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억울하게 희생된 '인혁당 8인'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9.18 13:5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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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지났지만…그들은 눈을 감지 못했다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인혁당 사건'을 두고 박근혜 후보가 적절치 못한 발언을 해 온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빌미를 잡은 민주통합당은 총공세를 펼치고, 새누리당은 우왕좌왕 맥을 못 추고 있다. 정작 박 후보는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 일언반구 사과 한마디 없이 희생자 유가족을 만나고 싶단다. 인혁당 사건은 도대체 어떤 사건이기에 이토록 후폭풍이 큰 걸까. 그리고 '인혁당 희생자 8인'은 도대체 무슨 죄목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걸까.

지난 10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5·16쿠데타와 유신체제에 대해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데 이어 지난 12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인혁당 사건'을 두고 "대법원에서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역사적 판단에 맡겨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같은 대답을 반복해 그 여파가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절호의 기회를 놓칠세라 인혁당 사건의 당사자인 유인태 의원이 앞장서며 총공세를 폈다. 유 의원은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눈물을 흘리며 "대법원의 판결이 두 개라니, 아무리 무식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말이 있을 수 있나"라며 포문을 열었다. 이어 "박 후보는 아직도 인혁당 사건의 무죄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고, 결국 아버지의 유신도 잘한 일이고, 빨갱이로 누명을 씌워 사형 집행한 것도 잘했다고 하는 인식이 내면에 깔린 것 아니냐"며 직격탄을 날렸다.

유신체제도 잘한 일
사법살인도 잘한 일

민주당 지도부도 일제히 박 후보의 인혁당 발언을 문제 삼았다. 이해찬 대표는 지난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인혁당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을 유신정권 중앙정보부의 조작이라고 한 조사 결과를 내놓았을 때, 당시 박 후보는 "가치 없는 모함"이라고 말했다며 "이런 역사인식을 갖고 감히 대통령이 되려고 하냐"며 힐난했다. 이종걸 최고위원도 "사법살인이 자행될 때 박 후보는 퍼스트레이디의 직무를 수행했다"며 꼬집었다.

반면 새누리당은 박 후보의 발언을 놓고 두 가지 반응을 표출했다. 역사적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박 후보를 감싸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온 것. 또 홍일표 새누리당 대변인은 박근혜 후보의 발언을 두고 사과했지만 정작 박 후보 측은 사과한 적이 없다고 밝히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12일 홍일표 새누리당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박 후보의 표현에 일부 오해 소지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며 "박 후보는 유신체제의 그늘 속에 있었기에 역사 관련 발언이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친박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는데 대선캠프 한 관계자는 "5·16은 논란이 될 수 있지만, 유신과 인혁당 사건은 논란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역사인식 논란에 휩싸인 당시 '퍼스트레이디'
유신 "역사적 판단에" 인혁당 "판결 두 가지"

반면 박 후보의 발언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특히 이한구 원내대표는 오찬간담회에서 "다들 배가 부른가 보다. 민생 때문에 난리인데"라고 말한 데 이어 "딴지를 걸려고 하는 것까진 좋은데 정정당당하게 해야지"라고 말해, 대선후보의 법과 역사 인식에 대한 문제 제기를 '딴죽'으로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인혁당 사건 당시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박 후보의 말 몇 마디에 이리도 큰 후폭풍이 불게 된 걸까?
문제가 된 제2차 인혁당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1972년 12월 유신체제 발족과 1973년 8월 8일 있었던 김대중 납치사건은 박정희 정부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1973년 10월 항쟁을 시작으로 박정희 정부의 유신체제에 대한 반대운동이 본격화됐다.

1974년 4월3일 저녁,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하 민청학련)이라는 지하조직이 불순세력의 배후조종 아래 사회 각계각층에 침투해 인민혁명을 기도한다'는 요지의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민청학련과 관련된 일체의 활동을 금지하는 긴급조치 제4호를 공포했다.

감히 딴지를…
배가 불렀구먼!

