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초대 경찰국장 김순호

현판 걸었지만…깜깜한 현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행정안전부 경찰국이 지난 2일 공식 출범했다. 정부가 경찰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전문가 자문위원회를 구성한 지 석 달 만이다. 군부정권 이후 31년 만에 행안부 내 경찰 업무조직이 생기게 됐다. 초대 경찰국장에 임명된 김순호 치안감. 시작부터 시험대에 올랐다. 경찰 안팎 반발이 거센 가운데, 경찰국 언행 하나하나에 매서운 눈초리가 따라다니는 탓이다. 

초대 경찰국장 자리는 비(非) 경찰대 출신이 꿰찼다. 올해 치안감으로 승진했던 김순호 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국장이 낙점됐다. 김 국장은 1963년생으로, 광주광역시 출신이다.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상경해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사와 한국외국어대학교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89년 경장 특채로 경찰에 입직했다.

경란 속
신설 강행 

2011년 총경으로 승진해 ▲울산 지방경찰청 생활안전 과장 ▲경찰청 감찰담당관·교육정책담당관 ▲경기 안산상록경찰서장 ▲서울 방배경찰서장 ▲경찰청 보안과장을 역임했다.

2017년 경무관으로 승진한 뒤에는 ▲광주 광산경찰서장 ▲전북지방경찰청 제1부장 ▲서울지방경찰청 보안부장 ▲경기남부경찰청 경무부장 ▲경기 수원남부경찰서장을 지냈다.

올해 치안감으로 승진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국장을 맡던 중 부름을 받았다. 김 국장은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단장도 겸하고 있었다.


김 국장의 경찰 내부 평판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품이 온화하고 업무처리가 섬세하다는 평이다. 행정안전부가 김국장의 성정에 기대 경찰국 제도 ‘연착륙’을 꾀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찰국은 경찰법과 경찰공무원법 등 개별 법률이 구체적으로 명시한 행안부 장관의 책임과 권한 수행을 지원할 예정이다. 대표적인 예가 총경 이상의 경찰공무원 임용 제청 권한이다.

이와 관련해 행안부는 지난 1일 “역대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경찰을 통제해온 방식에서 벗어나, 헌법과 법률에 따른 법치 통제 시스템을 통해 경찰 관련 국정운영을 정상화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국은 총괄지원과·인사지원과·자치경찰지원과 등 3과 16명이 정원이다. 현재 직원 16명 중 12명이 경찰 출신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인사지원과는 일선 직원까지 모두 경찰 출신 인력으로 채워졌다.

행안부에 따르면 경찰 인력은 추후 업무 수요를 반영해 더 추가될 예정이다. 결과적으로는 경찰 출신 직원이 전체 비율 80% 이상을 구성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기조에 따라 3과 과장 중 2명이 경찰 인사다. 인사지원과장에는 고시 출신 총경 방유진 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과장이, 자치경찰지원과장에는 경찰대 출신 총경 우지완 경찰청 자치경찰담당관이 배치됐다. 총괄지원과장에는 행안부 사회조직과장 출신인 임철언 부이사관이 보임됐다.

아울러 경찰국은 경찰청과 가까운 정부서울청사에 입주한다. 경찰청과의 긴밀한 소통과 협업체계 구축을 위한 포석이다. 


같은 날 행안부는 장관의 소속청장 지휘에 관한 규칙을 제정·시행했다. 제정 규칙에 따르면 국무위원을 겸하는 장관은 소속 청에서 법령 제·개정이 필요한 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사전 승인한다. 국무회의에 상정되는 안건에 대해서는 사전 보고를 받는다.

소속 청과의 원활한 협업 아래 경찰·소방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경찰국의 서울청사 입주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경찰국의 첫 업무로는 오는 12월로 예정된 경무관·총경 승진 인사 검토 작업이 유력하다. 앞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무관 이상의 고위직에 일반직 출신 비중을 20% 수준까지 늘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 장관은 “총경 승진은 대상자가 훨씬 많기 때문에 경무관 전보 인사를 마치면 바로 총경 승진 대상자들을 살피는 작업을 하게 될 것”이라며 “일반직 출신이 경무관 이상 직급의 20%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그 아래 직급인 총경·경정·경감부터 착실히 쌓여 나가야 하니, 첫 총경 승진 인사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채’ 출신 전 국수본 안보수사국장
인력 대거 동원했지만…여전한 반발

일각에서는 김 국장과 경찰국이 시작부터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국은 각종 업무를 처리하는 동시에, 경찰국 신설을 향한 일선 경찰 구성원의 반발도 잠재워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실제로 경찰은 경찰국 신설 과정에서 유례없이 큰 반발을 보였다. 지난달 23일 총경 190여명이 온·오프라인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사상 초유의 ‘전국 경찰서장 회의’가 개최됐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일선 경찰들은 릴레이 삭발·단식 투쟁·삼보일배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이렇듯 경찰이 정부정책에 반발하는 목소리를 낸 것은 역사적으로도 처음 있는 일이다.

