 경제·사회정책 등을 협의하는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다. 논의 대상은 ▲주요 노동정책 및 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제도·의식·관행 개선 ▲노사정 협력 증진사업 지원 등이다.

경사노위는 1998년 ‘노사정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인은 양대 노총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지도부와 이틀 간 회담을 나눈 끝에 노사정위원회 발족에 합의했다. 이들은 외환위기 사태 극복과 노사관계 개혁 등을 주제로 머리를 맞댔다.

이윽고 이들은 출범 20일 만에 헌정사상 최초로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냈다. 공공·금융 구조조정의 원칙과 방향을 협의하며 체결한 사회협약은 그 항목이 90개에 달했다.


노사정위원회는 짧은 활동 기간에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일궈냈다. 이윽고 물 흐르듯 법적 상설기구로 격상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 시작 직후 관련 대통령령 제정을 통해 노사정위원회의 법적 기반과 기능을 명시했다. 이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그 이름과 형식을 조금씩 바꿔오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경사노위는 사회적 합의 도출, 노사 갈등 중재 등에서 두각을 보였다. 이들은 2008년 경제위기 당시에도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합의를 도출했고, 현대자동차·철도 파업 사태 등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다.

경사노위 중용은 진영을 가리지 않았다. 박근혜정부는 노동개혁을 경사노위의 틀 안에서 추진했다. 문재인정부는 주 52시간 근무제 연착륙 방안·과로사방지법·근로자대표제 등 노동계 현안 20여가지를 경사노위에서 합의했다.

경사노위가 이 같은 ‘감초’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노동계와 재계의 꾸준한 참여가 있었다. 특히 한국노총은 정부의 사회적 대화 요청에 지속적으로 협조했다. 1999년 민주노총이 탈퇴한 이래로, 정부에게 한국노총은 사실상 노동계 유일한 ‘대화 창구’다.

반면, 민주노총은 탈퇴 후 중대 사안을 논의하기 위한 임시특별기구에 몇 번 참여한 것 외에, 공식 회의체에는 전면 불참 중이다. 한국노총 역시 이탈한 전적이 있지만 그 기간은 대부분 길지 않았다. 

이에 역대 정권들은 대부분 한국노총을 정책 파트너로 낙점했다. 한국노총은 제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 제18~19대 대선 때는 문 전 대통령과 정책 연대를 맺은 바 있다.


한노-정부 사사건건 충돌 ‘이러다 이탈?’
노총 빼고 사회적 합의 사실상 불가한데… 

이번 대선 때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당시 대선후보)와 정책 협약을 체결했다. 한국노총은 국내 제1 노조로, 조합원 수가 2020년 기준 115만4000명에 달한다. 노동계 최고 대표성을 보유한 한국노총의 지원사격은 그동안 정권의 노동정책 개편안에 든든한 명분을 제공했다. 

윤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윤 대통령 역시 한국노총에 적극적인 구애를 보냈다.

그는 후보와 당선인 시절 한 번씩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을 만났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한국노총을 찾아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평가하지 않는 국가·사회·기업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며 “어느 때보다 한국노총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정부 출범 이후로 한국노총의 적극적인 협조는 없었다. 오히려 한국노총은 윤정부와 노동 현안에서 사사건건 충돌했다. 한국노총은 윤정부의 노동개혁안에 공공연히 반대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한국노총은 다음 달 5일 전국노동자대회 대규모 개최를 예고했다. 이들의 목표는 ‘윤정부의 노동개혁 저지’다. 한국노총은 윤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시간 유연화 ▲공공 부문 구조조정  ▲공적연금 개편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등에 모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 지도부는 지난달부터 회원조합을 순회 방문하는 등 이미 투쟁 일정 조율에 한창이다.

김 위원장은 순회 일정에 앞서 “윤석열정부의 노동시장·공공 부문 개악과 연금개악을 저지하기 위해 회원조합별 투쟁을 기조로 11월5일 전국노동자대회를 대규모로 개최하겠다”며 “불평등 양극화 해소와 노동 중심의 정의로운 사회 전환을 위한 한국노총 결의를 천명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 안팎에선 이 같은 맥락을 이유로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불참 결단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현 상황만 놓고 보면 당장 테이블을 박차고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평이 나온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 김 위원장은 경사노위 운영에 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이는 차기 지도부의 협상 카드를 굳이 낭비하지 않는 한편, 정부를 압박하며 태도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불참 결단?
유리한 고지

실제로 한국노총의 새 위원장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선거예정일은 내년 1월 중이다. 선거운동 기간 등을 고려하면 오는 12월부터는 완연한 선거 국면에 접어든다고 봐야 한다. 또한 일각에서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한국노총 출신인 점도 결정 유보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분석한다.


보수정권 입장에서 민주노총과의 전면적 협력 가능성은 희박하다. 협상 주도권이 한국노총 측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는 현재 충돌 중인 노동개혁안 외에도 추가적인 과제를 경사노위에서 만들어 내겠다는 방침이다.

