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눈 가린 '은밀한 마약 거래' 실상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8.03 10:02:30
  • 호수 13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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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쉽게 만들어 편하게 사고 판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마약범죄가 점점 교묘해지면서 대범해지고 있다. 실제로 SNS를 통해 마약 재배부터 거래 방법까지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1020세대도 SNS를 통해 쉽고 간편하게 마약을 접할 수 있는 만큼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언어는 사람의 의식을 지배한다. 마약이 불법 약물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상품 이름마약옥수수, 마약떡볶이, 마약의자 등 해당 단어를 사용한다. 상품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논란에 대해 자영업자들은 ‘마약만큼 중독성이 강하다’는 의미가 담겼다고 해명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약이란 단어에 친숙해졌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청정국 맞아?
환상 사로잡혀 

마약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면서 일반인들도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마약과 아무런 관련이 없던 사람들도 호기심으로 마약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약간의 수고(?)만으로도 손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는 환경 때문에 호기심에 마약을 시작하는 경우가 증가하는 추세다.

회사원, 가정주부, 심지어 청소년들도 마약 거래를 하다 적발되는 등 마약범죄가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상반기 마약류 사범 특별단속을 통해 5108명을 검거하고, 이 중 997명을 구속했다. 검거된 마약 사범 3명 중 1명은 20대(33.3%)였다. 이어 30대(22.1%), 40대(17%) 순이었다.


10대는 전년 대비 1.4%p 증가해 3.5%를 차지했다. 10대와 20대 비중은 36.8%로, 전년 동기 21.7% 보다 15.1%p 늘어나 마약이 젊은 층에 파고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수본 관계자는 “마약 거래 대금을 현금으로 송금하면 100% 잡을 수 있지만 가상화폐 등으로 할 경우 추적 프로그램을 동원해 검거해야 한다”며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생활 영역 전반이 사이버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마약류에 대한 접근 방식도 인터넷(다크웹)과 SNS 등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이에 친숙한 젊은 층에서 마약 사범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1020세대 사이에 빠르게 퍼지고 있는 마약 범죄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1020세대는 연예인 마약 보도 등에 노출될 경우 쉽게 호기심을 가진다. 그렇다 보니 SNS로 접근해 마약에 대한 정보를 쉽게 구하고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마약을 접할 경우 건강상 유해성이 더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익명성 갖춘 가상자산으로… 
자금 추적 피하기 쉬워 활용

국립과학수사원 연구에 따르면 어린 나이에 대마초를 접할수록 중독 가능성이 커진다. 대마초에 중독되면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와 신경세포가 손상되며 뇌 혈류량이 줄고 중추신경계가 자극을 받는다. 이로 인해 인지기능이 떨어지고 무기력증과 환각, 망상 등이 생기기도 한다.

최근 마약 거래는 경찰의 단속망을 피하기 위해 100% 비대면으로 이뤄진다. 가장 흔한 방법은 다크웹을 이용하는 것이다. 마약 거래장터로 알려진 다크웹은 일반적인 웹보다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딥X, 베리OO 등이 마약 암시장 사이트로 알려져 있다. 익명 접속이 가능한 다크웹상에서 마약 거래가 성사되는데 마약뿐 아니라 무기, 음란물 등도 거래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크웹에서 판매자와 구매자는 문자 암호화 프로그램(GPG KEY)을 설치한 뒤 게시판 댓글로 거래에 대해 협의한다. 암호화한 문구를 수사당국이 해독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점을 노린 것이다.

마약 거래에 대한 협의가 끝나면 구매자는 주로 현금을 디지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으로 환전해 송금한다. 가상자산이기 때문에 수사당국의 자금 추적을 피하기 용이하다. 당국은 가상화폐가 갖는 익명성 때문에 추적에 어려움을 겪는다. 비트코인 거래 시 개인정보가 필요하지 않으며 분석이 불가능한 암호화돼 거래된다.

