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영원한 현대맨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

‘51년’ MK시대 막 내리다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지난해 10월 공식 은퇴를 선언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이 현대모비스 등기 이사직 사임을 마지막으로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정 명예회장은 51년간 현대자동차를 이끌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경영권은 아들 정의선 회장에게 넘겼다.

 

▲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정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은 현장경영, 품질경영, 뚝심경영이다. 이를 통해 그는 현대자동차를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5위에 이르기까지 끌어올리며 세계적인 그룹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통 통한
현장경영

정 명예회장은 1970년 현대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1974년에 현대자동차 서비스의 사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인의 능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부품 조달을 위해 직원들과 함께 트럭에 자동차 부품을 싣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때부터 그는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경험을 얻고 해결책을 찾았다. 

일을 마치는 저녁 시간에는 서비스센터 한쪽에 놓인 드럼통에 삼겹살을 굽고 직원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애로사항에 대해 듣고 소통했다고 한다. 그는 직원과의 소통이 현장 경영을 함에 있어 중요하다고 여겼다. 

경영에서 물러나기 전까지는 현장을 찾아 직원의 이야기를 들었다. 신입사원 연수에 빠짐없이 참석해 새내기들의 손을 잡고 “회사의 미래를 잘 부탁한다”고 말을 전하기도 했다. 


현장에 직접 가서 직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소통한 그는 1977년에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을 설립했다. 현대정공은 컨테이너 사업으로 전 세계 공급량의 30%를 차지하는 등 크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정 명예회장을 경영인으로서 인정하게 된 계기라고 전해진다.

현대정공은 사업 내용에 자동차 제조판매업을 추가해 갤로퍼를 생산했고, 이는 정 명예회장이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다시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게 했다. 갤로퍼의 성공을 앞세워 ‘포니 정’이라 불리던 고(故) 정세영 명예회장에게 현대자동차의 경영권을 이어받고 독립해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 후 경영 위기에 처한 기아자동차를 인수해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다. 자동차 관련 지식이 많았던 그는 기아의 발전을 위해 엔진공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엔진이 자동차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중요하게 생각해 현장에서 문제점을 지적했다.

불꽃 튀는 위험한 현장까지 
직접 발로 뛰는 현장경영 

정 명예회장은 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 반드시 현장으로 갔다. 보고서를 검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현장을 방문해 개선을 촉구했다.

현장경영을 중요하게 여겨 해외 출장도 잦았다. 미국, 인도 등 해외 공장으로 가 직원들에게 현장의 문제점을 옆에서 듣고 문제를 개선할 방법을 찾아 해결하고 돌아왔다. 

그의 현장 경영철학은 과거 제철소 사업 추진에서도 드러난다. 현대제철 일관제철소는 정 명예회장이 애정을 갖고 있던 곳이다. 그는 임원에게 “양재동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당진이 아른거린다. 자려고 누워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현장이 보인다.”며 3일에 한 번은 반드시 현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정 명예회장의 현장경영으로 제철소는 3년 만에 착공을 완료해 연간 400만톤 이상의 조강 생산능력을 갖춰 자체적으로 강판과 후판을 생산했다. 정 명예회장이 갑작스럽게 건설현장을 방문하는 일이 잦다 보니 직원들도 현장을 챙기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전해진다.
 

▲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불꽃이 튀고, 철골구조가 많은 위험한 현장에 경영자가 직접 나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한 건설책임자는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맡은 분야를 열심히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현장경영과 더불어 정 명예회장이 강조한 것은 품질경영이다. 미국에 현대자동차가 처음 진출한 시기는 1986년이다. 저렴한 자동차로 주목받았지만, 품질과 성능 평가에서 최하위를 기록했고 차량 판매 역시 적자 상태였다.

심지어 1998년 10월 미국의 한 토크쇼에서 진행자가 “우주에서 장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출연자는 “우주선 계기판에 현대자동차 로고를 붙이면 우주 비행사가 돌아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농담하기까지 했다.

파격적
품질경영

미국 언론 역시 현대의 영문 로고를 두고 ‘저렴하지만 운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 달라(Hope You Understand Nothing’s Driveable And Inexpensive)’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정 명예회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자동차에 대한 품질 경영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에서 판매된 현대의 자동차는 무상보증 기간을 3년·5만마일에서 10년·10만마일로 바꿨다.