더구나 극심한 진통이 예상되는 ‘정년 연장 논의’는 경사노위를 무조건 거쳐야 하는 과제로 분류된다. 이대로 한국노총이 이탈하면서 경사노위가 ‘(노)사정협의체’로 전락해버린다면, 정부가 각계 의견수렴조차 진행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실제로 2016년 한국노총은 정부의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해석 및 운용 지침의 양대 지침 강행처리에 강력 항의하며 위원회를 탈퇴했다. 2015년 극적으로 체결된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사회적 대타협’은 폐기됐고, 2018년 한국노총이 복귀할 때까지 위원회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하지만 윤정부와 노동계의 관계는 여전히 개선될 기미가 없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경사노위 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노-정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달 29일 김 위원장의 인선 배경에 관해 “정치력과 행정력을 겸비했다”며 “노동현장 경험이 많아 정부·사용자·노동자 대표 간 원활한 협의와 의견 조율은 물론이고 상생의 노동시장 구축 등 윤석열정부 노동개혁 과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1970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한 뒤 운동권에 투신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제적된 뒤에는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재단보조공으로 일했다. 전국금속노조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을 지내며 노동운동을 주도하다가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된 이력이 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다

하지만 정치 입문 이후의 발자취를 보면 위원장 인선에 의문부호가 따른다. 1996년 그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신한국당에 입당해 3선 의원·재선 경기도지사를 지냈다.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극우 행보를 이어왔다. 박근혜정부 때 탄핵 반대 시위를 주도했고, 전광훈 목사와 함께 강경 우파 정당인 자유통일당을 창당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탄핵 재판소 탄핵’ ‘문 전 대통령 총살’ 등의 발언 등으로 막말 논란에 수차례 휩싸인 바 있다. 그가 경사노위 위원장으로 임명된 뒤에는 몇 달 전 자신의 유튜브 영상에서 “불법 파업에 손배(손해배상청구) 폭탄이 특효약”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드러나 인선 적절성 논란이 일었다.

노동계 반발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29일과 지난 4일 연이어 논평을 내고 김 위원장을 맹폭했다.

민주노총은 “윤석열정부의 노동 개악 추진에 들러리로 소임을 다해야 하는 경사노위 위원장에 그간 색깔론과 노조혐오에 가득한 시각과 발언으로 문제를 일으킨 김문수씨를 임명한 것은 그 속이 너무 뻔하다”며 “경사노위가 정말 형식적으로나마 작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참여할 계획도 없어 인선에 대한 코멘트를 하지 않았고 설마 상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정부라면 해프닝에 그칠 인사라고 생각했다”며 “지금까지처럼 윤석열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악에 맞서 투쟁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 역시 우려를 표했다. 한국노총은 “김 위원장은 1970년대 구로공단 노동자로 위장 취업했던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세 번의 국회의원과 두 번의 경기도지사를 역임할 당시 노동계와 관계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면서도 “몇 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구속에 반대하는 태극기부대에 합류하고 이후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반노동 발언을 일삼는 행보 등으로 노동계가 환영할 만한 인물이라고 말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만 한국노총은 비판보다는 올바른 역할 수행 촉구에 주안점을 뒀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 위원장 낙점
극우·반 노동 행적에 노동계 반발

이들은 이어진 성명에서 “그동안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회적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고민하고 노력해왔다.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은, 그렇게 어렵게 이룬 성과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김 위원장 스스로 노동계의 우려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노동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한국노총이 어렵게 이어온 사회적 대화의 끈을 놓지 않도록, 역할을 수행해주기 바란다”고 적었다.

김 위원장은 지명 이후 유튜브 채널을 폐쇄하는 등 제기된 비판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4일 취임식에선 “경사노위와 저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말씀, 잘 듣고 있다”면서 “특히 저 개인에 대한 불신에 대해서는 저 자신이 더욱 진지하고 겸허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며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 리스크’는 여전히 노-정 갈등의 뇌관으로 남아 있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이 이날 이어진 질의에서 과거 막말 논란과 극우 행적을 바로잡을 뜻이 없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그는 ‘문 전 대통령은 총살감’ 등의 과거 발언에 대해 “집회하다 보면 흥분해서 그런 소리는 할 수 있는데”라며 “이제 와 갑자기 수정하는 것은…”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박 전 대통령 탄핵에 관해서는 “헌법재판소도 문제가 많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은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저도 깨끗하다고 소문나 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저보다 훨씬 깨끗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이 같은 태도를 계속 견지한다면, 이를 비판한 노동계와의 협의 역시 더욱 요원해질 것으로 점쳐진다. 게다가 김 위원장은 이날 ‘노란봉투법(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제한)’ ‘중대재해처벌법’ 등 현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양대 노조와의 대립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불씨가 또 하나 남겨진 셈이다. 

경사노위 위원장은 장관급 인사로, 임기가 2년이다. 김 위원장으로 인해 정부와 노동계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틀어진다면 윤정부는 임기가 반환점을 돌 때까지 노동정책 추진 동력을 사실상 상실한다. 

윤정부는 우선 대내외적으로 이번 인선의 적절성을 입증해야 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 위원장을 통해 정부의 방향성에 맞는 사회적 합의가 도출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첫 번째 전제부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되레 “김 위원장의 강경 기조로 2016년 한국노총의 장기 이탈 사례가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비관적 전망이 앞선다. 

그나마 정부가 기댈 곳은 한국노총의 차기 위원장 선거 구도가 아직 오리무중이라는 점이다. 지금으로서는 한국노총 내 여당 지지파와 반대파 중 어느 쪽이 실권을 잡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탈 분수령
위원장 선거

현재 한국노총 내부에서는 지지파에 속하는 산하 위원장 중 일부가 출마를 저울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파에서는 김 위원장의 연임 도전이 거론된다. 이로써 다가오는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는 이례적으로 노동계를 넘어 정치권의 주목까지 한 몸에 받을 전망이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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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