4월25일,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 사건 수사상황발표에서 민청학련을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학생을 주축으로 한, 정부를 전복하려는 불순 반정부세력'으로 규정했다. 이와 관련하여 긴급조치 제4호 및 국가보안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1024명이 체포되고, 그 중 253명이 군법회의 검찰부에 구속 송치되었다.

1974년 7월11일 비상보통군법회의 재판부는 군 검찰부가 구형한 그대로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21명 중 서도원, 도예종 등 8명에게는 사형, 김한덕 등 7명에게는 무기징역, 나머지 피고인 6명에게는 징역 20년을 선고하였고 1975년 4월8일 상고를 기각한 채 판결을 확정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8명에 대한 사형 판결이 확정된 지 불과 18시간 만에 형을 집행해 버린 것. 그 외에도 복역 중 사망한 장석구,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전재권, 유진곤 등 많은 사람들이 인혁당 사건에 연루돼 목숨을 잃었다. 

시간이 흘러 오늘날 인혁당 사건은 국가가 법으로 무고한 국민을 죽인 사법살인 사건이자 박정희 정권 시기에 일어난 인권 탄압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2005년 12월에 이르러 재판부는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 소를 받아들여 2007년 1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피고인 8명의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 예비·음모, 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해 8월 희생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고 시국사건 사상 최대의 배상액수인 637억여 원(원금 245여억 원+이자 392여억 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렇다면 인혁당 사형수 8인은 무슨 일을 하던 사람들이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걸까?

오늘날 인혁당 희생자 8인에 대한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다행히 인혁당 사형수 8인이 수감돼 사형될 때까지 바로 옆에서 그들을 지켜보았던 당시 서울구치소 교도관이었던 전병용씨가 기록을 남겨 두어 인용하고자 한다. 전병용 교도관은 인혁당 사건의 조작성을 폭로하면서 세상을 뒤흔들었던 김지하 시인의 '고행...1974'라는 글을 감옥 밖으로 빼내기도 했다.

고문, 날조… 확정 판결 다음 날 새벽 사형 집행
박정희 정권 유지용…국가가 국민 죽인 사법살인

1975년 4월9일의 희생당한 8인의 이름과 신상은 다음과 같다.

▲서도원 : 1923년 경남 창녕 생, 전 대구매일신문 기자, 민주민족청년동맹 위원장.

하재완 : 1932년 경남 창녕 생, 건축업, 중사 제대, 경북민족자주통일협의회 참가.

도예종 : 1924년 경북 경주 생, 삼화토건 회장, 대구대경제학과 졸, 민주민족청년동맹 간사.

이수병 : 1937년 경남 의령 생, 삼락일어학원 강사, 경희대경제학과 졸, 민족통일연맹 위원장, 민족일보 기자.

김용원 : 1935년 경남 함안 생, 경기여고 교사, 서울대물리학과 졸, 민족통일연맹 참가.

우홍선 : 1930년 경남 울산 생, 한국골든스템프사 상무이사, 육군 대위 예편, 통일민주청년동맹 중앙위원장.

송상진 : 1928년 경북 대구 생, 양봉업, 대구대경제학과 졸, 교원노조활동 및 민주민족청년동맹 사무국장.

여정남 : 1944년 경북 대구 생, 경북대 학생회장, 경북대정치외교학과 졸, 3선개헌·유신헌법 반대투쟁.

당시 이들을 사형으로 몰아갔던 박 전 대통령과 중앙정보부의 시나리오에 의하면 인혁당 중심인물인 서도원, 도예종 등은 경북대 졸업생 고 여정남에게 폭력에 의한 전부 전복을 선동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등 전국 대학생 조직 '민청학련'을 결성토록 지령을 내렸다는 죄목이었다.

하지만 재판과정을 들여다보면 이는 모두 날조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 2003년 의문사위원회 2005년 국정원 진실위에 의해 인혁당 사건 공작의 전모가 밝혀졌고 2007년 인혁당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당시 국정원 진실위는 인혁당에 대해 '유신체제 등장을 전후해 정세인식과 통일운동에 대해 토론하는 서클 수준'으로 판단했다.

