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주년 특집> '투기? 투자?' 대기업 알짜 농업법인 대해부

합법적인 돈 묻고 돈 먹기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대기업들이 앞다퉈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하고 있다. 농업회사법인은 오래전부터 '투기의 장'으로 유명했다. 이 외에도 절세, 대출에 용이하다는 점은 대기업들에게 큰 메리트로 다가온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가 베일에 싸여있는 농업회사법인에 대해 알아봤다.

최근 농업회사법인의 투기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부동산매매, 토지개발이 엄연한 불법임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인 가운데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3년 주기로 실시하는 실태조사도 농업인 스스로 하는 등 감시 사각지대가 큰 것으로 확인됐다.

'뻥튀기' 빈번
사각지대

지난 18일 금융당국 및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최근 신도시 3곳 필지와 산업단지 예정부지 290억원어치를 매입하는 등 부동산투기로 문제된 대한영농영림은 감사보고서에 법상으로 금지된 '토지개발업 및 부동산매매업'을 주요사업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법인에 대해 감사의견으로 '적정'을 제시했던 한서회계법인은 지난 4일 돌연 '의견 거절'로 정정했다. 감사인은 "회사의 부동산매매와 관련된 활동이 농어업겸영체법에 따른 경작 여부, 부대사업 범위에 해당하는지 충분한 감사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며 "준거법령 위반사항은 계속기업의 존속능력에 대해 유의적인 의문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런 불법행위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데 있다. 영농목적이 아닌 시세차익을 위한 부동산매입이 전혀 통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농식품부가 밝힌 '2019년 기준 농업회사법인 통계조사'에 따르면 실질운영 중인 활동 법인은 총 2만3315개소로 나타났다. 영농목적으로 설립이 가능한 농업회사법인은 농업인 1명 이상이 주주로 참여하고 농업인 출자액이 전체의 10% 이상이어야 한다.

농업회사법인이 영농활동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실태조사는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농어업겸영체법에 따라 각 지자체가 조합원·출자, 사업범위, 경작유무 등을 3년 주기로 점검하지만 농업인이 스스로 작성해 제출하는 식에 그친다.

부동산개발을 하더라도 얼마든지 지자체 공무원을 속일 수 있는 것이다.

부동산투기 등 목적외 사업을 한 것이 드러나더라도 영업정지, 과징금 부과도 불가능하다. 오직 법원에 해산명령 청구만 가능한데 이 또한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는 세액 납부자료나 부동산거래 자료를 관계부처를 통해 받아 면밀한 검토를 하려 했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절세·대출에 용이…너도나도 농지로
영업정지·과징금 불가…정부도 답답

이런 상황에 앞다퉈 이뤄지고 있는 국내 주요 기업들의 농업회사법인 설립도 눈길을 끈다. 대기업의 농업 진출 사례로 유명한 곳은 현대건설의 서산간척지와 동아건설의 김포매립지.

이 두 곳은 1970년대 중동 건설 수주가 줄어들자 위기에 노출된 대형건설사들의 건설장비 문제 해결을 위해 '민간자본 유치'와 '농지조성을 통한 쌀 생산'을 명분으로 추진됐다.


현대건설은 1979년 서산 A·B 지구 간척지의 매립면허를 받아 1982년에 B지구 물막이를, 1984년에 A지구 물막이를 완료했다. 이 때 동원된 폐유조선 공법이 언론에 신화로 회자된다.

당시 현대는 "정주영 회장의 신화와 더불어 이곳이 단일경영규모로는 세계 최대이고, 선진 과학영농으로 50만명이 1년간 먹을 쌀을 생산한다"고 홍보했다. 매립 후 이 지역은 염분제거와 경지정리 후 1985년 시험영농에 들어가 10년만인 1995년 농림수산부로부터 농지 준공인가를 받았다.

