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칫집 극장가 ‘웃픈’ 딜레마

갑자기 돌아온 봄날에 ‘흠칫’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유난히 길었던 영화관의 겨울. 무려 2년여 만에, 그토록 기다리던 봄이 찾아왔다. 이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와 흥행 기대작 연속 개봉에 힘입어 실적 반등이 확실시된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때가 아니다. 확 불어난 인파로 직원들의 곡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구인난 속 인력 대거 확충’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떠안은 탓이다.

지난 2년간 이어졌던 사회적 거리두기는 영화업계의 불황으로 직결됐다. 시행 당시 업계는 시시각각 변하는 방역지침에 대응하느라 촉각을 곤두세웠었다. 정부 지침을 준수하면서도 살 길을 골몰해봤지만, 피해를 줄일 수는 있었을지언정 막을 수는 없었다.

겨울 지나고
봄이 왔건만…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널을 뛰는 방역지침 때문에 업계와 관객 모두가 힘들어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당시 방역 당국은 그 전달부터 시행됐던 ‘위드 코로나’ 여파로 강해진 확산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방역 패스’ 도입을 선언했다.

위드 코로나 시행에 발맞춰 여러 빗장을 풀었던 업계로서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이 관계자는 “지난달(지난해 11월)에는 백신 접종자들을 대상으로 취식과 좌석 붙여앉기가 가능한 ‘백신 패스관’도 운영하고, 미접종자들도 별다른 제한 없이 입장할 수 있어 이전보다 많은 관객이 영화관을 찾았다”면서도 “하지만 방역 패스 도입 이후에는 백신 패스관도 없애고, 입장 요건도 까다로워지다 보니 회복세가 한풀 꺾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업시간이 제한될 때마다 타격이 너무 크다”며 “특히 오후 9시나 10시 제한 때는 저녁 황금 시간대 영화 상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 관객층인 학생·직장인을 모두 놓치게 되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CGV, 롯데시네마 등 주요 영화관들은 당시 관객 755만명을 동원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개봉에도 불구하고 실적 개선에 난항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구책으로 마련한 인원 감축·가격 인상 계획 등에 쏟아지는 비난도 감내해야 했다.

2년간의 부침은 지난달이 돼서야 끝났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면서다. 정부는 지난달 18일 마스크 착용을 제외한 대부분의 방역 조치를 종료했다.

거리두기 해제 소식이 알려진 직후, 영화관은 야구장·식당 등과 함께 대표적인 수혜자로 꼽혔다. 그동안 금지됐던 실내 취식이 가능해지면서 영화를 보며 팝콘을 먹을 수 있게 됐다. 반가운 마음에 극장을 찾는 발길도 늘어났을뿐더러, 관객당 기대수익도 상당히 늘었다.

잔칫집 극장가 ‘웃픈’ 딜레마 
갑자기 돌아온 봄날에 ‘흠칫’

이번 달부터 성수기인 여름까지 흥행 기대작이 계속 늘어서 있다는 점 역시 호재다. 코로나 유행 이전에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인기작들의 속편이 개봉날짜를 속속 확정하고 있다. 

앞서 지난 4일 개봉한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이하 <닥터 스트레인지>)는 일주일 만에 약 400만명을 동원하면서 코로나 유행 이후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이어 오는 18일에는 <범죄도시2>가 개봉한다. 전작인 <범죄도시>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에도 불구하고 687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범죄도시2>는 이보다 한 등급 낮은 15세 관람가로 더 큰 흥행을 노리고 나섰다.

다음 달에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마녀 Part2> <탑건: 매버릭> 등이 개봉을 앞두고 있고, 오는 7월에는 <토르: 러브 앤 썬더> <한산: 용의 출현> 등이 개봉 날짜를 조율하는 중이다. 

