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온' 이재명 막는 걸림돌

주류행 열차 ‘끽’하면 나락행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리더는 여러 가지 능력을 가져야 한다. 내부를 통솔할 수 있는 카리스마와 그때그때 전략을 설정할 수 있는 판단력, 기조를 끌고 끝까지 끌고 나갈 수 있는 추진력 등이다. 여기에 요즘 같이 어지러운 시국에는 한 가지 능력이 더 필요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기지’다. 요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 능력을 고루 갖춘 인물로 이재명 상임고문을 지목하고 있다.

당내 ‘비주류로 정치판에서 수십년간 정치생활을 이어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대선을 치르며 자신의 인기와 능력을 입증한 이 고문은 정치인 인생 제2막으로 넘어가려 한다. 민주당 물밑에서 영향력을 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지금 차기 당 대표, 그리고 차기 대통령 후보감으로 성장 중이다.

위기를
기회로

이 고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것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였다. 비록 ‘10년 정권교체 주기설’을 깨며 이례적인 패배를 기록한 민주당이지만, 세간에서는 이 고문에게 만큼은 '졌지만 잘 싸웠다'는 평가인 ‘졌잘싸’ 타이틀을 붙여줬다.

시작부터 불리했던 대선에서 미미한 차이의 패배를 이끌어냈다는 긍정적인 평가였다. 그의 대권 가도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던 정치 평론가들은 이 고문의 개인 비리를 문제삼은 바 있다.

여러 가지 치명적인 약점을 대권후보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 주요 패인이라며 민주당의 패인으로 분석한 것이다. 이 고문은 실제로 대장동 사건을 비롯해, 아들의 도박 논란, 부인의 갑질 논란 등이 연이어 터지며 여러 차례 곤혹을 치렀던 바 있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 의견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이런 곤혹을 치를 때마다 이 고문이 능력을 입증해냈다는 의견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민주당 의원들은 보통 대선후보였다면 낙마 수순을 밟아야 할 사건들이었지만, 기지를 발휘한 이 고문이 논란들을 차근차근 해결해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 고문이 ‘사과’와 ‘반박’을 적절히 섞어서 대응했다고 평가했다.

대장동 사건으로 부당한 세력이 과한 이익을 챙겨간 것에 대해서는 ‘최종 결정권자’로서는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과했지만, 개인 비리에 대해서는 거세게 반박했다.

거대한 부당이익을 전부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본인이 노력해서 어느 정도 이익을 회수해 성남시민들에게 돌려줬다는 논리로 맞선 것이다.

그는 지난 경선 과정에서 붉어진 화천대유 대장동 특혜 이익에 대해서 “대장동 개발사업의 고정이익을 확정해 공공에 70% 환수되는 것은 내가 설계한 것”이라며 “1조3000억원의 사업비 중 집값이 오르고 내리는 걸 예상한 당초 수익은 6000억원대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중 70%가량인 5500억원을 성남시가 고정이익으로 먼저 받도록 한 것이 대장동 개발사업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공격을 방어함과 동시에 자신의 성과를 홍보하는 방식으로 대장동 건을 대응한 것이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지난해 11월에는 “해명보다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가 먼저여야 했다”며 “‘내가 깨끗하면 됐지’ 하는 생각으로 많은 수익을 시민들에게 돌려 드렸다는 부분만 강조했지, 부당이득에 대한 국민의 허탈한 마음을 읽는 데에 부족했다”고 처절한 반성문을 SNS에 올렸다.

“반은 내편” 이만하면 ‘졌잘싸?’
리더의 부재, 이재명계가 메꿀까

태도가 180도 바뀐 데에는 이 고문의 정치적 식견이 한몫 했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보단 민심을 읽어내 표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가미된 것이다. 민심에 따라 바뀌는 적절한 대응법은 본선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자녀의 도박 문제가 불거지자 “아들의 잘못에 대해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부모로서 자식을 가르친 데 부족함이 있었다”고 논란 하루 만에 재빠르게 사과했다.

공세를 이어가던 국민의힘 측에서는 사과 후 크게 공격할 수 없었고, 사건은 큰 영향 없이 마무리되어 가족 비리 관련 논란을 잘 방어한 사례로 남았다.

배우자 김혜경씨에 대한 ‘갑질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이 고문은 “문제가 드러날 경우 규정에 따라 책임지겠다”고 밝히면서 “이번을 계기로 가족, 주변까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겠다”고 언급했다.