마약상은 메신저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을 통해 마약을 홍보한다.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은 마약상과 구매자 간의 커뮤니티 성격을 띤다. 마약상은 단체대화방을 통해 사람도 모집하고 정보도 알려준다. 마약 구매자 위주로 투약 후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마약상의 요청으로 구매자들은 후기 글까지 남긴다. 이 글은 마약방을 광고하는 데 쓰인다. 

SNS 통해
청소년도

텔레그램뿐 아니라 카카오톡 링크 공유방(이하 링공방)에서도 마약상은 홍보를 서슴지 않는다. 링공방은 불법 음란물 대화방이나 불법 도박 사이트에 입장할 수 있는 URL 등을 공유하는 곳이다. 링공방에 참여한 마약상은 불법 음란물이나 재미를 위한 짧은 영상과 사진을 올리다가 중간 중간에 자신의 마약방 링크도 끼워 넣는다. 

사람들이 무심코 마약방 입장을 클릭하다 보면 마약 정보도 접하게 되는 구조다. 마약상은 마약방에 우연히 들어온 고객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해 마약 거래를 유도한다. 

텔레그램에서 여러 마약상이 구매자 모집활동을 벌이면서 이들 간의 알력 다툼도 존재한다. 특정 마약상을 공격하기 위해 닉네임을 사칭해 거래하는 척한 뒤 ‘먹튀’하는 것이 흔하게 쓰이는 수법이다. 또 돈만 받고 물건을 넘기지 않으며 만약 거래되더라도 품질이 낮다는 취지의 글을 유포하기도 한다.

트위터도 마약의 성지로 불린다. 구입 희망자가 마약상을 처음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마약 은어를 검색하면 마약상과 만날 가능성이 크다. 마약 소지자들이 SNS에 언급한 메신저 아이디를 텔레그램에 검색하면 대화방이 열리는데 기록이 남지 않은 대화방으로 진행된다.

대화방에서는 마약 은어로만 대화가 진행된다. 북한산 마약을 암시하는 ‘북한산’, 마약의 성분을 암시하는 ‘순도 98%’, 공급책을 의미하는 ‘공급선’ 등이다. 

마약 은어는 트위터뿐 아니라 랜덤채팅 앱에서도 쓰인다. 랜덤채팅 앱에 ‘아이스’ ‘얼음’ 등으로 마약 거래 의사 표시를 확인한 후 대화가 진행된다. 함께 투약할 사람을 찾거나 거래 수법을 공유하기도 한다. 

지난해 2월과 8월 대전에서 같은 랜덤채팅 앱을 통해 필로폰과 대마를 각각 200만원과 80만원에 구매한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채팅 앱에서 거래 장소를 정해 상가 실외기 뒤편에 돈을 놓고 그 돈을 챙긴 판매자가 같은 장소에 마약을 놓는 ‘던지기’ 방식의 거래가 성사됐다.


방, 옥상…
직접 재배

일반인들이 마약 거래에 그치지 않고 집안이나 옥상에서 마약을 제조하는 ‘홈(home) 재배’까지 하고 있다. 재배 방법도 거래와 마찬가지로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에서 공유되고 있다. 대화방 운영자가 공지를 통해 방법을 설명한다. 발아 방법부터 수확, 보관·추출과 더불어 대마에 알맞은 온도와 습도, 빛의 양까지 올렸다. 

뿐만 아니라 대마 씨앗 구매 사이트 공유를 비롯해 국제우편을 통해 구하는 방법도 공유했다. 운영자는 다양한 재배 방법을 소개하며 이렇게 재배한 대마를 마약으로 만들었을 때 각각의 장단점에 대해 평가하기도 했다.

현행 마약류관리법상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대마의 재배가 가능한데 승인 없이 향정신성의약품을 목적으로 재배·제조 혹은 소유할 경우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또 승인받지 않은 사람이 단순히 재배할 경우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마 재배 방법을 설명하는 텔레그램 대화방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일반인들이 마약 재배를 하다 경찰에 잡힌 사례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충북 괴산의 한 자택 뒷마당에서 마약성 식물인 양귀비를 재배한 60대 아들 A씨와 90대 친모 B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A씨가 술을 마시고 B씨에게 고성을 지른다는 이웃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A씨를 진정시킨 후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이튿날 B씨의 안위가 걱정된 경찰은 A씨를 설득하기 위해 그의 자택을 방문했던 경찰은 뒷마당에서 양귀비가 대량으로 심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A씨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라며 사실을 부인하다가 결국 몰래 양귀비를 재배했다고 인정했다. 경찰이 그의 자택에서 압수한 양귀비는 무려 108주에 이른다.

