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억울하게 희생된 '인혁당 8인'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9.18 13:5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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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지났지만…그들은 눈을 감지 못했다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인혁당 사건'을 두고 박근혜 후보가 적절치 못한 발언을 해 온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빌미를 잡은 민주통합당은 총공세를 펼치고, 새누리당은 우왕좌왕 맥을 못 추고 있다. 정작 박 후보는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 일언반구 사과 한마디 없이 희생자 유가족을 만나고 싶단다. 인혁당 사건은 도대체 어떤 사건이기에 이토록 후폭풍이 큰 걸까. 그리고 '인혁당 희생자 8인'은 도대체 무슨 죄목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걸까.

지난 10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5·16쿠데타와 유신체제에 대해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데 이어 지난 12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인혁당 사건'을 두고 "대법원에서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역사적 판단에 맡겨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같은 대답을 반복해 그 여파가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절호의 기회를 놓칠세라 인혁당 사건의 당사자인 유인태 의원이 앞장서며 총공세를 폈다. 유 의원은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눈물을 흘리며 "대법원의 판결이 두 개라니, 아무리 무식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말이 있을 수 있나"라며 포문을 열었다. 이어 "박 후보는 아직도 인혁당 사건의 무죄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고, 결국 아버지의 유신도 잘한 일이고, 빨갱이로 누명을 씌워 사형 집행한 것도 잘했다고 하는 인식이 내면에 깔린 것 아니냐"며 직격탄을 날렸다.

유신체제도 잘한 일
사법살인도 잘한 일

민주당 지도부도 일제히 박 후보의 인혁당 발언을 문제 삼았다. 이해찬 대표는 지난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인혁당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을 유신정권 중앙정보부의 조작이라고 한 조사 결과를 내놓았을 때, 당시 박 후보는 "가치 없는 모함"이라고 말했다며 "이런 역사인식을 갖고 감히 대통령이 되려고 하냐"며 힐난했다. 이종걸 최고위원도 "사법살인이 자행될 때 박 후보는 퍼스트레이디의 직무를 수행했다"며 꼬집었다.

반면 새누리당은 박 후보의 발언을 놓고 두 가지 반응을 표출했다. 역사적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박 후보를 감싸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온 것. 또 홍일표 새누리당 대변인은 박근혜 후보의 발언을 두고 사과했지만 정작 박 후보 측은 사과한 적이 없다고 밝히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12일 홍일표 새누리당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박 후보의 표현에 일부 오해 소지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며 "박 후보는 유신체제의 그늘 속에 있었기에 역사 관련 발언이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친박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는데 대선캠프 한 관계자는 "5·16은 논란이 될 수 있지만, 유신과 인혁당 사건은 논란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역사인식 논란에 휩싸인 당시 '퍼스트레이디'
유신 "역사적 판단에" 인혁당 "판결 두 가지"

반면 박 후보의 발언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특히 이한구 원내대표는 오찬간담회에서 "다들 배가 부른가 보다. 민생 때문에 난리인데"라고 말한 데 이어 "딴지를 걸려고 하는 것까진 좋은데 정정당당하게 해야지"라고 말해, 대선후보의 법과 역사 인식에 대한 문제 제기를 '딴죽'으로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인혁당 사건 당시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박 후보의 말 몇 마디에 이리도 큰 후폭풍이 불게 된 걸까?
문제가 된 제2차 인혁당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1972년 12월 유신체제 발족과 1973년 8월 8일 있었던 김대중 납치사건은 박정희 정부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1973년 10월 항쟁을 시작으로 박정희 정부의 유신체제에 대한 반대운동이 본격화됐다.

1974년 4월3일 저녁,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하 민청학련)이라는 지하조직이 불순세력의 배후조종 아래 사회 각계각층에 침투해 인민혁명을 기도한다'는 요지의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민청학련과 관련된 일체의 활동을 금지하는 긴급조치 제4호를 공포했다.

감히 딴지를…
배가 불렀구먼!

4월25일,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 사건 수사상황발표에서 민청학련을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학생을 주축으로 한, 정부를 전복하려는 불순 반정부세력'으로 규정했다. 이와 관련하여 긴급조치 제4호 및 국가보안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1024명이 체포되고, 그 중 253명이 군법회의 검찰부에 구속 송치되었다.


1974년 7월11일 비상보통군법회의 재판부는 군 검찰부가 구형한 그대로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21명 중 서도원, 도예종 등 8명에게는 사형, 김한덕 등 7명에게는 무기징역, 나머지 피고인 6명에게는 징역 20년을 선고하였고 1975년 4월8일 상고를 기각한 채 판결을 확정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8명에 대한 사형 판결이 확정된 지 불과 18시간 만에 형을 집행해 버린 것. 그 외에도 복역 중 사망한 장석구,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전재권, 유진곤 등 많은 사람들이 인혁당 사건에 연루돼 목숨을 잃었다. 