미국 자동차 업계는 현대자동차가 품질에서 뒤처져 수리비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으나 정 명예회장은 문제점을 파악하고 사장과 임원을 모아 노동자 옆에서 배우게 해 자동차의 품질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 결과 현대자동차의 미국 판매량은 1998년 9만대에서 2003년 40만대로 늘었다.

차량 전체 누적 판매량은 1999년 2100만대에서 20년이 지난 현재 5배가 넘는 1억1000만대로 늘었다. 팔렸다. 매출 역시 현대자동차가 기업으로 분리하기 이전보다 10배 이상 증가했다. 현대 자동차는 품질 평가 부문에서 2000년 37개 자동차 회사 중 34위에서 2006년 3위로 상승, 2016년은 포르셰를 제치고 1위를 달성했다.

품질을 강조한 그의 경영정신은 남양연구소 투자에서도 드러난다. 남양연구소는 국내 최대 규모의 연구소로, 현대의 울산연구소와 기아의 소하리공장을 하나로 통합한 곳이다.
 

▲ 현대기아차 사옥 ⓒ고성준 기자

정 명예회장이 좋은 품질의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 많은 자본을 투자했다고 알려진 곳이다. 그는 남양연구소에 투자한 이유로 “연구개발 역량과 효율 극대화를 통해 품질을 높여 세계 5대 자동차 회사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정 명예회장은 제철소만큼 남양연구소를 자주 방문해 직접 주행 테스트 등에 직접 참여했다고 한다. 실제로 오피러스의 성능 시험 중 정 명예회장의 귀에 소음이 포착된 적이 있다. 


스피드
뚝심경영

임원들은 소음이 차량 운행에 전혀 문제가 없고, 소음 문제를 해결하면 차량의 선적 날짜에 맞출 수 없다고 전했지만 그는 “이대로 팔 수 없다”며 소음 제거를 위한 팀을 꾸려 완벽한 자동차로 만들 것을 요구했다. 정 명예회장은 부족한 차량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개선했고, 오피러스는 높은 판매율을 기록했다. 

품질 개선에 힘을 쏟자 세계는 현대자동차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동차산업 공헌상을 수상해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2004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 비즈니스위크 자동차 부문 최고의 경영인에 선정됐다.

정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과 경영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의견이 있다. 모두가 힘들 것이라 예측해도 그는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면 일을 진행시켜 결과를 만들었다. 한국전력의 부지 입찰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과감한 투자를 했던 성향이 그렇다.

정 명예회장은 지난 2015년 세계 유가 하락과 미국의 경제 보복으로 러시아 경제가 타격을 받았을 때, 그가 직접 러시아 공장을 방문해 “러시아에 기회가 다시 올 것”이라며 시장에서 철수하는 다른 업체와 다르게 과감하고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했다고 전해진다. 
 

기아자동차를 인수했을 때도 비슷하다. 당시 현대자동차그룹은 삼성그룹과 기아자동차의 인수를 두고 경쟁하고 있었다. 계속된 유찰로 3차까지 간 입찰경쟁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은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기아자동차의 부채 7조4000억원과 1조1781억원 인수 비용을 모두 떠안았다. 임원들은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위기라며 정 명예회장을 말렸지만, 그는 위기를 기회로 여겨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인도 공장을 확장하고, 중국에 생산거점을 확보해 사업을 확장했다. 현대·기아차의 해외 공장 건설에 관련해 우려하는 시선이 많았지만 국내 부품업체와 공동 진출을 하는 방법을 적용해 협력업체의 성장을 꾀해 한국 자동차 산업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경제계는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위기가 기회“ 공격적 투자
부친 닮은 과감한 사업운영

정 명예회장은 자동차 산업이 점차 발달하자 뚝심경영을 발휘한다. 바로 제네시스 브랜드를 만드는 행보를 선택한 것이다. 당시 경제 대침체로 인해 미국 자동차 시장이 큰 타격을 입은 상황이었다. 그는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는 소극적인 다른 업체와 달리 고급 자동차 제작에 주력했다.

제철소 건립으로 이미 현대자동차그룹은 세계 주요 자동차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자동차용 강판 자체 개발 및 생산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췄다. 기초 소재 단계부터 차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구조를 갖춰 차체 주행 성능, 디자인 등에서 모든 준비를 끝냈다. 