전기고문, 조서날조
…이유 없는 사형

재판 당시 경북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고 이강철씨는 법정에서 "나는 인혁당의 인자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시인하지 않는다고 검사 입회하에 전기고문을 수차례나 받았다"라고 또렷또렷한 목소리로 증언했으며 도예종씨는 상고이유서에서 "4월20일에서 25일까지 철야조사를 받았고 검사에게 중앙정보부 조서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하면 즉시 중앙정보부로 또 불려 가 고문을 당하며 조서를 다시 작성했다"고 말했다.

고 하재완씨는 상고이유서와 항소이유서에서 "혹독한 고문으로 탈장됐으며 폐농양이 생겨 취조관이 시키는 대로 조서가 작성됐다"고 기술했고 고 김용원씨도 "중앙정보부에서 수사관들이 미리 진술서를 가지고 와 베껴 쓰라고 해 거부했더니 몽둥이질을 했다"고 말했다.  

고 우홍선씨는 재판장에서 "고문을 할 때는 3층에서 떨어져 죽고 싶었으며, 두 번만 더 (전기고문을)돌리면 심장이 파열되어 죽을 것만 같았다"고 말했고 전창일씨는 "며칠간을 잠을 재우지 않으면서 수사관이 5, 6명씩 번갈아 드나들면서 죽음의 직전까지 끌고 갔으며, 온몸을 쥐어짜는 전기고문을 하여 몇 번씩 실신케 하였으며, 검찰에 넘어와서도 나는 무죄라고 주장하니 다시 지하실로 끌고 내려가 전기고문을 가했다"고 진술했다.

고문뿐만 아니라 공판조서를 날조해서 작성하기도 했다. 고 이수병씨의 공판조서 중 408쪽을 보면 "피고인 등이 모여 어떠한 조직과 결의를 하였는가"라는 물음에 그는 분명히 "그런 사실이 없다"고 대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공판기록에는 "네, 혁신계 동지들을 규합, 과거 인혁당과 같은 통일적 조직을 하여 대정부 투쟁에 합의하고, 4인 지도부를 조직 구성하여 활동상황을 조정하였습니다"로 되어있다. 또 "피고인 등 4인 지도부 정기회합은 매월 첫 일요일 10시로 정하고 지도위원에 도예종, 서도원을 추대하였다는데 사실인가"에 대하여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분명히 진술했는데, "네, 사실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되어있는 것. 또 고 도예종씨가 "조국이 하루빨리 적화통일 되기를 바란다"고 최후진술(유언)을 남긴 것을 두고 국정원 진실위는 최후진술조차 조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내 남편, 내 아들, 우리 아버지 살려내라!"
빨갱이 가족으로 살아온 유족들의 피눈물

이처럼 고문으로 얻은 진술과 날조된 조서를 근거로 재판이 진행된 것이다. 이에 고 이수병씨는 사형 집행 직전 교수대 앞에서 "나는 유신체제에 반대한 것밖에 없고, 민족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투쟁한 것밖에 없는데 왜 억울하게 죽어야 되느냐. 반드시 우리의 이번 억울한 희생은 정의가 밝힐 것"이라고 외쳤다.

다른 인혁당 사건 희생자들 역시 왜 자신이 사형당해야 하는지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최후진술을 해야 했다. 최후진술에서 유진곤씨는 "나는 80년대 수출목표를 달성하느라 열심히 일하고 있다. 젊은 기업인의 장래를 막지 마라"라고 말했고 김한덕씨는 "나는 왜 이 자리에 서 있는지 모르겠다. 이유가 있다면 연행되기 전날 유진곤과 같이 술을 마셨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연행되기 전 희생자들의 활동을 살펴보면 물론 4·19 직후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던 혁신계 조직인 민족민주청년동맹, 민족통일학생연맹 등과 진보적 색채의 신문이었던 '민족일보' 등에서 활약했던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고 이수병씨의 경우 4·19 당시 경희대 민족통일연맹 위원장으로 있었으며, 논문 '만적론'의 필자이기도 했다. 그는 또 5·16쿠데타 후 혁명재판에서 15년의 징역을 선고받고 7년 동안 복역했다. 박정희 정권이 인혁당과 민청학련을 연관시키기 위한 중간다리로 끼워 넣은 고 여정남씨도 경북대 총학생회장을 지냈으며, 6·3 사태 당시 학생 시위를 주도했다.