시간이 흘러 오늘날 인혁당 사건은 국가가 법으로 무고한 국민을 죽인 사법살인 사건이자 박정희 정권 시기에 일어난 인권 탄압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2005년 12월에 이르러 재판부는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 소를 받아들여 2007년 1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피고인 8명의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 예비·음모, 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해 8월 희생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고 시국사건 사상 최대의 배상액수인 637억여 원(원금 245여억 원+이자 392여억 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렇다면 인혁당 사형수 8인은 무슨 일을 하던 사람들이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걸까?

오늘날 인혁당 희생자 8인에 대한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다행히 인혁당 사형수 8인이 수감돼 사형될 때까지 바로 옆에서 그들을 지켜보았던 당시 서울구치소 교도관이었던 전병용씨가 기록을 남겨 두어 인용하고자 한다. 전병용 교도관은 인혁당 사건의 조작성을 폭로하면서 세상을 뒤흔들었던 김지하 시인의 '고행...1974'라는 글을 감옥 밖으로 빼내기도 했다.

고문, 날조… 확정 판결 다음 날 새벽 사형 집행
박정희 정권 유지용…국가가 국민 죽인 사법살인

1975년 4월9일의 희생당한 8인의 이름과 신상은 다음과 같다.

▲서도원 : 1923년 경남 창녕 생, 전 대구매일신문 기자, 민주민족청년동맹 위원장.

하재완 : 1932년 경남 창녕 생, 건축업, 중사 제대, 경북민족자주통일협의회 참가.

도예종 : 1924년 경북 경주 생, 삼화토건 회장, 대구대경제학과 졸, 민주민족청년동맹 간사.

이수병 : 1937년 경남 의령 생, 삼락일어학원 강사, 경희대경제학과 졸, 민족통일연맹 위원장, 민족일보 기자.

김용원 : 1935년 경남 함안 생, 경기여고 교사, 서울대물리학과 졸, 민족통일연맹 참가.


우홍선 : 1930년 경남 울산 생, 한국골든스템프사 상무이사, 육군 대위 예편, 통일민주청년동맹 중앙위원장.

송상진 : 1928년 경북 대구 생, 양봉업, 대구대경제학과 졸, 교원노조활동 및 민주민족청년동맹 사무국장.

여정남 : 1944년 경북 대구 생, 경북대 학생회장, 경북대정치외교학과 졸, 3선개헌·유신헌법 반대투쟁.

당시 이들을 사형으로 몰아갔던 박 전 대통령과 중앙정보부의 시나리오에 의하면 인혁당 중심인물인 서도원, 도예종 등은 경북대 졸업생 고 여정남에게 폭력에 의한 전부 전복을 선동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등 전국 대학생 조직 '민청학련'을 결성토록 지령을 내렸다는 죄목이었다.

하지만 재판과정을 들여다보면 이는 모두 날조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 2003년 의문사위원회 2005년 국정원 진실위에 의해 인혁당 사건 공작의 전모가 밝혀졌고 2007년 인혁당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당시 국정원 진실위는 인혁당에 대해 '유신체제 등장을 전후해 정세인식과 통일운동에 대해 토론하는 서클 수준'으로 판단했다.

전기고문, 조서날조
…이유 없는 사형


재판 당시 경북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고 이강철씨는 법정에서 "나는 인혁당의 인자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시인하지 않는다고 검사 입회하에 전기고문을 수차례나 받았다"라고 또렷또렷한 목소리로 증언했으며 도예종씨는 상고이유서에서 "4월20일에서 25일까지 철야조사를 받았고 검사에게 중앙정보부 조서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하면 즉시 중앙정보부로 또 불려 가 고문을 당하며 조서를 다시 작성했다"고 말했다.

고 하재완씨는 상고이유서와 항소이유서에서 "혹독한 고문으로 탈장됐으며 폐농양이 생겨 취조관이 시키는 대로 조서가 작성됐다"고 기술했고 고 김용원씨도 "중앙정보부에서 수사관들이 미리 진술서를 가지고 와 베껴 쓰라고 해 거부했더니 몽둥이질을 했다"고 말했다.  