행안부의 깔끔하지 못한 뒷수습이 반발을 키우기도 했다.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주도했던 류삼영 총경이 대기발령, 다른 서장들이 감찰 처분을 받은 데 이어 이 장관이 ‘쿠데타 발언’으로 기름을 부었다.

이 장관은 지난달 24일, 전날 회의를 두고 “경찰 총수인 경찰청장 직무대행자가 해산 명령을 내렸음에도 그걸 정면으로 위반했다”며 “군으로 치면 각자의 위수 지역을 비우고 모였던 하나회 12·12 쿠데타에 준하는 것이다.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맹폭했다.

이 장관은 ‘해당 회의는 국가공무원법상의 단순한 징계 사유를 넘어 형사 범죄 사건’이라는 취지의 발언도 남겨 빈축을 샀다. 한 차례 해명한 뒤에도 비난 여론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이 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에 참석해 “쿠데타 관련 발언이 지나쳤다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며 자세를 낮췄다.

이 가운데 업무를 시작한 김 국장은 경찰국의 ‘가교’ 역할을 강조했다. 김 국장은 지난 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과 경찰 동료들께서 염려하는 부분을 충분히 잘 알아 막중한 사명감을 느낀다”며 “경찰국이 어떤 일을 하는지 중간중간 진행되는 것들을 언론과 경찰 동료들에게 말씀드려서 오류가 없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적극 엄호
결사반대


이어 “우리 경찰관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국민의 경찰로 거듭나는 데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게 소명을 다해 이끌어가겠다”고 덧붙였다.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느냐’는 질문에는 “청문회준비단장을 하면서 호흡을 맞췄기에(윤 후보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경찰조직을 끌어가려 하는지 알고 있다”며 “(윤 후보자가)행안부 장관님이 어떻게 경찰국을 통해 경찰을 지원할지도 잘 알기 때문에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의 말씀을 했다”고 밝혔다.

이 장관의 ‘엄호사격’도 계속 이어졌다. 이 장관은 “논의 과정에서 제기됐던 여러 우려가 해소될 수 있도록 저와 경찰국은 폭넓은 소통을 통해 공감을 확대할 것”이라며 “경찰관들이 자긍심을 잃지 않고 오직 국민의 안전과 인권을 지키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해나갈 것을 약속한다”고 발언했다.

이어 경찰국을 방문해 “경찰국 출범까지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방해라고까지 할지도 모르겠을 수많은 난관을 겪고 출범했다”며 “경찰국에는 입직 경로는 없고 하나의 경찰, 국민을 위한 경찰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경찰국 직원들에게 “여러분이 경찰국 초대 일원이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다 같이 노력하길 바란다”며 함께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논란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경찰 내부의 반발도 여전한데다, 야당도 정치적 공세를 이어갈 태세다.


국가경찰위원회는 지난 2일 경찰청을 찾아 “경찰국 출범과 관련해 법령·입법 체계상 문제점을 제기해왔는데,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시행되는 것에 유감을 표한다”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국가경찰위원회는 경찰예산편성권을 갖고 스스로 치안정책을 수립하는 독립 국가기관이다. 경찰업무와 경찰행정 제반 문제의 처리기준을 심의·의결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김호철 국가경찰위원장은 이날 “치안행정의 적법성 회복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며 “경찰국 설치 등 제도들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헌법에 근거하는 경찰 관련 법령을 준수했는지를 촘촘하게 살필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적법성을 회복할 방안이 무엇이 있을지는 논의 중”이라며 “검토 결과에 따라 헌법과 법률에서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부연했다.

2차전 예고
‘옥신각신’

더불어민주당도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한정애 ‘윤석열정권 경찰장악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첫 대책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에 전념하기보다 국민의힘 당무에 집중하고 있다”며 “국민적 반대가 많은 경찰국 신설을 꺼내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찰장악대책위원회는 앞서 민주당이 원내 설치했던 태스크포스 ‘경찰장악처치대책단’을 격상한 조직이다.

이어 한 위원장은 이 장관이 지난달 대정부질문에서 국가경찰위원회를 두고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다”고 발언한 것을 겨냥해 “2018년 11월30일 행안부 장관이 국가경찰위원회를 합의제 기관으로 명시했고 법제처는 이를 귀속력 있는 의결기관으로 명시했다”고 설명했다.

