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세 번째 국토 종주 도보 여행가 김도경

“길 위 모두가 건강한 벗이죠”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걸음의 미학’이 실종된 시대다. 거리에는 대중교통, 골목에는 전동 킥보드가 들어선 탓에 사람들은 잠깐의 걷는 것마저 고민한다. 이 와중에 단순한 걸음을 넘어 매년 ‘도보 여행’을 떠나는 이가 등장했다. <일요시사>는 며칠 전 세 번째 국토 종주를 마쳤다는 도보 여행가 김도경을 만났다. 그는 이 시대 속 길과 걸음의 미학을 자신만의 언어로 생생히 전했다. 

도보 여행가 김도경씨는 직업이 2개다. 보정식품의 홍보이사로 재직하면서도, 틈틈이 도보 여행가로서 길 위에 선다. 매번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떠나는 여행이지만, 몇 년 새 꽤 많은 길을 걸었다. 국토는 각각 동해안·서해안·중부내륙으로 한 달간 걸어 완주했고, 제주 올레길도 모든 코스를 완주했다. 해외에서는 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 뚜르 드 몽블랑 클래식 루트를 완주한 바 있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최근 세 번째 국토 종주를 마쳤다. 소감을 전한다면?

▲우선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으며 길을 걸었다. 이 응원의 힘으로 (국토 종주를)무탈히 마친 것 같아 감사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풍요로운 세상을 만났던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도보 여행가라는 직업을 선택한 계기는?

▲20대 때 큰 사고가 났었다. 하반신 마비 직전까지 갔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지만, 한동안 오른쪽 다리를 절었다. 의사는 “많이 걷는 것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똑바로 걷기 위해서 열심히 걸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걷는다는 것’에 정이 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항상 열심히 걷긴 했지만, ‘도보 여행’이라는 용어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는 2018년부터다. 첫 국토 종주까지는 걷는다는 게 마냥 좋았고, 길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지금까지도 그때 걸었던 길이 모두 기억날 정도다.

두 번째 종주 때는 길 위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종주하면서)정말 많은 사람에게 큰 사랑과 응원을 받았다. 그 여행 때 걸었던 길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신 만난 사람이 모두 기억에 남았다.

하반신 마비 위기 넘기고 힘찬 도전
홍보이사로 재직…국토 종주만 3번

-걸어본 다양한 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길은?

▲우선 외국과 한국의 길은 주는 인상이 조금 다르다. 외국 길은 크고 듬직하다. 해발고도 2000m 위에서 트래킹하면, 종일 걸어도 주변 풍경이 달라지질 않는다. 병풍 같은 빙하가 어떨 때는 지루하다가도 또 어떨 때는 내가 가는 길을 잘 지켜봐 주는 것 같다. 듬직한 친구이자 스승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한국 길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재미있다. 시선을 옮길 때마다 시시각각 달라진 모습을 보는 게 묘미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길은 동해안 정동진의 부채길과 문경새재길이다. 부채길은 동해안의 서슬 퍼런 바다를 발밑에 두고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걸어 지나치기 아까울 정도로 풍경이 아름답다. 


한편 문경새재길은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이 길은 잘 다져진 황토길이다.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맨발로 걷는다. 양쪽 가로수가 천연 터널을 만들어줘서 시원하고 쾌적한 숲 공기와 황토 내음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다. 모든 긴장을 풀고 걸을 수 있다는 게 참 감동적이었다. 

-도보 여행만의 매력이 있다면?

▲도보 여행에서는 요행이 통하지 않는다. 자전거 여행은 내리막이 나타나면 자전거 바퀴에 기대 저절로 내려오는 ‘무임승차’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도보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몸이 동력이다. 그래서 내 몸을 잘 보살피고 끝까지 배려해야 한다. 내 몸에 대한 존중과 함께 일정을 이어나가는 것이 색다른 매력이다.

또 생각과 관점이 달라진다. 하염없이 걷다 보면 내 생각이 부드러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 한 발에서 마음이 녹고 또 한 발에서 위로가 생길 때, 길이 스승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역시 도보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 길은 재밌고 
외국 길은 듬직해”

-도보 여행 중 겪은 인상적인 일화가 있다면?

▲이번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은 강원도 홍천이다. 한 부부가 하는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했는데, 식당 주인의 사연을 듣게 됐다. 그는 사실 뇌경색으로 반신마비가 왔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시골에 와서 죽기 살기로 산을 타고, 밥도 먹고 하면서 지금은 거의 나았다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다 듣고 일어나려고 하니, 주인이 밥값을 받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주인은 “내가 새로 태어난 이후로 우리 집까지 걸어온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라며 “전국을 돌고 걸어와 밥을 먹는 이에게 돈을 어떻게 받겠나. 마음 같아서는 밥을 더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연을 듣고선 그 사람이 삶의 영웅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밥을 나눠주고 싶다는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다시 찾아가고 싶다.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보 여행 코스를 꼽으라면 단연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나도 이곳을 가려고 7~8년 전부터 계획을 세워놨었는데, 번번이 일정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아직까지도 가지 못했다. 그러면서 도보 여행가는 단순히 ‘길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길의 부름에 응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국토 종주도 3번까지 할 계획은 없었지만, 길이 나를 불러서 응한 것이었다. 내년 3월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방문할 계획을 세워두긴 했는데, 과연 이번에는 그 길이 나를 허락할지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그리고 도보 여행을 다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러 사람이 후원금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여행 경비에 보태 쓰기도 했지만, 어느샌가 함부로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 돈을 잘 모아서 서울 시립병원의 장애인 아이들에게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큰돈은 아니지만 늘 보람을 느끼는 일이다. 내가 도보 여행가로서 좀 더 자리를 잡고, 후원금이 더 꾸준히 들어온다면 이 아이들을 계속 지원하고 싶다. 항상 내 마음속에 두고 내 자식처럼 돌보고 싶은 마음이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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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