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유내강' 박홍근 VS '외강내유' 권성동 피 튀길 원내 전쟁 관전포인트

묵직한 한방이냐 날카로운 잽이냐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간의 싸움이 의회 정치로 넘어갔다. 각 당의 원내대표 자리에 ‘친이재명계’ 박홍근 의원과 ‘윤핵관’ 권성동 의원이 각각 당선된 것이다. 치열했던 대선이 끝난 후 한숨 돌리고 있던 정계는 이제 또 다른 전쟁 돌입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대선이 끝나고 6주가 흘렀다. 승리한 국민의힘과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제 각자 위치를 정하고 앞으로의 국정 운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전략회의에 들어갔다. 여당이 된 국민의힘은 안정적으로 정책을 끌고 나갈 ‘묵직함’이 필요해졌고, 야당이 된 민주당은 그런 그들을 견제하고 민심을 얻을 ‘날카로움’이 필요한 상태다.

‘여’코너
‘야’코너

각자 나름대로의 상황에 따라 전략 설정에 들어간 양당이지만, 둘은 서로 협력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당선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가 이제 민주당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라며 국정운영이 쉽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예고한 바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이번 대통령선거 승리가 오랜만에 맛보는 ‘큰 선거 승리’다. 지난해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며 민주당에 돌아선 민심을 살짝 엿본 국민의힘이지만, 그 이전의 큼지막한 선거에서는 계속 지기만 했다.

2016년 불거진 국정 농단 사건으로 민심을 크게 잃은 국민의힘은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정부에 정권을 내줬다.


그로부터 1년 후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북 지역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기초단체장과 지방 의회 의석을 민주당에 빼앗겼다. 그로부터 2년 후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과반 이상의 의석을 민주당에 넘겨주며 패배의 쓴맛을 맛봤다.

국민의힘은 민심의 바로비터라 불리는 경기 지역 59개의 선거구 중 단 6곳에서만 승리했을 뿐이고, 서울 지역에서는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민주당에 패배했다.

총 170석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은 현재 의회 권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5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낸 국민의힘이 마음 놓고 기뻐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윤석열정부가 성공한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국회 차원의 협조는 물론, 각 지방에 자리하고 있는 단체장들의 협력이 절실하다.

지자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은 선거에 당선된 후에 독립 권력으로 지방 국정을 수행하고 있다지만, 다음 공천을 위해서, 그리고 그 다음 정치 생활을 위해서 아직 중앙당의 눈치를 보고 있다.

송영길 전 대표의 사퇴로 당의 수장 자리를 공석으로 두고 있는 민주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된 상태다.

전환된 비대위 수뇌부의 주요 요직은 대부분 민주당 국회의원들로 채워져 있다. 권력구조상 단체장들과 윤석열 당선인 측이 민주당 국회의원들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회의원들의 대표인 원내대표의 존재감이 상당히 커져 있는 상태다.


여소야대라는 정치 지형상,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기상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권은 민주당 원내대표의 ‘입’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달 민주당의 새로운 원내대표로 뽑힌 3선의 박홍근 의원의 ‘입’ 말이다.

박 원내대표는 전남 고흥 출생으로 경희대 총학생회장을 지내며 1992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이하 전대협) 권한대행을 맡으며 정치인으로서의 초석을 다졌다.

전대협 시절 민자당 낙선 운동에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중앙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는 이후 청년 유권자 연대 위원장과 전대협 동우회 활동을 이어오면서 시민운동에도 눈을 떴다.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에 청춘을 바친 박 원내대표가 꿈에 그리던 중앙정치무대를 밟은 것은 그의 나이 37세 때다.

2007년 열린우리당이 해체되면서 진보 진영 정당의 대표격인 미래창조연대라는 조직이 생겼고, 여기서 청년 대표로 활동하며 자신의 이름을 정계에 알렸다.

아래부터 위로 올라온 박
위에서 아래로 내려간 권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선거대책위원회 청년대책위원장을 역임했고, 이 공로를 인정받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 공천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압도적인 패배를 기록한 민주당의 비례 순번은 박 원내대표에게까지 돌아가지 못했다.

그가 국회의원으로 첫발을 떼기까지는 그로부터 4년의 세월이 더 걸렸다. 박 원내대표는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중랑을 지역에 출마해 비로소 처음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국회에 들어간 박 원내대표는 교육문화체육단장위원회에서 열심히 활동했지만, 초선 의원의 특성상 뚜렷한 성과는 내지 못했다. 어리버리한 초선이었던 그가 당내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제20대 총선서 재선에 성공하면서부터다.

화려한 의정활동 대신 흠결 없고,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스타일로 정평이 나있던 박 원내대표를 당에서 알아봐 준 것이다.