특시 <한산>은 2014년 개봉한 <명량>의 후속작이다. <명량>은 관객 1761만명을 동원하면서 개봉 8년 뒤인 지금까지도 역대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업계에서 <한산>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팝콘 푸느라
수명 갉았다”

CGV 관계자는 “우선 <닥터 스트레인지>가 첫 단추를 잘 꿰준 것으로 보고 있다. 덕분에 코로나 유행 때 영화관을 찾지 못했던 관객들이 다시 돌아오는 계기가 잘 마련된 것 같다”며 “다른 인기 후속작들과 한국 영화 기대작들이 줄 서 있는 만큼, 지금부터 여름시장까지 더 많은 관객이 영화관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롯데시네마 관계자 역시 “<닥터 스트레인지>가 시장에 좋은 신호를 준 것으로 본다”며 “그동안 너무 어려웠던 만큼, 좋은 상황을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달을 기점으로 실적 ‘턴어라운드(흑자 전환)’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업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큰 업체들은 이번 달을 기점으로 살아날 것으로 본다”며 “대표적으로 업계 1위인 CGV는 지난 27개월 동안 계속 적자에 허덕여왔는데, 이번 달에는 반등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환욱 IBK투자증권 연구원도 지난 3월 말 작성한 투자 보고서에서 CGV가 올해 흑자 전환에 성공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연구원은 “코로나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콘텐츠가 연달아 개봉을 기다리고 있고, 티켓 가격 인상으로 큰 폭의 실적 개선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며 “또 마진율이 높은 매점 매출 회복 및 비용 절감 정책으로 소폭의 흑자 전환도 가능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 반등 조짐
흥행 기대작 줄줄이…장밋빛 전망

하지만 급격한 회복세에 따른 반작용도 상당하다. 최근 영화관 현장 근무자들은 갑자기 불어난 업무량 때문에 여러 고충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코로나 유행 당시 불황으로 한껏 감축했던 인원이 다시 충원되기도 전에, 관객이 몰려든 여파다.

앞서 이번 달 초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과도한 업무로 너무 힘들다”며 토로하는 영화관 현장 직원들의 글이 수차례 올라왔다. CGV 직원으로 추정되는 A씨는 ‘지금 시키는 그 팝콘, 직원들 수명 갉아 내드린 겁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어려운 현장 상황을 전했다.


그는 “코로나 (유행)이전엔 영화관당 직원이 6~7명 있었고 아르바이트생도 20~50명씩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직원 3명이 3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면서 “휴무를 보장받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화재·안전문제 등 그 어떤 사건사고가 터져도 해결하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이어 “지난달 25일부터 영화관 취식이 가능해졌고, 모두가 잘될 거라고 예상했던 <닥터 스트레인지>가 개봉했는데 본사는 옥수수, 기름, 팝콘 컵, 콜라 컵 등 기본 물품들을 보충하지 않는다”며 “발주를 안 한 게 아니라 3주 전부터 본사가 물량을 통제하고 지정된 수량만 넣어줬다”고 비판했다.

A씨는 “매점엔 대기 고객만 300명을 넘어가고 아르바이트생 2명이서 모든 주문을 다 해결하고 있다. 각종 대기줄을 쳐내느라 정직원도 12시간씩 밥은커녕 물도(못 마시고), 화장실도 못 가고 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내가 간 지점은 팝콘이 잘 나와서 저희가 배부른 푸념하는 것 같나. 그거 팝콘 아니다”라며 “뒤에서 어떻게든 재고 요리조리 옮겨서 고생하는 영업팀 사람들과 12시간씩 배고픔 참고 클레임(항의) 참고, 참으며 일하는 현장 직원들·아르바이트생·미화 직원들 수명 갉아서 드린 것”이라고 호소했다.

알바 다 
뺐는데…

A씨 주장에 공감하는 롯데시네마·메가박스 직원들의 증언이 계속 이어지면서, 해당 게시판은 업계 성토의 장이 됐다.


회사 측은 “이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있다”며 사과하고 빠른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영화 예매율 추이를 보면서 지난달 중순부터 일찌감치 인력 확충에 나선 바 있다”면서도 “주요 채용 대상이 대학생들인데, 중간고사 기간이 겹치면서 필요한 만큼 채용이 되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말 등 관객이 많을 때는 본사에서도 현장 지원을 나가는 등 인원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CGV 관계자는 “<닥터 스트레인지> 개봉일이 4일이었고, 다음날 어린이날이 겹치면서 하루 관객 수가 총 130만명을 넘어섰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본 것도 사실이지만 현장 직원들의 고충도 그만큼 컸던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코로나 유행 여파로 인원을 줄인 것은 맞지만 거리두기 해제 이후 인력 충원이 이루어졌다”면서 “예상보다 더 많은 관객들이 영화관을 방문하면서 일시적인 혼란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는 18일 <범죄도시2>가 개봉하면 지난 5일만큼은 아니겠지만 많은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최대한 빨리 추가 채용을 실시해 운영상 어려움을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여름 성수기 전까지 차질 없는 운영이 가능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확 불어난 인파에 반쪽 인력 곡소리
인력 충원 시급한데…구인난 어쩌나 