그러나 현대는 애초 논으로 조성키로 한 서산 B지구를 밭으로 변경해달라고 끈질기게 정부에 요구해왔다. 2000년 부도사태를 맞은 현대건설은 경영안정을 위해 간척지를 담보로 토지공사로부터 수천억원을 차입하고 일부를 일반인과 농어민들에게 팔았다.

이후 지속적인 타용도 전용 시도가 성공하면서 2005년 정부로부터 간척지 상당 부분이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로, 2008년에는 바이오웰빙특구로 지정됐다. 

결국 농업용으로 허가받은 현대간척지는 현대 재벌가 내에서 주인이 바뀌며 대부분 산업용 등 타용도로 활용되거나 매각됐고, 일부만 현대서산농장이 직영하고 있다.

동아건설의 김포매립지도 농지를 조성한다는 이유로 공유수면 매립허가를 받아 1991년에 매립지를 준공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쓰레기 매립장, 복합화력발전소, 하수처리장 등으로 용도 변경됐다. 동아건설은 나머지 땅에 대해 농업용수 부족을 이유로 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하면서 지속적으로 용도 변경을 시도했다.

앞다퉈
진출 왜?

1998년 IMF 위기때 부도에 몰린 동아건설은 외자 유치를 내세우며 마이클 잭슨, 갑부인 사우디 왕자 등을 내세워 대대적인 용도 변경 공세를 폈지만, 정부에 의해 거부됐다.

결국 김포매립지는 동아건설의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1999년 5월 농어촌공사에 매각됐다가 다시 LH와 인천시 등에 넘어가 도시용지, 산업용지로 전용됐다.

동부그룹의 동부팜한농은 원래 1953년 한국농약으로 출발했으며, 농약·비료·종자·동물약품을 아우르는 국내 최대 농자재 회사였다.

2009년에는 자회사인 동부그린바이오(새만금팜)가 새만금간척지 대규모농어업회사 사업자로 선정됐고, 2010년에는 동화청과를, 2011년에는 천적곤충기업인 세실을 비롯해 동호제약, 대농종묘, 가야를 인수했다.

동부팜한농은 2012년 몬산토코리아로부터 영업권을 인수하기도 했다. 몬산토코리아는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때 국내 종자업계 1위 흥농종묘와 3위 중앙종묘를 인수한 세미니스코리아를 인수했었다.


특히 2012년에는 동부팜화옹이 경기도 화옹간척지 내에 일부 정부 지원을 받아 15ha규모의 첨단유리온실 단지를 건립했다가 농민들의 반발로 2013년 포기를 선언했고, 유리온실을 우일팜에 팔았다.

동부팜한농은 우여곡절 끝에 동부그룹이 부도위기를 맞자 LG화학에 매각돼 '팜한농'으로 출발했다.

동부팜을 인수한 LG가 농업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1973년 학교법인 연암학원을 설립하고 이듬해 연암대학의 전신인 연암축산고등기술학교(축산과)를 개교하면서부터다.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1995년 은퇴 후 천안 연암대 인근 농장에서 머물며 버섯 재배와 된장 등을 취급하는 수향식품을 운영했다. LG그룹은 2006년 리조트와 수목원에 조경수를 공급하는 농업회사법인 곤지암원예원을 설립하고, 같은 해부터 곤지암 화담숲을 조성, 2013년 개장했다.

대기업들의 농업 진출 시도는 정보통신업계에서 두드러진다. 카카오는 2015년 KAIST 출신들이 만든 식물공장 업체인 '만나씨이에이'의 지분 약 33%를 인수하고 유통과 마케팅을 지원하고 있다. 만나씨이에이가 생산하는 품목은 바질 같은 외래종 채소류다.

농민 구역
침해 논란도


이 업체는 다시 '팜잇'이라는 법인을 만들어 크라우드펀딩으로 공유농장이라는 사업모델을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 카카오의 행보는 농민들과 중소상인들의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을 빚기도 했다. 

