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죽방멸치쌈밥·멸치회

봄봄봄봄, 멸치 왔어요~!

여기저기서 터지는 꽃이 봄소식을 전한다. 봄의 전령은 또 있다. 추위를 이겨내고 새 생명의 기운을 담뿍 담아낸 음식이다. 겨우내 잃은 입맛을 돋우고 몸에 활력을 줄 제철 음식이 전국 각지에서 유혹한다. 모든 유혹을 떨치고 따뜻한 남쪽으로 달려간다. 은빛 반짝거리는 죽방멸치가 봄을 머금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지 않은가.

한려수도의 비경을 품은 남해는 태생적으로 섬이지만, 후천적으로 뭍과 연결됐다. 노량대교와 남해대교가 남해와 하동을, 창선·삼천포대교가 남해와 사천을 잇는다. 죽방멸치로 유명한 남해 지족해협 죽방렴(명승 71호)으로 가기 위해선 창선·삼천포대교를 이용하는 게 빠르다.

창선·삼천포대교는 삼천포대교, 초양대교, 늑도대교, 창선대교, 단항교가 육지와 섬, 섬과 섬을 연결하는 명물로, 2006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대상에 선정됐다.

수려한 풍광

바다와 섬이 빚어내는 수려한 풍광을 눈에 담고 다리를 건너면 남해 창선도다. 남해는 크게 본섬인 남해도와 창선도로 나뉘는데, 두 섬은 다시 창선교로 연결된다. 창선도는 북쪽이 사천과 창선대교로, 남쪽이 남해도와 창선교로 이어진다. 창선교 아래, 즉 창선도의 창선면 지족리와 남해도의 삼동면 지족리 사이로 지족해협이 지난다.

지족해협은 좁은 물목이라 전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물살이 거세다. 게다가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수심이 얕아, 죽방렴을 설치하기 좋은 조건을 두루 갖췄다. 죽방렴은 문자 그대로 대나무 발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일이며, 조선 시대 문헌에도 기록이 있는 전통 어로 방식이다.


지족해협 죽방렴은 물길을 따라 나무 말뚝을 ‘V 자형’으로 박고, 그 꼭짓점에 원형 통발을 설치한 형태다. 빠른 물살을 따라 이동하던 물고기가 죽방렴의 넓은 입구로 들어가면 통발에 갇힌다. 통발은 촘촘히 엮은 대나무 발로 둘러싸여, 물은 빠져나가도 물고기는 빠져나갈 수 없다.

어민들은 썰물 때 통발에 모인 물고기를 뜰채로 건진다.

단순한 조업 방식이지만 생태 환경과 물고기의 습성, 물때 등 자연의 섭리를 복합적으로 고려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이런 가치를 인정받아 죽방렴을 포함한 ‘전통 어로 방식-어살’이 2019년 국가무형문화재 138-1호로 지정됐다. 죽방렴홍보관에서 죽방렴의 역사와 원리를 자세히 볼 수 있다.

홍보관에서 해안로를 따라 약 1km 거리에 죽방렴을 가까이 보는 죽방렴관람대도 있다. 단 죽방렴홍보관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에 따라, 죽방렴관람대는 기상 상황에 따라 개방 여부가 달라지므로 방문 전에 확인해야 한다.

죽방렴에서 잡히는 다양한 어종 가운데 대표 주자는 단연 멸치다. 물살이 빠른 지족해협을 헤엄치던 멸치는 탄성이 좋아 살이 탱글탱글하고, 죽방렴에서 소량씩 건져 올린 덕에 비늘이 훼손되지 않을 정도로 싱싱하다. 죽방멸치가 상대적으로 비싼 이유다.

특히 봄멸(봄에 잡히는 멸치)은 오동통 살이 오르고 기름기가 많아 씹는 맛이 좋고 고소하며 뼈는 연하다. 회, 구이, 찌개 등 어떤 요리로 즐겨도 맛있다.

살이 올라 씹는 맛 좋고 고소해
회·찌개 등 어떤 요리든 맛있어


봄에 많이 잡히는 대멸은 어른 손가락만큼 길고 굵직해 제법 생선다운 모습이다. 싱싱한 대멸은 회로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마른 멸치가 워낙 익숙해서 멸치회라는 메뉴가 낯설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영롱한 은빛을 빛내는 죽방멸치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멸치회는 주로 매콤하고 새콤한 양념에 무쳐 먹는다. 대가리와 내장을 없앤 멸치를 각종 채소와 함께 무치는데, 막걸리 식초로 비린내를 잡는다. 굵은소금 톡톡 뿌려서 구워도 그 맛이 일품이다.