그러나 고 김용원씨의 경우 단지 이수병씨의 친구라는 이유로 억울하게 희생당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서울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자연과학도로서 정치적 이유보다는 이수병씨가 고등학교 동창이었기에 여러 차례 돈을 빌려줬고 모임에도 몇차례 참가했다. 그런데 이것이 혹독한 고문에 의해 조직자금으로 둔갑한 것이다.

희생자 8인 유족들
시체 확인도 못 해

이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1975년 4월9일 아침, 서대문구치소 앞은 느닷없는 사형집행 소식을 듣고 시체라도 찾기 위해 몰려온 희생자의 가족들에 그야말로 통곡의 바다였다. 당시 신부의 옷깃을 부여잡고 "신부님 안 죽을거라고 했잖아요, 이렇게 죽었지 않아요?"하고 울부짖는 사람도 있었다. 이 유족들은 억울하게 희생당한 가족의 시체마저 찾지 못했다. 시체는 벽제화장터(현 서울시립 승화원)로 강제로 이송되더니 유족들의 마지막 확인도 없이 화장돼 버렸다. 그일 이후 유족들은 재심 무죄판결이 나오기까지 빨갱이의 아내이자 자식들이라고 남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면서 평생을 숨죽이고 살아왔다.

2012년 9월 박 후보의 짧은 생각에서 나온 몇 마디 발언은 희생자 유족들이 1975년 구치소 앞에서 외쳤던 37년 전 구호를 다시 외치게 만들고 있다. "내 남편, 내 아들 살려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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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확정된 사건이 다시 법정으로 끌려 나왔다. ‘BBQ 내부망 불법 접속’ 사건의 핵심 증거였던 ‘ID·비밀번호 메모장’을 둘러싼 위증 여부를 다투는 후속 재판이다. 박현종 전 bhc 회장의 집행유예가 확정된 사건임에도 검찰은 관련 증인들을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했다. 핵심은 과연 BBQ 직원의 ID와 비밀번호가 적힌 그 메모장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유창성 전 bhc 정보전략팀장의 손을 어떻게 거쳐 전달됐는가다. 그리고 그 과정을 둘러싼 법정 진술의 신빙성이다. 검찰은 최근 공판에서 “피고인(박현종 등)에게 유리한 허위 증언이 반복됐다”는 판단 아래 유 전 팀장 등 관련자 3명을 위증 혐의로 고발했다. 메모장 전달자 통상 위증 여부는 재판부 판단 이후 별도 절차로 넘겨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처럼 검찰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단순한 진술 번복이나 기억 착오 수준이 아닌 사건의 본질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허위 진술이 있었다고 본 셈이다. 이번 공판의 중심에는 ‘메모장 전달자’로 지목된 유 전 bhc 정보전략팀장이 있다. 그는 과거 재판에서 결정적 증거로 채택된 BBQ 직원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메모를 박현종 전 bhc 회장에게 전달한 인물이다. 이 메모장은 박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핵심축이었다. 이 메모장의 출처와 작성 경위가 흔들리면, 사건 전체의 구조도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건넨 메모장의 내용 자체를 문제 삼았다. 메모장에 기재된 임직원 계정 정보 뒤에는 ‘퇴사자 임시’라는 내용이 덧붙어 있었다. 이는 BBQ 내부망에서만 확인 가능한 정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외부에서 추정이나 기억만으로 재구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성명불상자가 BBQ 내부망에 관리자 권한으로 접속해 계정을 취득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유 정보팀장을 거쳐 박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는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제시했다. 재판부 역시 “기억과 추리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떠올렸다는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검찰 주장에 일정 부분 무게를 싣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재판부는 “특정한 심증을 가진 것은 아니”라며 추가 심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고인 측은 거칠게 반격했다. 변호인은 검찰 주장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bhc와 BBQ가 극도로 적대적인 관계였던 상황에서, bhc 소속 직원이 BBQ 내부 직원과 접촉해 계정 정보를 빼냈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논리다. 나아가 검찰이 실제 내부망 침입을 입증하지 못한 채 추측만을 쌓고 있다고 공격했다. 6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에 리스크 추가 ‘BBQ 직원 ID·비밀번호 유출’ 둘러싼 공방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고인 측은 기존 재판에서 채택된 증거와 증인 진술 전반에 대해 신빙성을 문제 삼으며, 데이터베이스(DB) 조작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사실상 1·2심은 물론 대법원 판단의 기초 자체를 뒤흔드는 주장이다. 확정 판결 이후 재판에서 “증거 자체가 위조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법조계에서도 보기 드문 강수로 평가된다. 