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마케팅' 국민의힘 플랜B

잡룡으로 잠룡 깨운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윤석열 마케팅'에 나섰던 국민의힘 내부에서 플랜B가 떠오르고 있다. 윤 전 총장의 잠행이 길어지면서 이를 대비한 시나리오를 구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당권 후보들의 입에 오르고 있다. 이들은 윤 전 총장과 개인적 친분을 언급하며 영입을 공언했다. 윤 전 총장에 공을 들이는 당내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플랜A
리스크

일각에서는 당내 상황이 바쁘게 돌아가는 만큼 ‘윤석열 마케팅’이 점점 자취를 감출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당은 열 명 넘게 나온 당 대표 후보군 덕에 전당대회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윤 전 총장의 잠행이 두 달 넘게 이어지면서 당내 기류도 조금씩 변하는 양상이다. 윤 전 총장에게만 당의 화력이 쏠려선 안 된다는 의견이다. 불확실한 윤 전 총장의 변수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

이는 '정치인 윤석열'이 가진 리스크가 크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지율은 고공행진 중이지만, 윤 전 총장이 대선에서 이길 것이라 예단하긴 어렵다. 만약 윤 전 총장이 입당한 후 변수가 생긴다면 당은 그야말로 쇼크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과거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의 사례를 보면 이는 불가능한 스토리도 아니다.

이외에도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총공세에 나설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윤 전 총장을 겨냥한 결정적 한방이 드러나면 대선 정국에서 당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윤 전 총장의 가족까지 검증대에 오르게 되면 그가 사퇴 결단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윤 전 총장 처가 재산 문제는 그의 역린으로 꼽힌다. 윤 전 총장이 대선 가도에 뛰어든다면, 아내의 사업과 장모의 재산 증식 과정에 대한 의혹들이 연이어 터질 전망이다.

잠행 길어지는 윤
흥행 중인 국민의힘

이미 윤 전 총장은 과거에 처가 재산 문제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지난 2019년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당시 윤 전 총장은 65억9076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검찰 고위 간부 중 1위다. 다만 윤 전 총장 명의로 된 예금은 2억1386만원이고, 나머지는 아내 김씨의 재산이었다.

특히 윤 전 총장 장모의 부동산 의혹은 꾸준히 제기되는 문제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페이스북에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윤 전 검찰총장의 장모가 대한주택공사와 한국도로공사로부터 토지 보상으로 100억원이 넘는 이익을 얻었다고 한다'며 '30억1000만원에 경매로 낙찰 받은 땅이 아산신도시 조성을 위한 토지로 수용되면서 132억3581만7780원을 받았다는 것'이라고 적었다.


실제 <오마이뉴스>는 윤 전 총장 장모의 아산신도시 땅 투기 의혹을 보도했다. 윤 전 총장 장모의 조흥은행 통장 거래명세서를 살펴보면 2001년 경매로 30억1000만원에 아산신도시 부지를 2004년부터 2005년까지 토지 보상금으로 132억여원을 받아 3년 만에 102억여원의 차익을 남겼다고 전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당 일각에서는 윤 전 총장이 대선후보로 나서려면 처가 의혹 등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공직자 가족의 재산 증식 문제는 ‘불공정’과 연결돼 추후 큰 뇌관이 될 수 있어서다.

이외에도 윤 전 총장이 대권후보로 뛸 경우 강성 보수와 중도 보수의 충돌을 피하지 못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윤 전 총장은 보수 정당이 배출한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했다. 여전히 강성 보수 사이에서는 대권 주자로 부상한 그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감지된다.

윤에 올인?
이대론 위험

이와 반대로 야권의 플랜B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도 있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과 함께한다면 자연스레 여권의 공세를 야권이 막을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당이 힘을 실어준다면 윤 전 총장이 웬만한 공세에는 크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윤 전 총장이 나올 때까지는 당의 후보들에게 집중하자는 자성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확실하지 않은 윤 전 총장에 '올인'하는 것보다 일단 당의 후보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는 것.

현재 국민의힘 소속 차기 대권주자로는 황교안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이 있다. 최근 미국으로 떠난 황 전 대표는 귀국 후 집필 중인 저서 작업을 곧 마무리하는 등 차기 대선 비전 제시에 나설 전망이다.

유 전 의원은 고향 대구를 찾아 대선 행보를 공식화한 상태로 17일 광주를 찾을 예정이다. 이는 이념과 지역을 뛰어넘는 대권주자로서의 면모를 보이겠다는 각오로 풀이된다. 원 지사도 일찌감치 내년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하고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제는 이들의 지지율이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 인물 모두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5%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유 전 의원과 원 지사는 문재인정부를 비판하며 각 현안에서 뚜렷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

특히 황 전 대표의 대권행을 두고는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크다. 그는 극우·강경 보수 세력의 색채가 짙은 인물이다. 21대 총선 패배의 원인으로 꼽히는 그가 대권주자로 나서면 '중도로의 확장'이 필요한 당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야권 후보
존재감 미약

지난 5일 황 전 대표는 백신 확보를 위해 미국으로 떠난 후 여러 논란을 낳았다. 그는 미국 정부에 코로나19 백신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국민의힘 지자체장들이 있는 서울·부산·제주만 우선 지원해달라는 뜻을 밝혔다. '국민 편가르기' 발언으로 당심을 얻으려다 민심을 잃었다는 비판이 쇄도했다.


같은 당 장제원 의원마저 "나라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며 저격했다.

이 흐름이 계속되면 당밖 유력 주자인 윤총장과의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제1야당의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 외의 새 인물을 영입해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이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최재형 감사원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김 전 부총리의 경우, 김 전 위원장의 '대안 카드'라는 말이 돌면서 부상된 인물이다. 김 전 부총리는 문정부 초대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직을 1년6개월간 역임했다.

최근에는 사단법인 '유쾌한 반란'을 발족해 여러 강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최근 강연에서 "미래를 이야기하는 정치 지도자도 없이 그저 과거와 진영논리의 싸움만 하고 있다"는 정치적 발언으로 이목을 끈 바 있다.

기지개 펴는 당내 주자들 존재감 미미
당 밖의 제3 후보는…오세훈 히든카드?

최 감사원장은 현직 감사원장 신분이지만 국민의힘이 일찍부터 눈독을 들였다. 정부가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를 감사위원에 임명하려 할 때 그는 '정치적 중립성'을 앞세워 반대 뜻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이와 관련해 김 전 위원장은 이들을 지원할 의사가 없다고 선을 그은 상태다.


아울러 대권주자로서는 정치적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현실적 평가도 따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 차출론도 제기된다. 최근 오 시장은 '서울비전 2030 위원회'를 구성했다. 전직 고위관료와 각계각층의 전문가로 구성됐다. 이는 서울의 비전뿐만 아니라 국가 운영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오 시장의 대권 씽크탱크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오 시장은 대선이 아닌 내년 지방선거에 서울시장으로 재출마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이는 과거 그의 행적과 관련이 있다. 오 시장은 과거 무상급식 논란으로 시장직을 던졌다. 만약 1년여 남은 현 임기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다면 여론이 급속도로 나빠질 수 있다.

하지만 당에서 정권교체의 명분만 만들어준다면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 시장은 최근 나경원 전 의원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를 꺾으면서 야권에서 정치적으로 상한가를 치고 있다.

오세훈
차출론?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보궐선거 승리로 자신감이 많이 붙은 상태다. 대선에 나가고 싶어할 것"이라며 "다만 2011년 무상급식 논란으로 사퇴한 만큼 당에서 부름이 있어야만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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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