회의에서는 이 장관에 대한 발언이 계속 이어졌다.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경찰은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해야 한다. 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되고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며 “정부조직법을 위반한 행안부 장관에게 단호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절차적·법률적 문제도 제기됐다. 민주당 전해철 의원은 “통상 40일인 입법예고 기간을 단 4일로 줄였다”며 “정부조직법 제34조의 행안부 장관의 사무엔 치안이 빠져 있다. 이는 역사적인 이유”라고 지적했다. 

전 의원 발언을 종합하면 행정부 장관은 해당 법률에 따라 ▲국무회의의 서무 ▲법령 및 조약의 공포 ▲정부조직과 정원 ▲정부혁신 ▲지방자치제도 ▲선거·국민투표의 지원 이외에도 수많은 업무를 관장한다. 하지만 ‘치안’ 관련 업무는 명시돼있지 않다는 게 발언의 핵심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박종철 열사의 이름이 등장하기도 했다. 박 열사는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에서 물고문에 의해 질식사했다. 당시 정부는 이를 은폐하기 위해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민주당 김영배 의원은 “내부부 장관의 사무에 치안을 뺀 것은 박종철 열사의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자는 1987년 6월항쟁 당시 국민적인 합의였다”며 경찰국 신설을 에둘러 비판했다.

야, 정치 공세 확대 “국회서 총력 저지” 
대통령실 “치안본부 부활? 프레임 공세”

반면 대통령실은 경찰국 신설이 과거 군사정권 시절 ‘내무부 치안본부’ 회귀라는 비판에 ‘프레임 공격’이라고 응수했다.

대통령실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은 지난달 2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야당이)‘전두환식이다’ ‘치안본부다’ 이런 프레임을 걸어서 새 정부의 경찰 행정사무 개혁안과 국민소통을 차단시켜 버린다”며 “그걸 우리는 프레임 공격이라고 한다”고 발언했다.

이어 강 수석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경찰 권한은 굉장히 비대해졌다”며 “어떤 조직이든지 그 조직의 권한이나 권력이 커졌을 때는 이에 대한 적절한 견제와 균형,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경찰국 신설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새 정부는 민정수석실을 없앴고, 또 비대해진 경찰행정의 사무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현행법에 따라 행안부 등에서 그런 절차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행안부의 경찰국 설치가 결코 경찰의 독립성을 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경찰 내부에 일부 오해가 있거나, 또는 부족한 이해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소통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을 맺었다.

민주당은 이달부터 국회에서 정부조직법·경찰공무원법 등을 개정하고 권한쟁의심판 청구·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을 단계적으로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그 실효성은 확실하지 않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정부부처의 한 고문 변호사는 <더팩트>와의 대화에서 “권한쟁의심판 등은 빨라도 1년, 길게는 3년 이상 소요될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재판부가 현 정부 방침에 제동 거는 문제에는 소극적인 경향이 짙은 탓에 단기간에 논란을 정리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짚었다.

그는 “실제 법을 봐도 행안부 장관 사무에 치안은 포함돼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경찰국 신설이 위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사실상 OX 문제라기보단 세모 정도로 보이는데 이런 경우에는 여론 향방도 무척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일선 경찰들도 이를 인식하고 있다. 전국 경찰직장협의회는 여론 지지를 높이기 위해 총력전을 벌여왔다. 앞서 경찰직장협의회는 단식과 삭발, 대국민 홍보전을 진행했다. 또 직장협의회는 경찰국 저지를 위한 시민 입법청원을 오는 7일까지 이어갈 계획이다.

지난달 릴레이 삭발식을 이끈 김연식 전 경남청 직장협의회 회장은 “경찰국이 국무회의 등을 거쳐 이미 신설된 상황에서 현재로서는 거리 투쟁 등을 지속할 계획은 없다”며 “대신 행안부의 경찰 통제가 절차적으로 타당한지 차분히 따져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작부터
시험대에

그러면서 “특히 행안부는 경찰 제도발전위원회를 또 신설해 추가 조치를 예고한 상황”이라며 “이 또한 경찰국처럼 졸속으로 꾸려져 운영될 수 있다는 비판이 큰 만큼 하나하나 지켜보며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고 힘줘 말했다.
직장협의회는 지난달 26일부터 시민들을 대상으로 경찰국 반대 입법청원을 진행 중이다. 당초 목표 인원이었던 10만명을 서명 첫날 돌파했다. 현재 서명한 총인원은 5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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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