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내몰린 이명박 민심탈환 시나리오 <대해부>

성난 파도 피하려다 좌초한다 ‘살길은 정면돌파뿐!’

‘속도전’을 강조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이 대통령이 1·19 개각을 전격 단행하는 과정에서 헌신짝 인사들을 청와대로 다시 불러들여, 취임 초기의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 성향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여권에서는 ‘정치인 입각설’과 용산 참사로 인한 ‘김석기 사퇴론’을 거듭 주장했지만, 이 대통령은 이들의 주장을 묵살(?)했다. 게다가 박근혜 전 대표와의 갈등도 여전하다. 결국 ‘일방통행식’ 역주행은 계속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최근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용산 참사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로 진입한 것. 이는 ‘보수세력 대결집’으로 인한 상대적 지지율 반등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까닭에 경제 살리기의 일환인 ‘MB법안’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일방통행식’ 역주행을 계속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금씩 지지율을 회복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위기에 내몰린 이명박 정부. 과연 이 대통령은 어떤 방식을 통해 위기를 헤쳐나갈까.
 

이명박 대통령에게 2009년은 매우 중요한 시기다.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 놓여 있어서다. ‘올해에 모든 승부수를 띄워야 된다’는 말처럼 이 대통령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의 리더십은 어떠할까. 흔히들 위기에 강하다고 말한다. 이른바 ‘위기의 사나이’라고 불릴 정도로 현대건설 사장-서울시장-대권후보-대통령으로서 걸어온 길은 말 그대로 위기를 기회로 삼는 ‘인생 대역전극’이었다.
이를 대변하듯 이 대통령의 삶을 담은 <신화는 없다>라는 자서전은 “소중한 것을 먼저하기 위해 뒤로 미루거나 정중히 거절하는 용기와 자신의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주장하는 용기가 있었다”, “나를 가로막던 위기와 도전 앞에서 우회하지 않고 정면에서 돌파했다”, “당당하라, 직시하라 정면 돌파 없이는 이길 수 없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 대통령의 삶 자체는 말 그대로 ‘정면돌파’라는 얘기다.

실제 이 대통령의 신화는 거침이 없었다. 현대건설 사장 시절 현대조선이 대형 유조선 3척을 해외 해운업체로부터 수주했지만, 불황이 닥쳐오면서 돌연 계약이 취소됐다. 수주대금을 받았지만, 정주영 당시 그룹회장과의 고심 끝에 “해운사를 하나 만들어 유조선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렇게 설립된 것인 바로 현대상선의 전신인 ‘아세아상선’이다.
서울시장 재임기간도 ‘정면돌파’ 의지는 강했다. 청계천 복원·대중교통체계 개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질론’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지없이 ‘불도저’ 같은 추진력이 발휘됐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이 대통령이 청와대로 갈 수 있었던 ‘징검다리’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용산 참사’, ‘경제위기’, ‘남북관계 경색’, ‘박근혜 전 대표와의 불편한 관계’ 등 어려운 난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정치권 한 관계자는 “1·19개각만 봐도 알 수 있다. 권력사유화 문제로 사퇴했던 박영준 전 대통령실 기획조정비서관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다시 기용하는 것은 ‘일방통행식’ 역주행이기도 하지만 ‘정면돌파’를 하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라며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에 대한 유임설이 나오는 것 역시 이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이라고 밝혔다. 
실제 박 국무차장은 권력 사유화의 장본인이다. 인수위 시절 이 대통령에게 보고가 올라가기 전에 박 국무차장을 먼저 거쳐야 했을 정도다. 게다가 고위직 공무원들을 수시로 불러모았다는 점에서 인수위에서 활동했던 관계자들로부터 빈축을 샀다는 후문이다. 그런 그가 다시 ‘복귀했다’는 것은 친정체제를 강화를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 김 경찰청장 내정자에 대한 거취 문제도 비슷한 맥락이다. 어청수 전 경찰청장보다 더 강한 ‘공안정국’을 형성할 사람이란 말이 회자될 정도로 ‘법질서’를 확고히 함은 물론 ‘정면돌파’를 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이 내놓은 민심탈환 프로젝트는 무엇일까. 정치권에서는 위기관리 리더십을 계속적으로 발휘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제위기 극복이 바로 그것이다.