멸치쌈밥은 멸치찌개 속 통통한 멸치를 상추에 싸 먹는다. 멸치찌개는 싱싱한 죽방멸치에 시래기, 고춧가루, 다진 마늘 등을 넣고 자작하게 끓인다. 음식점마다 다르지만, 남해의 또 다른 특산물 남해마늘로 담근 장아찌를 함께 내는 곳도 있다.

상추에 멸치와 시래기, 마늘장아찌를 싸 먹으면 더욱 맛깔스럽다. 삼동면 죽방렴 일대에 오래된 멸치쌈밥 음식점과 죽방멸치 판매장이 여러 곳 있다.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식당이 유명하다.

지족해협 죽방렴에서 동부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며 남해의 다양한 매력을 만끽하자. 지난해 말 개장한 설리스카이워크가 새로운 명소로 인기를 끈다. 설리스카이워크는 캔틸레버(한쪽 끝은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있는 보) 방식으로 제작돼 이색적이다.

높이 38m 스카이워크 끝에서 타는 대형 그네가 포인트다. 세계적인 명물인 인도네시아 발리의 그네를 모티프로 제작해 어느새 ‘SNS 성지’로 떠올랐다. 스카이워크 끝에서 세차게 출발한 그네는 바다 위를 날아오른다. 기분이 짜릿하고 사진은 예술이다.

최근 드라마 〈여신강림〉에 등장해 더 유명해졌다.

물미해안전망대라고도 불리는 남해보물섬전망대는 원통형 구조로 이뤄져 파노라마 바다 전망을 자랑한다. 이곳의 백미는 바닥이 유리로 된 길을 와이어에 의지해 걷는 스카이워크 체험이다. 어떤 사람들은 걷는 것만으로 다리가 후들거리겠지만, 어떤 이들은 와이어를 잡고 공중에서 점프하거나 스카이워크 끝에 발을 대고 바다를 향해 몸을 뻗기도 한다.

이런 체험은 안전 요원의 도움을 받아 진행한다.

독일마을

이국적인 분위기로 눈길을 사로잡는 독일마을도 놓치기 아쉽다. 독일마을은 1960~1970년대 독일로 파견돼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간호사와 광부들이 고국에 돌아와 정착할 수 있도록 조성된 마을이다. 물건항이 내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오밀조밀 들어선 전통 독일식 건축물이 그림 같은 풍경을 완성한다.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남해파독전시관, 독일 맥주와 독일식 소시지를 판매하는 가게, 독일마을 전경이 내다보이는 전망대 등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지족해협 죽방렴(죽방멸치쌈밥과 멸치회)→독일마을→남해보물섬전망대→설리스카이워크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지족해협 죽방렴(죽방멸치쌈밥과 멸치회)→독일마을→물건리 방조어부림→남해보물섬전망대→설리스카이워크 
둘째 날: 상주은모래비치→보리암→다랭이마을→섬이정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남해문화관광 http://www.namhae.go.kr/tour/main.web
- 남해보물섬전망대 http://www.instagram.com/namhae_cliffhill 
- 독일마을 http://남해독일마을.com 

문의 전화
- 남해군청 문화관광과 055)860-8601
- 남해관광안내 1588-3415
- 설리스카이워크 070-4231-1117
- 독일마을관광안내소 055)867-8897 

대중교통
[버스] 서울-남해,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루 4회(7:10~19:30) 운행, 4시간30분~5시간 소요. 남해공용터미널 정류장에서 뚜벅이버스(9:00, 14:00) 이용, 지족 죽방렴 정류장 하차. 
*문의: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남해공용터미널 1668-3506 뚜벅이버스


자가운전
통영대전고속도로→진주 JC→남해고속도로→사천 IC→사천·사천공항 방면 우회전→사천대로→창선·삼천포대교→동부대로→창선교→지족해협 죽방렴

숙박 정보
- 남해비치호텔(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남면 남서대로, 055)862-8880 
- 남해편백자연휴양림: 삼동면 금암로, 055)867-7881
- 쉴가펜션: 삼동면 동부대로1122번길, 010-9411-6363
- 엘림마리나앤리조트: 삼동면 동부대로1122번길, 055)867-6767

식당 정보
- 우리식당(멸치쌈밥): 삼동면 동부대로1876번길, 055)867-0074 
- 단골식당(멸치쌈밥): 삼동면 동부대로1876번길, 055) 867-4673 
- 동천식당(멸치쌈밥세트): 삼동면 동부대로, 055) 867-3560 

주변 볼거리
원예예술촌, 송정솔바람해변, 두모마을, 양모리학교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