유 전 팀장은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근무하다가 bhc 매각과 함께 bhc 정보전략팀장으로 이직한 인물이다. 이후 그는 박 전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적은 쪽지를 전달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인물은 BBQ 재무임원과 재무 실무진이다. 2021년 11월3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 관련 7차 공판에 유 전 팀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유 전 팀장은 박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건넨 이유에 대해 “박현종 회장이 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 소송 때문에 BBQ 직원들의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했다”며 “해당 직원들의 개인정보가 업무 수첩에 적혀있어 이를 그대로 전달했다. 당시 위법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와 비밀번호가 있으면 좋겠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과 증인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데 대해 묻는 검찰 질문에 유 전 팀장은 “박 전 회장의 진술은 모르겠고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유 전 팀장은 BBQ와 bhc의 ICC 중재 소송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소송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증언했다.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 취득 경위와 관련해서는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BBQ 재무임원이 그룹 전산망의 데이터가 다르다고 확인 문의가 왔다”며 “당시 물류 전산망이 바뀐 지 얼마 안 돼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 문제 해결을 위해 임원에게 개인정보를 요청해 받은 뒤 이를 업무 수첩에 적은 이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이 개인정보를 받았다고 지목한 BBQ 재무임원은 앞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개인정보를 아무에게도 전달한 적 없다”며 “업무 처리도 유씨가 아닌 다른 직원과 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검찰은 유 전 팀장이 그룹 전산망에 접근할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내부 정보 취득 시점이… 유 전 팀장은 재무임원의 개인정보를 취득한 시점에 대해서도 그간 검찰 조사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2011년~2012년 즈음에서 2013년 1월로 시점을 바꿨다. 검찰은 증인에게 진술을 번복한 이유가 물류 전산망이 바뀐 시점으로 맞추기 위함이냐고 묻자 유 전 팀장은 “단순 착오”라고 답했다.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으로 일할 당시 BBQ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검찰 질문에 “자신이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추측해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의 증언에 BBQ가 퇴사자에게 부여하는 임시 비밀번호를 줄 때 증인이 말한 방식을 쓴 것은 증인 퇴사 이후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BBQ 전·현직 직원들의 정확한 개인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bhc가 BBQ의 데이터베이스(DB)를 모조리 빼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허락하에 BBQ DB를 모두 가져왔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 진술 이외에 검찰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있다. 2013년 6월 말 bhc 매각 이후 bhc는 자체 전산망 구축을 위해 BBQ와 bhc 전산망 분리 작업이 필요했다. 그해 7월2일 외부 업체는 해당 작업이 최소 한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과 부하 직원 한 명, 그리고 한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판단했던 외부업체는 2013년 7월5일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불과 12시간 만에 BBQ로부터 분리된 bhc 전산망을 구축했다. 이와 관련해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이 100명 남짓에 불과해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옮겨 가능했다”며 “BBQ DB는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BBQ DB 관련 박 회장과 유씨의 진술이 배치되는 데 대해 유 전 팀장에게 묻자 “자신은 박 회장에게 BBQ DB를 가져왔다고 말한 적 없다”며 “박 회장이 검찰에서 왜 그리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다만 유 전 팀장은 노트북 하드 교체 관련 재판 과정에서도 말이 일치하지 않았다. 뻔히 보이는 해킹의 목적 첫 증언에서는 bhc 매각 시기인 2013년 이후 노트북 감가상각 5년을 계산해 2018년에 바꿨다고 했지만 이후 2017년으로 고쳤다. 