당시 출시된 2세대 제네시스를 두고 업계 전문가는 “견고한 차체를 기반으로 한 차량의 5대 기본성능(동력, 승차감, 안전성, 내구성, 정숙성)과 디자인이 높은 수준의 자동차”라고 평가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수소 자동차의 초석도 정 명예회장이 마련했다. 오일쇼크와 외환위기로 자동차 수요가 줄자, 발 빠르게 수소·전기 자동차 개발에 착수한 현대자동차그룹은 2000년 시험용 산타페 수소 전기차를 선보였다. 
 

정 명예회장은 마북연구소를 찾아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도 자동차를 굴려야 한다”며 “하고 싶은 기술을 마음껏 다 적용해 반드시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개발을 지시했다. 정 명예회장의 지시와 연구 개발 끝에 2013년 투싼 수소 전기차가 세계 최초 출시됐다. 

정 명예회장은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단기간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세계시장으로 손을 뻗어 생산 판매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현대자동차그룹을 내수기업에서 세계 자동차 경쟁업체들과 경쟁하는 기업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 자동차 업계는 ‘현대 스피드’라는 수식어로 정 명예회장의 추진력과 과감함을 높게 평가한다.

그의 좌우명은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로 부지런하면 세상에 어려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새벽부터
대책 마련

정 명예회장은 새벽 6시30분에 출근해 하루 종일 문제점에 대한 대책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과감한 투자를 바탕으로 현장과 제품 품질을 직접 챙기며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업계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의 퇴임으로 경영 환경과 방식이 바뀌고 있지만, 현장에서 쌓은 그의 경험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며 “중요한 결정에 대해 정 명예회장이 자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현대차 3세 정의선 청사진

정몽구 명예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현대 자동차가 완벽한 정의선 체제로 새 출발한다. 아직 공정거래위원회가 정의선 회장을 총수로 지정하는 단계가 남았지만 현대자동차그룹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위해 투명경영위원회를 지속가능경영위원회로 확대하는 안건도 함께 의결했다.

주주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이들은 “코로나로 힘든 상황에 기업 실적이 양호한 것 같다”며 “형식만 갖춘 준비가 아니라 제대로 된 개선을 통해 새롭게 출발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새로운 사업의 한 축인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관련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며 이에 따라 첫 여성 사외이사를 영입했다.

