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베이징 가이드- ‘바이애슬론’의 기원

  • JSA뉴스 jsanews@jsanews.co.kr
  • 등록 2021.11.16 13:26:24
  • 호수 1349호
  • 댓글 0개

가장 기발한 겨울 스포츠

[JSA뉴스] 바이애슬론은 크로스컨트리 스키의 혹독함과 소총 사격의 정확성을 결합한 동계올림픽 종목이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거친 자연에 기반을 둔 겨울철 스포츠로서 동계올림픽의 여러 종목 중에서 가장 기발한 경기라는 평가를 받는다.

크로스컨트리 스키와 소총 사격의 결합은 독특해 4년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바이애슬론은 확고한 기반과 풍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바이애슬론은 스키의 속도와 지구력, 그리고 소총 사격에 있어 극도의 집중력으로 목표를 명중하는 능력을 필요로 하는 종목이다.

험난한 여정

장거리 크로스컨트리 스키도 충분히 힘들지만, 바이애슬론은 선수들이 50m 앞에 있는 목표물을 소총으로 명중시키기 위해 잠시 멈출 때 근육에 젖산이 축적돼 피로가 가중되지만 집중력을 유지해야만 해 극한 상황에 도전하는 스포츠다.

실책에 대한 150m 페널티 루프는 경기를 더욱 가혹하게 만들 뿐 아니라 군사적 엄격함과 규율에 기반을 둔 바이애슬론의 기원을 말해준다.

이 동계스포츠의 뿌리가 혹한기 사냥이라는 고위험 작업에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노르웨이에서 발견된 4000년 전 동굴벽화는 스키를 타며 동물을 사냥하는 한 남성의 뚜렷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후 근대에 들어 총기의 출현과 함께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오지와 울창한 숲 속에서 스키를 타며 겨우내 먹을 단백질 공급원을 찾기 위해 한쪽 어깨에 소총을 메고 다니는 관행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보편화됐다. 이는 생존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됐다.

스키 혹독함과 사격 정확성 결합
북유럽 군사 현실 매끄럽게 흡수

18세기가 시작될 무렵, 스키를 탄 소총수라는 이미지는 스칸디나비아와 북유럽 국가의 군사적 현실에 매끄럽게 흡수됐다. 스키부대의 부대원들은 20세기까지 국경 방어에 임하게 됐다. 이는 곧 스포츠적인 의미에서 스키 클럽의 기초가 됐다.

1767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바이애슬론과는 다른 종류의 대회가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접경 지역에서 열렸다. 바이애슬론과 유사한 형태의 스포츠는 20세기 초반에 최초로 대회를 개최했다. 이어 1924년 동계올림픽의 데뷔로 이어졌다.

최초의 현대 바이애슬론은 1960년이 돼서야 올림픽에 데뷔했지만, 프랑스 샤모니의 알프스 고지대에서 열린 1924년 제1회 동계올림픽에서 일종의 시범경기가 있었다. 

‘군사 정찰’은 크로스컨트리 스키, 스키 등산, 표적에 대한 소총 사격으로 구성됐다. 병사 1명, 부사관 1명, 배낭을 멘 2명의 사병으로 구성된 4인 정찰대가 500~1200m 등반한 후 25km를 크로스컨트리 스키와 소총 사격을 하는 것으로 구성됐다.

1924년 동계올림픽의 프랑스 국기 기수였던 ‘카미유 맨드리옹’이 1924년 군사정찰 대회에서 올림픽 선서를 하고 남동생 모리스와 함께 동메달을 획득했다.


군사정찰 대회가 시작되고 35년이 지나 해당 대회가 종료된 지 12년이 되던 해에, 바이애슬론에 대한 현대 올림픽 개념이 정착됐다. 후로 바이애슬론은 1960년 미국에서 개최된 ‘제8회 스쿼밸리 동계올림픽’의 정식종목으로 등록됐다. 스웨덴의 ‘클라스 레스탠더’가 바이애슬론 종목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획득했다. 

1960년 미국 스쿼밸리서 정식 종목
이후 독일·노르웨이·소련이 지배

그 이후로는 독일과 노르웨이가 이 종목을 지배하면서 동계올림픽의 인기종목으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된다. 1976년 인스부르크 대회까지 소련이 바이애슬론을 주도하며 단 하나의 개인 레이스와 하나의 계주로 구성돼 경쟁을 펼쳤다.

1980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서 두 번째 개인경기가 추가로 도입됐다.

1992년 독일 알베르빌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는 여자 바이애슬론 종목이 추가됐고,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는 남자 12.5km, 여자 10km 추월 종목이 도입됐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로, 이전 월드컵에서 각 30명의 남녀 최고 선수가 한자리에 모여 경쟁을 펼치는 새로운 매스스타트 경기로 시작됐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모든 바이애슬론 경기는 ‘장자커우(Zhangjiakou)’ 지역의 국립 바이애슬론 센터에서 진행된다. 이번 동계 올림픽 바이애슬론 대회는 다음의 11개 종목으로 구성돼있다.

11개 종목

종목은 ▲남자 = 10km 스프린트, 20km 개인, 12.5 km 추격, 15km 매스 스타트, 4 x 7.5km 계주 ▲여자 = 7.5km 스프린트, 15km 개인, 10km 추격, 12.5km 매스 스타트, 4 x 6km 계주 ▲혼합 = 4 x 6km 혼합 계주 등으로 구성돼 있다. 105명의 남자 선수와 105명의 여자 선수 등 총 210명의 선수에게 바이애슬론 경기 참가 쿼터가 부여된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