2017년 5월 우원식 당시 원내대표는 원내수석부대표로 그를 지목했다. 이후 박 원내대표의 커리어는 상승가도를 달렸다. 그중 눈여겨볼 이력은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 제3기 위원장이다.


여기서 그는 LG유플러스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파인텍 고공농성, 전주택시 고공농성 문제 등 여러 사안을 해결하며 뉴스에 자주 등장했다. 이때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 ‘고공농성 해결사’다.

약 20년간의 학생운동과 시민운동, 그리고 약소 정당이었던 민주당에서 이어온 정치생활 등은 그를 ‘강’한 정치인으로 만들었고, ‘고공농성 해결사’ 시절을 보냈던 시절은 그를 ‘유’한 정치인으로 만들었다.

청년 시절에 쌓았던 경험들은 강한 투쟁심을 갖게 했고, 이쪽 저쪽을 오가며 조율한 경험들은 그에게 유하게 중재하는 능력을 기르게 한 것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 측 인사들은 박 원내대표를 ‘외유내강’의 표본이라 평가하고 있다. 

아래에서
꼭대기로

국민의힘 측에서도 지난 8일 원내대표를 새로 뽑았다. 민주당 박 원내대표에 맞설 대항마를 새로 뽑는 만큼, 정계의 관심은 종일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거에 쏠려있었다.

결과는 ‘윤핵관’이라 알려진 권성동 의원의 압승이었다. 국민의힘 권 원내대표는 박 원내대표만큼이나 다사다난한 정치 커리어를 이어왔다.


강원도에서 태어난 유년시절 모두를 강원도 강릉시에서 보내다가 그는 중앙대 법학과에 입학하며 처음 상경했다. 이후 제2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검사로서 직무를 시작한 권 원내대표는 중앙지검 특수부, 대검찰청 등에서 근무하며 검찰의 핵심에서 주요 보직을 맡았다.

2006년 인천지검 특수부장검사를 역임한 후 옷을 벗은 권 원내대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청와대에 들어갔다.

그는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실 법무비서관에 임명되며 정치인으로서 첫 커리어를 쌓았다. MB정부에서 시작한 그의 정치적 커리어는 이후 그의 무기가 되기도 했고, 약점이 되기도 했다. 

무기가 됐던 시절은 그가 초선 의원을 지냈던 시절이다. 2009년 재보궐선거에서 강원도 강릉시 지역구에 무난히 공천을 받은 권 원내대표는 보궐선거에서도 큰 무리 없이 승리했다.

18대 국회 중간에 들어왔음에도 당시 MB정부의 후광을 입고 있던 터라, 초선 2년4개월간 4개의 상임위원회, 3개의 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할 수 있었고, 10개의 인사청문회와 4개의 대정부질문 등 맹활약을 펼칠 수 있었다.

초선 의원답지 않은 활동은 그를 자연스레 한나라당의 실세로 만들어줬다. 제19대 총선에서부터 한나라당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꿨다.

당명이 바뀌고 당내 주류가 ‘친이(친 이명박)’에서 ‘친박(친 박근혜)’으로 바뀌는 동안 권 원내대표는 영향력을 잃지 않았다. 초선 때 보인 전투력과 ‘말빨’을 인정받아 재선 의원 임기 내내 실세 의원들만 간다고 알려진 법제사법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의 간사로 활동한 것이다.

실세에서
공천 탈락

이후 박근혜정부와 당의 갈등이 격화되자 당시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전 의원이 자리를 내려놨고, 이 자리를 대신하는 전략기획본부장에 권 원내대표가 선임됐다.

이때부터 국민의힘 내에서는 그를 ‘친이’를 넘어 ‘비박(비 박근혜)’ 의원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이어졌고, 당시 탄핵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이후 보수당 의원으로서 험난한 시간을 보냈다. 탄핵 후 총선인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천을 못 받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당시 황교안 대표와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 체제하에서 권 원내대표는 눈엣가시였다.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의 지도부는 이런저런 명분을 끼워넣어 그의 공천을 탈락시켰고, 이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본인 지역구에 다시 출마해 당선되며 부활했다.

무소속 의원으로 입당 시기만 조율하고 있던 그가 다시금 주목을 받은 것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국민의힘 입당을 도우면서부터다.

어렸을 때부터 윤 당선인과 알고 지낸 각별한 사이로 알려진 권 원내대표는 검찰총장 옷을 벗은 윤 당선인을 국민의힘으로 끌어들여 대권후보로 발돋움하게 했다. 

윤 당선인이 처음 만난 정치인이 권 원내대표인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5월에 둘은 강릉시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윤석열 대망론의 신호탄을 날렸다.