이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4대강 정비 등 경제정책에 바짝 고비를 당기고 있다. 이른바 ‘속도전’을 펼치고 있는 것. 속도전의 의지는 이미 곳곳에서 드러났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1·19 개각을 비롯해 ‘국민과의 소통’, ‘MB법안’ 추진 의지가 대표적이다. 
실제 이 대통령은 “금년에 승부를 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2009년을 맞이했다. 때문에 이 대통령은 등 돌린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여준 전 의원은 “소통 통합이 민주주의 본질적 가치라고 말했으니 이런 가치를 내면화해서 생활 속에 실천하는 자질 있는 정치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 밖에 다른 수가 없다”며 “국민이 관대해서 혼내면 그걸로 넘어간다.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나가면 한번 야단치고 넘어가지 어쩌겠나. (이 대통령이) 꼼수를 쓰고 넘어가 봐라. 국민이 금방 꼼수라는 걸 알고 정부의 불신이 커진다”고 이 대통령에게 뼈 있는 말을 던졌다. 소통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를 위한 첫 신호탄이 바로 지난달 30일 공중파를 통해 방송된 SBS 원탁토론이다. 사실 이 대통령은 지난 1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국정운영 기조를 재검토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미덥지 못했다.
‘인사파동’, ‘촛불정국’ 등이 몰아닥쳤을 때 이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만 할 뿐 변화된 모습은 없었다.실제 지난해 6월19일 “대통령에 당선된 뒤 저는 마음이 급했습니다. 역대 정권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취임 1년 내에 변화와 개혁을 이루어내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보다도 자녀의 건강을 더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세심히 살피지 못했습니다. 저와 정부는 이 점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던 것. 그러나 이 대통령은 또 다시 불도저식 ‘정면돌파’를 선택했고 또 다시 위기를 맞았다.

불도저식 정면돌파 의지 굳건…헌신짝 인사 핵심요직 복귀
용산 참사 등 당·청 갈등 표면화, ‘새로운 모습 보여라!’


따라서 이 대통령은 SBS 원탁토론을 시작으로 ‘정면돌파’ 전략과 동시에 ‘소통정치’를 취할 태세다. 이날 방송에서 이 대통령은 ‘소통정치’를 강화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경제위기론에 직면해 실상을 낱낱이 설명했고, 국민들에게 협조하는 모양새를 취했던 것. 설 이후 뿔난 민심을 되돌아보는 절호의 기회였다는 얘기다.
이뿐만 아니다. 당·청간의 불협화음을 없애기 위해 지난 2월2일 한나라당 중진인사들과 오찬모임을 가졌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정몽준·허태열·공성진·이상득 의원 등 총 2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오찬모임은 1·19 개각에 대한 평가와 2월 임시국회에서 있을 각종 쟁점 법안 처리 등에 대한 당·청간의 논의가 이뤄졌다.
실제 이 대통령은 ‘1 19 개각’에 따른 인사청문회에 대한 당의 협조와 정부의 ‘경제 살리기’ 노력을 설명했고, 미디어 관련법·한미 FTA 비준동의안 등 민생 개혁 법안들의 조속한 처리도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이달곤 의원을 내정함으로써 여권 내의 목소리를 들어줬다. 소통 정치가 서서히 가동된 셈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성난 민심을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당·청 갈등 해소는 물론 박 전 대표와의 끊임없는 충돌을 막아야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사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여전히 화학적 결합이 어렵다. ‘떠 있는 태양’과 ‘뜨는 태양’간의 대립구도와 2010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한바탕 ‘진검승부’가 불가피한 상황. 이 대통령이 외적으로 ‘경제 불황’으로 힘들어한다면 내부적으론 박 전 대표와의 갈등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정면돌파’보다는 통합의 리더십이다. 때문에 박 전 대표와의 갈등이 확산될 소지가 보인다면 ‘속도전’을 과감하게 늦춰서라도 봉합해야 한다. 더 나아가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박 전 대표의 ‘입김’이 바로 대다수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한 친이계 내부의 비판적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여권 내부에서 오래전부터 회자되고 있는 중이다.
안국포럼 출신 김영우 의원은 지난달 28일 “민심을 얻고 우리정부의 성공을 좀 더 장기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속도조절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국정운영에서 최고의 우선순위는 경제위기가 가정파탄, 경제고아 양산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 국가경제와 서민경제를 살리는 일에 당과 정부가 합심하고 야당의 협력을 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즉 이 대통령이 경제 위기론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정면돌파 할 필요성이 있지만, 민심을 잡기 위해서는 여야간의 대화를 통한 ‘소통 정치’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면 이 대통령은 국민과 정부에게 감동을 안긴 적이 거의 없다. 그만큼 위기에 내몰렸다는 것을 반증한다. 지난 1년을 발판 삼아 이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줘야 한다. 따라서 이 대통령은 TV 토론과 중진의원간의 오찬회동에서 간접적으로 보여줬던, ‘소통정치’를 계속적으로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즉 이 대통령이 성공한 지도자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경제 위기를 ‘정면돌파’하는 대신 당·청, 국민들과 소통하는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교훈은 실패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이 대통령이 지난 1년 동안 겪었던 위기를 ‘반면교사’ 삼아 뿔난 민심을 되돌리고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할 것인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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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