이후 대선운동에서 김씨의 행보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극민의힘 측은 상대적으로 배우자 문제는 없다고 자부하던 터라 이 역시 타격이 클 것이라 예상했지만 사건은 미미한 역풍 수준을 맞고 지나갔다.

흔들리는 배에서 키를 잡은 선장이 뱃길을 읽고 위기를 빠져나가듯, 이 고문의 대선 행보는 늘 절묘했다.

이때 생겨난 그에 대한 믿음은 그를 주류 정치인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최근 있었던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이재명계의 복심이라 평가받았던 3선의 박홍근 의원이 당선된 것이다.

이로써 이 고문은 수십년간 이어왔던 ‘비주류’ 정치인 인생을 청산하고 ‘주류’ 정치인으로 나아갈 기지개를 켰다.지방선거에서 이재명계 의원들이 주도해 승리로 이끈다면, 8월에 있을 전당대회에서 이 고문은 당 대표까지 노려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앞길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다. 이 고문의 발목을 붙잡고 놔주지 않을 사람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어난 숱한 논란은 그를 주류 정치인으로 가는 ‘견인차’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기도 하다.

주류 견인차
덧나는 상처


더욱이 상처는 계속해서 덧나는 중이다. 가장 크게 덧나고 있는 상처는 역시 대장동이다. 

검찰은 대장동 수사를 진즉에 시작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 숱한 화제를 뿌리며 세간의 이목을 끈 사건이니 만큼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대장동 의혹은 지난해 8월 말 처음 제기된 꽤 오래된 사건이다.

민주당 경선 예비후보였던 이낙연 캠프는 대장동 의혹을 무기로 지속해서 이 고문을 공격했다. 이렇게 흠결이 많은 후보가 민주당의 대권주자로 나서면 안 된다는 논리였다.

검찰은 논란이 불거지고 한 달이 지난 9월28일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을 꾸리고 이튿날 전방위 압수수색을 진행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화천대유 핵심 관계자로 알려진 정영학 회계사가 녹취 파일 19개를 검찰에 제출하면서부터다.

해당 파일에는 내부 고발성 내용이 담겨 있어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라 검찰은 생각했다. 녹취록으로 수사에 탄력을 받은 검찰은 이 고문의 측근들을 구속하기 시작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구속했고,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과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연달아 소환 조사했다.


주요 인사들의 소환 조사와 더불어 천화동인 1호 소유주로 알려진 김만배 화천대유 대주주와 화천대유의 자회사 NSJ(천화동인 4호)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남욱 변호사를 구속 수사하기에 이른다.

이 고문의 앞길을 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은 현재 수사를 받고 있는 대장동 관련 인물들의 입이다. 대선 전까지 유 본부장과 김씨, 남 변호사는 이 고문에게 유리한 증언들만 쏟아낸 바 있다. 

유 본부장은 모든 혐의를 부인한 채 검찰 수사에 협조하고 있지 않은 상태고, 김씨는 오히려 이 고문 때문에 본인들의 사업이 더 힘들어졌다고 말한 것이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공개된 녹취록에서 그는 “이재명 시장 욕을 많이 했다”며 “공산당 같은 X이 우리 사업을 뺏어가려 한다”고 발언했다.

이 녹취는 그동안 이 고문이 주장했던 ‘공공이익 환수’가 실제로 이뤄졌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대장동 관련 또 다른 김씨의 녹취에서 이 고문의 대결 상대였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겨냥한 치명적인 말도 드러났다.

그는 “나는 윤석열과도 싸우는 사람”이라며 “내가 입만 열면 윤석열은 죽는다”고 말해 세간의 의심을 윤 당선인 쪽으로 쏠리게끔 만들기도 했다.

대선 패배 후
재판으로 직행?

이렇게 이 고문에게 ‘불리하지 않게’ 돌아가던 대장동 관련 검찰 수사가 점점 이 고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은 대선이 끝난 후부터다. 

이 고문과 그의 최측근 정진상 전 성남시 정책실장 등 ‘성남시 윗선’ 라인이 대장동 사업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정황들을 다른 사람들이 증언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증언을 한 사람은 황무성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이다. 그는 대장동 개발의 걸림돌이 되는 자신을 물러나게 하기 위해 이 고문이 사퇴를 종용했다는 증언을 했다.  

