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피자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 여대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건 발생 10여일이 지난 이후 이 사건은 취업난으로 열악한 조건서 일하는 ‘88만원 세대’의 한 단면을 드러낸 케이스로 이슈화되고 있다. 그녀의 죽음은 단순 ‘자살’이 아니라 고용주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아르바이트생의 어두운 단면과 등록금 마련을 위해 극단적 상황에 내몰린 이 땅의 젊은이들이 처한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TV에서 일어나는 일이 실제로 나한테 일어나고 있다. 치욕스럽고 고통스럽고 모욕스럽다. 그가 나에게 협박을 계속하고 있다. 나를 죽일까봐 너무나 공포스럽다. 그래서 대신 내가 죽는다. 죽어서 진실을 알리겠다. 내가 당한 일을 인터넷에 띄워 알려 달라. 친구들아 도와줘. 경찰 아저씨 이 사건을 파헤쳐서 그 사람을 사형시켜 주세요.’
사장손에 모텔 끌려가
죽음 직전 여대생이 자신의 휴대전화에 남긴 유언 전문이다. 충남의 한 대학교 아동미술학과를 다니던 여대생 이씨. 올해로 만 22세인 그는 “친구들을 만나고 오겠다”며 아버지의 승용차를 갖고 나가 연탄불을 피우고 꽃다운 생을 마감했다.
안타까운 이씨의 죽음은 사건의 내막을 공론화한 친구들로부터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씨의 친구들은 ‘친구일동’이라는 이름으로 친구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는 글을 최근 인터넷에 올렸다.
그들은 “피자가게의 현 사장이자, 부인과 어린 아들을 둔 한 가정의 가장인 사장이 꽃과도 같았던 친구(이씨)를 무참히도 짓밟았다”며 “강간과 협박을 하고 사진을 촬영하여 간직하는 등 여자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 수치심을 안겨주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방학 기간 동안 부모님의 부담을 덜기 위해 용돈을 조금이라도 벌어보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다 사장의 지속되는 성폭행과 협박에 못 이겨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꿈에 부풀어 있을 한 여대생을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는 L피자가게 주인 안모(37)씨다.
이씨는 자살하기 이틀전날도 안씨의 협박을 받고 강제로 모텔에 끌려갔다. 이씨의 집 앞까지 찾아가 협박하여 불러내고 또 다시 강간한 후 충격과 공포에 떨고 있는 이씨의 나체를 찍어 또 다시 협박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모텔로 끌려가며 이씨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나는 살기 위해서 지금도 이런 치욕적인 곳을 따라간다. 치욕당한 몸을 모두 소독하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안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이씨가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겪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살 직전 여대생 휴대전화에 남은 충격적 유언
결혼해 젖먹이 자식까지 있는데…교활한 두 얼굴
죽음을 각오하고 유서를 쓰고 있는 순간에도 안씨의 협박은 계속됐다. 안씨는 강제로 찍은 이씨의 나체사진을 휴대전화를 통해 보내며 위협했다.
이씨는 휴대전화에 남긴 유서에 “이 더러운 놈 봐라. 이 순간에도 더러운 카톡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토할 것 같다”라고 적었다.
이씨의 사연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강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사장 안씨에 대한 ‘신상털기’는 물론 일부 네티즌은 싸이월드를 뒤져 모자이크 처리 없이 안씨의 사진을 퍼뜨리기도 했다. 동료 알바생들은 “사장이 숨진 여대생에게 ‘너는 얼굴이 예뻐서 뽑았다’며 자주 추근댔다”는 진술을 하기도 했다.
수많은 네티즌이 이번 사건에 분노하는 이유는 결혼해 젖먹이 자식까지 있는 안씨가 가게 사장이라는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이씨를 성폭행한 것도 모자라 “사귀고 싶다. 안 만나주면 죽이겠다”고 나체사진을 찍어 끊임없이 협박하는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중적인 얼굴에 ‘경악’
네티즌들은 안씨의 신상을 터는 과정에서 자신의 가정은 행복하게 꾸린 사진과 평범한 삶을 적은 글을 발견하고 그의 소름끼치는 이중적인 모습에 더 분노하고 있다.
안씨가 어린 여대생을 상대로 몹쓸 짓을 하면서 집에서는 다정한 가장이었던 것을 증명하는 사진도 여러장 공개됐다. 안씨가 결혼을 앞두고 ‘이제 나도 가는구나∼’라는 제목으로 올린 사진과 자신의 아이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 등이다.
네티즌들은 “가족까지 있는 사람이 성폭행한 것도 모자라 협박하고 괴롭혔다니 인간 말종이다”면서 “명백하게 죄를 샅샅이 파헤쳐서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이번 사건이 이슈화되면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아르바이트생 성폭력 실태의 심각성도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22일 고용노동부가 청소년 28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 아르바이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아르바이트 중 성폭행을 경험한 학생은 6.0%(172명)에 달했다. 이번 사건과 유사한 사건은 매년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전남 광주에 위치한 한 편의점 업주가 아르바이트생을 편의점 창고로 데려가 성폭행했고 한 노래방 업주는 학비를 벌기위해 도우미 아르바이트를 하던 명문대 여대생을 집에 데려다 주겠다며 차에 태운 뒤 인근 모텔로 끌고가 성폭행 했다. 경남 창원에서도 한 식당 고용주가 자신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고생의 친구를 자신의 원룸으로 데려가 수차례 성폭행 해 구속되기도 했다.
이처럼 알바생 성폭행 사건이 빈번히 일어나자 시민사회단체들은 “고용주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폭행 사건이 더 이상 없도록 철저하게 수사해 달라”고 촉구하며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과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아울러 성폭력상담 전문가들도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벌이는 성범죄 관련 교육은 미흡하다”고 지적하며 “성폭행한 가해자는 살아남고 피해자만 억울하게 세상을 등지는 일은 다신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분노했다.
계속된 경기침체로 웬만한 대학생들은 등록금과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알바에 뛰어든다. 그러나 이들이 내딛는 노동의 첫걸음엔 온갖 불법과 횡포가 난무하다. 뒤 늦게 우리사회의 경종을 울린 한 알바생의 죽음이 노동인권에 무거운 과제를 남긴 이유다.
강력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악마의 맷돌’은 돌고 있다.