하지만 이들이 필요한 만큼의 인력을 즉각 충원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대다수의 서비스업 업종이 구인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표적인 서비스업으로 꼽히는 외식업계는 아르바이트 구인난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구인이 한꺼번에 몰린데다 청년들의 시선이 고정적인 근무 방식에서 유동적이면서 단기적인 고수익 업종으로 쏠리고 있는 탓이다.

이로 인해 식당에서는 최저임금보다 20~30% 높게 책정한 시급을 내걸어도 마땅한 지원자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영화관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우리 역시 자영업자들과 인력 확보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인력 보충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코로나 유행으로 노동 시장이 재편되면서 당분간 이 같은 구인난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주당 17시간 미만의 초단기 일자리 취업자 수는 231만9000명이다.

코로나 유행 이전인 2년 전에 비해 45%가량 급증한 수치다. 앞서 “당장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밝혔던 영화관 관계자들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구인난이라고는 하지만 경험적으로 봤을 때 이번 달 초가 지난달 말보다 지원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며 “추가 채용 외에도 숙련도에 따른 보직 배치와 지속적인 교육 등으로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방안을 적극 강구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뽑아도
너무 늦었다

인원 공백이 지속되면 고객 불만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 간만에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을 붙잡지 못한다면, 이들의 ‘봄날’은 말 그대로 ‘일장춘몽’에 그칠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업계에서는 해결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긴 터널을 지나온 영화업계가 마지막 난관을 어떻게 돌파할지, 그 행보에 눈길이 모이고 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블록버스터 맞설 국내 기대작 라인업

올해 흥행 기대작 중에는 ‘할리우드표’ 블록버스터가 다수 포진돼있다. 하지만 이에 충분히 대적할 만큼, 국내 영화 라인업도 쟁쟁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우선 <브로커>가 다음 달 8일 개봉을 확정지었다. 일본의 명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배우 송강호·강동원·배두나 등이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만난 이들의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을 그렸다.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진출했다. 

뒤이어 <마녀 Part2. The Other One>이 다음 달 15일 개봉 예정이다. 전편의 독특한 설정과 배경을 기반으로 더욱 확장된 세계관과 강렬한 액션을 선보인다. 1408대1의 경쟁률을 뚫은 주연 배우 신시아를 비롯해 박은빈·서은수·진구·성유빈·조민수·이종석 등이 출연한다. 전편 주인공이었던 김다미도 특별 출연할 예정이다.

<외계+인>은 오는 7월 개봉한다. <전우치> <도둑들> <암살> 등을 잇달아 흥행시킨 최동훈 감독의 신작이다. 고려 말 소문 속의 신검을 차지하려는 도사들과 2022년 인간의 몸 안에 수감된 외계인 죄수를 쫓는 이들 사이에 시간의 문이 열리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류준열·김태리·소지섭·염정아·조우진 등이 출연한다. 

<한산>은 7월 말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전편 <명량>보다 5년 앞인 1592년 7월의 한산해전을 그린다. <명량>에서 배우 최민식이 맡았던 이순신 장군 역할은 배우 박해일이 맡았다. 이외에도 안성기·변요한·손현주·김성규·김성균 등이 출연해 몰입감을 더한다.

<비상선언>도 올해 여름 안에 개봉할 예정이다. <비상선언>은 사상 초유의 재난 상황에 직면해 ‘무조건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를 두고 벌어지는 리얼리티 항공 재난 영화로, 이미 지난해 칸 월드프리미어에 초청받은 바 있다. 이병헌·송강호·전도연·김남길·임시완 등 국내 정상급 배우가 대거 출연해 기대를 모으는 중이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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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