황 전 사장은 대선이 끝난 지 한달 뒤인 지난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 심리로 열린 대장동 공판에서 “유한기 전 개발사업본부장이 이재명의 지시로 사표를 내라고 했다”는 발언을 했다. 실제로 황 전 사장은 대장동 개발사업 직전에 사퇴한 바 있다.

이른바 성남시 윗선 라인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이 나온 것이 이것이 처음이다.

황 전 사장은 “내가 대형 건설사를 대장동 사업 컨소시엄에 넣으라고 했는데, 이재명(당시) 시장이 대형 건설사를 빼라고 한 것과는 반대됐다. 내가(이재명 시장의 뜻을 따르지) 못했다”며 이 고문이 당시 자신의 사퇴를 종용하게 된 뒷배경을 설명했다.

이 고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사람은 황 전 사장만이 아니다. 대장동 사업 관련 로비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민용 변호사는 성남시장 비서실을 수차례 찾아가 관련 보고서를 직접 전달했다는 증언을 했다.

대선이 끝난 후 5일이 지난 지난달 14일, 정 변호사는 형사합의 22부 심리로 열린 14회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당시 정민용 팀장이 보고서를 성남시장 비서실에 갖다준 일이 복수의 횟수로 있었다”고 증언했다.

지난달 11일에도 출석해 “타당성 용역 자체가 현금 흐름에 관한 가정이 보수적일 수 있다. 용역 결과보다 많은 이익이 생길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그는 두 차례 증언에서 모두 이 고문을 겨냥했다. 대장동 개발에 대한 보고서를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 고문이 봤을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와 개발 이익이 매우 높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는 증언이다. 두 증언은 모두 이 고문이 그동안 대장동 사건에 대응하며 했던 발언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법조계는 지금까지 했던 대장동 수사보다 앞으로의 수사가 더욱 예리하게 이 고문의 목을 조일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대장동 수사와 내부 권력이 변수
86그룹·송영길 합류 ‘거대 계파’

한 법조계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에서 “대선이 끝난 후, 검찰의 완전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윤 당선인의 뜻이 검찰 내부에 전달되고 있다”며 “대장동 수사가 이에 완전히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라 말했다. 법조계는 대장동 수사는 앞으로 더 힘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내부 결속 부재도 만만치 않은 장애 요인이다.

비주류 정치인으로 살았던 이 고문이 주류로 자리 잡으려면 그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주류가 자리를 내줘야만 한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일조하고 국정을 책임지던 ‘친문(친 문재인)계’ ‘친낙(친 이낙연)계’ 의원들이 그들이다.

최근 원내대표를 ‘친이재명계’에게 내줬지만, 그동안 갖고 있었던 모든 기득권은 아직 내려놓지 않았다.

민주당 인사들은 지방선거까지 약 2개월, 전당대회까지 약 4개월 남은 현 시점에서 이 고문의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다고 말하지만, 아직 ‘주류’로 평가받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아직 민주당 내부에는 절대다수의 친문 의원들이 자리하고 있고, 소수의 ‘정세균계’ 의원들 또한 ‘반이재명계'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이번 대선에서는 유독 약했다고 평가받는 ‘원팀 정신’이 지방선거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 고문의 주류행 열차는 제대로 탄력받지 못한다.

복수의 민주당 인사들은 친문계와 정세균계 의원 중 몇몇이 이 고문을 극도로 꺼려한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지난 대선 본선에서 이낙연 전 대표가 공식적으로 선거운동에 함께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낙연 캠프에 몸담았던 몇몇 인물이 윤 당선인을 도와주는 이례적인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최근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송영길 전 대표와 운동권으로 대표되는 86그룹(80학번·60년대생)이 이재명계에 힘을 보태면 친문에 버금가는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지만, 정계 인사들은 이들을 결속력이 매우 약한 집단으로 평가하고 있다.

문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으로 뭉친 친문과는 달리 이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따라 모인 집단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지방선거에서 패배한다면 모두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더 무서운
내부 총질

대장동 수사와 민주당 내부 세력은 현재 이 고문이 걷고 있는 꽃길에 재를 뿌리고 있다. 그러나 대세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선에서 위기들을 차근차근 헤쳐나갔던 그가 당권 가도에서도 똑같은 기지를 발휘해 문제들을 해결해나간다면 무난하게 당권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이다. 이재명의 ‘주류행’ 열차는 이제 막 출발했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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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