고 우홍선씨는 재판장에서 "고문을 할 때는 3층에서 떨어져 죽고 싶었으며, 두 번만 더 (전기고문을)돌리면 심장이 파열되어 죽을 것만 같았다"고 말했고 전창일씨는 "며칠간을 잠을 재우지 않으면서 수사관이 5, 6명씩 번갈아 드나들면서 죽음의 직전까지 끌고 갔으며, 온몸을 쥐어짜는 전기고문을 하여 몇 번씩 실신케 하였으며, 검찰에 넘어와서도 나는 무죄라고 주장하니 다시 지하실로 끌고 내려가 전기고문을 가했다"고 진술했다.

고문뿐만 아니라 공판조서를 날조해서 작성하기도 했다. 고 이수병씨의 공판조서 중 408쪽을 보면 "피고인 등이 모여 어떠한 조직과 결의를 하였는가"라는 물음에 그는 분명히 "그런 사실이 없다"고 대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공판기록에는 "네, 혁신계 동지들을 규합, 과거 인혁당과 같은 통일적 조직을 하여 대정부 투쟁에 합의하고, 4인 지도부를 조직 구성하여 활동상황을 조정하였습니다"로 되어있다. 또 "피고인 등 4인 지도부 정기회합은 매월 첫 일요일 10시로 정하고 지도위원에 도예종, 서도원을 추대하였다는데 사실인가"에 대하여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분명히 진술했는데, "네, 사실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되어있는 것. 또 고 도예종씨가 "조국이 하루빨리 적화통일 되기를 바란다"고 최후진술(유언)을 남긴 것을 두고 국정원 진실위는 최후진술조차 조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내 남편, 내 아들, 우리 아버지 살려내라!"
빨갱이 가족으로 살아온 유족들의 피눈물

이처럼 고문으로 얻은 진술과 날조된 조서를 근거로 재판이 진행된 것이다. 이에 고 이수병씨는 사형 집행 직전 교수대 앞에서 "나는 유신체제에 반대한 것밖에 없고, 민족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투쟁한 것밖에 없는데 왜 억울하게 죽어야 되느냐. 반드시 우리의 이번 억울한 희생은 정의가 밝힐 것"이라고 외쳤다.

다른 인혁당 사건 희생자들 역시 왜 자신이 사형당해야 하는지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최후진술을 해야 했다. 최후진술에서 유진곤씨는 "나는 80년대 수출목표를 달성하느라 열심히 일하고 있다. 젊은 기업인의 장래를 막지 마라"라고 말했고 김한덕씨는 "나는 왜 이 자리에 서 있는지 모르겠다. 이유가 있다면 연행되기 전날 유진곤과 같이 술을 마셨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연행되기 전 희생자들의 활동을 살펴보면 물론 4·19 직후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던 혁신계 조직인 민족민주청년동맹, 민족통일학생연맹 등과 진보적 색채의 신문이었던 '민족일보' 등에서 활약했던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고 이수병씨의 경우 4·19 당시 경희대 민족통일연맹 위원장으로 있었으며, 논문 '만적론'의 필자이기도 했다. 그는 또 5·16쿠데타 후 혁명재판에서 15년의 징역을 선고받고 7년 동안 복역했다. 박정희 정권이 인혁당과 민청학련을 연관시키기 위한 중간다리로 끼워 넣은 고 여정남씨도 경북대 총학생회장을 지냈으며, 6·3 사태 당시 학생 시위를 주도했다.

그러나 고 김용원씨의 경우 단지 이수병씨의 친구라는 이유로 억울하게 희생당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서울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자연과학도로서 정치적 이유보다는 이수병씨가 고등학교 동창이었기에 여러 차례 돈을 빌려줬고 모임에도 몇차례 참가했다. 그런데 이것이 혹독한 고문에 의해 조직자금으로 둔갑한 것이다.

희생자 8인 유족들
시체 확인도 못 해

이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1975년 4월9일 아침, 서대문구치소 앞은 느닷없는 사형집행 소식을 듣고 시체라도 찾기 위해 몰려온 희생자의 가족들에 그야말로 통곡의 바다였다. 당시 신부의 옷깃을 부여잡고 "신부님 안 죽을거라고 했잖아요, 이렇게 죽었지 않아요?"하고 울부짖는 사람도 있었다. 이 유족들은 억울하게 희생당한 가족의 시체마저 찾지 못했다. 시체는 벽제화장터(현 서울시립 승화원)로 강제로 이송되더니 유족들의 마지막 확인도 없이 화장돼 버렸다. 그일 이후 유족들은 재심 무죄판결이 나오기까지 빨갱이의 아내이자 자식들이라고 남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면서 평생을 숨죽이고 살아왔다.

2012년 9월 박 후보의 짧은 생각에서 나온 몇 마디 발언은 희생자 유족들이 1975년 구치소 앞에서 외쳤던 37년 전 구호를 다시 외치게 만들고 있다. "내 남편, 내 아들 살려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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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