기존 사건이 ‘불법 접속이 있었느냐’는 사실관계 다툼이었다면, 이번 후속 재판은 ‘그 사실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거짓말이 있었느냐’는 문제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박 전 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BBQ 직원 계정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취득할 수 없었고, 불법적 경로일 가능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는 무죄였지만, 정보통신망법 위반은 명확히 유죄로 못 박았다. 그러나 사건은 집행유예 판결로 끝나지 않았다. 검찰이 위증을 별도의 범죄로 끌어올린 이상, 수사는 ‘위증교사’를 밝히는 단계로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법원이 관련자들의 위증을 인정할 경우, 그 진술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유도했는지가 핵심 수사 대상이 된다. 화살이 결국 박 전 회장을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위증교사는 기존 사건과는 별개의 범죄로, 추가 기소로 이어질 경우, 사법 리스크도 한층 더 커진다. 문제는 입증이다. 위증교사는 단순한 정황만으로는 성립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지시나 교감, 사전 조율 정황이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검찰이 이미 “유리한 허위 증언 반복”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고발까지 단행한 점을 감안하면, 단순한 가능성 제기를 넘어선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BBQ 출신 정보전략팀장 진술 번복 검, 증인들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 이 사건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bhc와 BBQ 사이의 오랜 분쟁이다. 박 전 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 BBQ 글로벌 대표로 영입됐다. 이어 2013년 BBQ 자회사 bhc가 미국계 사모펀드에 팔린 뒤 bhc 대표로 옮겨가며 양사 갈등의 중심에 섰다. 2018년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 등과 함께 bhc를 사들여 오너 경영자가 된 동시에 각종 소송과 형사적 리스크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이번 사건 역시 단순한 개인 비위가 아니라, 기업 간 치열한 법적 분쟁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검찰에 의하면 박 전 회장은 2015년 7월3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bhc 본사에서 BBQ 직원 2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무단 도용해 BBQ 전산망에 접속한 뒤 bhc와 BBQ가 연루된 국제 중재 소송 관련 자료들을 살펴봤다. 이로 인해 박 전 회장은 2020년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아울러 박 전 회장은 유 정보팀장으로부터 BBQ 직원 이메일 아이디, 비밀번호, 전산망 주소가 적힌 메모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6월 1심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입증이 부족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항소심으로 넘어갔다. 항소심 3차 공판 때 검찰과 변호인은 파워포인트(PPT)를 통해 2시간 동안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먼저 의견 개진 기회를 얻은 변호인은 “BBQ가 여러 차례 박현종 회장을 영업비밀 침해 등의 이유로 고소했지만 계속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그런데 검찰이 정보통신망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박현종 회장을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변호인은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혐의를 입증한 것도 아니”며 “왜곡 가능성이 큰 간접 증거만 제시됐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현종 회장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에 참석해 BBQ 전산망에 접속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부연했다. 반면 검찰은 “bhc가 2013년부터 BBQ 전산망에 무단 접속한 횟수가 236회에 달하지만 행위자가 드러나지 않아 기소하지 못했다”며 “박현종 회장은 무단 접속이 명백해 기소했다”고 반박했다. 지시했나 사면초가 검찰은 박 전 회장의 범행 동기에 대해 “2015년 BBQ 직원들이 박현종 회장이 bhc 매각을 총괄했다”는 진술서를 국제 중재 법원에 냈다. 국제 중재 소송에서 질 경우 지위가 불안정해질 수 있었던 박 전 회장은 “해당 진술서를 검토하고 반박해야만 했다”고 했다. 이어 “박현종 회장 휴대전화에서 BBQ 직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은 메모 사진이 나왔다. BBQ 전산망 접속 데이터 분석 결과, 박현종 회장이 BBQ 사내 메일을 포워딩(전달)한 개인 메일을 2년 만에 열람한 기록도 있다”며 혐의를 입증할 물적 증거가 많다고 했다. 검찰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 참석자 2명은 박현종 회장을 회의에서 보지 못했다고 했다”며 박 전 회장의 알리바이를 부인하기도 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