현대자동차그룹 관계자는 “부진했던 중국 시장에 재진출해 그룹의 위상을 회복하고 상용차 분야 수익성을 높여, 미래사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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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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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 빛고을 설립 초기 한양이 30%로 최대주주, 우빈산업(25%), 케이앤지스틸(24%), 파크엠(21%)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한양이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의 SPC 빛고을 참여를 위한 초기자본 49억원을 댔다. 한양이 우빈산업에 49억원을 빌려주고 우빈산업이 다시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대여해 지분을 분배했다. 이때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콜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콜옵션은 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우빈산업은 언제든지 원할 때 케이앤지스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을 걸어둔 것이다. ‘초대형’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이면 한양-케이앤지스틸 모종의 관계 의혹 SPC 빛고을 주주구성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컨소시엄 구성 당시 한양이 맡기로 한 시공권이 롯데건설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의 지분 24%를 위임받아 주주권을 행사해 롯데건설과 중앙공원 1지구 아파트 신축 도급 약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서 30% 지분의 한양은 배제됐다. 롯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할 당시 우빈산업에 지분을 위임했던 케이앤지스틸의 태도가 변한 시기는 2022년 5월경으로 추정된다. SPC 빛고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25억3000만원(대여금 24억원+이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빌린 돈을 갚았으니 24% 지분만큼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맺었던 콜옵션을 행사하고 49%의 지분을 확보해 SPC 빛고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우빈산업 내부 사정이 변하면서 한 차례 더 지분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우빈산업은 대출금 100억원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부도 처리됐다. 지급보증을 섰던 롯데건설은 우빈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넘겨 받으면서 49%를 확보했다. 지분양도는 롯데건설이 근질권(담보물에 대한 권리)을 행사해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빈산업이 빠진 자리에 롯데건설이 들어오면서 현재 기준 빛고을 SPC 지분구조는 한양 30%, 롯데건설 29.5%, ㈜파크엠 21%, 허브자산운용 19.5%로 재편된 상태다. 허브자산운용이 보유한 19.5%는 롯데건설로부터 양도받은 것이다. SPC 빛고을 내에서 롯데건설의 발언권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뉜 지분 콜옵션으로? 사업시행권과 시공권을 두고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이 궤를 같이 하면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쟁점은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이 가진 지분이 최종적으로 누구의 소유냐는 것이다. 두 회사의 지분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을 갚았으니 24%에 대한 주주권이 자사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양은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우빈산업에 49억원의 출자금을 대여하면서 맺은 특별약정을 내세웠다. 해당 약정에 한양이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비공원시설 시공권을 전부 갖는데 우빈산업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항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우빈산업이 주도해 롯데건설로 시공사를 바꾼 것은 특별약정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이 각각 우빈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서 모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주주권 확인 소송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SPC 주식을 실제로 소유한 주주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양 관계자도 “1심 법원은 우빈산업이 한양에게 49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보유 주식 25% 전량을 양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건설은 소송 판결 한 달 전, 우빈산업의 지분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우빈산업이 한양에 양도할 주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한양은 우빈산업의 ‘고의 부도’를 의심하고 있다. 한양은 1심 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사가 지분 55%(한양 30%+우빈산업 25%)의 SPC 빛고을 최대주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서 한양에 ‘시공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으면서 시공자 지위는 잃게 됐다. 소송 이겨도 지위 잃었다 최근 SPC 빛고을 지분 갈등서 케이앤지스틸의 역할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케이앤지스틸은 상하수도 설비공사 업체로 2003년에 설립됐다. SPC 빛고을에 우빈산업과 함께 참여했다가 현재는 빠진 상태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전 대표가 우빈산업과 친분이 있어서 (SPC 빛고을에)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사태서 롯데건설과 우빈산업은 이른바 ‘비한양파’로 묶여있다. 두 업체의 지분 이동도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반면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은 두 업체 모두 우빈산업과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서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적(우빈산업)이 같을 뿐 특별히 관계가 있는 업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양의 모기업인 보성그룹 계열사에 속한 ‘앤유’라는 업체가 케이앤지스틸에 2022년 4월, 2억원을 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앤유는 이기승 보성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점식씨가 지분 83.6%를 가지고 있는 친족회사다. 전기 조명장치 제조업체로 2007년에 설립됐다. 2022년 기준 매출은 28억2900만원, 영업이익은 3억300만원으로 확인된다. 한양과의 거래를 통해 27억79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앤유는 케이지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주는 과정서 1주일짜리 주식근질권을 설정했다.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이 2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케이앤지스틸의 주식이 전부 앤유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의 대표이사를 비롯해 사내이사 3명 등 4명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1명은 앤유 대표인 정모씨의 아내로 추정된다. 케이앤지스틸 수뇌부가 물갈이된 것이다. 당시 케이앤지스틸의 채무가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로 적자가 누적된 상태였다고 해도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배권을 넘겨준 것을 두고 석연찮은 의문이 일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주식 근질권 설정도 의문으로 떠올랐다. 보성그룹에 기생하는 ‘앤유’ 푼돈 주고 1주 만 회사 꿀꺽? 더 흥미로운 대목은 같은 해 5월 케이앤지스틸이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 25억3000만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의혹이 동시에 불거진 점이다. 다시 말해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분 100%를 앤유에 넘겨주고 한 달 만에 20억원이 넘는 돈을 융통해 SPC 빛고을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여기에 우빈산업을 상대로 한 주주권 확인 소송 등에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면서 수임료에 대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케이앤지스틸이 지분확보를 위해 사용한 자금 출처가 한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양 입장서 케이앤지스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확보하면 54%로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로 시공자 지위는 상실했지만 롯데건설에 넘어가 있는 시공권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분 갈등 구조가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로 정리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양과 케이앤지스틸 모두 두 업체 간 모종의 관계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앤유라는 계열사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앤유서 케이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줬다거나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빈산업서 (1심)소송에 져서 계속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대응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보다 광주시가 우빈산업과 결탁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게 상황을 봐주고 있다고 판단해 광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시는 사업시행자이자 감독관청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아 공모 제도가 다 무너졌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광주시의 행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석연찮은 자금 출처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한양이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에 대해 “우빈산업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주주가 들어와 투자가 이뤄지면서 주금 대여금을 갚은 것이다. 우빈산업에서는 (우리가)한양의 위장계열사 아니냐, 대표이사 선임 과정이 의심스럽다, 자금 출처가 어디냐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건 주주권 확인 소송서 져서 그러는 것이다. 한양이랑 우리랑은 큰 관계가 없는데 자꾸 엮어서 흠집을 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케이앤지스틸 대표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 회사에 300억원 정도의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행이익을 1100억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 회사 지분이 24% 정도니까 그렇게 계산한 것이다. 수익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맡게 됐고, 새로운 주주들도 그 사업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