투약 후기·매매 방법 공유
북한산·순도 등 은어 사용

지난해 11월에도 20대 모델 커플이 인터넷으로 대마 재배법을 배운 뒤 집에서 대마를 직접 키우다가 경찰에 붙잡힌 경우도 있다. 이들 범행의 특징은 주거지를 마약 재배 장소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선 이들처럼 투약을 위해 단순히 마약을 재배하는 목적이 아닌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재배하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경기 안산시에 있는 다세대주택의 약 18㎡(약 5평) 규모 원룸 내부에 온실을 두고 대마를 길러 SNS를 통해 판매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남성의 원룸에서는 대마초 4.35㎏, 액상대마 1530㎖와 엑스터시 1426정 등 20억원 상당의 마약이 발견됐다.

해당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2~3개월 전부터 대마를 길러서 팔기 시작했고 다른 판매자로부터 대마 씨앗도 사고 대마 재배 방법도 배웠다”고 진술했다.

마약상이 아닌 일반인들이 자택에서 마약 재배를 하는 이유는 타인의 주거에 동의 없이 들어갈 경우 ‘주거침입죄’가 적용돼 재배 사실을 숨기는 데 용이하기 때문이다. 경찰 역시 수색영장 없이 함부로 주거지에 들어갈 수 없어 마약 재배 단속에 어려운 점이 있다.

일반인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마약 재배 등의 범행에 유혹받고 있지만, 수사당국의 해당 불법 사이트 차단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화방이나 게시물 자체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 재배법 유포를 막거나 제한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대상 마약 예방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는 어릴 때부터 국가가 주도해 마약 예방교육이 이뤄진다. 마약 중독은 재활이 어렵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처음부터 마약에 손을 뻗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얼굴 안보고
비대면 거래

마약 중독 전문가인 박진실 변호사는 “마약 예방교육이 필수가 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교육현장에서는 오히려 마약 때문에 호기심만 더 자극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며 “마약을 금기시하지만 말고 국가가 나서서 아이들에게 위험성을 빨리 고지해주고 판단하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코로나19 여파’ 마약 밀수 늘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항공편을 통한 이동이 제약을 받으면서 국제우편과 특송화물을 통한 마약 밀수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청은 올해 상반기 관세국경(세관)에서 마약류 662건, 214.2㎏을 적발했다고 지난 15일 밝혔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적발 건수는 59%, 적발 중량은 153% 증가한 수치다.

특히 국제우편과 특송화물 속에서 적발된 마약은 지난해 상반기 158건에서 올해 상반기 605건으로 급증했다.

전년과 비교해 4배가 넘는 수준이다. 그 가운데 ‘소량(10g 이하) 마약류’ 적발이 259건으로, 전년 동기(67건)와 비교해 3배가 넘었다.

관세청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함에 따라 국제우편과 특송화물을 통한 ‘비대면 마약 거래’ 적발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관세청은 국제우편 등을 통한 소량 마약류 적발이 급증한 것과 관련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다크웹·SNS를 통해 해외에서 마약류를 ‘직구’(직접구매)하는 사례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상반기 메트암페타민(필로폰)은 세관에서 43.5㎏이 적발돼 전년 동기(24.5㎏) 대비 7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청 관계자는 “145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합성 마약인 엠디엠에이(MDMA) 적발 건수는 51건, 엘에스디(LSD) 적발 건수는 42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68%, 200% 증가했다. 성범죄에 주로 악용되는 케타민 적발 건수도 22건으로 전년 동기(6건)와 비교해 267% 증가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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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