노루표페인트로 잘 알려진 노루그룹도 2014년 자본금 100억원을 들여 노루기반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농업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노루그룹 산하에는 농산물 유통·가공·판매와 영농 자재를 생산·공급하는 더기반이 있고, 노루지에스는 무인기 기술, GIS(지리정보시스템)를 이용한 정밀 농업 분야 시장을 노리고 있다.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 KT·LG 유플러스 등 3사도 모바일 원격제어시스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KT&G는 2011년 인삼과 한약재 재배를 주력으로 하는 농업회사법인 예본농원을 설립했으나 실적이 없이 2014년 청산했다. 대성그룹의 경우 2012년 고구마와 감자를 재배하는 농업회사법인 굿가든과 굿랜드를 세웠다가 2013년 굿가든으로 흡수합병했다.

녹차브랜드 '설록차' '오설록'의 아모레퍼시픽은 1979년 제주도에 진출해 190ha규모로 녹차를 재배하면서 공장과 박물관까지 운영하고 있다. SK임업은 1972년 서해개발 주식회사로 시작해 천안, 충주, 영동 등에 조림지를 보유하고 조림, 조경, 임산물 사업을 한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왜 농업회사법인에 관심을 두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토지 투자에 가장 걸림돌 중 하나인 농지 취득 자격 제한을 받지 않고 ▲취득세나 종부세 등 세금을 회피할 수 있으며 ▲정책자금 등을 통해 대출을 받기도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전문가는 "농업회사법인이 땅 투기 수단으로 널리 쓰이게 된 건 오래전부터"라며 "농업활동을 하는 사람이 참여해야 한다는 제한이 있지만, 이를 회피할 수 있는 수단은 많은 데다 '편법'이긴 하지만 여러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유명 그룹 정보통신업계도 합류
총수가 앞장서…본질은 이윤추구?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세금이다. 부동산 관련 전문가는 "조세특례제한법 등에 따라 농업활동을 목적으로 농지를 매매할 경우 취득세와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이 있기 때문에 개인 명의로 사들이는 것보다 절세효과가 크고 대출 면에서도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농업회사법인은 영농·유통·가공에 직접 사용하기 위해 취득하는 부동산에 대해서는 취득세의 100분의 50을, 과세기준일 현재 해당 용도에 직접 사용하는 부동산에 대해서는 재산세의 100분의 50을 각각 2023년 12월 31일까지 경감한다.

상속이나 증여에도 농업회사법인은 뛰어난 절세 수단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법규상 개인 명의로 보유한 땅을 농업회사법인으로 넘기는 현물출자를 하는 경우 땅을 궁극적으로 판 게 아니라고 간주해 농업회사법인이 처분할 때까지 양도세를 유예할 수 있고, 현물출자를 통해 농업회사법인은 취득세 비용도 발생하지 않아 취득 면에서도 유리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농업회사법인에 대한 대출 형태로 법인 대주주나 그가 소유한 기업이 고리로 자금을 빌려주고 이를 비용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여럿이다.

신도시 개발 지구에 다수의 토지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한 농업회사법인의 지난해 자산은 330억원인데, 부채는 266억원이다. 이 농업회사법인은 두 회사로부터 각각 연리 5.0%로 118억원, 연리 5.6%로 125억원을 각각 빌렸다. 

농업회사법인 대표는 두 회사 중 한 곳의 감사로 재직하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지역농·축협에 16억원을 대출받았을 때 조건은 각각 연리 3.88%와 4.24%다. 경제민주주의21 관계자는 "과도하게 높은 금리로 자금을 빌려주고 이자수익 형태로 매각 차익을 미리 선취하는 방식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 사람 
여러 개

조사 결과 농업회사법인을 한 사람이 여러 개 가진 경우도 있다. 서울 테헤란로에 세워진 2017년과 2018년 각각 설립된 농업회사법인 두 곳은 대표이사가 동일하다. 이렇게 농업회사를 쪼개면 외부감사기준인 자산 100억원을 회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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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