이후 그는 본격적인 경선 레이스에서 윤석열 캠프에 들어가 전략을 진두지휘했고, 여의도 국회의원들과 연이 없던 당선인에게 중견 정치인들을 여럿 소개해줬다. 주류에서 비주류로, 또 다시 주류로 이어지는 권 원내대표의 커리어는 롤러코스터 같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검사 시절부터 주요 보직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했고, 이후 화려한 말빨과 전투력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때부터 그는 ‘강’의 면모를 띄는 정치인으로 자리 잡았고, 비주류로 전락하며 공천 탈락의 수모를 겪었을 때는 ‘유’의 면모를 처음 띄게 됐다.

이래저래 수난을 겪은 그는 현재 ‘외강내유’형 정치인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현직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는 등 본인이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는 ‘강한’ 돌파력을 지닌 동시에 친구를 설득하고 비주류 정치인 생활을 견뎌온 ‘유’ 또한 겸비한 셈이다.

‘여소야대’ 주도권 다툼
‘검수완박’ 두고 첫 매치

이처럼 민주당 박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권 원내대표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을 하며 아래에서부터 원내대표 자리까지 조용히 올라온 박 원내대표와 시작은 화려했으나 몰락의 길을 걷다 최근에서야 다시 기지개를 켠 권 원내대표는 ‘외강내유’형이란 별명과 ‘외유내강’형이라는 타이틀이 보여주듯 정반대 성격의 정치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둘의 성향이 맞바뀌어가고 있는 모양새다. 야당 의원들의 대표자리에 오른 박 원내대표가 강하게 당선인 측을 비판하고 있고, 여당 의원들의 대표 자리에 오른 권 원내대표는 오히려 유하게 이를 방어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매스컴에는 ‘검수완박’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검수완박이란 ‘검찰의 수사권 완전 박탈’의 준말로 문재인정부 검찰개혁의 핵심 공약이다. 무소불위 검찰 권력의 힘을 빼려는 조치로 그동안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지속해서 추진했던 일이다.

이 바통을 이어받은 박범계 현 법무부 장관은 퇴임 전 이를 끝내려 하고 있으나 검찰의 강한 반발로 현재 진행이 더딘 상황이다.

윤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면 거부권을 행사해 검수완박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에 지금 민주당은 서둘러 이를 추진 중이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및 검찰 측에서는 ‘대통령 퇴임 전 이뤄지는 추태’라고 반발하고 있고, 민주당 및 청와대에서는 ‘검찰공화국을 막을 마지막 기회’라고 대응하고 있다.

민주당 대응의 선봉장에는 역시 박 원내대표가 자리하고 있다.

‘강한 야당’이 될 것을 선언한 그는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자신의 이빨을 최근에서야 드러냈다. 윤 당선인의 인사와 검찰의 행태에 날카로운 메시지를 연이어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윤 당선인은 지난 13일 새로운 법무부 장관으로 그의 최측근이라 알려진 한동훈 검사장을 지명했다.

이에 대해 박 원내대표는 지난 14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인사가 망사가 됐다”며 “깜깜이 찔끔 정실 인사로 얼룩진 윤 당선인의 첫 인사는 실패작이다. 특히 한 후보자 지명은 망사를 넘어 망국 인사”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새 정부에 희망과 기대를 걸던 국민에 날린 어퍼컷”이라며 날선 메시지를 이어갔다. 검수완박에 반대 입장 표명을 낸 검찰에 대해서도 “‘검수완박’ 결론 도달하면 좌고우면 않겠다”며 강행 처리를 시사했다.

‘전투형’이라고 알려진 권 원내대표는 비교적 유화적인 입장을 취했다. 앞으로 있을 국정운영에서 민주당과의 갈등은 윤석열정부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계산하에서다.

보통 때 같으면 더 강한 메시지를 냈을 권 원내대표는 같은 날 열린 최고위원 회의에서 “검수완박에 관해 무제한 TV 토론할 것을 박홍근 원내대표께 제안 드린다”며 조심스레 국민의힘 의원들의 입장을 전했다.

꺼내고
감추고

강하게 맞받아치는 대신 한 걸음 물러서며 숨 고르기 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야당과 여당이 뒤바뀌더니 원내대표들의 성격도 서로 맞바뀌어가고 있다. 박 원내대표가 언제 드러낸 이빨을 다시 감출지, 또 권 원내대표가 숨기고 있는 본인의 이빨을 언제 꺼내게 될지가 요즘 정계의 최대 관심사다. 지금 막 시작된 둘의 대결구도는 앞으로 있을 선거에, 그리고 윤 당선인의 국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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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